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엄마 인순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딸에게』 정식 출간을 하루 앞둔 주말 오후, 가수 인순이를 만났다. 화려한 무대 위의 디바가 아니라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로 <채널예스>와 만난 그녀는, 책으로 먼저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딸 세인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슬며시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집을 떠나 먼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금세 침울해지는,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엄마였다.
한 번이라도 엄마와 멀리 떨어져 지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분주하게 오가며 가방 한 가득 짐을 꾸리는 엄마의 손길을. 이건 가자마자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그건 어디에 넣어 놨다, 도착하면 전화부터 해라,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엄마의 신신당부. 아마 『딸에게』를 써내려간 엄마 인순이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이제 막 대학교 신입생이 된 세인이는 새로운 삶의 출발선 상에 서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떠나려는 아이에게 엄마는 일러줄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지날 때마다 아이만큼이나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이가 바로 엄마다.
『딸에게』를 통해 엄마 인순이는 딸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를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이 힘들 땐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사랑과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고 일과 사랑의 딜레마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에게』가 작가의 딸 세인이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의 충고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동시에 냉철하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위해서 건네는 충고라는 점에서 다른 누구의 충고보다도 값지다. 『딸에게』 안에서 작가는 정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정답에 가까이 가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들, 잃지 말아야 할 무게 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삶의 지혜들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엄마는 항상 자식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딸에게』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세인이를 키우면서 일기를 쓰듯이 메모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느낌들을 적은 거죠. 그것들을 한 데 모아서 엮었어요. 그 때의 제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 쓰는 과정을 거쳐서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세인 양이 책을 받으면 어떤 반응일까요?
곧 미국으로 보내줄 생각이에요. 책이 어떤 모습이든 응원할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딸하고 엄마는 다 그럴 거예요. 무한정 응원이잖아요. 이유 없는 응원이고(웃음).
엄마들은 언제나 딸에게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 고심합니다. 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려고 하고요.
엄마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항상 자식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내가 부족하더라도 무릎 꿇는 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죠. 항상 강하게 ‘엄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얘기하는 거죠.
하지만 결국 엄마도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상처받는 연약한 한 사람일 뿐이죠. 때로는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을 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많죠. 하지만 한 번도 내색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난 그 아이가 걱정하는 게 더 싫은 거예요. 그게 더 가슴 아픈 거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 일은 내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내 아이가 가슴 아파한다면, 그건 미칠 것 같은 거죠. 부모라면 다 그럴 거예요.
엄마가 되고 보니 이해하게 된, 어머니의 모습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딸에게』는 세인이에게 쓴 책이지만 세 모녀가 썼다고 보시면 돼요. 세인이를 키우면서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었죠. 가끔씩 세인이 때문에 속상할 때는 ‘우리 엄마는 나를 얼마나 혼내주고 싶었을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세인이를 키우는 동안 풍족하게 해주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참 많이 들었어요. 학교에 잘 찾아가지도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 봐주고, 너무 미안하죠.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나한테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미안해할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라고만 생각했지 엄마가 갖고 있을 미안한 마음, 절절한 마음까지는 상상을 못 해봤거든요.
딸의 모습 속에서 작가님의 모습을 보기도 하나요?
세인이가 저와 닮은 건 굉장히 독립적이라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열심히 일하면서 열 한 식구를 부양하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저도 그렇거든요. 자식들은 앞에 걸어가는 부모의 등을 보면서 걸어간다고 하잖아요. 제 딸은 저를 보면서 걸어오겠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 딸도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어떨 때는 그게 섭섭해요. 우리 엄마도 그걸 섭섭해 하셨거든요. 그 마음을 이제 알겠어요. 나한테 부탁도 하고 떼도 쓰고 했으면 좋겠는데,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엄마로서는 그게 더 미안한 거 있죠.
지나간 일, 교훈은 되지만 교육은 안 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이방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들이 존재합니다. 다름에 대한 차별 때문에 아파하셨던 지난 시간들도 『딸에게』 안에서 이야기하셨는데요. 그 때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힘들죠. 이 책을 쓰면서도 힘들었고요. 그런데 제가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이야기들을 앞으로는 해야 될 것 같아요. 과거는 잊어버리고 정말 열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어요.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먼저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 그 다음부터 내가 싸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야 내 인생을 치열하게 싸우면서 갈 수 있는 거죠. 나는 뭐지, 어디에 서야 하나, 우리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에너지가 다 떨어져 버리는 거죠. 남들이 뭐라고 해도 ‘두고 봐, 난 끝가지 살아남아서 뭔가 해낼 거야’ 라는 생각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오기라고 할까요. 남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저는 그렇게 긍정으로 바꿔버렸어요. 지나간 일은 교훈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교육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과거를 붙잡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죠.
가정을 갖게 되었을 때, 그 때의 감격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정을 가져도 될까, 아이는 낳아도 될까’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죠.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컸지만 ‘내가 과연 이런 행복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인가, 또 다른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아이가 외가 쪽을 너무 닮아서 태어지는 않을까’ 이런 것들을 많이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외국에 가서 세인이를 낳았고 다녀와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말씀드렸죠. 그렇게 얘기한 것으로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계속 드러내려고 해요. 그게 더 제 스타일과 맞으니까요.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런 것들이 세인 양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펄벅 재단(다문화 아동 지원 기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다문화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TED(미국의 비영리재단 TED에서 주최하는 정기 강연회)에서 다문화에 대한 스피치도 했고요. 펄벅재단은 제가 자라면서 도움을 받았던 곳인데, 제가 다문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니까 세인이도 동아리를 만든 거예요. 학교들마다 그런 동아리들이 있는데 학생회장을 맡아서 도왔던 거죠. 세인이에게 고마운 건, 자기 스스로가 1/4을 그냥 받아들인다는 거죠. 엄마가 1/2이고 네가 1/4을 받은 거야, 이렇게 얘기 안 해도 알아서 받아들인 거예요. 저는 그게 가슴 아프고 미안하죠. 그 아이가 다문화 아이들을 싫어하면 제가 어떻게 그 아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선뜻 할 수 있겠어요. 가슴 아프지만 못할 것 아니겠어요. 성공한 자의 오만으로 그 아이들을 잊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세인이가 알아서 받아들이고 생각해 주니까 너무 감사한 거죠. 제가 가장 콤플렉스라고 느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아이가 인정해 주고 보듬어주는 거잖아요.
『딸에게』에서 인용한 글을 보면서 평상시에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주로 언제, 어떤 책들을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관심 가는 책들을 사서 어디든 가지고 다녀요.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몇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하죠. 『무탄트 메시지』처럼 오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또는 인디언들의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인디언들만이 가진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와닿는 것 같아요.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좋고 소설책도 좋아하고요. 『너무 밉다, 사춘기』 같이 사춘기에 관한 책들도 읽죠(웃음).
딸과 함께 책을 읽기도 하시나요?
최근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같이 읽었고요. 『릴케』도 함께 읽었어요. 저는 요즘 대안학교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어요. 세인이는 아마 저보다 더 많이 읽을 걸요. 제가 관심 가진 분야니까 자기가 먼저 읽더라고요(웃음). 덕분에 저는 공부해서 시험도 봤어요. 다문화 상담사 자격증이랑 다문화 케어 자격증을 땄어요.
책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간절한 바람이 그에게 가 닿으면 그의 눈에도 내가 보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딸에게』를 통해서 작가님의 바람이 독자들에게 전해질 때, 독자들은 어떤 모습의 인순이를 보게 될까요.
무대에서 화려하게 있는 인순이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자이고, 한 아이의 엄마구나’ 라는 걸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느껴지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못 다한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사랑하고 표현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소중함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해요.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저에게 세인이가 그렇듯 우리 엄마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겠죠. 엄마도 할머니한테는 그런 존재였을 테고요.” 『딸에게』를 통해, 그리고 엄마 인순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엄마와 딸은 어떤 관계일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답 아닌 답을 찾았을 뿐이다. 아마도 엄마 인순이는 이미 자신만의 정답을 찾았는지 모른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엄마에게 꼭 전화하세요”라며 느낌표 같은 한 마디를 남긴 것을 보면 사랑하고 표현하고 소중함을 아는 것, 그 시작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 딸에게 인순이 저 | 명진출판
『딸에게 희망엄마 인순이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가수 인순이가 하나뿐인 딸 세인이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하며 가슴으로 써내려간 편지다. 1978년 데뷔 이래 지난 34년간 정상의 인기와 동시에 여러 역경을 겪었지만 묵묵히 가수 외길인생을 걸어오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노래해온 인순이, 그녀는 어떻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친구들의 카운슬러 노릇을 하고 때로는 엄마의 모든 것을 공감해주는 속 깊은 딸, 공부까지 잘 하는 딸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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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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