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과 중심이 선 불변의 맛, 비빔냉면
내가 일부러 찾아서 먹는 유일한 음식이 냉면이야. 어떤 땐 냉면이 냉면으로 안 보이고, 옛 사진첩 넘겨보는 기분일 때가 있어. 1960년대부터 다녔으니 벌써 40년도 더 됐네. 지금은 세상을 뜬 이낙훈 씨하고 자주 먹었지. 다른 동료하고 우르르 올 때도 있었고. 그 기억 때문인지 냉면을 보면 네 연기가 어떻다, 내 작품이 어떻다, 얘기하면서 떠들썩했던 시절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거야. 냉면 안에 연기 동료의 추억이 다 들어 있는 거지.
그래서 함흥냉면은 내게 수십 년 친구나 마찬가지지. 늘 편안하고 익숙한 맛이 보기만 해도 친근하거든. 오장동 함흥냉면집이 그 친구를 만나는 곳이야. 내겐 냉면 하면 이 집밖에 생각이 안 나. 평상시에 방송국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다가도 “거기 가서 그거 먹자” 하면 바로 함흥냉면이었어.
텔레비전 드라마 보다가 냉면 먹는 장면 본 적들 없을 거야. 다들 빵 먹거나 스테이크 썰지. 냉면은 화면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식이니까. 일단 색감이 뚜렷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입으로 잘라서 먹기도 어렵잖아. 먹다가 국물 흐르면 그것도 보기 좋지 않고. 그래서 연기하면서 냉면 먹을 경우가 별로 없어요.
예전엔 함흥냉면집 카운터에 할머니가 계셨어. 둘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니까 단골로 인정받았지. 우리가 오면 따로 주문 안 해도 홍어회 무침을 한 접시씩 꼭 챙겨줬어. 오장동에 요즘처럼 크게 냉면 건물에 들어선 건 우리가 찾기 시작한 후로 한참 지나서야.
처음에는 을지로3가 쪽에 조그맣게 있었어. 각자 한 그릇씩 먹고 그래도 성에 안 차면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싸갖고 가기도 했지. 요즘 식으로 하면 테이크아웃. 그런데 집에 가서 먹으면 맛이 또 달라요. 이 자리에서 그 사람들하고 먹었을 때 맛이 아닌 거지.
이 가게에 유명한 사람이 있었어. 주문 담당이었지. 어디 적는 것도 아니고 구두(口頭)로 받았는데도 점심때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그 많은 사람의 주문을 다 외웠어요. 주문 컴퓨터였지, 주문 컴퓨터.
그때만 해도 신발장이 없어서 사람이 몰리면 각자 신발을 챙겼어. 비닐봉지에 신을 넣고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 보면 몇 사람 뒤통수치기는 예사였지. 친 사람은 미안하다 하고 먹는 사람은 먹느라 정신 팔려서 괜찮다 하고. 먹기 바쁘고 자리 찾기 바빴지.
서비스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도 역시 이 맛 때문에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고, 번성하지 않을 수 없었어. 예전에야 카드도 없었으니 현찰로 계산했는데, 우리끼리 “이 집은 돈을 낙엽 쓸 듯 가마니에 쓸어 담는다”고 그랬어.
냉면은 딱 두 가지야. 맛있는 냉면과 맛없는 냉면. 중간에 애매한 건 없어. 맛있는 냉면에 입맛이 길들면 맛없는 건 못 먹지. 타협을 불허하는 맛이라고나 할까. 냉면이라는 게 화려하게 꾸미거나 새로 개발한 양념으로 전에 없던 맛을 내는 게 아니잖아. 전통과 권위가 살아 있는 맛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야.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한결같은 중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음식이기도 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 변하지 않는 가치가 왜 소중한지를 이 면발이 웅변하고 있지 않나.
연기도 마찬가지야. 기본과 중심은 불변이지. 맛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흔들리기가 쉽잖아. 해이해지기 일쑤고. 손님 좀 몰린다 하면 변해버리는 음식점이 얼마나 많아. 프랜차이즈 내주면 돈이야 금방 벌겠지. 하지만 맛이 가는 것도 순식간이야. 그래서 내가 오장동 함흥냉면집을 더 찾게 돼. 외부에 지점을 두면 돈더미에 올라앉을 텐데도 안 그러잖아. 그만큼 음식에 대한 권위와 전통을 지킨다는 정신이 보여서 내가 좋아해.
물론 무조건 과거의 것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권위가 생길 수가 없어요.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졌는데 ‘옛날엔 안 그랬다’고 외치고 있으면 누가 존중해주겠어. 나이 들어 야동 보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예전 사고방식만 고집했으면 야동순재의 재미가 살아났겠어? 처음엔 나도 야동순재,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 욕 많이 먹겠다 싶었는데 다들 재미있다고 하더라고. 전통과 기본을 지키되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명작으로 알고 있는 여러 작품은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생명력이 영구한 거야. 셰익스피어, 안톤 체호프,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은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걸 배워요. 역시 정통은 다르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지.
‘세일즈맨의 죽음’을 20년 간격으로 두 번 하면서 그걸 깨달았어요. 1979년에 하고 2000년에 했는데, 대본대 완전히 하면 2시간 40분짜리지. 1979년 당시에는 우리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었어. 그 무렵에는 거의 연탄을 썼지. 도시가스가 일반화되지 않았고. 그런데 대사 중에 엄마가 아들한테 “가스 파이프가 열려 있더라. 아버지가 마시려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가스가 뭔지 모르는데 그 대사가 이해됐겠어? “가스가 뭐야, 잘라버려”, 그렇게 돼서 그 부분은 안 올라갔지. 1막 마지막에 보면 주인공인 아버지가 창밖을 보면서 말해요, “달이 아파트 사이로 가고 있다”고. 그 말이 뭔지 당시엔 몰랐어. 단순한 풍경 묘사인 줄 알고 “달이 아파트 사이로 씩 웃고 있다”라고 바꾸자고 한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였어.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거기 산 주인공 눈에 그 장면이 잡힌 거지. 2000년 공연할 때야 “아, 알겠다” 싶더라고. 나이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도 알아가고 작품도 배워가는 거지.
시간이 가도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위라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같은 분위기의 연기로 계속 나오면 보는 사람도 지겨울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 내 생명도 짧아지는 거야. 대발이 아버지로 떴다고 대발이 아버지 같은 역할만 맡았으면, 나부터가 재미없어서 연기를 계속할 수가 없겠지. 늘 새 과제에 도전하면서 마지막 작품 하는 그 순간까지 나를 단련시키는 거예요.
연기생활 하면서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젊었을 때부터 인기나 수익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 늘 있었지. TBC 방송에서 활약할 때도 이낙훈 씨와 나를 비롯한 6명 정도가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했어. 난 1980년대 언론통폐합 된 후에는 방송 대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상이라는 걸 객관적 평가의 잣대로 본다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이미 다 이뤄서 더 도전할 영역이 없다고 하는 것보다 항상 도전해야 할 대상이 있고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여기는 게 연기자로서는 오히려 복된 상황이라고 생각해.
얼마 전에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찍을 때도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못지않게 고민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윤소정 씨가 연기한 할머니에게 “한번 안아보자”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었거든. 대본을 읽을 때부터 저절로 상황이 연상되면서 생각할수록 비감해지더라고. 속으로 우는 걸 보여줘야 하겠는데, 속울음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연구 대상이었지. 내가 눈물을 흘리면 안 되겠다고 방향을 잡았어요. 헤어지는 장면이니까 꺼억꺼억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절제해야겠다고 판단했지. 눈빛과 표정, 알 듯 모를 듯한 손짓만으로 전달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초등학생이 냉면 맛을 알기 어렵듯이, 20대가 그런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겠지. 맛을 아는 사람이 최고로 꼽는 맛이 있듯이, 살아본 사람 눈에 보이는 감정의 물결이 있는 법이니까.
연기라는 게 글자만 외워서 지껄인다고 되는 게 아니지. 그건 아무나 다 해요. 일상적인 장면에서 눈 하나 뜨는 거, 시선의 각도, 고개를 어떻게 돌리는지에 표현의 묘미가 있는 거야. 그걸 구별할 줄 알 때야 본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지. 여러 냉면집의 함흥냉면이 다 같은 고추장 양념을 쓰지만, 미세한 맛의 간극을 결코 메울 수 없는 것과 같아. 그 차이, 세월이 만들어준 기본과 전통의 차이를 헤아릴 줄 알고 지킬 줄 아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 싶어.
- 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 | 예담
맛은 추억이고, 위로이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요즘에도 사람들은 어릴 적 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을 기어이 찾아다니며 먹는다. 추억을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이순재 신경숙 이승철 에드워드권 김대우 윤대녕 패티김 배병우 김수영 황주리 강수진 박찬일 이원복 하성란 이지나 배한성 서상호 이진우 진태옥 문훈숙 이왈종 장석주 조태권 이희 승효상 전무송 정끝별 안효주 김윤영 조은과 같은 이 시대 최고의 명사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누며,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의 기억을 함께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신정선
1974년 3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언어학과를 어렵게 입학해 간신히 졸업했다. 2001년 8월 수습 41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날마다 책상에 머리를 찧으며 기사를 쓴다. 2011년 12월 현재 문화부에서 공연을 담당한다.
만다
2013.03.20
yerim49
2012.11.01
책읽는 낭만푸우
2012.03.29
미국에 갓 왔을 때 거긴 한국 사람도 거의 없고 한국 식당도 거의 없어서... 냉면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그걸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나요. 사먹는 것만은 아니지만,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아쉬운 대로 너무 맛있게 먹었던. 어떤 감정은, 그걸 경험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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