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눈 쌓인 장독대 속 동치미는 익어가고
백촌막국수의 메밀국수는 100% 메밀로만 면을 뽑는다. 이런 면을 식당에선 ‘순메밀’이라 부른다. 순메밀은 전분이나 다른 곡물가루를 섞은 면과 달리 끈기가 없다.
2011.12.09
![]() | |||||
| |||||
![]() |
|
인제를 더 지나 고성으로 올라가면 이북 방식 그대로 동치미를 넣은 메밀국수를 파는 ‘백촌막국수’가 있다. 이북이 고향인 시아버지의 손맛을 배운 며느리가 25년 전통을 지키고 있는 집이다. 고성은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북 지역으로,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내려와 정착했던 곳이다. 남한의 최북단에 가까운 지역임에도 동치미막국수를 맛보려는 이들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는다.
백촌막국수의 맛은 기본반찬부터 느낄 수 있다. 국숫집 반찬은 김치가 전부인데 이집엔 특별한 반찬이 나온다. 명태무침이다. 언뜻 젓갈처럼 보이는 명태무침은 매콤하면서 단맛이 난다. 수분을 살려 적당히 말린 명태는 식감도 부드럽다. 한번 맛을 보면 젓가락질이 멈추지 않는다. 입에 착 붙는다. 메밀국수가 나오길 기다리는 지루함이 없을 정도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며느리는 “명태무침은 원래 편육에만 따라 나오던 것인데 손님들이 좋아해 반찬으로 내놓게 됐다”고 했다. 서비스 음식이니 그릇을 싹 비워도 다시 채워주진 않는다.
|
얼음 동동 뜬 시원한 동치미 국물은 양푼에 따로 넉넉히 담아 내놓는다. 같은 강원도라도 춘천 막국수가 닭 육수를 섞어 쓰는 것과 달리 이곳에선 순순한 동치미 국물만 쓴다. 면과 동치미 육수를 따로 내놓는 건 입맛에 따라 국물을 여러 번 나눠 즐기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국물엔 들기름, 식초, 설탕, 다진 양념, 겨자를 취향껏 넣어 먹으면 된다.
|
국물 맛에 반해 동치미를 사가겠다는 사람도 많지만 팔지 않는다. 발효식품인 동치미의 맛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동치미는 온도가 중요해요. 하루만 지나도 막걸리 쉰내가 나요. 그래서 가게에서도 그날그날 쓸 만큼만 꺼내 사용하죠.”
여름과 겨울 동치미 맛이 달라 국수맛도 계절 따라 차이가 생긴다.
“동치미막국수가 원래 겨울 음식이었듯 동치미는 여름에 담근 것보다 겨울에 담근 것이 맛이 훨씬 좋아요.”
여름보다 겨울에 와야 더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단 얘기다.
백촌막국수는 메밀국수와 찰떡궁합인 편육도 잘 삶는다. 적당한 두께의 비계가 잡냄새 없이 쫄깃하다. 백김치, 새우젓 찍은 편육, 명태무침을 쌓아 삼합 스타일로 한입에 넣으면 입에서 오물거리는 동안 행복함이 밀려온다.
말을 아끼며 질문에 답해주던 주인은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취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언론사 취재 요청이 와도 응하지 않는단다. “기계가 아닌 손반죽한 면을 쓰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면 그 양을 감당할 수 없어서”가 이유였다. 음식 외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변하지 않은 옛 맛을 이어가는 비결인 듯했다.
19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pota2to
2013.01.25
marie23
2012.12.31
달의여신
2012.08.27
이동하기가 영 불편하니...그런데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요즘 서울이건 어디건 면파는집 가보면 순 메밀 이란 말이 붙어 있는데 차라리 안붙어 있으면 그러려니 하고 먹을텐데...'순도'라는 말이 붙었는데 아닌걸 보면 참 마음이 안좋아요..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