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부터 외모까지 닮아가는 연인의 그림
대단히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다. 명암이며 색깔이 정성스럽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꿰뚫겠다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베르니니.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30대 자화상이다. 천재 조각가로 불렸던 베르니니의 명성만큼이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면이 표정에 드러나는 듯하다.
글 : 김선현
20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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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화상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내 모습과 비슷해요.


대단히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다. 명암이며 색깔이 정성스럽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꿰뚫겠다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베르니니.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30대 자화상이다. 천재 조각가로 불렸던 베르니니의 명성만큼이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면이 표정에 드러나는 듯하다.

새벽을 연상시키는 듯한 바탕색이 그 곤두선 신경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아직 동트지 않은 사색의 시간에 선명하게 깨어 있는 정신. 불면증 환자와도 같은 신경질적인 모습이 보인다. 이마에 힘줄이 보여서 더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다. 뒤로 대충 넘긴 헤어스타일은 숱이 많지 않으며 단정하지도 않다. 수염은 잘 정리되어 있지만 꼿꼿하고 여유를 찾기 힘들다. 파리한 안색은 아스라한 새벽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마르고도 강한 얼굴선, 자세는 비스듬하지만 시선만은 정면을 뚫고 있다.

여유로움보다는 진지함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는 유머러스한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 인생의 전부인 고독한 천재랄까.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를 날카롭게 몰아붙이고 노력했던 완벽주의자는 아니었을까?

매우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무결점으로 완수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완벽주의자는 자기 향상과 자기 확인이라는 두 가지 심리기제와 맞물려 있다. 자기 향상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고 자기 확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완벽주의자는 부족함이 없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확인으로 보여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자기 확인 욕망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방어적으로 되기 쉽다. 베르니니가 표현해낸 그림 속 베르니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표정에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아마 그는 자화상을 그릴 때쯤 내면적으로는 황폐하거나 비어 있지 않았을까? 천재 조각가로 추앙받지만 내면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렇게 정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베르니니의 모습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실존의 고민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그림은 말투부터 외모까지 닮아가는 남친과 저와 같아요.


다른 화가들에 비해 모딜리아니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림의 대상과 마주 보며 교감이 생겨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던 그였기에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에서는 그리 예술적 흥취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남긴 자화상이 바로 1919년도 그림이다.




이 무렵 알코올과 마약에 찌든 모딜리아니는 맑은 정신일 때 자신의 모습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다 보면 그들의 그림에는 삶을 정리한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평소에 그리지 않던 것을 표현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 회복이라든지 마음속의 회한을 담는 것이다.

눈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거의 볼 수 없다. 눈은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으로 그 사람의 태도나 기분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딜리아니가 아프리카 조각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모딜리아니의 내면을 그려낸 것으로 보는 편이 좋겠다.

죽음을 앞두고 피카소는 정면을 직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화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한 당시의 심리 상황을 이야기하듯이 그려놓았다. 모델의 내면 심리를 탐구해서 깊이 있게 표현한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그림을 인물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루었다. 인물 내면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 앞에 놓인 상황과 감정에 집중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죽음을 앞두고 유일하게 남긴 자화상은 그가 평소에 즐겨 그리던 여인 잔의 초상화와도 닮아 있다. 그는 사랑하는 잔을 두고 떠날 것을 예감했는지 잔과 동일시라도 하듯이 자신의 자화상과 잔의 초상화를 유사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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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김선현 저 | 웅진지식하우스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는 20년 간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저자가 미술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프리다 칼로, 뭉크, 다빈치 등의 80명의 자화상을 엄선, 이를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서이다. 유명한 자화상을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물론 실제 행해진 미술치료의 사례가 수록되어 있어, 나를 찾는 이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말로 이루어지는 피상적인 위로에 지친 이들라면, 이 책을 통해 직관적이고 실질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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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니니 #모딜리아니 #잔 #자화상 #그림 속에서 나를 만나다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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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2.11.26

눈 무서워요ㅠㅠ 그림,눈물을 닦다 책에도 나왔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여기서도 등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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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2012.10.01

그림을 보면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림과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데 정말 직관적이고 실질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구매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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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s0901

2012.08.17

베르니니의 자화상도 인상적이지만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더 인상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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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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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

미술치료 분야의 대한민국 최고 권위자이다. 트라우마 전문가이자 전시 기획자이기도 하다.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삼성 SERI CEO 컬처앤아트에서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다. 마음지붕트라우마센터 원장으로서 30년 넘게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고통받는 현대인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미술치료 분야에 뛰어든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술이 지닌 치료적 힘을 깨달은 것이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미술치료의 길을 걷기 위해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양인 최초로 독일 훔볼트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예술치료 인턴 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일본에서 외국인 최초로 임상미술사 자격을 취득했고, 일본 기무라 클리닉과 효고현 마음케어센터(트라우마센터)에서 트라우마 연수를 했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예술치료 과정을 거쳐, 프랑스 미술치료 전문 과정까지 마쳤다. 이를 바탕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돕고자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미술치료를 담당했으며,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강원도 GOP 총기 난사 사건, 세월호 참사, 포항 지진,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 등의 주요 재난 현장에도 함께해 왔다. 9·11 테러 피해자들의 치유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 치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네팔 대지진 등의 재난 현장에서 트라우마 치유에 힘썼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잠비아 등 아프리카 지역 아동·청소년 대상의 미술치료를 비롯해 캄보디아 킬링필드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왔다. 2015년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유엔 제3차 재난위기경감회의(WCDRR)에 특별 초청 연사로 초대되어 강의했으며, 코로나 시기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시행하는 코로나19 감염병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심리적 방역’ 전문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미술치료학회(AATA) 정회원이며, 한·중·일 임상미술치료학회회장, 세계미술치료학회장과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 차(CHA)의과학대학교·차병원 미술치료대학원 원장, 중국 베이징대학교 의과대학 교환교수, 제주국제평화센터장을 역임했다. 그뿐 아니라 〈한·중 수교 30주년 현대미술특별전〉, 〈광복 70주년 기념 역사가 된 그림전〉, 〈한·중·일 트라우마 치유 작품전〉, 〈평화와 예술전〉 등을 기획해 국내외에서 미술로 치유와 평화를 꾀하는 전시 기획자로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트라우마》는 30년 넘게 국내외 현장을 다니며 진행한 트라우마 연구 및 치유 활동을 집약한 책으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실제 임상미술치료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역사적·사회적으로 내재된 트라우마를 비롯해 우리 안의 트라우마 마주 보기를 통해 치유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저서로 《그림의 힘 1·2》,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게》, 《그림육아의 힘》, 《카라바조 이야기》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이외에도 사람과 사회에 따뜻한 위로와 섬세한 해결책을 건네는 책을 꾸준히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