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열심히 하는 데 인정 못 받는 사람의 특징
글이 단지 생각을 저장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통해 생각을 훈련할 수도 있고, 발전시킬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손을 움직여 문자를 찍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뇌에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를 문자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고차원의 지적 노동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면서 방향을 세우고 자기의 의견을 잡아가는데 있어서도 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201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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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평가와 관련해 사람들을 그룹 지어 본다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 잘하고 높이 평가 받는 사람, 일은 열심히 하는 데 인정 못 받는 사람, 하는 일에 비해 과대 평가 받는 사람, 일도 못하고 평가도 안 좋은 사람.
이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두 번째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타인의 평가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든 마음 상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면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다.
그럴 때 요긴한 힌트가 되는 게 글이다. 글은 한 사람의 총체적인 됨됨이를 드러내는 가장 지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일하는 태도, 가치관, 성향 등을 한눈에, 혹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열심히 하는데 안 된다는 사람은 글에서 표가 난다. 우선 내용이 많다. 관련된 자료는 죄다 찾아낸 듯 방대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이다. 수많은 자료를 그저 모아 놓고 만다. 자료의 끝없는 나열은 산만할 수 밖에 없다. 또 자기 이야기가 아니므로 글이 길어 지거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앞에 한 이야기와 뒤에 하는 이야기가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결함은 단지 예쁜 그림이나 세련된 형식들로 가릴 수 없다. 처음에는 그럴 싸 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허술한 구석이 금세 드러난다.
또 이런 글들은 평이하다. 문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친다. 무언가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남과 다른 해석을 내놓는 법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지루하다. 글을 쓴 사람의 의견이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아무개’의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노력한 줄은 알겠지만, 글을 읽고 나서도 별로 남는 것이 없으니 결국은 글을 쓰는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인정받지 못한다. 글을 쓴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말할 것도 없다.
글과 글을 쓴 사람의 관계를 되짚어 보면 산만하거나 지루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야가 좁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단지 그 자체만 들여다 본다. 사실 자체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놓인 맥락이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자신의 업무가 놓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아는 건 알지만, 모르는 건 아예 모른다. 오직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열심이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별 관심 없다. 그러니 큰 그림이나 트렌드를 읽어 내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묶어내지 못한다. 당연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과감한 주장을 내놓을 수 없다. 조직이나 상사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직원을 다른 사람보다 높게 평가할 리 만무하다. 나무를 보는 것은 굳이 그 사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네 그룹 중 가장 개선의 여지가 큰 것도 열심히 하는 데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는 만큼 사고의 틀과 그것을 전달하는 습관을 바꾸면 평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 한 사람을 드러내는 지적인 증거라고 한다면 거꾸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역량도 기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정보의 가지치기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자료 그 자체는 아무리 많아도 결코 글 쓰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수많은 자료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을 잡아내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들 줄 아는 사람만이 인정 받을 수 있다. 이 때 왜 하필 이 정보들을 선택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수록 좋다.
다음은 정보의 재구성이다. 나름의 논리로 선택한 정보들을 연결 짓는 일이다. 이 때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단지 정보들을 나열하기만 하는 것. 어떤 기준이나 순서도 없이 그저 선별한 정보들을 죽 늘어 놓아서는 곤란하다. 선별한 정보 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두고 선별한 정보를 살펴보아야 할 지에 대해 짚어 주고 이에 따라 정보 간에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재구성한 정보들을 종합해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주는 것. 시장상황에 대한 통찰이어도 좋고, 앞으로의 전망이어도 좋다. 구체적인 아이템을 제안하면 더욱 좋다. 글을 쓴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제대로 글을 쓰고, 궁극적으로 열심히 일한만큼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그 정보의 맥락과 문제점을 파악해 그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자기주도적 사고다. 인터넷 덕분에 검색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진 요즘 자료에 대한 판단과 해석 능력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걸러낼 수 있어야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헤매기만 하면 애초에 검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에 대한 답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자기주도적 사고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들이 이미 한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
생각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글이다. 글은 사람의 생각을 보이는 형태로 담아낸다. 말로는 불가능한 일종의 저장 기능인 셈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저장해 놓지 않으면 결국은 사라진다. 다시 복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어떤 식으로든 글로 써 놓으면 언제든 다시 쉽게 불러내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글이 단지 생각을 저장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통해 생각을 훈련할 수도 있고, 발전시킬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손을 움직여 문자를 찍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뇌에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를 문자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고차원의 지적 노동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면서 방향을 세우고 자기의 의견을 잡아가는데 있어서도 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지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글을 써야 한다. 어느 쪽이든 글쓰기와 생각은 뗄레야 뗄 수 없다.
이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두 번째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타인의 평가보다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든 마음 상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면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다.
그럴 때 요긴한 힌트가 되는 게 글이다. 글은 한 사람의 총체적인 됨됨이를 드러내는 가장 지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일하는 태도, 가치관, 성향 등을 한눈에, 혹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열심히 하는데 안 된다는 사람은 글에서 표가 난다. 우선 내용이 많다. 관련된 자료는 죄다 찾아낸 듯 방대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이다. 수많은 자료를 그저 모아 놓고 만다. 자료의 끝없는 나열은 산만할 수 밖에 없다. 또 자기 이야기가 아니므로 글이 길어 지거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앞에 한 이야기와 뒤에 하는 이야기가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결함은 단지 예쁜 그림이나 세련된 형식들로 가릴 수 없다. 처음에는 그럴 싸 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허술한 구석이 금세 드러난다.
또 이런 글들은 평이하다. 문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친다. 무언가 새로운 제안을 하거나 남과 다른 해석을 내놓는 법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지루하다. 글을 쓴 사람의 의견이나 개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아무개’의 글이 되고 마는 것이다. 노력한 줄은 알겠지만, 글을 읽고 나서도 별로 남는 것이 없으니 결국은 글을 쓰는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인정받지 못한다. 글을 쓴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말할 것도 없다.
글과 글을 쓴 사람의 관계를 되짚어 보면 산만하거나 지루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야가 좁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단지 그 자체만 들여다 본다. 사실 자체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놓인 맥락이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자신의 업무가 놓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아는 건 알지만, 모르는 건 아예 모른다. 오직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열심이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해서도 별 관심 없다. 그러니 큰 그림이나 트렌드를 읽어 내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묶어내지 못한다. 당연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과감한 주장을 내놓을 수 없다. 조직이나 상사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직원을 다른 사람보다 높게 평가할 리 만무하다. 나무를 보는 것은 굳이 그 사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네 그룹 중 가장 개선의 여지가 큰 것도 열심히 하는 데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는 만큼 사고의 틀과 그것을 전달하는 습관을 바꾸면 평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 한 사람을 드러내는 지적인 증거라고 한다면 거꾸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역량도 기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정보의 가지치기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자료 그 자체는 아무리 많아도 결코 글 쓰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수많은 자료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을 잡아내 의미 있는 정보로 만들 줄 아는 사람만이 인정 받을 수 있다. 이 때 왜 하필 이 정보들을 선택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할수록 좋다.
다음은 정보의 재구성이다. 나름의 논리로 선택한 정보들을 연결 짓는 일이다. 이 때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단지 정보들을 나열하기만 하는 것. 어떤 기준이나 순서도 없이 그저 선별한 정보들을 죽 늘어 놓아서는 곤란하다. 선별한 정보 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두고 선별한 정보를 살펴보아야 할 지에 대해 짚어 주고 이에 따라 정보 간에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재구성한 정보들을 종합해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주는 것. 시장상황에 대한 통찰이어도 좋고, 앞으로의 전망이어도 좋다. 구체적인 아이템을 제안하면 더욱 좋다. 글을 쓴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제대로 글을 쓰고, 궁극적으로 열심히 일한만큼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그 정보의 맥락과 문제점을 파악해 그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자기주도적 사고다. 인터넷 덕분에 검색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진 요즘 자료에 대한 판단과 해석 능력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를 걸러낼 수 있어야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헤매기만 하면 애초에 검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에 대한 답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자기주도적 사고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들이 이미 한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
생각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글이다. 글은 사람의 생각을 보이는 형태로 담아낸다. 말로는 불가능한 일종의 저장 기능인 셈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저장해 놓지 않으면 결국은 사라진다. 다시 복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어떤 식으로든 글로 써 놓으면 언제든 다시 쉽게 불러내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글이 단지 생각을 저장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통해 생각을 훈련할 수도 있고, 발전시킬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손을 움직여 문자를 찍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뇌에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를 문자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고차원의 지적 노동이다.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면서 방향을 세우고 자기의 의견을 잡아가는데 있어서도 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지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글을 써야 한다. 어느 쪽이든 글쓰기와 생각은 뗄레야 뗄 수 없다.
- 글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라: 호모스크리벤스 김지영 저 | 21세기북스
저자는 20년 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생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기사를 쓸 때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쉽게 써라, 짧고 간결하고 신중하게 써라, 제목이 중요하다, 쓰고 나서 최소한 세 번 읽어야 한다 등이다. 저자는 이 법칙이 비단 기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일기, 서평, 이메일 등 어떤 글을 쓰더라도 이 법칙이 적용된다. 저자가 제안하는 글쓰기 과정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 모두 호모스크리벤스만이 가진 다이내믹한 특권인 글 쓰는 하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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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지영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와 매일경제에서 18년째 기자생활을 하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와 라이프 관련 기사를 주로 쓰고 있다. 2000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1990년대 한국 댄스음악과 10대, 그리고 TV와의 삼각관계’를 주제로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민감하게 파도타기를 하며 각 세대들이 즐기는 그들의 문화와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것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은 흥미를 갖고 있다.
그녀의 최근 작 『헬로키티 성공신화』는 키티 맘 세대로서 네 살 난 딸로 인해 다시 헬로키티의 세계에 입문한 뒤, 만들어진 지 35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전 세계 어린이들의 로망이자 가족도 대신할 수 없는 비밀 친구 역할을 하는 키티에 주목하게 된 것이 동기가 되어 쓰게 된 저서이다. 헬로키티를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입이 없기에 모든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구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헬로키티의 완벽한 디자인과 감성적인 마케팅 전략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저자는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상의 시대 반항의 음악-60년대 미국음악과 사회』『살림지식총서-월트 디즈니』 등이 있다.
동네작가
2013.03.18
구름그림자
2013.03.17
rostw
201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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