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사랑하면서 왜 상대를 용납하지 못할까?
사랑의 불치병에서 벗어난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남자들과의 그런 의존관계 속에서 나는 사랑도, 자존감도 경험하지 못했다. 내 몸과 내 존재를 파괴하는 그런 애정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학대에 기반을 둔 애정관계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 의존성을 직시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이제 끝장이야.” 그러자 다른 사랑법을 찾아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글ㆍ사진 마리 리즈 라봉테
2012.07.11
작게
크게
수많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파트너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셋과 함께 열대지방의 한 레스토랑에 앉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든 애정 문제를 겪고 있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움을 주려는 뜻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그 친구는 여러 달 동안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정신이 피폐해졌고 육체까지도 물론 쇠약해졌다. 살이 빠지고 활력을 잃었으며, 어깨도 축 처지고 허리가 구부정해졌다. 눈빛에서 생기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서 손톱을 물어뜯고 쉴 새 없이 얼굴을 문질렀다.

거기 모인 친구들은 건강하지 못한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의존과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또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친구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의 남편 역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간신히 함께 사는 생활을 해나간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려고 그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고 친구를 돕고 싶었다.

우리는 분위기가 무거워질까봐 웃고 떠들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노력은 통하지 않았고, 불행으로 기진맥진해진 친구의 모습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녀는 확신 없는 모습에 눈빛은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친구는 그런 애정관계에 붙들려 스스로 감정을 지옥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과 일에도 영향이 미쳤다. 이제 한계에 도달해 있어 친구는 여러 해 싸움과 비난만 일삼던 애정관계를 청산하고 생활에 변화를 시도하고 싶어 했다.

우리와 이야기하는 중에 친구는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받은 학대를 애써 정당화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몹시 노력했다. 우리는 늘상 일어나는 생활 속의 공격에 어떻게 대체하면 좋은지 구체적인 지침들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끔찍한 지옥에서 꺼내주고 싶었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돕기에는 적격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출몰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것은 사실 ‘사랑’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주는 사랑병(maladie d’amour)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아 상황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수많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파트너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수많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한다면서 망신을 자초하고, 존경심을 잃고, 구박을 받는다. 수많은 부부들이 아이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함께 산다. 자주 다투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떤 사랑법을 물려줄까? 갈등만 일으키는 관계가 계속된다면, 아이들이 좋은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며 행복하게 자라나도록 그런 관계와 단절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술기운이 좀 돌자, 힘들어하던 친구도 조금 긴장을 풀었다. 바로 그때, 사랑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고,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손뼉을 치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이 책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감히 사랑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한 이유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온갖 형태의 사랑에 대해 설명하고, 그런 사랑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01.jpg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내 사랑법도 부모님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영향 으로 내 사랑도 일정한 방식으로 조건지워졌다. 말하자면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 돌이켜보면 삶은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부모님은 상처가 있음에도 서로 사랑하셨다. 서로 사랑했고 결속력도 매우 강했다.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애정 표현도 거리낌 없이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부모님이 함께 있으면 어떤 자기장 같은 것이 주변에 형성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우리 부모님에게 인사를 건네며 참 ‘아름다운 부부’라고 칭찬하곤 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함께 삶을 영위하는 사랑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내게도 상처는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시절 많은 아버지들처럼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성인이 된 뒤 나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강한 남자들과 애정관계를 맺곤 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버림받지 않을 것 같았다(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소유욕 강한 그들의 사랑으로 숨이 막히면서도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다. 그 남자들이 내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돌연 각성했고,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남자들에게 주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사랑의 불치병에서 벗어난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남자들과의 그런 의존관계 속에서 나는 사랑도, 자존감도 경험하지 못했다. 내 몸과 내 존재를 파괴하는 그런 애정관계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학대에 기반을 둔 애정관계에서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 의존성을 직시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이제 끝장이야.” 그러자 다른 사랑법을 찾아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img_book_bot.jpg

사랑 충동 마리 리즈 라봉테 저/최정수 역 | 옐로스톤

“사랑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가?” 『사랑 충동』은 이런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랑의 근원을 탐색하고 상처받은 사랑을 치유하고 우리 안의 완전한 사랑을 되살려내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캐나다에서 정신신체의학 분야의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는 마리 리즈 라봉테는 오랫동안 남녀 관계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사랑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날 사랑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를 위로하다가 사랑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인데…

 


#사랑 #사랑병 #사랑 충동
9의 댓글
User Avatar

pota2to

2012.12.31

맞아요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만한 누군가가 있다면 가장 큰 축복일 듯 합니다.
답글
0
0
User Avatar

prognose

2012.08.02

어떤 이야기가 될 건가 궁금해지는 첫글이네요. 의존성은 연애에 있어 결코 좋지 않죠.
답글
0
0
User Avatar

가호

2012.07.31

이 책 무척 기대됩니다. 몇 소절만 읽어봐도 정말 배울 게 많은 것 같아요.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마리 리즈 라봉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