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답, 진실의 답
<하루 3시간 엄마 냄새> 책을 통해 나는 아이가 하루에 부모의 냄새를 맡아야 하는 시간은 최소한 3시간 이상이라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고백을 해야겠다.
하루에 3시간은 일하는 엄마를 위한 현실의 답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진실의 답은 ‘생후 3년까지는 하루 종일’이다.
나는 심리학자로서 각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이는 오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각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둘째 아이가 열 살이 되고 나서였다. 이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가 세 살이 되기까지는 옆에 찰싹 붙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누가 못할까. 이미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이미 목표를 높이 세워 마치 아이는 알아서 클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생의 배를 출범시켜버린 뒤였다. 뒤늦게 진실을 알았다 해도 다른 사람은 다 질주하는데 나만 도태되는 듯한 삶을 용기 있게 택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인생의 목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파도를 건너기 위해 아이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2순위로 밀려 있었다.
이렇게 무지했던 내 모습을 변명하고자, 최소한의 시간만 주어도 망가지지 않고 잘 크는 나와 형제의 아이들, 이웃의 아이들을 방패삼아 하루 최소 3시간이라는 최소공배수를 뽑아낸 것이다. 즉 3시간은 답이 아니라 현실을 고려한 자기 합리화의 시간이며 합의점일 뿐이다. 그런데 이 합의점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돈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미혼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다수 여성들이 결혼한 뒤 래미안 아파트에서 살고 그랜저를 타며 자식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잘산다는 말을 들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려면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하니 시간이 없어 아이 낳기가 겁난다고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시골의 부모님에게 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모든 문제는 처음 설정한 목표가 너무 높기 때문에 생긴다. 목표가 높다 보니 아이가 기쁨의 원천이기보다는 짐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을 벌고 성공하려고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들보다 잘살고 싶다는 이유 그 깊숙이 들어가 보면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욕구는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겠다는 욕구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욕구를 해소했다. 그것도 진통을 앓으며 아주 요란하게. 그럼에도 자신이 창조한 진품은 집에 쑤셔 박아 놓고 이미 너도 있고 나도 있는 사소한 것들로 채워 넣기 바쁘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는 이미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이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강압적이거나, 무관심한 부모님의 자식이었다. 지구는 이미 약간 비뚤어진 채 태양을 돌았고 이 나라는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나 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창조의 기회가 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다. 아이는 정말 무無에서 시작한다. 내 손에 놓인, 내 운명의 수레바퀴에 떨어진 이 소중한 생명을 제대로 창조해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자신도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많은 가정에서 잘 완성된 아이는 또 다른 멋진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내 아이다. 세상을 살면서 신을 제외한 단 한 사람에게만은 순수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면 그 대상은 바로 나의 아이일 것이다.
조기유학, 절대로 보내지 마라
이제 조기 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식을 일찍 분리시켜 정작 공부의 선행조건인 안정적 정서를 망가뜨린다. 전두엽이 폭발하는 시기에는 이미 과부하된 심리 기능을 정리하기에도 눈이 빠질 지경인데 낯선 곳에서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과업까지 수행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는 신생아가 억지로 걷고 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도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걷게 하면 발을 옮기는 걸음마 반사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걸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난 상태는 심리적 안전이 위협받는 스트레스 상황이다. 겉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듯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일시적으로는 적응하는 듯이 보이지만 티눈이 있는 발로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언젠가는 발의 모양이 변하고 통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기 유학은 뇌 발달의 기제에 역행하니 비효율적이고, 여기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조기 유학을 가서 다른 아이보다 영어를 잘하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더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병원에서 이를 자주 확인하곤 했다.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도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알코올의존증,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살아온 이력을 추적해보면 일찌감치 부모와 떨어져 공부한 사람이 많다.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경우뿐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도 좋은 학교에 다니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진 경우도 포함된다. 겉으로는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심리적 긴장과 불안이 누적되었다가 성인이 된 후 몸이나 마음의 병으로 나타난다. 이르면 20대, 늦으면 30∼40대에 증상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조기 유학을 가지 않은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 곁에 있는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풀 수 있는 탁월한 피로 해소제를 즉시 구할 수 있다. 바로 부모 냄새이다. 내가 조기 유학을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부모 냄새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부모 냄새는 대체할 수 없다. 영상통화를 한다 해도 부모 냄새를 맡을 수는 없다. 아무리 평소에 의젓하게 잘 버텨도 어느 날 큰비가 오고, 천둥이 치고, 음식을 먹고 체한 날, 친구의 싸늘한 시선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눈을 뜬 날,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혼자 조기 유학을 떠나 부모 냄새와 단절된 아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본능적인 유대 관계도 끊어진다. 아이가 철이 없거나 배은망덕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자연이고 본능이다. 보지 않아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지 못해 멀어진다.
부모들은 주입식 교육으로 훈련된 아이들이 버젓이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양육 방식이 옳았다고 판단하지만 정작 문제는 대학 이후의 취직과 군대, 결혼과 부모 되기 과정에서 발생한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다양한 심리적 과업에 직면했을 때, 정서 뇌의 안정 없이 언어 뇌, 수리 뇌만 발달시킨 아이들은 금방 무너져버린다. 쉽게 포기하거나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의 문제 중 머리를 써서 풀어야 하는 문제는 IQ 90만 넘으면 해결하는 데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체를 통합하는 지혜, EQ로 풀어야 하는데 학습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EQ를 가동할 정서적 밑천을 만들지 못한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 하루 3시간 엄마 냄새 이현수 저 | 김영사
세상의 모든 엄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 ‘엄마 냄새’가 아이의 인생에 기적을 만든다. 엄마 몸속에서 100%의 한 몸으로 살던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엄마 냄새로 안정을 찾는다. 가장 원시적 감각으로 찾아가는 안전의 신호이자 생명의 필요조건, 엄마 냄새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2의 탄생을 선물한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 박사가 고려대학병원에서의 20년 연구와 경험으로 완성한 양육의 333법칙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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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년 동안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심리검사 및 상담을 하였으며 현재 힐링심리학 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임상심리학, 정신병리학, 신경심리학, 스트레스대처 기법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모교육 훈련을 하고 있다. 직접 만든 학습진로검사가 현재 많은 기관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기억검사, 노인우울검사, 스트레스검사를 국내표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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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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