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대도시 서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상상하기를 멈췄죠. 전임 시장들의 ‘토건옹호’ 덕분에 상상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뉴타운’. ‘섞여살기’보다 ‘따로 살기’에 익숙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 공간과 장소를 공유한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자랄 수밖에 없었죠. 왕따를 양산했고, 친구는 경쟁자의 다른 이름이 됐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말했습니다.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는 대립의 현장일 뿐 통합의 공간은 아니다.”
같이 살면, 삽니다. 그동안 기득권의 꼼수에 의해 DNA에서 소멸된 ‘섞여살기’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열망에 대한 실천이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는 거죠. 없던 것이 아닙니다. 가령, ‘둘레길’의 부활도 그것을 알려주는 징조였습니다. 둘레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습니다. 마을을 잇는다는 건, 마을을 있게 하는 것이고요. 둘레길을 따라가면 마을 사람들을 만납니다. 마을을 잇고 있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을 잇고 있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고요. ‘잇고 있음’의 종결자, 마을공동체.
그러고 보면, 마을공동체의 화두는 이것이 아닐까 싶어요.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에 나온 경구,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 최근에 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 <늑대아이>에서도 그걸 확인합니다. 늑대인간을 사랑한 하나, 아이를 낳고 산속에 가서 삽니다. 억척같이 사는 하나의 모습을 돕던 마을 어른들, 어느 날 하나네 집에 마실 와서 이런 말을 하죠. “배수도 안 좋고, 여긴 살기 좋은 곳이 아니야. 그러니까 서로 돕고 살아야지.”
한 마을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서점 등 경영환경의 변화와 경제사정의 악화 등으로 경영난에 맞닥뜨린 마을의 독립서점. 30년 이상 마을의 교양과 정신문화를 상징하던 그 서점, 폐업 선언을 했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 주민들, 힘을 모았습니다. 협동조합 형식으로 마을주민들이 서점을 인수하기로 한 거죠. 서점은 500명의 조합원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으로 회생했습니다. 마을서점은 여전히 주민들의 지적 놀이터 역할에 충실하게 됐다는 그런 이야기. 마을공동체 서점의 좋은 예.
이 서점, 미국 뉴욕 주의 이타카에 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생명이 살아’있는 곳, 이타카. ‘마을 주민이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 지역 시장과 서점을 의식적으로 애용하’는 곳, 이타카. 국회의원 송호창이 2010년 코넬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건너가 2년 동안 머물던 그곳을 풀었습니다. 『같이 살자 : PM 4:00 여기는 이타카』는 그 결과물이고요. 지난 9월20일, 서울 상암동에서 출간기념 저자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문재인, 안철수, 조국의 추천사가 있는데요. 이글은, 세 명의 부산 남자에 이어 또 다른 ‘부산’ 남자가 덧붙이는 글이 되겠네요.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사는 마을, 사람사는 재미’가 있는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르게 사는 삶도 있으며,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
“이타카 이야기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풍경이 보였고, 나중엔 그 풍치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였다.”(p.7) | ||
소심한 남자, 이타카에 발을 디디다
송호창, 이 남자 소심했다고 커밍아웃합니다. 그런데, 커 보니 소심한 것이 좋았답니다. 소심함은 다른 말로 ‘섬세함’임을 알았던 거죠. 섬세하게 사람이나 주변을 살폈을 때에야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고, 배려할 수 있으며,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감각이라면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길바닥의 돌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 덕에, 그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그런 성격이 인권감수성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를 변론하기 위해서는 변론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고 이해해야 해요.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안 되는 사람은 연약하고 상처를 많이 받아서 섬세하게 도움을 줄 필요가 있거든요. 어릴 적 소심했던 것이 다행스러웠어요. 부모님이 절 소심하게 키워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훌쩍 떠났고, 미국 가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이타카의 자연과 사람을 보려고 했습니다.”
훌쩍 떠나서 발을 디뎠던 미국의 이타카. 그는 일주일동안 잠만 잤습니다. 꿈속에선 항상 한국이었죠. 그리 지내다가 「이타카」라는 詩를 만났습니다. 詩를 만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타카의 아름다움이 보였습니다. 높은 산이 없고 구릉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끝도 없는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 곳. 호수도 있고, 숲과 구릉으로 이뤄진, 보기만 해도 평온한 마을. 가족과 자주 숲 산책을 다녔습니다. 송 의원, 그곳에서 1년 동안 전업주부로 참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 빨래를 하는 게 좋았습니다. 빨래를 털면서 물방울이 손에 닿을라치면, 전생에 내가 무슨 나라를 구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타카는 빨래가 준 일상의 즐거움을 비롯해 한국에서 많이 거칠어지고 무뎌진 감각을 다시 일깨운 계기가 됐습니다.
“옷을 탁탁 털어 주름을 펴는 소리도 경쾌하고 그 소리와 함께 상쾌한 대기 속으로 번져 오르는 물 입자가 손등과 얼굴에 닿는 느낌도 싱그럽다. 오래전 신혼일 때 아내가 빨래는 이렇게 널어야 한다며 가르쳐준 요령을 새겨두길 참 잘했다.… 빨랫거리를 꺼내 들여다보면서 이 녀석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 상상해보는 것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이다.”(pp.43~46) | ||
‘이타카’라는 공동체에 눈뜨다
송 의원, 눈과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면서 내 가족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자연과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마을공동체를 향해 오감을 열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사회, 어떤 관계를 이루고 사는지 배우고 공부하고 싶었던 거죠. 마을공동체의 일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라틴댄스 동호회도 가입하고, 독서클럽에도 참여하는 등 여러 그룹에 얼굴을 들이 밀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거죠.
재밌는 것은, 이타카의 또 다른 주민. 그 주인공은 ‘사슴’이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면서 오늘은 이집, 내일은 저집 앞마당을 다니면서 함께 생활하는 풍경이었습니다.
“사슴과 한참 지내다보면 사슴 얼굴을 기억하게 됩니다. 6개월 전까지는 꽃사슴이었다가 1년 이상 되면 꽃무늬가 없어집니다. 사슴마다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풀을 먹고 어떤 냄새를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게 보여요. 그런 풍경속에서 지역 주민들이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엿봤습니다. 사슴이 줄어들면 사람들이 캠페인을 해요. 사슴을 구하는 거죠. 지역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애정을 표현하고 어떻게 보호하는지, 동물을 대하는 이타카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노동조합원, 공산당원이 잡혀갈 때 가만히 있었던 독일인들과 달리 이타카 사람들은 사라져가는 사슴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고, 도시 전체가 캠페인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처럼 다시 사슴과 공존하는 도시가 만들어졌다.”(p.68) | ||
“그런 삶의 태도가 있어서 공동생활을 위한 룰을 만들고, 일주일에 모든 사람이 두 시간 혹은 네 시간 다른 사람을 위해 노동을 합니다. 모두에게는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이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에코빌리지는 이타카 안에서도 극소수가 모여살고, 여길 들어가려면 주민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원칙과 철학, 조화할 수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는데, 엄격한 기준이 있습니다. 밥은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에서 송 의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습니다. “과연 무엇이 개발이고 발전인가? 시민의식, 교양 있는 주민, 교양을 권하는 문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타카에서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민들의 역량이 있었습니다. 5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북 세일 행사. 미국에서 세 번째 규모의 행사로, 25만권의 책을 기증 받는데, 7만 명이 사는 이곳, 한 번 할 때마다 25만원이 다 팔려나갈 정도로 성황이었습니다. 책 읽는 인구를 치면, 1인당 1년에 50권 이상의 책을 보는 셈입니다.
“이걸 보면서 느꼈어요. 1년에 50권의 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떤 교양교육도 필요하지 않겠구나. 그 정도 교양을 자신이 찾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도, 학교도 필요 없겠구나. 그렇게 자기들이 알아서 다 만듭니다. 책을 보다가 느끼면 실천에 옮기고요. 여기 주민들이 높은 수준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원천이 이런 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4~5월에 페스티벌을 하면 모든 주민이 다 나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다 있고,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 모두 커뮤니티에 가입돼 있으니, 페스티벌 한다고 하면, 준비하면서 그렇게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타카에선 온 가족 독서 캠페인이 일상적으로 진행됩니다.”
버팔로 스트리트 서점의 기적
송 의원이 이타카 주민들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버팔로 스트리트 서점. 이 서점엔 책이 있는 서고로 가기 이전에 응접실이 있습니다. 이곳엔 오래된 타자기, 옛 엽서 등이 있으며, 이 공간에 마음대로 무언가를 채워 넣던지, 연주를 하던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좀 더 들어가면 책이 있는데, 책 전시도 지역 작가들의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특징이 있다네요. 베스트셀러를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죠? 지역 작가들이 우선이고, 가장 많이 팔려나가기도 한답니다.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펜으로 써서 만든 책도 전시되고 팔리기도 하고요.
“그 다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꾸민 어린이 책 코너가 있고, 그 다음으로 일반 서적들이 있어요. 이들의 기본적인 관점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죠. 이 서점 30년 이상 운영됐는데,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구연동화 행사도 하면서 지역 문화생활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작은 서점에 와서 소규모 사람들이 더 친밀하게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책을 읽고 즐겼던 거죠.”
그러던 마을서점, 버팔로 서점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온라인서점의 등장 등 경영환경이 달라지면서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된 거죠. 홈페이지에 폐쇄한다고 공고가 떴는데, 일주일도 안 돼 서점을 살리자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힘을 모았습니다. 이를 500명으로 제한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3억 원 가량으로 서점을 인수했습니다. 모금은 5억 원 이상 모였는데, 나머지는 장기적인 운영을 위한 리모델링 비용으로 충당됐다고 하네요. 재밌는 것은 비슷한 시기, 보더스라는 전국 체인서점이 폐업을 하게 됐습니다. 두 서점의 폐업 공고가 나온 뒤 주민들 태도는 180도 달랐습니다. 보더스에 가서는 할인 가격으로 책을 싹쓸이 하고, 버팔로에선 호주머니 쌈짓돈을 꺼내서 살린 거죠.
“문재인 후보가 이 대목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부산의 지역 서점들도 폐업 위기에 처했을 때, 살리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못했다는 이야기를 추천사에 넣었습니다. 버팔로 서점은 이타카 사람들이 지역에 대해, 지역경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단면을 보여줍니다.”
“경제 사정 악화로 문을 닫는 곳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주인이나 주주가 아닌 동료와 주민 들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구호 노력을 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는 정말 어렵다.”(pp.96~97) | ||
마을공동체, 우리에게 원래 있던 어떤 것!
공동체는 곧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의 한 일원으로서,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 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송 의원은 이타카에서 이방인이었지만, 주민의 시각이 되어 바라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공동체가 과거엔 편하고 안전했었음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마을 어디서든 밥 먹을 수 있었고, 다치면 치료받고, 아는 어른들이 도와주면서 지냈다는 사실. 그리고 곧 그는 마을공동체 복구에 적극 나설 것을 천명합니다.
“우리의 마을이 과거에는 훨씬 더 따듯했고 인간적이었고, 배려나 존중이 컸습니다. 이타카 경험을 하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보다 예전 모습을 복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고요. 우리 마을공동체는 여기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인간적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10년 주기로 직업을 바꿔왔는데, 한국에 돌아가서는 우리의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일을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정치를 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마을을 복원하고, 공동체를 다시 만드는 것을 정치인으로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선이 끝나면 공동체를 복구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외부인이 아닌 구성원의 입장에서 이타카를 살펴보면서 내 마음가짐이 변했다. 이타카를 지키고 변화시킨 힘이 전달되었고, 용기 있는 시민의 모습을 배우게 된 것일까. 방관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실천의 자세를 배우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다른 나라를 동경하지만 말고, 우리의 아쉬운 모습을 한탄하지만 말고, 여유 있게 한 걸음씩 우리 공동체를 바꾸는 일에 내가 직접 나서보자고 다짐했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이다.”(p.243) | ||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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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의 삶이 미국민의 보편적인 삶이 되면 세계에 평화가 올 것 같습니다. (웃음) 무엇이 가장 선결돼야 할까요? 한국에서 공동체 확산이 가능하려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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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한가지로 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좀 더 소심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소심해지면 섬세해지고, 자신부터 돌아보면서 주변에 눈을 뜨면서 다 보일 겁니다. 저 사람은 어떤 면에서 약하고, 어떻게 했을 때 불편해한다고 알면, 불편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
책 부제에 ‘P.M 4시’라고 돼 있는데, 이타카에서 가장 편한 시간이 오후 6시입니다. 퇴근해서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그걸 4시부터 준비합니다. 지금 우리는 약속을 하면, 5분만 늦게 와도 전화를 몇 통씩 하지만, 거기선 1시간을 기다려야 버스를 타는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학교에서 탄 버스에서 내리면 집까지 200m 정도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 집까지 가는데 가장 빨리 간 게 30분이고, 2시간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가면서 집 앞마당의 정원을 보는데, 지날 때마다 모든 게 새롭습니다. 날씨도 항상 다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즐기기 위해 정원을 꾸미기도 하고, 누군가는 길 바깥에서 보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매일 그 길을 지나면서 뭐가 달라졌나 보고 가는데, 200m 가는데도 30분 이상 걸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만져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만져보기도 하고.
마을 길바닥의 돌, 나무까지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고,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조금씩 내 바깥에 관심을 두고 사람이나 자연, 나무 한 그루까지도 유심히 볼 여유, 그런 삶의 태도만 있으면, 편안하고 안락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
성미산마을에서 왔습니다. 공동체를 복구하거나 지켜내기 위해 정치인 송호창으로서 큰 그림을 그리거나 갖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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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안 그리고 긴 계획 안 세웁니다. (웃음) 부지런하질 못하고 되는대로 살다보니 그게 몸에 익었는데, 저한테는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뭔가 목표가 있다고 생각하면 계획을 잡기 이전에 당장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거든요.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도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다녔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바깥에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무엇이 되라고만 했지, 네가 어떤 사람이고, 네가 가치 있고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도 배려도 못했죠.
공동체에 있다면 북 세일 운동, 지역 신협, 새마을금고, 작은 도서관 등과 같은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공동체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보면 밝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어제 안철수 원장이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는데, 그건 에너지가 바뀌는 거예요. 한 사람의 에너지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언어부터 달라집니다. -
이타카 마을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버나요?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순환구조가 있고, 미국처럼 자본주의 최첨단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제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체 복구에 정치가 보장해주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은데 정치인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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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에 제도나 법이 있거나 시스템이 따로 갖춰진 건 아닙니다. 이런 공동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 많은 것을 내놓고 노력해야만 유지되는 긴장 관계가 있는 거죠. 이곳엔 5~6년 전만 해도 월마트와 스타벅스가 없었어요. 늘 로컬 중심이었죠.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먼저 소비하고, 지역에서 만든 게 가장 비싸고 가치를 높게 쳐줍니다. 로컬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강한 거죠. 그래서 월마트와 같은 대형매장이 들어오는 걸 주민들이 막았습니다. 시장이 제일 앞에서 막았고요. 5년 전부터 월마트가 들어오려 할 때 시장이 길에 드러눕고 온몸으로 막으니 주민들이 함께 저항했어요. 그런데도 결국 못 막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포기 않는 게 많은 주민들이 월마트 이용을 않습니다. 반면 지역 농산물이나 공산물을 파는 매장은 늘 붐벼요. 냉장 시설을 갖추는 게 아니라, 신선한 물품이 빨리 소비되고 가져오고. 똑같은 물건이라도, 뉴욕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지역에서 삽니다. 생산과 소비가 안에서 이뤄져서 지역경제가 튼튼히 이뤄지도록 보호막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제일 앞장서는 사람들이 정치인입니다. 긍정적인 면만 얘기했는데, 여전히 자기 돈벌이에 관심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긴장관계 안에서 공동체는 유지되고 있고요.
“이타카 북쪽 지역에 큰 쇼핑몰을 새로 만드는 것도 그래서 반대했다. 대형 쇼핑몰은 지역 소상인과 농장의 몫을 빼앗을 것이고, 판매 수입은 지역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대형 쇼핑몰의 주인이 사는 맨해튼의 부호와 대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가 이타카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p.109) | ||
- 같이 살자 송호창 저 | 문학동네
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 아니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평범한 시민 송호창이 2010년과 2011년, 두 해 동안 미국 이타카에서 머문 기록을 담은 생활인 체류기다. 그는 낮에는 빨래를 널고 저녁엔 장을 보며 이타카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뉴욕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발견을 자꾸 하게 됐다. 거기서 송호창은 생태주의와 풀뿌리 지역 경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인 송호창의 책이다. 촛불 변호사 송호창, 시민운동가로 10년, 인권변호사로 10년을 살아온 그가…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나랑
2012.11.06
책방꽃방
2012.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