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남편 어떡하죠?
소음인은 과도한 생각이 만병의 근원이다. 안 해도 될 생각까지 습관적으로 고민하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또 자신이 내린 결론이 늘 옳다는 자긍심이 강해져 주변과 마찰을 빚기 쉬운 체질이다.
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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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인은 과도한 생각이 만병의 근원이다. 안 해도 될 생각까지 습관적으로 고민하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또 자신이 내린 결론이 늘 옳다는 자긍심이 강해져 주변과 마찰을 빚기 쉬운 체질이다.
▶ 특히 왜 소음인이 문제가 될까?
물론, 생각은 소음인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근심 걱정은 누구나 다 한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체질과 상관없다. 그러나 소음인은 큰 걱정거리가 없어도 사소한 현상 하나하나에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생각을 멈추기가 힘들다.
사상의학에서 소음인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에서 지(智)의 속성을 본성으로 타고난 체질이다. 지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옳고/그름’ 또는 ‘같고/다름’을 끝없이 구분하여 반드시 최종 결론을 내리려는 기질을 말한다. 이런 타고난 기질로 인해 ‘사려과다’ 즉, 생각의 지나침이 생기기 쉽다. 그로 인해 마음과 몸의 불균형이 시작된다.
▶ 누구나 꽂히면 다 그런게 아닐까?
태음인은 ‘예’의 속성이 강해 언뜻 해결이 안 되는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을 피하려고 하는 기질이 강하다. 일단 ‘모르쇠’로 평소 하던 일만 하면서 문제를 뒤로 미루려고 한다. 또 소양인은 가급적 자신이 직접 나서서 책임질 일만 아니면 ‘뭐 하러 복잡하게 머리를 쓰나’라며 오늘 당장 재미난 일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러나 소음인은 다르다. 결론이 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선 결론이 안 난 일이 계속 떠오른다. 그러다보니 지(智)의 속성은 ‘타협’과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답이라고 결론 내리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전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소음인은 매사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대충’이란 게 통용되지 않는다. 옳고/그름이나 맞고/틀림의 경계를 분명히 하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다.
▶ 생각의 과함이 몸의 질병까지 유발한다?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소음인의 불면증이다. 물론 누구나 큰 갈등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걱정을 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소음인은 일의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을 못 견뎌해 그를 계속 구상하느라 생각이 과해져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다른 체질과의 차이점이다.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특히 자신의 생각이 옳은데 주변상황에서 그 옳음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소음인은 가장 못 견뎌 한다. 반대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결론을 내렸는데, 직장상사나 주위여건상 종용받게 될 경우에도 가장 힘겨워한다.
반면, 태음인이라면 웬만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일단은 들어주고 만다. 대신 이것이 반복되면 나중에 가서야 폭발한다. 또 소양인은 어떻게든 하지 않아도 되는 적절한 이유나 명분을 찾아서 요리조리 잘 피하는 현명함이 있다.
그러나, 소음인은 적절히 피하기보다는 정면충돌을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늘 자신의 결론이 맞기에 그 외에는 틀렸다 여겨지고, 틀린 답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자기모순이 갈등을 키운다.
▶ 소신대로 살아야 좋은 것 아닌가?
소음인이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심만 강해지면 자긍심이 강해진다. 자긍심이란 ‘내가 옳다’ ‘내가 잘났다’라면서 자기 스스로를 끝없이 높이려는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늘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방식대로 주변을 바꾸려 든다. 때로는 이런 적극적 기질이 사회적 성취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늘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가까운 이들이 존재한다.
자긍심이 강한 소음인 남편과 사는 태음인 아내의 예를 들어보자. 아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을 찾기 힘들 정도의 만성통증과 우울증 때문에 내원했다. 상담결과 원인은 부부불화였다.
아내는 “남편은 사사건건 사소한 것 하나도 자기 뜻대로만 하려 한다”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도 남편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한다.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들어 일일이 개입한다. 반대의견을 말하면 대충 져주는 법이 없다.
이뿐이 아니다.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잠시 설거지를 미루고 쉬고 있으면 남편은 난리가 난다. 설거지거리를 오래 놔두면 그 속에서 세균이 번식하니 미루지 말고 빨리 해야 한다는 원리원칙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맞벌이를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대신 설거지를 해주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데는 한없이 소홀해진다. 결국 아내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앓아 누워도 소음인 남편은 “왜 그런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상대 탓만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야 긍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생각을 버려라’,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는 말에도 힌트가 있다. 그러나 과연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버리나, 어떻게 멈추란 말인가. 단순히 생각을 버리려 한다고 버려지기는 하는 걸까.
조금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멈추거나 버려야 할 생각이란 것은 바로 자기만의 <옳고 그름>에 대한 착각이다. <옳고 그름>의 덧칠 이면에 존재하는 <좋고 싫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과도한 생각도 긍심도 버려진다.
자신이 좋아서, 자신에게 유리해서, 하고 싶거나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을 인간은 ‘옳다’고 여겨질 만한 명분을 찾아 포장한다. 반대로 하기 싫거나 자신이 불리한 것은 ‘틀렸다’는 명분을 찾아낸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결론에서는 결코 타협이나 양보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맞는 답을 알고 있는데 틀린 답대로 하는 건 자기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타협과 양보가 가능해진다.
위에 예로든 부부의 경우, 과연 설거지는 밥 먹고 곧바로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면 남편이 좋아하는 방식일 뿐이고 여기에 세균번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덧칠해진 것뿐인가. 맞벌이를 하는데 미주알고주알 참견은 하지만 직접 몸으로 설거지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또 어떤가. 자신이 싫은 것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
이처럼 소음인은 자신이 ‘옳다/그르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이면에 자신의 ‘좋고/싫음’ ‘유리/불리’이라는 실체가 감춰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시각이 아닌 좋고 싫음의 관점에서 새롭게 자신과 상대를 볼 수 있어야 갈등이 비로소 줄어든다. 누군가에겐 좋은 일이고, 누군가에겐 싫은 일일뿐이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말하긴 어렵다.
불가에선 흔히 ‘나를 죽여서 참 나(眞我)를 얻는다’고 말한다. 내 몸이나 생명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옳다’라고 착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편의적 생각을 죽여야 비로소 더 유연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야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와 긴밀한 상대와도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음인은 무엇보다 자긍심을 멀리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소음인 건강비법 중 최우선 과제다.
▶ 특히 왜 소음인이 문제가 될까?
물론, 생각은 소음인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근심 걱정은 누구나 다 한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체질과 상관없다. 그러나 소음인은 큰 걱정거리가 없어도 사소한 현상 하나하나에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생각을 멈추기가 힘들다.
사상의학에서 소음인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에서 지(智)의 속성을 본성으로 타고난 체질이다. 지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옳고/그름’ 또는 ‘같고/다름’을 끝없이 구분하여 반드시 최종 결론을 내리려는 기질을 말한다. 이런 타고난 기질로 인해 ‘사려과다’ 즉, 생각의 지나침이 생기기 쉽다. 그로 인해 마음과 몸의 불균형이 시작된다.
▶ 누구나 꽂히면 다 그런게 아닐까?
태음인은 ‘예’의 속성이 강해 언뜻 해결이 안 되는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을 피하려고 하는 기질이 강하다. 일단 ‘모르쇠’로 평소 하던 일만 하면서 문제를 뒤로 미루려고 한다. 또 소양인은 가급적 자신이 직접 나서서 책임질 일만 아니면 ‘뭐 하러 복잡하게 머리를 쓰나’라며 오늘 당장 재미난 일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러나 소음인은 다르다. 결론이 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선 결론이 안 난 일이 계속 떠오른다. 그러다보니 지(智)의 속성은 ‘타협’과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를 답이라고 결론 내리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전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소음인은 매사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대충’이란 게 통용되지 않는다. 옳고/그름이나 맞고/틀림의 경계를 분명히 하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다.
▶ 생각의 과함이 몸의 질병까지 유발한다?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소음인의 불면증이다. 물론 누구나 큰 갈등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걱정을 하느라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소음인은 일의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을 못 견뎌해 그를 계속 구상하느라 생각이 과해져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다른 체질과의 차이점이다.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특히 자신의 생각이 옳은데 주변상황에서 그 옳음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소음인은 가장 못 견뎌 한다. 반대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결론을 내렸는데, 직장상사나 주위여건상 종용받게 될 경우에도 가장 힘겨워한다.
반면, 태음인이라면 웬만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일단은 들어주고 만다. 대신 이것이 반복되면 나중에 가서야 폭발한다. 또 소양인은 어떻게든 하지 않아도 되는 적절한 이유나 명분을 찾아서 요리조리 잘 피하는 현명함이 있다.
그러나, 소음인은 적절히 피하기보다는 정면충돌을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늘 자신의 결론이 맞기에 그 외에는 틀렸다 여겨지고, 틀린 답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자기모순이 갈등을 키운다.
▶ 소신대로 살아야 좋은 것 아닌가?
소음인이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심만 강해지면 자긍심이 강해진다. 자긍심이란 ‘내가 옳다’ ‘내가 잘났다’라면서 자기 스스로를 끝없이 높이려는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늘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방식대로 주변을 바꾸려 든다. 때로는 이런 적극적 기질이 사회적 성취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늘 어두운 그림자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가까운 이들이 존재한다.
자긍심이 강한 소음인 남편과 사는 태음인 아내의 예를 들어보자. 아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을 찾기 힘들 정도의 만성통증과 우울증 때문에 내원했다. 상담결과 원인은 부부불화였다.
아내는 “남편은 사사건건 사소한 것 하나도 자기 뜻대로만 하려 한다”고 호소한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도 남편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한다.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들어 일일이 개입한다. 반대의견을 말하면 대충 져주는 법이 없다.
이뿐이 아니다.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잠시 설거지를 미루고 쉬고 있으면 남편은 난리가 난다. 설거지거리를 오래 놔두면 그 속에서 세균이 번식하니 미루지 말고 빨리 해야 한다는 원리원칙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맞벌이를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대신 설거지를 해주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데는 한없이 소홀해진다. 결국 아내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앓아 누워도 소음인 남편은 “왜 그런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상대 탓만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야 긍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생각을 버려라’,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는 말에도 힌트가 있다. 그러나 과연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버리나, 어떻게 멈추란 말인가. 단순히 생각을 버리려 한다고 버려지기는 하는 걸까.
조금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멈추거나 버려야 할 생각이란 것은 바로 자기만의 <옳고 그름>에 대한 착각이다. <옳고 그름>의 덧칠 이면에 존재하는 <좋고 싫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과도한 생각도 긍심도 버려진다.
자신이 좋아서, 자신에게 유리해서, 하고 싶거나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을 인간은 ‘옳다’고 여겨질 만한 명분을 찾아 포장한다. 반대로 하기 싫거나 자신이 불리한 것은 ‘틀렸다’는 명분을 찾아낸다.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결론에서는 결코 타협이나 양보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맞는 답을 알고 있는데 틀린 답대로 하는 건 자기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타협과 양보가 가능해진다.
위에 예로든 부부의 경우, 과연 설거지는 밥 먹고 곧바로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면 남편이 좋아하는 방식일 뿐이고 여기에 세균번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덧칠해진 것뿐인가. 맞벌이를 하는데 미주알고주알 참견은 하지만 직접 몸으로 설거지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또 어떤가. 자신이 싫은 것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
이처럼 소음인은 자신이 ‘옳다/그르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이면에 자신의 ‘좋고/싫음’ ‘유리/불리’이라는 실체가 감춰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시각이 아닌 좋고 싫음의 관점에서 새롭게 자신과 상대를 볼 수 있어야 갈등이 비로소 줄어든다. 누군가에겐 좋은 일이고, 누군가에겐 싫은 일일뿐이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말하긴 어렵다.
불가에선 흔히 ‘나를 죽여서 참 나(眞我)를 얻는다’고 말한다. 내 몸이나 생명을 죽인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옳다’라고 착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자기편의적 생각을 죽여야 비로소 더 유연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야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와 긴밀한 상대와도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음인은 무엇보다 자긍심을 멀리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소음인 건강비법 중 최우선 과제다.
- 닥터 K의 마음문제 상담소 강용혁 저 | 북드라망
이 책은 한방정신분석학이라 할 ‘성정분석’을 전공한 한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강용혁이, 그간의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현대인과 가족의 문제를 풀어낸 심리치유서이다. 폭식, 부부관계, 공황장애, 강박증, 학습장애, 고부갈등, 장서갈등, 위경련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고, 고민하는 몸의 문제와 스트레스에 대해 각자의 성정 기질에서 기반한 마음의 문제를 찾고 이를 이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가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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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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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용혁
경희대 한의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한의철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경향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MBC 드라마 ‘허준’ 방영 당시에는 한의학칼럼을 쓰며 의학 전문기자를 지냈다.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위원을 거쳐 KBS, SBS 라디오, iMBC 등 각종 매스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주 요 칼럼으로는 「영화로 보는 의학」, 「체질이야기」, 「닥터케이의 건강보감」, 「혈자리 여행」 등이 있다. 201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의 한방칼럼 「한방춘추」를 통해 사상의학과 선현들의 마음에 대한 성찰을 전하고 있다.
2010년 한방정신분석학에 관한 최초의 저서인 『사상심학』(四象心學)을 출간했다. 성급한 대중화로 인해 왜곡된 사상의학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한 이 책은 한방정신과 대학원교재로 두루 활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체질, 척 보면 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성정분석 전문가로서 한방정신과와 사상의학 관련 저술 및 강의에 힘쓰고 있다. 또한 마음자리학습연구회 회장으로 체질과 청소년학습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하며 그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동네작가
2013.02.20
브루스
2012.12.29
초코
201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