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죽음, 범인을 맞혀라! - 코믹추리극 <쉬어매드니스>
형사는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용의자들이 조금 전의 상황을 재연할 테니, 틀린 점이 있거나 빠뜨린 점이 있으면 바로 고발해달라는 거다. 관객이 직접 손을 들고 용의자 배우에게 질문할 수도 있고, 무대 위로 올라가 검증을 해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연극이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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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 앉는 순간 당신은 목격자가 된다


자, 객석으로 들어선 순간. 당신은 이제 현장의 목격자가 된다. 여기는 미용실 <쉬어 매드니스> 귀청을 때리는 음악 소리, 그 음악 소리와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듯 소리를 질러대는 미용사, 요상한 몸짓으로 시야를 교란시키는 미용 조수까지. 정말이지 마음먹으면 금방이라도 매드니스로 돌아설 만한 정신없는 미용실이다. 두 명의 남자 손님이 들어오고, 단골인 한남동 사모님도 머리를 하러 왔다. 어디 한군데 주목하기 어려울 만큼 여기서 저기서 배우들은 떠들어대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송채니의 연주 소리다. 이 미용실 위층에 바로 그 송채니가 살고 있다. 하지만 시도때도없이 라흐마니노프의 난해한 곡들을 두들겨 대는 바람에 미용사 조지는 화가 단단히 났다. 나를 정말 미치게 할 작정이야! 조지는 뛰어 올라가고, 손님은 차를 빼러 나가고, 미용 조수는 쓰레기를 비우러 나가고, 미용실이 잠시 조용해지나 싶을 찰나, 형사가 들이닥친다. “송채니 선생님이 살해당했습니다. 범인은 바로 미용실 안에 있는 여러분 중 하나입니다!”

자, 이제 형사는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용의자들이 조금 전의 상황을 재연할 테니, 틀린 점이 있거나 빠뜨린 점이 있으면 바로 고발해달라는 거다. 배우들은 재연하는 척하면서, 이전의 행동을 부정하거나 다른 행동으로 살짝 바꾸기도 한다. 귀신 같은 관객들은 적극 개입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때마다 배우들은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대처하는데, 이런 관객들의 개입과 배우들의 리액션에 따라 <쉬어 매드니스> 공연의 재미는 한껏 달라진다. 당연히 관객들이 적극 개입할수록 공연은 활기가 돋는다. 관객이 직접 손을 들고 용의자 배우에게 질문할 수도 있고, 무대 위로 올라가 검증을 해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연극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연극


추리 만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제아무리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들, 형사들은 꼭 중요한 순간에, 자기만 알고 있던 결정적인 정보를 뒤늦게 흘린다. 관객들은 용의자 배우들의 사건 당시 알리바이를 목격했지만, 무대 밖을 빠져나간 배우들의 알리바이나 현장 이전의 이야기까지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 그건 배우가 “사실 아까 밖에서 했던 일은” 혹은 “사실 예전에 제가”라는 식으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사건 현장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매일 결말이 달라지는 이 공연은 바로 이런 지점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인 당신은 현장 검증을 토대로 범인을 지목할 수가 있다. 아주 놀라운 방식인데, 현장에서 다수결 투표로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목하는 범인에 따라, 형사가 들려주지 않은 정보라든지, 인물들의 사전 배경이 변경되면서 그 범인이 진짜 범인이 되는 식이다. 어쨌거나 거기까지 이끌어가는 데는 분명 관객 당신의 역할이 유효하다. 덕분에 때때로 당신은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옆에 앉은 관객의 황당한 질문이나 어처구니없는 말 때문에 더 크게 웃어 젖히는 일도 발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롱런한 연극, 매일 결말이 달라지는 연극


코미디 프로그램 을 떠올리게 할 만큼 현실 풍자적인 대사가 많다. 최근의 이슈, 사회의 통념, 연예인 이야기를 뒤섞은 배우들의 리얼한 수다는 쉴새 없이 객석에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용의자 배우들이 늘어놓는 알리바이나 변명들은 대부분 유머러스하지만 뼈있는 농담도 많다. ‘삼성 고위직 남편이 하는 일이니 아무도 모른다’는 식이거나 ‘서민들이 알 수 없는 고위공직자의 세계가 있다’는 식의 정치 풍자와 권력 속성을 풍자한 대사들이 상황 곳곳에 배어들어 있다.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1980년 보스턴 공연을 초연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롱런한 연극으로 기네스북 세계 기록에 오르는 등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로에서도 최초 관객 참여형 연극으로 365일 관객을 만나며 장기간 흥행하고 있다. 마치 3D 추리 게임에 직접 플레이어로 참가한 기분이랄까.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혹은 공연의 주인공이 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누구와 함께라도 가볍고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쉬어매드니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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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매드니스 #연극 #코믹추리극 #대학로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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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tw

2013.02.09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허문다. 정말 허문다면, '잘' 허문다면 짜릿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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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aist

2013.02.05

무대가 정말 특색이 있네요 ㅎ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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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826

2013.02.03

매회 관객의 거수로 결정되는 범인을 결정.. 이런 관객참여형 연극 좋아요~!! 저도 한 번 봤었는데.. 그때는 수지가 범인이였는데.. 다른 범인으로 다시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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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