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집값 상승한다’ 발표가 허구인 이유 - 서화숙 『민낯의 시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글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23일 ‘나꼼수’의 아지트 대학로 벙커1에서 ‘세상을 읽고 삶을 해석하는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온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를 만났다. 그가 펴낸 『민낯의 시대』에 실린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글, 소통, 삶, 사회,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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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격주로 연재되는 ‘서화숙 칼럼’ 앞에는 ‘우리 시대의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곤 한다. 서화숙 선임기자의 글은 외모에서 풍기는 친근하고 온화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매우 예리하고 직선적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직구로 정면 승부하는 투수를 연상시킨다. 서화숙 선임기자는「한국일보」에 게재했던 칼럼과 TBS서울교통방송을 진행하며 썼던 원고를 모아 『민낯의 시대』라는 칼럼집을 출간했다. 기득권층이 맨얼굴을 드러내고(‘민낯의 시대’ 2009.2.12. 88p) 커밍아웃을 하는 세상(‘커밍아웃의 시대’ 2012.3.30. 189p),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논의가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으니 이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언론이 해묵은 문제라고 덮어두는 현실, 사소해 보여서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들에도 많이 천착한 것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3일,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가 잡은 강연 주제 역시 ‘칼럼 쓰기, 새로운 소식과 해묵은 문제들 사이에 균형잡기’였다.
왜 새로운 소식인가, 왜 해묵은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가
기자는 ‘News’ 즉 ‘새로운 것들’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소식’이어야만 주목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칼럼을 쓸 때는 단순히 새로운 소식만으로는 안 된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언제나 ‘해묵은 문제들’에 주목한다. “늘 해묵은 문제가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하고 있고, 그런 것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신문이나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 이동흡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떠올려보라. 사실 특정업무경비 문제는 늘 있어왔던 일이다. 감사과가 있었지만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다시 문제가 있다며 흥분하고 있는 ‘4대강 문제’ 같은 이슈도 그렇다. 건설업자들, 교수들, 관련 공공 기관, 모두가 이해관계로 물리고 물려 있는데 어떻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해묵은 문제를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다뤄서 주목 받게 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런 문제를 칼럼으로 다루어왔다.”
‘새롭게’ 쓰려면 ‘뉴스’를 담아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라
해묵은 이야기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 서화숙 선임기자의 표현대로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공자님 말씀은 지루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 자신의 삶과는 괴리된 ‘비판을 위한 비판’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는 ‘바보를 키우려고 기를 쓰네’(2009.10.8. 133p)라는 칼럼을 예로 들면서 칼럼은 “논평이 아니라 뉴스를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10월 31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대학생 토론왕 선발대회의 주제는 ‘4대강 정비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였다. ‘시급히 해야 한다’라는 말 속에는 이미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토론’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그것도 국가 예산을 들여 진행했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던 칼럼이다. 다른 기자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뉴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다.
“2006년 9월에는 고려대 앞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재개발하는 지역이 있는데 신문이 다루지 않고 있어 그 내용을 가지고 ‘주택가를 덮친 괴물’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칼럼은 스트레이트 뉴스를 다룰 때 제일 주목 받는다. 해외 유명 신문의 칼럼니스트들도 대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의 뉴스를 발굴해 칼럼의 주제로 삼는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뉴스가 아닌 논평을 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커밍아웃의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전문가가 4대강 사업을 지지하며 정부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진보의 기치를 내세우며 활동해온 이들이 보수 정부의 선전논리를 만들어주는 일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들이 ‘커밍아웃’ 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희망을 봤다. 겉으로는 진보적 가치와 공동체를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자료와 논리를 왜곡할 수 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전선을 흐리게 하고 싸움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지금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 인류사적 싸움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논평할 때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들거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채소 가격이 오르면 온 나라 매체가 너도나도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식료품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그 비용이 집값만큼은 아니다(‘오르는 채소 가격, 내리는 집값’ 2012.8.31. 222p). 사실 우리나라에서 서민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채소 가격이 아니라 집값이다. 하지만 집값을 떨어뜨리는 경제정책이 나오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난리가 난다. 신문이 배추 값 폭등에는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큰 문제인 집값 문제가 나오면 왜 이렇게 쓰는 것일까. ‘새롭게 쓰기’란 바로 이런 의문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건에 묻힌 것을 드러내라, 무지를 일깨워라
잘 보이지 않는 사실과 무지해서 발생한 일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을 하는 것.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다. ‘마을이 죽으면’(2010.3.10. 166p)이라는 칼럼은 서화숙 선임기자가 사건의 배경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 글이었다. ‘김길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김길태가 숨어 있었던 부산 사상구 덕포1동이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지역은 재개발 예정지 즉, 빈집이 많은 곳이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덕포1동의 약 500가구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때는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니 그게 가로등 역할을 해주고, 집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김길태 같은 범죄자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 ‘재개발’이 있었다. 결국 서화숙 선임기자가 이 칼럼을 쓴 직후 재개발 지역의 안전 문제가 모 유력 일간지 1면 톱기사로 다루어졌다. 숨겨진 이면의 사실을 발견하는 눈. 칼럼을 쓰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에피소드다.
또한 칼럼은 무지를 일깨워야 한다. 언론은 용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문지식을 알려주고 국제표준과 비교해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값, 떨어지길 믿자’(2009.11.5. 139p)라는 칼럼을 예를 들어보자.
“나는 재개발이나 집값 문제에 많이 천착하고 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힘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가 집값을 전망하는 기사를 배포하면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10년 건설 부동산 경기전망’이라는 자료를 인용한 적이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공신력 있는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연구원은 건설업체들의 협회가 만든 것이다. 집을 지어서 팔아야 먹고 사는 건설업체가 만든 이곳의 연구 결과가 거의 ‘늘 집값은 올라간다’인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이 칼럼을 통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만든 자료의 허구를 밝혔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어떤 자료를 끌어들여 글을 쓸 때 반드시 국제표준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 7월, 인사청문회를 앞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3년 동안 외부특강을 하고 1300만 원을 받은 것이 알려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알바 뛰는 고위공무원’ 2012.7.6. 210p). 언뜻 생각하면 고위공무원이 외부 특강을 하고 돈을 받은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표준과 비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유럽의 행정부 고위직 복무규정 첫 번째 항목을 보면 ‘공무원들은 돈과 상관없이 어떤 외부활동도 하면 안 되고, 칼럼을 써도 고료를 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공무원들은 ‘공무’를 하기 때문에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강의가 ‘공무’에 해당한다면 그냥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표준과 비교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돈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교해서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쓰기 위한 방법들이 여러 가지 있다. 읽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생활 밀착형 글을 쓴다거나(‘오래 가는 꽃’ 2009.4.23. 103p), 올바른 말이라고 생각된다면 말을 돌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때로는 “나쁘면 나쁘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가 될 수 있다. 칼럼 스타일 자체를 새롭게 바꾸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칼럼은 어떤 방식으로 써도 무방하다. 패러디 형식의 풍자 칼럼으로 썼던 ‘핵심관계자 대 미네르바’(2008.11.20. 67p)라는 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칼럼에는 특별히 ‘사실관계를 밝힌 기사가 아니라 패러디 형식의 풍자칼럼임을 밝힙니다’라는 편집자주를 글 앞에 달아야 했다.
예리하게, 정확하게, 하지만 삐딱하게
‘새로운 글쓰기’는 예리하고 정확한 관찰, 그리고 다소 삐딱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약자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생각하고 써야 한다.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당신 곁의 불의’(2012.11.8)라는 칼럼을 미국의 존경 받는 갑부 빌 게이츠를 ‘까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있는 빌 게이츠도 결국은 거의 독점에 가깝게 사업을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그는 기업가의 자선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아르바이트도 스펙이다’(2012.10.11) 같은 글도 우리나라 교육계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공교육을 성실히 따라가면서 공부하고 땀 흘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학입학이나 취업 경쟁에서 부모 잘 만난 아이들에게 밀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스펙’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스펙’이 되는 교육계의 구조.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보아야 한다. 선진국을 보거나 과거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면서,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예측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박에 대비해야 한다. “기사를 쓰면서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응수할지 생각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그래서 80~90% 압도적으로 상대방을 누를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글을 써야 한다.” 정확한 데이터와 상황 파악,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한 자기 논리가 뚜렷하고 확실한 글. 결국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런 글이 필요하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독자와의 만남’ 시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언급하며 마무리되었다. 글을 쓰고,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글이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결국 “거대한 욕망의 흐름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못 가진 사람은 내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 내 이익을 지켜야 한다. ‘성공하라, 돈 많이 벌어라’라는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자라는 판단이 들어 탐욕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 주변의 불의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의 불의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법을 지키지 않는 동료를 눈감아주고 있기도 하다. 내가 뭔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 ‘가진 사람’이라면 특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해야 하는 대학의 시간 강사들, 공부하기 어려운 학생이 아닌 학점이 좋은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장학금 제도 같은 것들은 ‘내 주변의 불의’에 민감한 교수들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이효리, 김여진 같은 우리 사회의 소셜테이너들이 스태프들과 임금을 합리적으로 나누자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스태프들의 열악한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모두에게 “지식인이 되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을 주목하게 만들면 연예인이나 정치인이고, 메시지에 주목하게 하면 지식인이다.” 이효리가 유기견 캠페인에 참여할 때, 김여진이 홍대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울 때, 그들은 연예인이 아닌 지식인인 셈이다. 그는 “못 가진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지식인이 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학자는 프랑스에서 혁명이 난 이유가 프랑스에 ‘각성한 계층’인 부르주아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산계급이 철저하게 강했기 때문에 영국의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우리나라도 각성한 인간들이 많아야 지식인 숫자가 많아질 수 있다. 많이 배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각성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동흡을 용인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현재까지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여러 가지 복지 정책도 공약으로 내걸었고, 공동체 지향적인 정책도 많이 제안했다.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게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끊임없이 무섭고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지명도를 얻는 방법이 현실과는 다른 구조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우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새로운 소식인가, 왜 해묵은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가
기자는 ‘News’ 즉 ‘새로운 것들’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소식’이어야만 주목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칼럼을 쓸 때는 단순히 새로운 소식만으로는 안 된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언제나 ‘해묵은 문제들’에 주목한다. “늘 해묵은 문제가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하고 있고, 그런 것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신문이나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 이동흡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떠올려보라. 사실 특정업무경비 문제는 늘 있어왔던 일이다. 감사과가 있었지만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다시 문제가 있다며 흥분하고 있는 ‘4대강 문제’ 같은 이슈도 그렇다. 건설업자들, 교수들, 관련 공공 기관, 모두가 이해관계로 물리고 물려 있는데 어떻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해묵은 문제를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다뤄서 주목 받게 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이런 문제를 칼럼으로 다루어왔다.”
‘새롭게’ 쓰려면 ‘뉴스’를 담아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라
해묵은 이야기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 서화숙 선임기자의 표현대로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공자님 말씀은 지루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 자신의 삶과는 괴리된 ‘비판을 위한 비판’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는 ‘바보를 키우려고 기를 쓰네’(2009.10.8. 133p)라는 칼럼을 예로 들면서 칼럼은 “논평이 아니라 뉴스를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10월 31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국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대학생 토론왕 선발대회의 주제는 ‘4대강 정비사업, 시급히 해야 한다’였다. ‘시급히 해야 한다’라는 말 속에는 이미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토론’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그것도 국가 예산을 들여 진행했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던 칼럼이다. 다른 기자가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뉴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다.
“2006년 9월에는 고려대 앞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재개발하는 지역이 있는데 신문이 다루지 않고 있어 그 내용을 가지고 ‘주택가를 덮친 괴물’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칼럼은 스트레이트 뉴스를 다룰 때 제일 주목 받는다. 해외 유명 신문의 칼럼니스트들도 대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의 뉴스를 발굴해 칼럼의 주제로 삼는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뉴스가 아닌 논평을 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커밍아웃의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전문가가 4대강 사업을 지지하며 정부 고위직으로 들어가고 진보의 기치를 내세우며 활동해온 이들이 보수 정부의 선전논리를 만들어주는 일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들이 ‘커밍아웃’ 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희망을 봤다. 겉으로는 진보적 가치와 공동체를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자료와 논리를 왜곡할 수 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전선을 흐리게 하고 싸움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지금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 인류사적 싸움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논평할 때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들거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채소 가격이 오르면 온 나라 매체가 너도나도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관련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식료품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그 비용이 집값만큼은 아니다(‘오르는 채소 가격, 내리는 집값’ 2012.8.31. 222p). 사실 우리나라에서 서민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채소 가격이 아니라 집값이다. 하지만 집값을 떨어뜨리는 경제정책이 나오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난리가 난다. 신문이 배추 값 폭등에는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큰 문제인 집값 문제가 나오면 왜 이렇게 쓰는 것일까. ‘새롭게 쓰기’란 바로 이런 의문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건에 묻힌 것을 드러내라, 무지를 일깨워라
잘 보이지 않는 사실과 무지해서 발생한 일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을 하는 것.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다. ‘마을이 죽으면’(2010.3.10. 166p)이라는 칼럼은 서화숙 선임기자가 사건의 배경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 글이었다. ‘김길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김길태가 숨어 있었던 부산 사상구 덕포1동이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지역은 재개발 예정지 즉, 빈집이 많은 곳이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덕포1동의 약 500가구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때는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니 그게 가로등 역할을 해주고, 집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김길태 같은 범죄자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 ‘재개발’이 있었다. 결국 서화숙 선임기자가 이 칼럼을 쓴 직후 재개발 지역의 안전 문제가 모 유력 일간지 1면 톱기사로 다루어졌다. 숨겨진 이면의 사실을 발견하는 눈. 칼럼을 쓰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에피소드다.
또한 칼럼은 무지를 일깨워야 한다. 언론은 용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문지식을 알려주고 국제표준과 비교해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값, 떨어지길 믿자’(2009.11.5. 139p)라는 칼럼을 예를 들어보자.
“나는 재개발이나 집값 문제에 많이 천착하고 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힘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가 집값을 전망하는 기사를 배포하면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10년 건설 부동산 경기전망’이라는 자료를 인용한 적이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공신력 있는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 연구원은 건설업체들의 협회가 만든 것이다. 집을 지어서 팔아야 먹고 사는 건설업체가 만든 이곳의 연구 결과가 거의 ‘늘 집값은 올라간다’인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이 칼럼을 통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만든 자료의 허구를 밝혔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어떤 자료를 끌어들여 글을 쓸 때 반드시 국제표준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 7월, 인사청문회를 앞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3년 동안 외부특강을 하고 1300만 원을 받은 것이 알려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알바 뛰는 고위공무원’ 2012.7.6. 210p). 언뜻 생각하면 고위공무원이 외부 특강을 하고 돈을 받은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표준과 비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유럽의 행정부 고위직 복무규정 첫 번째 항목을 보면 ‘공무원들은 돈과 상관없이 어떤 외부활동도 하면 안 되고, 칼럼을 써도 고료를 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공무원들은 ‘공무’를 하기 때문에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강의가 ‘공무’에 해당한다면 그냥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표준과 비교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돈은 1인당 국민소득과 비교해서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밖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쓰기 위한 방법들이 여러 가지 있다. 읽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생활 밀착형 글을 쓴다거나(‘오래 가는 꽃’ 2009.4.23. 103p), 올바른 말이라고 생각된다면 말을 돌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때로는 “나쁘면 나쁘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가 될 수 있다. 칼럼 스타일 자체를 새롭게 바꾸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칼럼은 어떤 방식으로 써도 무방하다. 패러디 형식의 풍자 칼럼으로 썼던 ‘핵심관계자 대 미네르바’(2008.11.20. 67p)라는 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칼럼에는 특별히 ‘사실관계를 밝힌 기사가 아니라 패러디 형식의 풍자칼럼임을 밝힙니다’라는 편집자주를 글 앞에 달아야 했다.
예리하게, 정확하게, 하지만 삐딱하게
‘새로운 글쓰기’는 예리하고 정확한 관찰, 그리고 다소 삐딱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약자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생각하고 써야 한다.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당신 곁의 불의’(2012.11.8)라는 칼럼을 미국의 존경 받는 갑부 빌 게이츠를 ‘까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있는 빌 게이츠도 결국은 거의 독점에 가깝게 사업을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그는 기업가의 자선 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아르바이트도 스펙이다’(2012.10.11) 같은 글도 우리나라 교육계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공교육을 성실히 따라가면서 공부하고 땀 흘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학입학이나 취업 경쟁에서 부모 잘 만난 아이들에게 밀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결국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스펙’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스펙’이 되는 교육계의 구조.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보아야 한다. 선진국을 보거나 과거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면서,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예측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박에 대비해야 한다. “기사를 쓰면서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응수할지 생각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 그래서 80~90% 압도적으로 상대방을 누를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글을 써야 한다.” 정확한 데이터와 상황 파악,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한 자기 논리가 뚜렷하고 확실한 글. 결국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런 글이 필요하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독자와의 만남’ 시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언급하며 마무리되었다. 글을 쓰고,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글이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결국 “거대한 욕망의 흐름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못 가진 사람은 내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고, 내 이익을 지켜야 한다. ‘성공하라, 돈 많이 벌어라’라는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자라는 판단이 들어 탐욕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 주변의 불의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의 불의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법을 지키지 않는 동료를 눈감아주고 있기도 하다. 내가 뭔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 ‘가진 사람’이라면 특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해야 하는 대학의 시간 강사들, 공부하기 어려운 학생이 아닌 학점이 좋은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장학금 제도 같은 것들은 ‘내 주변의 불의’에 민감한 교수들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이효리, 김여진 같은 우리 사회의 소셜테이너들이 스태프들과 임금을 합리적으로 나누자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스태프들의 열악한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
서화숙 선임기자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모두에게 “지식인이 되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신을 주목하게 만들면 연예인이나 정치인이고, 메시지에 주목하게 하면 지식인이다.” 이효리가 유기견 캠페인에 참여할 때, 김여진이 홍대 청소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울 때, 그들은 연예인이 아닌 지식인인 셈이다. 그는 “못 가진 사람들은 모든 이들이 지식인이 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학자는 프랑스에서 혁명이 난 이유가 프랑스에 ‘각성한 계층’인 부르주아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산계급이 철저하게 강했기 때문에 영국의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우리나라도 각성한 인간들이 많아야 지식인 숫자가 많아질 수 있다. 많이 배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각성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동흡을 용인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현재까지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여러 가지 복지 정책도 공약으로 내걸었고, 공동체 지향적인 정책도 많이 제안했다.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게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끊임없이 무섭고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지명도를 얻는 방법이 현실과는 다른 구조다. 여러분 모두가 지식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우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민낯의 시대 서화숙 저 | 클(퍼블리싱컴퍼니클)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론직필의 칼럼니스트인 한국일보 선임기자 서화숙의 첫번째 칼럼집이다. 지난 5년간 한국 사회의 감춰진 ‘민낯’을 구석구석 살피고 파헤친 칼럼들과 방송원고를 모았다. 사안마다 핵심을 꿰뚫는 서화숙의 예리한 문제의식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도 분명하게 짚어주어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를 제시한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문장으로 그 어떤 권력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할 말 다 하는’ 서화숙 칼럼은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속 시원한 글 읽기의 맛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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