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대기업 때려치고 헌책방 차린 남자 -『심야책방』 윤성근
'심야책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으응, 심야책방? 궁금하세요?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들어보거나 재밌게 봤지만, 심야책방은 뭔지 모르겠다고요?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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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으응, 심야책방? 궁금하세요?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들어보거나 재밌게 봤지만, 심야책방은 뭔지 모르겠다고요? 그럴 만해요. 세상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책방이 아니거든요. 매일 여는 책방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언제 문을 여냐고요? 달마다 둘째 넷째 금요일, 심야책방은 문을 엽니다. 영업시간은 이날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책방이라고 불러요. 손님이 오냐고요? 꽤 많이 오더라니까요. 이용방법, 간단해요. 심야책방에서는 야식을 주문할 수 있고, 밤 열두시에는 심야 라이브공연도 합니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고전영화 감상회가 열리기도 하죠.
입장료? 따로 없습니다. 알아서들 읽고 싶고 사고 싶은 책을 말하세요. 책방에 와서 책을 많이 사주시면 저와 책들은 아주 즐겁습니다. 만약 원하는 책이 없다면, 일단 말씀하세요. 책을 구할 수 있는 한 구해준다는 것이 영업방침이니까요.
심야책방이 아닐 때, 이곳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www.2sangbook.com)’입니다. 트랜스포머 책방이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한 이름이라고요? 맞아요. 주인장이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의 말이에요. “그림도 없는 책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계. 책방 곳곳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흔적이 포진해 있죠.
어쨌든, 이곳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중고책을 다루는 책방입니다. 약 30평의 공간에 5000여 권의 책이 숨을 쉬고 있어요. 어떤 책이 서식하느냐면, 철학, 사회학, 인문학, 소설(러시아, 동구권, 유럽) 등을 위주로 시와 산문 책이 있어요. 새 책? 없어요. 이용요금이나 입장료 없으니, 그냥 찾아오시면 되고요. 생협과 한살림에서 구입한 차를 마실 수 있는데,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입니다.
심야책방이 자리한 곳은, 서울 ?평구 응암동 89-2. 평범한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어요. 간판도 없어요. 안내문 한 장 달랑 붙어 있을 뿐. 주인장이 “사람과 책이 함께 주인이 돼 서로 준중하는 곳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동네 사랑방이죠.
실은 최근 유명세를 좀 탔어요. 책방 주인장이 지난해 10월, 새로운 서울시장으로 선출된 (박)원순 씨의 집무실을 새로 꾸며줬거든요. 희망제작소 사무실을 디자인했던 인연으로 그리 했던 거지요. 더불어 책이 한 권 더 나왔어요. 이름도 같아요. 『심야책방』(윤성근 지음|이매진 펴냄). SBS라디오 <책하고 놀자>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방송된 이야기에,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한 20% 가량 될텐데, 그걸 덧붙여 만든 책이에요. 진상손님을 씹는 것이나 손님과 싸운 부분은 빼기도 했어요.
지난달 15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심야책방』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답니다. 한 해를 끝낼 무렵, 심야책방이 궁금했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궁금했든, 원순 씨 집무실을 디자인해 준 윤성근 씨가 궁금했든, 한 자리에 모여, ‘헌책 마스터’이자 ‘책 소믈리에’ 윤성근 저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 아닌, 사랑스럽고 부드러우며 황홀하고 탐스러운 책들도 귀를 쫑긋하고 함께 했던 밤. 그 겨울밤의 이야기.
참고로, 헌책방 찾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찾기만큼 어려워요. 우선 서부경찰서를 찾으세요. 과거 운동하다가 이곳을 들렀던 사람들은 추억이 새록새록 돋을 텐데, 서부경찰서 맞은 편 건물이요, 일식집 지하랍니다. 자, 윤성근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어떻게 태어났나?
직장생활몶 했어요.
그만뒀죠. 계기를 묻는 사람들, 많고 망설임도 있지 않았냐고 물어요. 간략하게 말을 할 수는 없죠. 상고를 나왔고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어요. 대충 나오죠? 정보기술(IT)회사에 들어갔어요. 오래했어요. 돈 벌고 싶었어요. 그런데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더 이상 안 되겠어요. 맞지 않는 옷과 신발을 신고 있는 그런 느낌. 내 삶이 거짓말 같았어요.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책을 찾아다녔죠. 좋아하는 것, 행복한 일, 잘 할 수 있는 일인 책과 관련한 일을 하던 차에 헌책방을 차렸어요.
언론에 대기업에서 잘 나가다가 사표를 내고 헌책방을 차렸다, 이렇게 나오는데, 잘 나갔으면 헌책방 차렸겠어요? 하하. 진짜로 잘 나갔음 타성에 젖어 계속 했을 거예요. 성격상, 더 이상 못하겠고, 원하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일을 한 거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거든요.
헌책방일은 출판일과 또 달라요.
영역이 다르죠. 출판사에선 개인이 좋아하는 책만 낼 수는 없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만 해보자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헌책방을 자주 다니고 좋아했어요. 사양산업이라지만, 좋아하니까 해보자, 그리 결심을 했죠.
처음엔 다른 헌책방에서 일을 했어요.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또 달라요. 가령, 진상 손님에 대한 태도. 헌책방은 책 많이 보신 분이 오죠.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로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가 1위라는데, 책방에도 그런 사람 많아요. 내가 책 좀 많이 봐서 아는데... 결국엔 책값을 깎아달라는 거예요. 안 깎아주면 양심도 없다 그러고.
책을 많이 본 분 중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욕망이 큰 것 같아요. 직원을 붙잡고 1시간 이상 읊는 분도 있고. 직원이었을 땐, 진상손님을 무시하기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는데, 운영하는 입장이 되니, 막 그렇게 대할 수도 없어요. 하하.
저도 당연히 소장하고픈 책이 있죠.
루이스 캐럴을 좋아하니까, 작품집이나 자료는 수집해요. 팔지 않고 보관합니다. 전시도 하고요. 두고두고 읽는 책은 갖고 있는 경우가 있죠. 이건 에피소든데, 최근 민음사에서 펴낸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라는 책이 있어요. 10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보다가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놨어요. 다른 사람과 내기를 했어요. 누가 이걸 볼까 싶어서, 저는 한 달 동안 안 나간다? 걸었죠. 그런데 3~4일 만에 팔렸어요. 좋은 책은 알아보는 사람이 역시 있어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 중에 얘기할만한 사연도 있어요.
책에는 최인훈의 『광장』내용이 주로 나오는데, 최인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걸 모으려고 해요. 바뀐 판수대로. 판을 달리하면서 10번 정도 고쳤거든요. 어떤 분들은 『광장』만 모으면 재미없으니, 12권짜리인데, 판수대로 다 모으기몶 해요. 부탁을 많이 받았어요. 하나하나 고르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몇 년도 몇 판, 이런 것까지 충족시키려니 쉽지 않아요.
기억 남는 분이 있어요. 몇 년 전, 50대 남자 분인데, 시리즈의 판수를 채워줬어요. 책값 외에도 수고비를 많이 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었어요. 책을 찾아주면, 소정의 수고비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수고비 챙긴다고 욕도 들었어요. 그 분은 말도 안 꺼냈는데, 굉장히 큰돈을 주더라고요. 이유를 알고 보니, 유럽에서 오래 살고 온 분이에요. 거기에선 그런 게 일반적인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손님이 반가워요.
책을 많이 사가는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죠. 하하. 많은 분들이 시민단체나 관의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책을 팔아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책을 많이 사줘야 운영이 돼요.
윤성근, 책생책사(책에 살고 책에 죽는다)!
연예인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이폰으로 찍어 닮은 연예인을 찾으면 90% 이상이 김경진이 나와요. 안 웃으면 김경진이 나오고, 웃으며 찍으면 김창완이 나와요. 재밌는 건, 싱크로율 100%가 있어요. 이 동네 사람만 알고 있어요. 하하. 동네 청소년들 사이에선 내가 빅 히트죠. 도플갱어에요. 영O중학교 김OO 선생님인데, 머리 긴 것과 덧니까지 똑같대요. 학생들 사이에선 유명해요. 아직 만나진 못했어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으니까. 하하.
좋아하는 일이지만, 경제적으로 고민도 당연히 있죠.
책방 외에 다른 수입은 많지 않아요. 글을 쓰는 것이 있으나 많지 않고. 대부분 책방에서 수입이 나와요. 의기에 차서 이 일을 한 건데, 한두 달 하니 그 의기가 사그라져요. 힘들었어요. 처음 문 열고 반년 정도 손님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침저녁으로 삼각 김밥만 먹고 지냈어요. 1주일에 손님 한 명 오고. 손님 오면 나도 놀라고 손님도 놀라고. 하하.
요즘이라고 많은 건 아니에요. 주변에 많이 알리고 많이 불러주세요. 재밌는 건,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좀 있어요. 본인이 사는 동네에 이런 곳을 만들려는 의도로 오세요. 그런 것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에요.
계속하게 된 원동력이 있어요.
그땐 썰렁한 가운데 책만 있었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있어요.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 있고 싶다. 그런 공간에서 월세 내는 것도 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환상이나 로망이 날 버티게도 했는지도 몰라요. 그때도, 지금도 그런데, 이름 모를 자신감이 있어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말렸어요. 안 될 거라고, 무슨 짓 하는 거냐며. 그것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다 보니 내 컬렉션에 매력을 느끼는 분도 생겼어요. 다른 분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요즘은 어느 정도 운영이 되는 편이기도 해요.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책방을 운영해서 먹고살 수 있냐고 많이 물어요. 상대적인 의미인 것 같아요. 얼마나 좋은 걸 먹고 살아야 하느냐. 돈은 상대적인 의미에요. 지표를 말씀 드리자면, 회사 다닐 때도 빚이 있었는데, 지금은 빚이 없어요. 빚 없이 사업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하하. 빚 없으니 무척 편해요. 회사 다닐 때처럼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진 못하나, 마음은 더 편해지고 건강해졌어요.
물론 끼니를 거를 때도 있지만, 책 속에서 늘 위로를 받아요. 함석헌 선생은 하루 한 끼만 드셨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분도 한 끼만 드셨는데, 나도 한 번, 그렇게 하죠. 책 좋아하는 분 중에는 이런 경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점심을 먹고 안 먹는 경우 많아요. 이유가 점심을 먹고, 저녁 즈음에 책을 읽다 보면 발동이 걸려요. 새벽까지 책 읽고 글 쓰면 배가 안 고파요. 내가 이 책을 4만원 주고 샀지, 이러면서 배고픔을 망각하게도 되고. 하하. 늦게 자면 점심에 일어나서 아침을 자연스럽게 거르게 되고요.
책 컬렉션은 넓고 편협해요.
철학은 범위가 워낙 넓어서 편협하게 가요. 고대나 동양철학은 잘 모르고, 현대철학은 현상학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 가라타니 고진 등을 비롯해서, 지젝을 찾는 분이 많아서 갖다 놓기도 했어요. 문학은 영미문학이나 일본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 유럽, 러시아, 동구권을 많이 갖다놓고 있고.
다만 현대 영미소설은 보고 있는데, 어려워요. 그래서 역사책과 같이 봐요. 한 작가에 꽂혀서 보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동시대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을 찾아 읽기도 해요. 그걸 이용해서 한 단계 위나 아래의 역사를 보게 돼요.
이어, 심야책방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공연이 펼쳐집니다. 창작 판소리 <쥐왕의 몰락기>를 공연한 판소리집단 바닥소리의 류수곤 소리꾼이 들려주는 ‘사랑가’. 기타를 치면서 판소리를 하는 새로운 퓨전 음악. 독특하고 재밌습니다. 이어서 장구를 치면서 하는 <전설의 고향> 중 ‘내 다리 내 놔’. 독자들은 실컷 웃고 열광했습니다. 심야책방의 매력, 글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책, 야식으로도 좋아요. 우리, 그렇게 만나요. 심야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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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언제 문을 여냐고요? 달마다 둘째 넷째 금요일, 심야책방은 문을 엽니다. 영업시간은 이날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책방이라고 불러요. 손님이 오냐고요? 꽤 많이 오더라니까요. 이용방법, 간단해요. 심야책방에서는 야식을 주문할 수 있고, 밤 열두시에는 심야 라이브공연도 합니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고전영화 감상회가 열리기도 하죠.
입장료? 따로 없습니다. 알아서들 읽고 싶고 사고 싶은 책을 말하세요. 책방에 와서 책을 많이 사주시면 저와 책들은 아주 즐겁습니다. 만약 원하는 책이 없다면, 일단 말씀하세요. 책을 구할 수 있는 한 구해준다는 것이 영업방침이니까요.
심야책방이 아닐 때, 이곳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www.2sangbook.com)’입니다. 트랜스포머 책방이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한 이름이라고요? 맞아요. 주인장이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의 말이에요. “그림도 없는 책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시계. 책방 곳곳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흔적이 포진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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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주 유명해서 새삼 공들여 말할 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루이스 캐럴을 그냥 루이스 캐럴로, 앨리스를 그냥 귀여운 소녀로 알고 있다. 루이스 캐럴이 영국인 수학자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며, 앨리스가 실제로 도지슨이 좋아한 여자아이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루이스 캐럴과 앨리스를 좇아 여러 책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인 내용보다 여전히 더 중요한 게 바로 작가 루트위지 도지슨이라는 인물과 실제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더 환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p.192) |
어쨌든, 이곳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중고책을 다루는 책방입니다. 약 30평의 공간에 5000여 권의 책이 숨을 쉬고 있어요. 어떤 책이 서식하느냐면, 철학, 사회학, 인문학, 소설(러시아, 동구권, 유럽) 등을 위주로 시와 산문 책이 있어요. 새 책? 없어요. 이용요금이나 입장료 없으니, 그냥 찾아오시면 되고요. 생협과 한살림에서 구입한 차를 마실 수 있는데,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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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이 자리한 곳은, 서울 ?평구 응암동 89-2. 평범한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어요. 간판도 없어요. 안내문 한 장 달랑 붙어 있을 뿐. 주인장이 “사람과 책이 함께 주인이 돼 서로 준중하는 곳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동네 사랑방이죠.
“책방이라고 하면 책을 가득 쌓아놓고 팔아서 돈을 버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책방에서 책만 팔면 거기에 있는 건 책이 아닙니다. 책처럼 생긴 물건입니다. 어디서든 책방에서 책을 팔기 전에 그 책 속에 담긴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합니다.”(p.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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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심야책방』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답니다. 한 해를 끝낼 무렵, 심야책방이 궁금했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궁금했든, 원순 씨 집무실을 디자인해 준 윤성근 씨가 궁금했든, 한 자리에 모여, ‘헌책 마스터’이자 ‘책 소믈리에’ 윤성근 저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 아닌, 사랑스럽고 부드러우며 황홀하고 탐스러운 책들도 귀를 쫑긋하고 함께 했던 밤. 그 겨울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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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헌책방 찾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찾기만큼 어려워요. 우선 서부경찰서를 찾으세요. 과거 운동하다가 이곳을 들렀던 사람들은 추억이 새록새록 돋을 텐데, 서부경찰서 맞은 편 건물이요, 일식집 지하랍니다. 자, 윤성근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어떻게 태어났나?
“동네 골목마다 있던 작은 책방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큰 서점보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만, 조금 다른 눈으로 보면 어떨까? 왜 경쟁력이 없으면 사라져야 하는 걸까? 왜 남보다 뒤처지는 삶을 살면 안 되나? 여러 사람이 모여 달리기를 하면 빨리 뛰는 사람이 있고 늦게 뛰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늦게 뛰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pp.137~138) |
직장생활몶 했어요.
그만뒀죠. 계기를 묻는 사람들, 많고 망설임도 있지 않았냐고 물어요. 간략하게 말을 할 수는 없죠. 상고를 나왔고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어요. 대충 나오죠? 정보기술(IT)회사에 들어갔어요. 오래했어요. 돈 벌고 싶었어요. 그런데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더 이상 안 되겠어요. 맞지 않는 옷과 신발을 신고 있는 그런 느낌. 내 삶이 거짓말 같았어요.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책을 찾아다녔죠. 좋아하는 것, 행복한 일, 잘 할 수 있는 일인 책과 관련한 일을 하던 차에 헌책방을 차렸어요.
“나를 나답게 하는 게 책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전혀 나답지 않았습니다. 나처럼 생긴 가면과 나처럼 보이도록 만든 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는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p.9) |
언론에 대기업에서 잘 나가다가 사표를 내고 헌책방을 차렸다, 이렇게 나오는데, 잘 나갔으면 헌책방 차렸겠어요? 하하. 진짜로 잘 나갔음 타성에 젖어 계속 했을 거예요. 성격상, 더 이상 못하겠고, 원하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일을 한 거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거든요.
헌책방일은 출판일과 또 달라요.
영역이 다르죠. 출판사에선 개인이 좋아하는 책만 낼 수는 없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만 해보자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헌책방을 자주 다니고 좋아했어요. 사양산업이라지만, 좋아하니까 해보자, 그리 결심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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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다른 헌책방에서 일을 했어요.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은 또 달라요. 가령, 진상 손님에 대한 태도. 헌책방은 책 많이 보신 분이 오죠.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로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가 1위라는데, 책방에도 그런 사람 많아요. 내가 책 좀 많이 봐서 아는데... 결국엔 책값을 깎아달라는 거예요. 안 깎아주면 양심도 없다 그러고.
책을 많이 본 분 중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알려주고 싶은 욕망이 큰 것 같아요. 직원을 붙잡고 1시간 이상 읊는 분도 있고. 직원이었을 땐, 진상손님을 무시하기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는데, 운영하는 입장이 되니, 막 그렇게 대할 수도 없어요. 하하.
저도 당연히 소장하고픈 책이 있죠.
루이스 캐럴을 좋아하니까, 작품집이나 자료는 수집해요. 팔지 않고 보관합니다. 전시도 하고요. 두고두고 읽는 책은 갖고 있는 경우가 있죠. 이건 에피소든데, 최근 민음사에서 펴낸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라는 책이 있어요. 10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보다가 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놨어요. 다른 사람과 내기를 했어요. 누가 이걸 볼까 싶어서, 저는 한 달 동안 안 나간다? 걸었죠. 그런데 3~4일 만에 팔렸어요. 좋은 책은 알아보는 사람이 역시 있어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 중에 얘기할만한 사연도 있어요.
책에는 최인훈의 『광장』내용이 주로 나오는데, 최인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걸 모으려고 해요. 바뀐 판수대로. 판을 달리하면서 10번 정도 고쳤거든요. 어떤 분들은 『광장』만 모으면 재미없으니, 12권짜리인데, 판수대로 다 모으기몶 해요. 부탁을 많이 받았어요. 하나하나 고르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몇 년도 몇 판, 이런 것까지 충족시키려니 쉽지 않아요.
“최근까지 《광장》은 아홉 번 수정됐다. 2010년 초에 《광장》을 열 번째로 고치고 있으며 곧 출간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아직은 소식이 없다. 현재까지 가장 최근에 나온 《광장》은 2008년판이다.”(p.29) |
기억 남는 분이 있어요. 몇 년 전, 50대 남자 분인데, 시리즈의 판수를 채워줬어요. 책값 외에도 수고비를 많이 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었어요. 책을 찾아주면, 소정의 수고비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수고비 챙긴다고 욕도 들었어요. 그 분은 말도 안 꺼냈는데, 굉장히 큰돈을 주더라고요. 이유를 알고 보니, 유럽에서 오래 살고 온 분이에요. 거기에선 그런 게 일반적인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손님이 반가워요.
책을 많이 사가는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죠. 하하. 많은 분들이 시민단체나 관의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책을 팔아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책을 많이 사줘야 운영이 돼요.
윤성근, 책생책사(책에 살고 책에 죽는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건 확실히 인연이라고 믿습니다.… 서점에 쌓여 있는 많은 책 중 어떤 책을 집어 들던지, 그 순간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빅뱅에 버금갈 만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책을 만나고, 책을 읽는다는 건, 그렇게 큰 사건입니다. 세상에는 책 한 권, 시 한 편을 통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p.7) |
연예인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이폰으로 찍어 닮은 연예인을 찾으면 90% 이상이 김경진이 나와요. 안 웃으면 김경진이 나오고, 웃으며 찍으면 김창완이 나와요. 재밌는 건, 싱크로율 100%가 있어요. 이 동네 사람만 알고 있어요. 하하. 동네 청소년들 사이에선 내가 빅 히트죠. 도플갱어에요. 영O중학교 김OO 선생님인데, 머리 긴 것과 덧니까지 똑같대요. 학생들 사이에선 유명해요. 아직 만나진 못했어요.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으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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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지만, 경제적으로 고민도 당연히 있죠.
책방 외에 다른 수입은 많지 않아요. 글을 쓰는 것이 있으나 많지 않고. 대부분 책방에서 수입이 나와요. 의기에 차서 이 일을 한 건데, 한두 달 하니 그 의기가 사그라져요. 힘들었어요. 처음 문 열고 반년 정도 손님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침저녁으로 삼각 김밥만 먹고 지냈어요. 1주일에 손님 한 명 오고. 손님 오면 나도 놀라고 손님도 놀라고. 하하.
요즘이라고 많은 건 아니에요. 주변에 많이 알리고 많이 불러주세요. 재밌는 건,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좀 있어요. 본인이 사는 동네에 이런 곳을 만들려는 의도로 오세요. 그런 것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에요.
“나 또한 몇 년 전 대기업에서 주는 달콤한 월급을 포기하고 돈 안 되는 책방을 시작했다. 돈보다 귀중한 무엇을 찾아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책은 가끔 이렇게 사람을 꼼짝 못하게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p.29) |
계속하게 된 원동력이 있어요.
그땐 썰렁한 가운데 책만 있었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있어요.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 있고 싶다. 그런 공간에서 월세 내는 것도 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환상이나 로망이 날 버티게도 했는지도 몰라요. 그때도, 지금도 그런데, 이름 모를 자신감이 있어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말렸어요. 안 될 거라고, 무슨 짓 하는 거냐며. 그것을 고수하고 지켜나가다 보니 내 컬렉션에 매력을 느끼는 분도 생겼어요. 다른 분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요즘은 어느 정도 운영이 되는 편이기도 해요.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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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운영해서 먹고살 수 있냐고 많이 물어요. 상대적인 의미인 것 같아요. 얼마나 좋은 걸 먹고 살아야 하느냐. 돈은 상대적인 의미에요. 지표를 말씀 드리자면, 회사 다닐 때도 빚이 있었는데, 지금은 빚이 없어요. 빚 없이 사업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하하. 빚 없으니 무척 편해요. 회사 다닐 때처럼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진 못하나, 마음은 더 편해지고 건강해졌어요.
물론 끼니를 거를 때도 있지만, 책 속에서 늘 위로를 받아요. 함석헌 선생은 하루 한 끼만 드셨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분도 한 끼만 드셨는데, 나도 한 번, 그렇게 하죠. 책 좋아하는 분 중에는 이런 경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점심을 먹고 안 먹는 경우 많아요. 이유가 점심을 먹고, 저녁 즈음에 책을 읽다 보면 발동이 걸려요. 새벽까지 책 읽고 글 쓰면 배가 안 고파요. 내가 이 책을 4만원 주고 샀지, 이러면서 배고픔을 망각하게도 되고. 하하. 늦게 자면 점심에 일어나서 아침을 자연스럽게 거르게 되고요.
책 컬렉션은 넓고 편협해요.
철학은 범위가 워낙 넓어서 편협하게 가요. 고대나 동양철학은 잘 모르고, 현대철학은 현상학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 가라타니 고진 등을 비롯해서, 지젝을 찾는 분이 많아서 갖다 놓기도 했어요. 문학은 영미문학이나 일본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 유럽, 러시아, 동구권을 많이 갖다놓고 있고.
다만 현대 영미소설은 보고 있는데, 어려워요. 그래서 역사책과 같이 봐요. 한 작가에 꽂혀서 보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동시대의 반대편에 있던 사람을 찾아 읽기도 해요. 그걸 이용해서 한 단계 위나 아래의 역사를 보게 돼요.
““책 읽기에도 ‘주체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는 책을 아무렇게나 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은 결국 책장으로 처박아 두거나 이사할 때 짐을 줄이려고 박스에 담아 버리게 되니까 책에게도 미안한 일입니다.“(p.9) |
이어, 심야책방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공연이 펼쳐집니다. 창작 판소리 <쥐왕의 몰락기>를 공연한 판소리집단 바닥소리의 류수곤 소리꾼이 들려주는 ‘사랑가’. 기타를 치면서 판소리를 하는 새로운 퓨전 음악. 독특하고 재밌습니다. 이어서 장구를 치면서 하는 <전설의 고향> 중 ‘내 다리 내 놔’. 독자들은 실컷 웃고 열광했습니다. 심야책방의 매력, 글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책, 야식으로도 좋아요. 우리, 그렇게 만나요. 심야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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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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