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감성 충전 - 페퍼톤스, 김창훈, 사라 바렐리스
햇살이 등줄기를 적시는 여름입니다. 그래서인지 듣기만 해도 상쾌함을 전해주는 음악들이 많이 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잔잔한 반향을 얻어내고 있는 페퍼톤스는 그 중 눈에 띄는 그룹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음악을 담고 있는지, 그들의 신보 < Beginner's luck >을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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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등줄기를 적시는 여름입니다. 그래서인지 듣기만 해도 상쾌함을 전해주는 음악들이 많이 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잔잔한 반향을 얻어내고 있는 페퍼톤스는 그 중 눈에 띄는 그룹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음악을 담고 있는지, 그들의 신보 < Beginner's luck >을 소개합니다. 세월의 관록을 보여주는 산울림 김창훈의 앨범과 기존의 밝았던 모습을 감추고 어두움을 드러낸 사라 바렐리스의 앨범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페퍼톤스(Peppertones) < Beginner's luck >

페퍼톤스의 전환점이 이미 예고돼 있었다. 소속사를 바꾼 전작 < Sounds Good! >에서부터 일렉트로닉과 록 사이의 애매한 입장을 탈피하고자 색다른 편곡을 시도했다. 게다가 데뷔 초 때부터 계속되던 한국식 시부야케이(Shibuya-Kei)의 동어반복은 그 유효기간을 의심하게 했다.

< Beginner's luck >이라는 앨범명은 전환을 넘어서 초심자로의 회귀를 표방한다. 팀의 기둥을 떠받치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과감히 내려놓고 5인조 밴드 편성으로 진솔한 내면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신재평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까지는 덧셈의 사운드였다면, 이번 앨범은 뺄셈의 사운드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간소해진 사운드에 걸맞게 가사도 변했다. 엉뚱하고 똘끼넘치는 가사는 좀 더 사적인 이야기와 거친 감정을 담았고, 여성 객원 보컬 대신 본인들이 1전곡(1곡 제외)을 직접 부르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다수 감지되나 결과물들이 충분하게 따라주지 않는다. 악기의 구성을 줄여 담백한 타이틀곡 「행운을 빌어요」, 섬세한 피아노 도입부와 밴드의 연주를 연결시킨 「러브앤피스」, 기타리프의 반복이 인상적인 「ROBOT」 등은 청량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전작의 익숙한 궤도를 맴돈다. 특히 「BIKINI」는 리듬 골격 자체가 전작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신재평의 가창은 대체로 무리없이 곡을 소화하고 있으나 거친 록사운드와 결합한 「wish-list」같은 곡에서는 다소 불안정하다.

앨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중간에 위치한 다소 이질적인 두 트랙이다. 「아시안 게임」은 빈티지한 록밴드의 사운드와 함께 냉소적인 가사를 담았고, 「검은 산」은 유일한 객원보컬인 김현아의 나직한 목소리와 통기타 선율로 차분히 여백을 살렸다. 그러나 앨범의 결정적인 지점이 되기엔 진동이 미약하다.

컨셉의 변화에는 분명 득과 실이 공존하겠으나 현재로선 실이 많아 보인다. 이들을 비교우위에 서게 했던 핵심 요소들을 버리는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너지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 밴드’로서의 희소성은 이어가지만, 투박함, 진솔함, 상쾌함 모두를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은 아직 애매하다. 창조적인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 박현아(hapark85@gmail.com)


김창훈 < 행복이 보낸 편지 >

근래 이어진 산울림 재조명 시리즈에 방점이라고도 할 만한 작품이다. < 분홍굴착기 >(2012)와 < Reborn of 산울림>(2012)에 이어 마치 기획한 듯이 이어지는 김창훈의 3집은 무엇보다 수록곡 전부가 새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앞서 언급했던 앨범들이 ‘이미 검증된 과거의 것들을 변화된 현재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이번에는 ‘현재의 모습이 과연 과거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지’라는 거꾸로 선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가우면서도 과거의 영광이 세월에 휘둘리지는 않았을까라는 걱정스러움 속에서 성사된 이번 재회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재기발랄하다. 무엇보다 산울림 속에서 그가 담당했던 포지셔닝을 극대화해 폭발시킨 영민함은 형인 김창완과의 경계선을 뚜렷이 하는 와중에서도 그룹의 향취를 잃지 않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근간은 한 곳에 있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어떻게 털어놓는가에 의해 음악은 그 갈 길을 달리하는 법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좀 더 명료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편곡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도 사운드의 질감은 거친 내음으로 가득 차 있다. 1970~80년대는 여전한 그의 지향점이다. 그렇다고 굳이 시간과의 의절을 선언하지는 않는다. 김완선의 「오늘 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탄생시켰던 마이더스의 손이 다수지지를 유도하며 21세기로의 타임워프를 돕는 덕분이다. 약간은 촌스러운 듯 담백하게 다가오는 선율은 강요된 음압에 짓눌린 지금의 10대와 20대들에게 보다 여유있게 어필하는 관록을 보인다.

타이틀곡인 「알리바이」는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결정체이다. 텁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박하향의 통렬함을 가지고 있는 보컬, 젊은 감각으로 무장하고 있는 트렌디한 가사, 반복적이면서도 포인트를 적확하게 짚어 내는 멜로디가 삼각대를 구축한다. 2012년이라는 시간을 걷는 네임드 밴드 사이에서 ‘산울림’이라는 이름이 통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완벽한 밸런스다.

또 하나 솔깃한 것은 장기하와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곳의 연결고리다. 단어 단위로 호흡을 끊는 「부메랑」, 음색마저도 비슷하게 들리는 「난난 여기, 넌넌 저기」 등 장기하가 말하는 산울림으로부터의 영향은 김창완 보다도 김창훈에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감성과 유행의 요소를 미리 예언한 듯한 혜안은 지금까지도 음악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자양분이라 할 만하다.

통렬한 직격탄 보다는 은연중에 에둘러 말하는 혼잣말, 그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자아와 그 뿌리에 있는 사춘기 같은 설렘과 떨림의 감정은 분명 형인 김창완조차 미처 범접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디테일한 감정표현 속에서 퍼져 나가는 선율의 울림과 이로 인해 획득되는 만만치 않은 동시대성. 옛 것이라 느껴지는 와중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음악세계는 활발한 창작열과 맞물려 진행형임을 실감케 한다. 산울림 이후 김창완은 더 젊어졌지만, 김창훈은 더더욱 젊어졌다.

글 /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 < Once Upon Another Time >

있는 그대로를 담은 음반이다. 화려한 장식도, 현학적인 노랫말도, 과시적인 바이브레이션도 없다. 거의 모든 작업을 원 테이크(One take)로 끝냈을 것 같은 황홀한 지속성이 < Once Upon Another Time >을 감싸고 있다.

EP 형식으로 발표한 < Once Upon Another Time >은 사라 바렐리스가 공개한 기존 앨범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지하면서 어둡고, 무거우면서 우울하다. 2011년 5월, 내한공연에서 보여준 재기발랄한 모습은 없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런 밝은 면을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다.

엔냐의 성스런 신비로움과 시네이드 오코너나 애니 레녹스의 신비로운 성스러움이 조율된 타이틀 곡 「Once upon another time」은 처음부터 2분 30여 초 동안 사라 바렐리스 혼자서 고요함을 지배한다. 경건한 장송곡 풍의 「Once upon another time」은 이번 음반의 차별성을 전면에 부각한다. 소울과 가스펠을 시도한 첫 싱글 「Stay」의 묵직한 진지함과 연해진 뷰욕이 상상되는 「Lie to me」에서는 드럼 머신의 도입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도 포섭한다.

「Asshole」과 「Bitch」 같은 육두문자와 탐 웨이츠의 탐미적 고상함이 상존하는 캬바레 넘버 「Sweet as hole」은 전작에 수록된 「King of anything」처럼 블랙 유머를 머금은 트랙으로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벤 폴즈(Ben Folds)의 음악적 방향이 고스란히 스며든 곡이다.

6월 9일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8위로 데뷔한 이 음반은 2주 만에 66위로 하락했지만 사실만 있고 진실이 없는 다른 EP와는 등급이 다르다. 사라 바렐리스의 < Once Upon Another Time >은 사실과 진실을 담은 작품이다.

글 / 소승근(gicsucks@hanmail.net)


#페퍼톤스 #김창훈 #사라 바렐리스 #산울림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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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k1226

2012.06.22

페퍼톤스가 변화를 시도했군요. 뺄셈의 사운드라.. 들어봐야겠네요!
개인적으로는 sara bareilles의 새앨범이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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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6.14

페퍼톤스의 음악을 들어 보았는데, 제법 괜찮더라구요. 특히나 젊은층에서 호응도가 높은 편이지요. 앞으로 페퍼톤스가 어떤 음악을 펼쳐 나갈지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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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히테

2012.06.14

스태이라는 곡은 참 좋네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인상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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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