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에 걸린 후 나의 삶은 이렇게 변했다
유방암에 걸리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초를 켜고 멋진 옷을 입어라 - 날마다 양초를 켜라. 양초야말로 우리의 삶이 짧다는 사실, 정말로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지 않는가. 따분한 영화는 꺼버려라.
글ㆍ사진 레지너 브릿
201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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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양초를 창고에 처박아두지 않는다.
전에는 괜한 죄책감 때문에 그랬다. 친구들이 선물로 준 향기로운 양초들. 시나몬 애플 향, 프렌치 바닐라 향, 하베스트 스파이스 향, 또는 나뭇잎이나 장미 꽃잎으로 장식된 평화와 사랑, 조화의 아로마테라피 양초들. 모두 한 번도 켠 적이 없었다.

그것들을 태워버리기가 싫어서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흘렀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내게 아기의 숨결이 담긴 유리공 속에 양초를 넣어서 선물했다. 그 양초를 몇 년 동안 보관해오다가 어느 날 먼지를 닦아 보니 이미 밀랍이 녹아 있었다.

그 양초들을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던 칼럼니스트 어마 범벡의 글을 읽으며 자랐다. 어마의 글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신문 칼럼이었다. 그녀는 작가이자 주부였으며, 우리 엄마를 소리 내어 웃게 만든 유일한 작가였다. 우리 엄마는 어마의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소장했다. 유방암에 걸린 이후로 어마의 글은 한층 더 신랄해졌다. 2년 뒤, 그녀는 유전적 질환으로 신장이 망가졌다. 결국 신장 이식을 받은 후 사망했다.

그녀가 쓴 가장 뛰어난 칼럼에서 어마는 만약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다르게 살았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명심하리라 다짐했다.

나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서 현재에 충실하겠다고, 휴대 전화를 덮고 창밖의 풍경을 즐기겠노라고.
나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비를 맞으면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눌어붙는다고 불평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벽난로에 더 자주 불을 피우겠다고 마음먹었다. 난방비가 많이 들거나 거실이 연기로 가득 찰까 봐 걱정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친구들과 더 살갑게 지내면서 밥도 자주 같이 먹겠다고 결심했다. 내 인생 이야기는 조금만 하고 친구들의 인생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겠노라고.

하지만 늘 나는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마흔한 살이 되었을 때, 내 오른쪽 가슴에서 포도알만 한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성장 속도가 빠른 유방암 2기였다. 결국 대머리 환자가 된 나는 두 번의 수술과 네 차례에 걸친 약물 치료, 6주 동안 날마다 받은 방사선 치료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암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신호다. 새로 산 속옷에서 가격표를 떼고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슬립을 입으라고 말해주는 신호. 보석 상자의 뚜껑을 열고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라는 신호. 벽난로에 불을 지피라는 신호. 목욕 오일이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욕조에 풀라는 신호. 양초를 켜라는 신호.

나는 지상에서의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대머리 환자 시절의 사진을 지갑에 꽂아두었다. 또한 유방이 사라진 가슴을 날마다 보면서 그 진리를 되새긴다. 내 흉터는 우리 모두에게 유통 기한, 폐기 날짜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우유갑이나 치즈 포장지처럼 유통 기한이 적혀 있지는 않지만, 인간은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암은 내게 특별한 날을 위해서 무언가를 아껴두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왜냐하면 모든 날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전부 써버려야 한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 애니 딜러드의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창조적 글쓰기The Writing Life』에 담긴 그녀의 지혜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된다. 딜러드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그들이 가진 글감을 지금 모두 써먹으라고 충고한다. 단 하나의 일화도, 문단도, 문장도, 이야기의 시작이나 끝도, 훗날 언젠가 쓰기로 마음먹은 더 나은 소설이나 시를 위해 아껴두지 말라고 한다. 그걸 쓰고 싶다면 지금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좋은 글감이 소모되고 나면 더 좋은 글감이 생길 거라고 믿어야 한다. 그 우물이 다시 채워질 거라고.

내 책장에는 언젠가 책으로 출간될 화려한 순간을 기다리는 글과 일기가 잔뜩 쌓여 있다. 기다림.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당신은 얼마나 오래 기다릴 것인가?

프랭크 매코트는 예순여섯 살에 『안젤라의 재Angela’s Ashes』를 출간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는 예순다섯 살에 첫 책을 출간했다. 포크 뮤지션 그랜마 모지스는 칠십대에 화가로 등단했다. 나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제자인 안토니오에게 써준 짧은 글을 보고 감동했다. 그 글은 경고이면서 동시에 독려였다.

“그려라, 안토니오. 그려라, 안토니오.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끊임없이 그려라.”

나는 거울에 이런 메모를 붙여놓는 상상을 했다.

살아라, 레지너. 살아라, 레지너.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끊임없이 살아라.


꼭 암에 걸려야만 충실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분하거나 시시한 일로 낭비하며 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암을 이겨낸 뒤 내 삶의 신조는 간단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초라한 옷은 입지 마라. 따분한 영화는 보지 마라. 전부 몰아내라. 그 자리를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채워라.

암은 내게 두 가지 중요한 말과 그것들을 언제 쓰는지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들이 어떤 행사에 같이 가자고 할 때 그러기 싫다면 ‘물어봐줘서 고맙긴 하지만 싫어’라고 대답한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 ‘좋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내 삶의 시간들을 할애할 만큼 뜻있는 일일까?

나는 ‘싫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 ‘좋아’라고 대답하곤 했다. 싫다고 하면 남들이 나를 미워하고 욕할까 봐 두려웠다.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뜻있는 삶은 좋다. 가까이 지내지 못한 걸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다. 양초를 켜거나,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거나, 고급 도자기 그릇을 쓰거나, 빗속에서 걷거나, 또는 나중에 집 안이 발자국으로 더러워지더라도 눈밭에서 뒹구는 것은 좋다.

다음 세 가지 간단한 단계를 밟으면 당신의 삶도 바뀔 것이다.

1. 싫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하나 고른다.

건전하지 못한 관계가 그것일 수도 있다. 남자, 신용카드, 도넛 가게 등등. 그게 뭔지는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걸 고르면 된다. 싫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가 해야만 할 이유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과 능력을 쓸데없는 일에 쏟아부으라고 요구하는 직장이나 학교나 교회나 사람은 모두 거부한다. 달력을 보라. 이번 달에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나의 기쁨과 열정, 사랑을 위한 일들을 메모지에 적어 달력에 붙여라.

2.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것, 그래야 하는 것을 하나 고른다.

몸매 관리건 심리 치료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그것이다. 원망하던 사람 용서하기, 다시 공부하기, 일찍 은퇴하기, 다시 연애하기 등등.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그게 뭔지 알 수 있다. 싫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느긋한 삶, 주말 여행, 좋은 책 읽기, 유화 그리기, 하와이 여행, 피아노 레슨, 페디큐어, 이런 것들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삶과 주변 세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좋다고 말해라. 크게 도약하라는 뜻이 아니다. 작은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당신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3. 위의 두 가지, 즉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말한다.

배우자나 친구, 부모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 그들에게 말하면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된다. 암에 걸려야만 삶을 더욱 충실히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양초를 켜라. 양초야말로 우리의 삶이 짧다는 사실, 정말로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지 않는가. 따분한 영화는 꺼버려라.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 책은 덮어버려라. 날마다 두 팔을 벌리고 아침을 맞이하고, 밤마다 진심으로 감사 기도를 드려라. 이 세상의 하루하루는 우리가 만끽하고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선물이다. 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숨겨놓고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유방암 #삶은 #나를 #배반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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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2.01

좋다고 생각하는 것, 그걸 바로 해라. 뜨끔했어요. 저도 향기나는 초같은 걸 받으면 아껴두는 타입인데 그러고보면 먼지 투성이 되고 향기는 날아가고... (그런데 아기의 숨결이 담긴 초라는 건 뭐지?) 새삼 반성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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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2.01.22

이와 비슷한 말을 어디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괜하게 아껴두고 나중에 해야지 했다가 정작 그 나중이 도래했을때는 이전에 아껴두었던 것이 쓸모없는 즉,무용지물 비슷하게 되는 경험을 했더랬죠. 생각날때 몰입해서 다 쏟아붓는것도 오늘을 특별하게 사는 방법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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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2012.01.18

하고 싶은 일은 지금 시작하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어느 싯구절에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도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떠 오른다. 후회하기 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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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너 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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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너 브릿

오하이오의 대표적 신문사 〈플레인 딜러The Plain Dealer〉의 인기 칼럼니스트. 1956년 인구 12,000명의 소도시인 오하이오 주 라베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켄트 주립대학(Kent State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존 캐럴대학(John Carroll University)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총 2000편이 넘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러던 그녀가 위기에 부닥친 건 지난 1998년 유방암을 선고받으면서부터였다. 브릿은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고통스런 화학요법과 지난한 회복의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해 큰 호평을 받았고, 이 칼럼으로 1999년 내셔널 헤드라이너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힉스 클리닉'의 불법적인 아동 거래 사건을 다룬 칼럼으로 또다시 내셔널 헤드라이너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에는 '오하이오 최고의 칼럼니스트'로 뽑혔으며, 2009년에는 미국법조협회가 수여하는 은망치상을 받는 한편, 오하이오 도서관 회의가 뽑는 '올해의 시민'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으로 퓰리처상 논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10월에는 클리블랜드의 저널리즘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미국 칼럼니스트 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밖에도 브릿은 라디오 프로그램 〈생각의 소리The Sound of Ideas〉에 출연해 청취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함께하며 인생 멘토로 활약했다. 그녀의 명칼럼 50개를 엄선해 묶은 이 책은 영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18개국에서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