봄이 옵니다. 마음까지 '빨래'하세요 - 뮤지컬 <빨래>
열심히 사는 데도 삶이 차곡차곡 누적된다는 느낌 없이 하루하루가 ‘똔똔’으로 느껴진다면, 희망 없이 절망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있는 당신이라면, 뮤지컬 <빨래>는 대환영이다. 당신이 ‘완전 내 이야기야!’ 무릎을 치며 웃고 있는 사이에, 뮤지컬 <빨래>는 노래로, 가사로 당신의 얼룩진 마음 쓱쓱 빨고 위로해줄 거다.
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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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서울 살이 어떤가요?
나의 서울 살이. 올해로 3년 차. 1년 반 동안 열심히 일해서, 보증금을 만들고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해 대출을 받았다. 대출규정에 따르면, 은행 거래가 많지 않거나(돈이 없는데 거래할 일이 뭐 있….), 직업이 불안정한 경우(비정규직) 대출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없는 놈한테 더 받겠다는 대출제도에 상처받으면서 빚을 지고, 결국 그 빚을 갚으려고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도대체 일 때문에 집을 구한 건지, 집 때문에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리는 지경이 온다. 대출받아 집 구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난생처음 독립해 혼자 시작한 서울 살이, 서럽게 눈물 쏟을 일이 이뿐인가. 온갖 소음을 들려주며 사생활을 공유하자는 옆집 사람, 이 주차공간이 내거냐 네거냐, 클랙슨부터 울려가며 싸우는 앞집 사람, 술 취해서 한밤중에 고래고래 욕을 하며 지나가는 취객까지. 분명히 내 돈 내고, 나만의 작은 공간 마련했는데, 이곳의 평화를 지키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매일 일 인분의 끼니를 챙기고, 방 청소를 하고, 내가 입은 옷을 빨래하면서, 내 한 몸 건사하는 일이 이토록 고단하구나, 실감한다. 그렇게 하루치의 삶을 확인하는 게 빨래고, 서울살이라고, 뮤지컬 <빨래>는 노래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순간도 있다. 몇 평 안 되는 내 방이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내 맘대로 몸 뉘일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아늑한 기분이 든다. 비 오는 날에는 창문 사이로 들리는 빗소리와 음악에 취해 황홀한 기분에 취한다. 또 어느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날에는 방의 냉기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쯤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 중얼거리며 의기소침해진 채 잠든 밤도 있었다. 이 방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었고, 언제나 가장 절망적인 것은, 딱 요만큼일 것 같은, 내 삶이 좀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단칸방에서 겪는 나만의 희노애락 고스란히 담았다
뮤지컬 <빨래>는 내 방에서 겪는 이런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펼쳐낸다. ‘서울살이 몇핸가요?’로 시작되는 뮤지컬 <빨래>를 보고 있자니, 나도 한 대목 사연을 넣어 내 서울살이를 노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내 삶과,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에 살지만,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려고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체류자, 공장 노동자, 동대문 상인, 슈퍼 아저씨, 버스 운전기사….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자기만의 삶의 분량을 두 어깨에 메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우리 앞집, 혹은 옆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웃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한다.
정신없이 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지만, 동네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다며 금세 예쁘게 웃는 사람. 짜증스런 얼굴로 집을 박차고 나간 애인 때문에 종일 외로운 시간을 보낸 사람, 비가 와서 출근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사람, 장난 같은 쥐꼬리 월급에 장난 아닌 카드 값에 벌벌 떠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를 꼭 빼닮은 사람들이 무대 위에 있다.
열심히 사는 데도 삶이 차곡차곡 누적된다는 느낌 없이 하루하루가 ‘똔똔’으로 느껴진다면, 희망 없이 절망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있는 당신이라면, 뮤지컬 <빨래>는 대환영이다. 당신이 ‘완전 내 이야기야!’ 무릎을 치며 웃고 있는 사이에, 뮤지컬 <빨래>는 노래로, 가사로 당신의 얼룩진 마음 쓱쓱 빨고 위로해줄 거다.
얼룩진 마음, 눈물로 웃음으로 깨끗이 빨아드립니다
올해로 스물일곱 나영이 강원도 강릉을 떠나 서울의 작은 동네로 이사를 온다. 연애하고 싸우는 일을 끼니처럼 거르지 않는 옆집 희정 아줌마, 장애우 딸을 보살피는 주인집 할머니, 한국에서 욕을 제일 먼저 배운 필리핀 노동자,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월급을 체납당하며 일하는 몽골 청년 솔롱고를 그곳에서 만난다.
듣기만 해도 고단해지는 사연이라고? 공연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들을 통해 깨알 같은 웃음과 뭉클함을 발사한다. 일상의 작은 감동, 관계 속의 작은 기쁨을 <빨래>는 놓치지 않고 노래한다.
이 극을 쓰고 만든 추민주 연출가는 언젠가 빨래를 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때, ‘그래. 산다는 게 이렇게 빨래하는 일 같은 거 아닐까’하고 깨닫지 않았을까?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에 계속 빨래를 하고, 빨래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걸 실감한다. (물론 극 속에서처럼 찬물에 맨발을 담그고, 옷을 팡팡 밟아가며 빨래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껴야 ‘실감’할 수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세상은 성실함이나 선함만으로 감당하기에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맞닥뜨린 부당한 일을 참고 견디지만, 그런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역시 이래선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울한 기분이 들어 몸서리친다. 서점에서 사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그에 항거했다가 전출까지 당하게 된 나영이 서럽게 울며 집으로 돌아올 때, 그녀를 본 옆집 희정 아줌마와 주인할머니는 온 정성을 쏟아 위로해준다. 위로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목 막히겠다, 물 마셔가며 울어라.’ ‘숨넘어간다. 따뜻한 데 좀 누워라.’ 사회 생활하면서 느끼기 그 따뜻한 마음, 내 생각해주는 그들의 한마디가 서럽게 고마워서 나영은 더 꺼이꺼이 운다. 보는 이들의 속이 후련해지도록, 그리고 이내 짠해지도록.
두 사람은 더 울어버리는 나영을 달래기 위해 온갖 노래와 춤과 애교와 연륜을 발휘하는데, 눈물 콧물에 웃음까지 펑펑 쏟아지게 하는 이 장면은 <빨래>의 백미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며 마음에 아픈 얼룩 묻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 두 사람이, <빨래>가 힘껏 빨고 다려준다.
얼룩졌다면, 올 봄에 꼭 한번 <빨래> 하라고
무거운 사연을 담은 만큼, 그 위로의 힘도 묵직하다. ‘힐링 뮤지컬’이라는 광고 문구의 ‘힐링’은 그저 트랜디한 의미의 힐링이 아니다. <빨래>라는 공연은 관객의 삶을 한번 제대로 문질러 빨아보겠다고 작정했으니까. 한국 뮤지컬 대상 작사, 극본상. 더 뮤지컬 어워드 작사, 극본상 등의 수상에 값하는 대사와 노래가 장면마다 반짝반짝 빛난다.
2005년 초연 이후 2,000회 이상 공연하며 3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고, 작년에는 일본에 라이센스를 수출했다. 이번이 무려 13차 프로덕션으로,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관객을 만난다. 4월 23일부터 매주 화, 목요일 낮 12시에는 KB문화브런치 후원으로 전석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낮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이 특별한 이벤트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 “문화브런치” - 뮤지컬 <빨래> 예매하기)
오래 객지 생활하는 선배에게, 가족이라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온 부모님에게, 요즘 부쩍 피곤해하는 친구에게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가자고 권했다. 그리고 이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얼룩졌다면, 올 봄에 꼭 한번 <빨래> 하라고.”
나의 서울 살이. 올해로 3년 차. 1년 반 동안 열심히 일해서, 보증금을 만들고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해 대출을 받았다. 대출규정에 따르면, 은행 거래가 많지 않거나(돈이 없는데 거래할 일이 뭐 있….), 직업이 불안정한 경우(비정규직) 대출 이자를 더 내야 한다. 없는 놈한테 더 받겠다는 대출제도에 상처받으면서 빚을 지고, 결국 그 빚을 갚으려고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도대체 일 때문에 집을 구한 건지, 집 때문에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리는 지경이 온다. 대출받아 집 구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난생처음 독립해 혼자 시작한 서울 살이, 서럽게 눈물 쏟을 일이 이뿐인가. 온갖 소음을 들려주며 사생활을 공유하자는 옆집 사람, 이 주차공간이 내거냐 네거냐, 클랙슨부터 울려가며 싸우는 앞집 사람, 술 취해서 한밤중에 고래고래 욕을 하며 지나가는 취객까지. 분명히 내 돈 내고, 나만의 작은 공간 마련했는데, 이곳의 평화를 지키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매일 일 인분의 끼니를 챙기고, 방 청소를 하고, 내가 입은 옷을 빨래하면서, 내 한 몸 건사하는 일이 이토록 고단하구나, 실감한다. 그렇게 하루치의 삶을 확인하는 게 빨래고, 서울살이라고, 뮤지컬 <빨래>는 노래한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순간도 있다. 몇 평 안 되는 내 방이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내 맘대로 몸 뉘일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아늑한 기분이 든다. 비 오는 날에는 창문 사이로 들리는 빗소리와 음악에 취해 황홀한 기분에 취한다. 또 어느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날에는 방의 냉기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쯤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 중얼거리며 의기소침해진 채 잠든 밤도 있었다. 이 방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었고, 언제나 가장 절망적인 것은, 딱 요만큼일 것 같은, 내 삶이 좀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단칸방에서 겪는 나만의 희노애락 고스란히 담았다
뮤지컬 <빨래>는 내 방에서 겪는 이런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펼쳐낸다. ‘서울살이 몇핸가요?’로 시작되는 뮤지컬 <빨래>를 보고 있자니, 나도 한 대목 사연을 넣어 내 서울살이를 노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내 삶과,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에 살지만,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꾸려가려고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체류자, 공장 노동자, 동대문 상인, 슈퍼 아저씨, 버스 운전기사….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자기만의 삶의 분량을 두 어깨에 메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 우리 앞집, 혹은 옆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웃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한다.
정신없이 일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왔지만, 동네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좋다며 금세 예쁘게 웃는 사람. 짜증스런 얼굴로 집을 박차고 나간 애인 때문에 종일 외로운 시간을 보낸 사람, 비가 와서 출근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사람, 장난 같은 쥐꼬리 월급에 장난 아닌 카드 값에 벌벌 떠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를 꼭 빼닮은 사람들이 무대 위에 있다.
열심히 사는 데도 삶이 차곡차곡 누적된다는 느낌 없이 하루하루가 ‘똔똔’으로 느껴진다면, 희망 없이 절망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있는 당신이라면, 뮤지컬 <빨래>는 대환영이다. 당신이 ‘완전 내 이야기야!’ 무릎을 치며 웃고 있는 사이에, 뮤지컬 <빨래>는 노래로, 가사로 당신의 얼룩진 마음 쓱쓱 빨고 위로해줄 거다.
얼룩진 마음, 눈물로 웃음으로 깨끗이 빨아드립니다
올해로 스물일곱 나영이 강원도 강릉을 떠나 서울의 작은 동네로 이사를 온다. 연애하고 싸우는 일을 끼니처럼 거르지 않는 옆집 희정 아줌마, 장애우 딸을 보살피는 주인집 할머니, 한국에서 욕을 제일 먼저 배운 필리핀 노동자,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월급을 체납당하며 일하는 몽골 청년 솔롱고를 그곳에서 만난다.
듣기만 해도 고단해지는 사연이라고? 공연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들을 통해 깨알 같은 웃음과 뭉클함을 발사한다. 일상의 작은 감동, 관계 속의 작은 기쁨을 <빨래>는 놓치지 않고 노래한다.
이 극을 쓰고 만든 추민주 연출가는 언젠가 빨래를 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때, ‘그래. 산다는 게 이렇게 빨래하는 일 같은 거 아닐까’하고 깨닫지 않았을까?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에 계속 빨래를 하고, 빨래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걸 실감한다. (물론 극 속에서처럼 찬물에 맨발을 담그고, 옷을 팡팡 밟아가며 빨래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껴야 ‘실감’할 수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세상은 성실함이나 선함만으로 감당하기에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 맞닥뜨린 부당한 일을 참고 견디지만, 그런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역시 이래선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울한 기분이 들어 몸서리친다. 서점에서 사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그에 항거했다가 전출까지 당하게 된 나영이 서럽게 울며 집으로 돌아올 때, 그녀를 본 옆집 희정 아줌마와 주인할머니는 온 정성을 쏟아 위로해준다. 위로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목 막히겠다, 물 마셔가며 울어라.’ ‘숨넘어간다. 따뜻한 데 좀 누워라.’ 사회 생활하면서 느끼기 그 따뜻한 마음, 내 생각해주는 그들의 한마디가 서럽게 고마워서 나영은 더 꺼이꺼이 운다. 보는 이들의 속이 후련해지도록, 그리고 이내 짠해지도록.
두 사람은 더 울어버리는 나영을 달래기 위해 온갖 노래와 춤과 애교와 연륜을 발휘하는데, 눈물 콧물에 웃음까지 펑펑 쏟아지게 하는 이 장면은 <빨래>의 백미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며 마음에 아픈 얼룩 묻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 두 사람이, <빨래>가 힘껏 빨고 다려준다.
얼룩졌다면, 올 봄에 꼭 한번 <빨래> 하라고
무거운 사연을 담은 만큼, 그 위로의 힘도 묵직하다. ‘힐링 뮤지컬’이라는 광고 문구의 ‘힐링’은 그저 트랜디한 의미의 힐링이 아니다. <빨래>라는 공연은 관객의 삶을 한번 제대로 문질러 빨아보겠다고 작정했으니까. 한국 뮤지컬 대상 작사, 극본상. 더 뮤지컬 어워드 작사, 극본상 등의 수상에 값하는 대사와 노래가 장면마다 반짝반짝 빛난다.
2005년 초연 이후 2,000회 이상 공연하며 3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고, 작년에는 일본에 라이센스를 수출했다. 이번이 무려 13차 프로덕션으로,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관객을 만난다. 4월 23일부터 매주 화, 목요일 낮 12시에는 KB문화브런치 후원으로 전석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낮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이 특별한 이벤트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 “문화브런치” - 뮤지컬 <빨래> 예매하기)
오래 객지 생활하는 선배에게, 가족이라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온 부모님에게, 요즘 부쩍 피곤해하는 친구에게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가자고 권했다. 그리고 이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다. “얼룩졌다면, 올 봄에 꼭 한번 <빨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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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dkdldodh
2013.05.28
브루스
2013.04.30
rostw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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