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갈리마르 출판사가 펴낸 방대한 생텍쥐페리 『데생집』에서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데생은 생텍쥐페리가 가장 즐겨 했던 심심풀이의 하나였다. 별다른 야심이 없어 보이는 하찮은 모습으로나마, 저마다의 내면에 깊숙이 묻혀 있는 경이로운 그 무엇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그런 심심풀이 말이다. 그리하여 데생은 그의 우화의 가장 귀중한 보조물이 되어 사물과 존재들에 던지는 순진한 시선, 내면적인 울림이 풍부한 진정한 시선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들 저마다가 해방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이 책에 한데 모아놓은 생텍쥐페리의 수많은 데생들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시선의 자질이다. 어린 왕자에게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하기 이전에 작가는 이미 무수한 종이들에 수많은 그림들을 그려놓았었다. 거기에는 합성된 획으로 그려진 어리거나 젊은 인물이 대개는 꽃 핀 언덕이나 나비가 날아다니는 꽃밭에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그림들을 보면 생텍스가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생각해내기 이전에 이미 어린 왕자는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그는 우선 자신의 글과 어울리는 군더더기 없고 소박한 방식으로 지극히 순정한 획을 긋고자 하고(이것이 생텍스 식의 ‘깨끗한 선’이다) 태도, 물건, 배경의 진실성을 모색한다(가까운 사람들, 자기가 지니고 있는 물건이나 장난감들을 모델로 삼았지만 추억에 호소하기도 했다). 다른 인물들과 그들의 ‘우스꽝스런 면’을 실감나게 할 때는 캐리커처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 왕자는 바로 생텍쥐페리의 아이요 그의 잉크와 수채와 눈물이 한데 섞인 아들이다.” | ||
꽃-별 밭에 서 있는 어린 인물(어린 왕자의 첫 착상일 가능성이 있다).
노란 마분지에 연필과 색연필
어린 왕자는 작가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도 그 어렴풋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30년 안데스 산맥에서 실종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친구 기요메에게 카사블랑카에서 보낸 편지에는 어떤 산꼭대기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돌아서 있는 고독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한 인물을 그려넣고 이렇게 쓴다.
“기요메, 이 친구야. 위의 그림을 보면 내가 자네의 도착을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지 알걸세. 내가 지평선을 응시하고 서 있는 이 모래언덕에서 사람들은 절대로 나를 끌어내리지 못할 거야. 또한 아래에 그린 그림을 보면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열정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알 거야. 나는 엉망으로 어질러놓은 방 안 정리도 할 사이가 없어!” | ||
1932년 여름 아에로포스탈 아르헨티나 회사가 없어지자
생텍쥐페리는 카사블랑카-다카르 항로에 투입되었다.
앙리 기요메는 여러 해 전부터 같은 항로에서 일하는 동료 비행사였다.
“기요메, 이 친구야. 위의 그림을 보면 내가 자네의 도착을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지 알걸세.
내가 지평선을 응시하고 서 있는 이 모래언덕에서 사람들은 절대로 나를
끌어내리지 못할 거야. 또한 아래에 그린 그림을 보면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열정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지를 알 거야.
나는 엉망으로 어질러놓은 방 안 정리도 할 사이가 없어!”
앙리 기요메(1902~1940)에게 보낸 편지. 등을 돌리고 앉아 글을 쓰는 자화상.
종이에 잉크, 수채, 색연필.
한 작가의 삶에 있어서 무수히 떠오르게 되는 어렴풋한 생각들이 어느 순간에 무슨 이유로 수정과도 같이 단단하게 결정되어 어떤 책의 핵심을 이루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구체적인 착안과 집필 및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증언들이 전해지고 있다.
- 어린 왕자를 찾아서 김화영 저 | 문학동네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불문학자이자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온 김화영 선생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만났다. 이 책 『어린 왕자를 찾아서』는 『어린 왕자』를 번역하면서 ‘어린 왕자’를 태어나게 한 진정한 어른이었을 생텍쥐페리의 삶을 조망하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의미를 풀어냈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어린 왕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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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치한 문장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탁월한 평론을 선보인 전 방위 문학인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did826
2013.03.31
만다
2013.03.30
yiheaeun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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