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에 쌈 싸먹고 나면 상추, 깻잎에는 못 싸먹습니다”
산속에서 홀로 나물을 채취하는 순간은 잡념도 번민도 없다. 나물로 어떤 요리를 만들까 구상하는 게 무념무상에서 깨어난 전부이다. 신선이 된 기분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나물 한 무더기만으로 느끼는 행복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글ㆍ사진 김용철
2012.11.07
작게
크게

미식쇼를 앞두고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미식쇼에서 사용할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각종 산나물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나물의 쌉싸름한 맛과 향에 심취한 나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다. 하늘은 흐렸지만 바람은 상쾌했다. 구름 속에서 한 마리 용이 꿈틀거리기라도 하듯 구름들이 변화무쌍하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운무는 하늘과 산의 경계를 지운다. 오늘은 또 어떤 나물과 만나게 될까. 흐린 날씨와 대조적으로 내 마음은 소풍가는 아이의 기분이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나물을 채취하고 있는 맛객.
자연과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속세의 번민에서 해방된다.

산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본격적으로 산나물 밭이 펼쳐진다.
계곡이 보이자 혹시 그 나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는쟁이냉이다. 일명 산갓이라고도 불린다. 심산의 계곡에 자생하는 나물로서 재배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나물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양반가를 중심으로 극소수 사람들만 그 맛을 즐겨왔다. 증명이라고 하듯, 낮은 지대에서는 보이지 않던 녀석이 700m 고지까지 오르자 모습을 드러낸다. 맑은 계곡물을 먹고 자라서일까. 푸르름을 맘껏 뽐내고 있다. 톡 쏘는 매운맛은 겨자를 닮았다. 위력적인 쓴맛은 웬만한 나물내공을 지니지 않고서 그 맛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극소수만이 즐겨먹은 이유도 귀해서라기보다 가공할 쓴맛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는쟁이냉이

산속에서 홀로 나물을 채취하는 순간은 잡념도 번민도 없다. 나물로 어떤 요리를 만들까 구상하는 게 무념무상에서 깨어난 전부이다. 신선이 된 기분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로움과 나물 한 무더기만으로 느끼는 행복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정도면 미식쇼를 열기에 충분한 양의 나물이다. 요리 구상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돌아가서 신나게 요리만 하면 된다.

오늘의 미식쇼 주제는 산나물이다. 흔히 산나물하면 무침이나 비빔밥 재료 정도로만 안다. 미식쇼를 통해서 산나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을 바꾸고자 한다. 나물이 몸에 좋은 참살이 식품을 넘어서 미식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예정이다.


는쟁이냉이가 들어간 등심볶음

드디어 산나물요리가 나간다. 등심과 함께 볶은 는쟁이냉이를 먹으면서 참석자들은 고기보다 는쟁이냉이에 더 열광했다. 어쩌면 귀한 식재료를 얻기 위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나의 정성에 보낸 열광인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미식쇼는 2~3시간 만에 끝나지만 재료를 구하는 여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몇날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요리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다.


산나물잡채

미식쇼답게 잡채도 평범하진 않다. 일반 채소 대신 산나물을 넣어서 만든 잡채이다. 이 계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맛을 경험하겠는가. 이런 게 바로 제철 재료가 주는 미식의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나물쌈밥이 나갔다. 병풍취, 참나물, 당귀 등이다.


맛객이 발품을 팔아서 구해온 식재료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나물에 쌈 싸먹고 나면 상추, 깻잎에는 못 싸먹습니다.”

나의 공언에 화답이라도 하듯 참석자들은 나물쌈에 매료된 반응들이다. 나물들이 내뿜는 향으로 인해서 순간 한약방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머릿속은 벌써 다음 미식쇼에 가있다.



img_book_bot.jpg

맛객 미식쇼 김용철 저,사진 | 엠비씨씨앤아이
예약 대기자 1000여 명, 맛객 미식쇼! 이 생경한 이름의 쇼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맛객 미식쇼'는 한 달에 두 세 번, 맛객 김용철이 제철 자연에서 찾은 재료들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맛객 미식쇼』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미식 담론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맛, 인생에서 찾은 맛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몰론이고…

 





음식, 요리와 관련있는 책

[ 미식견문록 ]
[ 한국인의 밥상 ]
[ 식전 食傳 ]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는쟁이냉이 #산나물 #맛객 미식쇼
4의 댓글
User Avatar

나랑

2012.11.14

는쟁이냉이.. 이름이 귀엽네요:) 산나물이 저렇게 다양하다니, 채식위주 식습관들이기도 좋을거같아요
답글
0
0
User Avatar

집짓는사람

2012.11.08

자취하는 남정네는 이런 기사에 운답니다,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에서 벗어나 주말에는 저런 맛깔스런 한 끼를 먹어야겠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향기로운이끼

2012.11.07

산에서 원하는 약초를 찾았을 때, 요리할 때, 그 음식을 선보이면서 많은 기쁨과 보람을 누릴 것 같습니다. 맛객....그의 밥상이 정말 궁금하네요.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김용철

저자 맛객객 김용철은 만화가이자 맛스토리텔러. 45권이 넘는 아동만화를 펴낸 만화가. 그의 작품 ‘배낭 속 우산’은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국정교과서에 실려 있다. 하지만 그는 1,000명이 넘는 예약 대기자가 있는 ‘맛객 미식쇼’를 펼치는 맛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궁극의 미각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데 있다”는 철학을 지닌 맛객은 수년에 걸쳐서 전국을 돌며 제철 식재료와 지역의 향토음식에 심취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맛과 향, 음식이 주는 행복을 전하고자 맛객 미식쇼를 기획, 연출하고 있다. 맛객의 음식은 돈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요리다. 아직 최고의 요리는 아니지만 최고의 재료를 선택한다는 맛객.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물론이고 감동과 행복까지 안고서 돌아간다. 맛객은 오늘도 자연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찾아 길을 떠나고, 길 위에서 접한 재료들을 한 아름 챙겨들고 올 것이다. 우리가 맛객의 미식쇼를 기대하고 있는 한. MBC 「찾아라! 맛있는 TV」, MBC 「슈퍼블로거」, KBS1 「인간극장」 ‘맛객 길을 떠나다’(5부작) 출연, KBS2 「생생정보통」 ‘미남이시네요’ 코너...에 고정 출연하였다. Daum에 개설한 그의 블로그 ‘맛있는 인생’은 누계 방문자 수가 1,000만 명이 넘고 수차례 우수 블로그로 선정되었다. 전작으로 『맛객의 맛있는 인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