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PD 김영희, 그의 프로그램이 언제나 ‘대박’인 까닭?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등 실력 있는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아이돌 아닌 뮤지션의 음악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편성, 그들을 두고...
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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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피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아직도 여기저기서 <나는000다>라는 존재론적 작명법이 횡행하고 있다. 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등 실력 있는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아이돌 아닌 뮤지션의 음악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편성, 그들을 두고 서바이벌로 노래 경연을 벌인다는 포맷의 파격. 박진감 넘치는 현장사운드를 자랑하는 최고의 음향시스템 도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에서 빚어지는, ‘진짜 노래’로 승부하겠다는 제작진의 진심까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예능수장 김영희 피디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랬기에, 탈락 위기에 처한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은 직전의 열기만큼 거쎘다. 결국 손을 떨며 노래하는 김건모를 보고 사람들은 다시 김영희 피디를 외쳤지만, 그는 결국 <나는가수다>를 하차했고, 남미로 떠났다.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전파견문록> <느낌표> <단 하나의 비밀-단비> 등 이 모든 프로그램이 한 피디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영희 PD는 예능계에서 독보적인 연타 홈런을 날렸다. “3할 치면 대박 피디라고 해요. 세 개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대단하다는 얘기지” 그런 방송계에서 김영희 피디는 ‘9할 피디’라고 불린다.
‘9할 피디’ 김영희, 『소금사막』에 남미를 담다
김영희 피디는 ‘공익’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그는 혼자 웃는 것보다 함께 웃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해준 피디다. 그는 자신이 ‘공익’적으로 표현되는 건 오래하며 손사래 친다. 어느 순간에도 유머를 포기하지 않고, 꼭 옆 사람까지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시청자들에게는 믿음을, 연예인에게는 가장 신뢰받는 피디로 손꼽히는 김영희 피디가 이번에는 『소금사막』을 들고 돌아왔다. 그가 남미에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는지,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매번 사랑 고백을 준비하는 청년의 열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애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 고백을 받은 시청자가 행복해하면, 그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김영희 피디다.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행여 그게 잘난 척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잘난 척은 듣고 나면 불쾌해지지만, 진짜 자신감은 건강한 에너지를 전염시킨다. 그 에너지를 인터뷰에 고스란히 담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는, 항상 용기를 내는 진짜 남자이기에, 이런 남자를 거절할 여자가 누가 있으랴. 이런 피디를 사랑하지 않을 시청자가 누가 있으랴. 그의 프로그램이 언제나 ‘대박’인 이유.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짧은 인생,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야죠!”
명함에 프로그램 이름이 적혀 있어요. <나는가수다> PD 김영희라고.
사람들이 되게 좋아해요. 그냥 ‘예능국장’이라는 것보다 <나는 가수다> PD라고 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남미에 가서 스물 아홉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 타셨다고요.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다 다닐 수가 없어요. 육로를 통하거나 배를 탔으면, 1년이 더 걸렸을 거야. 시간은 없고, 돈은 많고요.(웃음)
글 쓰랴, 그림 그리랴. 이런 저런 정리도 필요했을 거고요. 숙제를 잔뜩 안고 가셨는데, 충전은 잘 하고 오셨나요?(웃음)
제대로 된 것 같아요. 정말 좋았어요. 충격을 받고 떠났잖아요. 남미는!(웃음) 이전에 아프리카는 <느낌표>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지원을 받아 휴가를 간 거였어요. 이번에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무언가 정리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는데, 그게 남미가 된 거죠. 여행을 통해 그런 것들을 풀다 보니, 아프리카 때와는 생각하는 것도 달라졌고요. ‘인생이 뭔가’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카라카스에 갔는데 우리 60년대처럼 길거리 노점상들이 쫙 앉아있어요. 동대문, 남대문 시장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단속 경찰이 오니까 사람들이 휙 사라지는 거예요. 어디로 가나 따라가봤어. 골목 뒤에 모여있더라고요. 거기서 막 투덜거리고, 괜찮다고 웃기도 하다가 10분쯤 지나니까 다시 나와서 물건을 팔아요. 1000원, 2000원 벌려고. 그걸 보니까 사는 게 사실 별 거 없는데, 좀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지금처럼 커피 마시고, 조금 여유 있다고 인생 즐기는 것도 좋지만, 허투루 살 것도 아니다. 그런 얘기를 책에 쓴 거죠.
그간 이력을 찾아보니 피디님은 이제껏 독하다고 할 만큼 성실하게 살아오셨던데요!(웃음)
성실하게 살았지. 그런데 더 열심히 살아야 돼요! 사람들이 그렇게 찬바람 맞아가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일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사람들 반도 안될 것 같아. 이번 여행을 통해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불과 1초 전에 흘러간 시간도 돌아오지 않아요. 종착역으로 가까이 가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거야? 어찌됐건 죽는 날까지 살아가잖아요. 사는 동안에는 열심히 살아야죠.
그래서 돌아오신 후 일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놀고 있습니다.(웃음) 내년 초에 방송할 새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어요. 기획에 앞서 지금은 잠시 비우고 있는 상태고, 금방 다시 또 달려야죠!
“자신감의 본질은 ‘근거 없음’이에요”
책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파이팅!’하는 느낌!(웃음)
그렇지! 나의 목적이 그거였어요. 일관되게 의식했던 생각은 ‘시간과 인생이 짧다’라는 것. 그런 인생을 살 때 용기라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내가 죽기 전에 돌아봤을 때, 나는 몇 번이나 용기를 내봤을까? 사랑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주저하지 마라.
피디님은 피디님 인생에서 용기를 낸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연출작을 살펴보면, 여러 번 도전을 하셨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후배가 하나 있어요. 가끔 연락을 하는데, 몇 년 전에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제가 만든 프로그램 명을 쭉 쓰고는, ‘생각해보니 형이 만든 프로그램들은 용기였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어요.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하려면 정말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 이제는 어느 정도 명성이 있으니까,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도 그 명성이 어디 가지 않아요.
<나는 가수다>를 할 때도 사람들이 말렸어요. ‘그거 안 해도 최고의 피디란 소리 들을 텐데, 괜히 했다가 실패하면 명성에 금이 가고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 하고 싶었어요. 성공하는 일은 어렵지만, 실패하면 또 어때. 허락을 받으러 갔더니 ‘좋아, 근데 뭐할 건데.’ 그러더라고요. ‘아직은 모르는데, 하면 잘 할 자신 있다’(좌중 폭소)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론 불안해하죠. 그러다 만든 게 <나는 가수다>예요. 하고 나니 두 가지 마음이 들었죠. 내 스스로 대견한 마음과 안도의 한숨. ‘아, 살았다’(웃음) 그러니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이런 건 안중에도 없어요. 내가 성공시켰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아이템도 없이 일단 ‘하겠다. 잘할 자신 있다’고 선언하신 게 정말 충격적인데요?(웃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내년에 뭘 하겠다고 온갖 인터뷰에 얘기하고, 위에다가도 얘기했어요. 내가 새로운 프로 한다고 하니까 뭐 있는 줄 알잖아요? 하나도 없어요. (좌중폭소)
그냥 ‘용기’에서 시작하는 거군요!
네. 자신감. 하지만 그 밑에는 불안감이 있죠.
그 자신감의 근거는 뭔가요?(웃음)
저에게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우선 순위를 정해놨어요. 기업체 강연을 가면 돈을 많이 주지만, 제가 몇 분이라도 강연할 시간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먼저 강연을 하겠다고요. 가장 의미 있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기회가 있으면 학생들과 얘기를 많이 해요. 그때마다 하는 얘기가, 용기를 내란 거예요.
사회가 위축되어 있고, 젊은이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시대다. 스펙? 취직? 이게 다 뭐냐. 그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그럼 아이들이 묻죠.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냐? 피디님은 성공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맨 처음,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는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자신감의 본질이 뭘까요. 자신감은 근거가 없어야 자신감이에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데에서 나오는 거라면 그건 자신감이 아니죠.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용기를 갖는 것,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나 좋을 대로 자신을 갖는 것. 그게 자신감이에요. 성공, 실패와는 관계 없어요. 용기를 내서 성공하고 나니, 그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뿐이죠. 그러니까 근거를 찾다 위축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존감. 자기를 믿는 힘이 필요할 테고, 그러려면 자기 자신과 약속을 잘 지켜야겠어요. 자기한테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피디님은 어떠신가요?(웃음)
저는요. 뭐 하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끝까지 해요. 나는 7년 째 헬스를 하고 있거든요. 뒤에서 보면 청년이에요.(웃음) 7년 전에, 몸이 중요하다. 아저씨 같은 몸으로는 프로그램을 할 수 없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헬스를 시작했어요. 그걸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다고 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왜 이걸 하나’ 생각도 해보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해내고 마는 건, 성취감 때문인가요? 유전자 덕분일까요?
기쁨, 희열을 위해서 달려간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뭐 그것 말고도 달려갈 게 많으니까.(웃음) 체질적으로 끝까지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성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가수다> 떠나고 진짜 행복했던 이유
어렸을 때도 그랬어요?
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나무에 누가 빨리 올라가나 내기를 했어요. 막 올라가고 보니까 내가 1등이야.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짜식들, 봤지?’하니까, 아래 열댓 명 친구들이 부러워했어요. 근데 올라오긴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게 겁나더라고. 애들이 딱 알아차리고, ‘높이 올라갔다고 자랑하더니, 쌤통이다. 뛰어 봐 뛰어 봐’ 놀리는 거예요. ‘에이~ 못 뛰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딱 뛰어내렸어요.
뛰는 순간 다리가 너무 아픈 거야. 다리가 부러졌어요. 애들이 ‘우와!’ 하는데 다리 아픈 척 하면 쪽팔리니까(웃음) 내가 진짜 아픈데 내색도 안하고 집에 걸어갔잖아. 다리가 붓고 난리가 났어요. 할머니가 너 왜 그러냐고. 집 옆에 있는 경희 의료원에 업고 갔어요. 다리 부러져서 한 달을 입원했어요.(웃음)
<나는 가수다> 하차 이후에 인터뷰를 많이 하셨어요. 그때마다 ‘난 행복해. 제일 행복하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이것도 아프지만, 남들 앞이라 아프지 않은 척 하신 건 아닌가요?(웃음)
그건 진심이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밤잠 안 자가며 동료들과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돌아올까? 정말 행복한 거예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그 4개월 간의 시간이 너무 좋아요.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설정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PD, AD, 작가, FD, 가수, 카메라맨 300명 되는 사람이 그거 하나를 위해서 가는 거야. 내가 ‘된다, 대박 난다. 가자.’ 해서 갔는데 그게 됐잖아. 얼마나 행복해요. 최고지.
이전 프로그램들도 많은 사람과 함께 협력했고 성공했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이번에는 나와 같이 일하는 스텝들과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아요. 내가 나이가 든 거죠. 이전에는 ‘니들 까불지 말고 나만 따라와.’ 하면 애들이 툴툴대면서도 따라왔어요. 해보니 되니까, ‘그래. 이사람 얘기가 맞구나.’ 이러고 왔는데. 이번에는 이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괜찮아. 잘될 거야.’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아,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 같이 가자.’는 심정적인 동의를 다 얻은 상태에서 단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인간적인 면에서도 동료가 되는 거죠. 그 전에는 시스템에 의한 단합이고, 맡은 바 역할을 다하라는 독려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다가갔더니, 자기들이 저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더 열심히 해요. 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작가, 스탭들 처음 봤다니까. 진짜 동료가 딱 생기는 거죠.
그렇게 좋았을 때 떠나서 더 아쉬웠겠어요.
아쉽죠. 다른 게 아니라, 나와 심정적인 연대감이 생긴 아이들과 떨어지게 되니까. 하지만 프로그램은 잘 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아쉬운 것. 이후의 나의 행보. 이런 것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겠다 해서 남미로 가게 된 거죠.
시청자와 연애(?)하는 진짜 남자 김영희 피디
돌아와서 <나? 가수다>를 보니 어떠셨나요?
좀 아쉬웠죠. 프로그램은 잘 되고 있는데, PD입장에서 보면 좀 더 발전했어야 되는데, 포맷은 발전하지는 않고, 기존 포맷에서 가수만 바꿔 끼고 있으니까. 신정수PD하고도 많이 얘기 했어요. 변화를 줘라. 애를 낳아놨는데, 유치원생으로 성장 시켜야 됐는데 왜 아직 걸음마밖에 못 하냐. 호주도 같이 다녀왔고, 요즘도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정수가 “아, 형은 나한테 선물을 줘야 해. 내가 형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하더라고요……. 사주기로 했습니다.(웃음)
피디님에게 대중은 어떤 존재인가요? 항상 시청자의 행복을 위해서 방송하신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이번 일을 통해서도 대중의 존재감을 체감하셨을 것 같고요.
정말 중요하죠. 여론에 의해 하차한 일로, 사람들은 제가 충격을 받고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 여론이나 언론에 굉장히 내성이 쌓인 사람입니다. 20년 동안, 내가 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여론이나 언론에서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질타와 공격도 많았어요. 칭찬을 받았다고 들뜨고, 공격받는다고 좌절하는 단계는 지났죠. 이번에도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저를 옹호하는 여론도 있었고요.
나쁜 여론도 여론이고, 좋은 여론도 여론이에요. 변하지 않는 여론은 여론이 아니에요. ‘야~ 나가수 최고다.’ 이랬다가 ‘저게 뭐야. 나가수 없애라’. 그랬다가 김건모 손 떨고 노래하니까. ‘김영희 복귀시켜라.’ 그랬잖아요. 난 그게 여론이라고 생각해. 변해야 여론이지. 그래야 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긴장을 하고,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지. 변하지 않는 여론, 그건 신념이에요. 사회적 신념은 공통적으로 가질 수 없잖아요.
대중의 생각과 내 생각의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그렇게 성공을 하면 더 희열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쳐보지도 않는다는데, 저는 인터넷에 올라온 의견을 다 봐요. 내공이 있잖아.(웃음) 다 받아들인다고.
피디님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예요? 그런 게 없을 것 같아서요.(웃음)
어려운 질문인데. 내가 무서워하는 게 뭐가 있지? 내 시간 중에 90퍼센트 이상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간이에요. 나머지는 가족과 있는 시간이고요. 일 할 때 가장 두려운 건 시청자예요. 시청자들이 과연 이걸 좋아해줄까? 이게 가장 두려워요.
시청률이 아니고, 이 프로그램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실질적인 주인인 시청자들이 이것을 좋아해야 하는데,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두려운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하는 대상이 가장 두려운 거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을 때, 과연 받아줄까 안받아줄까 그런 마음이군요.
그런 마음이죠.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서 최선을 다해서 뭔가 했는데, 그것을 안 좋아하면, 아우~(웃음) 혹시 서바이벌을 오해해서 싫어하면 어떡하나. <나는 가수다>도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 거예요. 진짜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 진심을 조금만 알아주면, 시청자들도 이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6:4 정도는 좋아하는 거야. 그러다 7:3 그러다가 갑자기 막 쏠렸다가 또 다시……. 시청자들의 정서가 긍정적으로 돌아서니까 안도, 기쁨이 대부분이지 그 외의 아쉬움은 크지 않아요. 내가 왜 행복하고 괜찮다고 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물씬하네요. 프로그램 뿐 아니라 피디님 자체도 공익적이신 것 같아요.(웃음)
그건 오해에요. 나는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고, 아무리 진지한 순간이라고 해도, 유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해요. 제 프로그램들이 예능치고는 진지해서, 내가 잘못 포장된 것 같아.(웃음) 여자들은 잘 몰라요. 저는 여자들이 훨씬 더 우월하게 셋팅되었다고 생각해요. 남자는 오히려 바보같이 셋팅이 됐는데, 사회적 혜택에 의해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가 바보 같은가 하면, 남자는요.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하면 자기가 행복한 거야.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그래?. 내가 행복하니, 여자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이런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 중에는 없어. 그러니 얼마나 바보예요. 여자는 그걸 싹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웃음) 여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하는지 알게, 남자는 그렇게 해주잖아요.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게 남자에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시청자들이 내 프로그램을 보고 행복해하면, 난 정말 행복한 거야. 나의 몸 구조가 그렇게 셋팅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행복하면 내가 며칠 밤 잠을 못 자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좋아하는 반응이 딱 나타나고, 시청률이 오르는 거 보면 말이에요.
“진심으로 대하면 인간적인 권위가 생겨요”
피디라는 일은, 수장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권위를 가져야 하는 위치인데, 예민한 연예인들을 상대로 존경과 권위를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내가 워낙 재미있는 사람이잖아요. 평소에는 웬만하면 재미있게, 유쾌하게 지내요. 이소라씨가 언젠가 그러더라고. 너무나 다정하게 얘기하다가도 어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땐, ‘안 돼요. 안됩니다.’ 그러고 끝이라는 거야. 그런 게 어쩔 때는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대요. 그렇게 일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진지하고 권위적이면 사람들이 숨막혀서 살겠어요? 평소에는 유쾌하다가, 정말 권위가 필요할 때만 그 진지함을 보여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애프터도 있어요. <나는 가수다> 녹화 끝나면 새벽 2시든, 3시든 술 한잔 먹고 가라고 해요. 스텝들이 전하면 ‘내일 뭐 스케줄 있는데’ 그러면 ‘국장님이 다 와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아, 그래?’ 이러고 다 오는 거야. 다 와.(웃음) 그 자리에는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안 마셔도 되고, 바쁘면 사이다 한 잔 하고 빨리 가면 됩니다. 왔다 가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한 배를 탔으니까. 혹시 오늘 기분이 좋아서 밤새 술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끝까지 대작을 해준다고 하죠.
그 자리에서는 일 얘기를 많이 하는데, 99퍼센트가 칭찬이에요. 일 할 때는 주로 엄하게 야단치고, ‘안돼. 이거 해야 돼’하다가, 그 자리에서 일주일간 기분 좋았던 얘기 다 해주죠. 그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다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요. ‘넌 어떻게 거기다 쿠션을 가져다 둘 생각을 하니. 27년 만에 너처럼 일 잘하는 애는 처음 봤다.’ 그러면 신나 하죠.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또 깨지는 거야. ‘야이씨, 편집을 이 자식아, 이리와!’(웃음)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야, 너 어떻게 10분만에 편집을 이야~’(좌중 폭소) 근데 그게 전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얘기하니까, 아이들도 저를 진심으로 대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은 거야. 인간적인 권위가 생기는 거죠. 지금도 제작진이 나를 많이 그리워해요. 물리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가 그립다는 얘기를 한대요.
뿌듯하시겠어요.
뿌듯하죠. 후배들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만들었으니까. 행복한 사람이에요. 다음에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요.
지난 피디로서의 시간들, 돌아보면 어떠세요?
피디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혜택과 운과 지원을 받았던, 축복받은 피디 생활을 한 것 같아요. 각 분야에서 최고들만 모여서 내가 생각했던 몇 배 이상을 해주니까요. 나만 잘하면 대박이야.(웃음) 개인적으로는 할 때마다 부족한 것들이 보이니까, 다음엔 더 잘해야겠다 생각을 하고요.
내년에 하려는 것도 <나는 가수다>보다는 최소한 더 잘해야지.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가족에게 좀더 성실하고 싶어요. 친구나 동료들에게 인간적으로는 더 잘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앞으론 좀더 잘 하려고요.
다 가진 분이시군요.(웃음)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행복해요. 행복은 주관적인 거니까, 되게 행복해요. 그러나 늘 좀더 가족에게 잘해주고 싶고. 앞으로 몇 년 간은 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올 테니 더 잘해야죠. 아내도 지금 갱년기 이런 때잖아요.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런데 내가 같이 있는 시간도 많이 없고……. 그래도 내가 맨날 재미있게 해주니까.(웃음)
여행을 떠나서, 시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요. 지금의 시간은 김영희 피디님 인생에 어떤 시간쯤 되는 것 같나요?
지금은 딱 반쯤 왔는데, 그래도 꽤 괜찮은 시간인 것 같아요.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이 남아있고, 더 용기를 내서, 더 멋있게 뭔가를 하고 싶어요.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멋있게 하고 싶어요. 일단, 내년에 성공해야 하는데. 큰일났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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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기저기서 <나는000다>라는 존재론적 작명법이 횡행하고 있다.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등 실력 있는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아이돌 아닌 뮤지션의 음악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편성, 그들을 두고 서바이벌로 노래 경연을 벌인다는 포맷의 파격. 박진감 넘치는 현장사운드를 자랑하는 최고의 음향시스템 도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에서 빚어지는, ‘진짜 노래’로 승부하겠다는 제작진의 진심까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예능수장 김영희 피디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랬기에, 탈락 위기에 처한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은 직전의 열기만큼 거쎘다. 결국 손을 떨며 노래하는 김건모를 보고 사람들은 다시 김영희 피디를 외쳤지만, 그는 결국 <나는가수다>를 하차했고, 남미로 떠났다.
<이경규가 간다> <칭찬합시다> <전파견문록> <느낌표> <단 하나의 비밀-단비> 등 이 모든 프로그램이 한 피디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영희 PD는 예능계에서 독보적인 연타 홈런을 날렸다. “3할 치면 대박 피디라고 해요. 세 개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대단하다는 얘기지” 그런 방송계에서 김영희 피디는 ‘9할 피디’라고 불린다.
‘9할 피디’ 김영희, 『소금사막』에 남미를 담다
시청자들에게는 믿음을, 연예인에게는 가장 신뢰받는 피디로 손꼽히는 김영희 피디가 이번에는 『소금사막』을 들고 돌아왔다. 그가 남미에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꼈는지,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매번 사랑 고백을 준비하는 청년의 열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애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 고백을 받은 시청자가 행복해하면, 그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김영희 피디다.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행여 그게 잘난 척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잘난 척은 듣고 나면 불쾌해지지만, 진짜 자신감은 건강한 에너지를 전염시킨다. 그 에너지를 인터뷰에 고스란히 담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는, 항상 용기를 내는 진짜 남자이기에, 이런 남자를 거절할 여자가 누가 있으랴. 이런 피디를 사랑하지 않을 시청자가 누가 있으랴. 그의 프로그램이 언제나 ‘대박’인 이유. 바로 여기에 있었다.
- 『소금사막』 (163p) |
“짧은 인생,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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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에 프로그램 이름이 적혀 있어요. <나는가수다> PD 김영희라고.
사람들이 되게 좋아해요. 그냥 ‘예능국장’이라는 것보다 <나는 가수다> PD라고 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남미에 가서 스물 아홉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 타셨다고요.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다 다닐 수가 없어요. 육로를 통하거나 배를 탔으면, 1년이 더 걸렸을 거야. 시간은 없고, 돈은 많고요.(웃음)
제대로 된 것 같아요. 정말 좋았어요. 충격을 받고 떠났잖아요. 남미는!(웃음) 이전에 아프리카는 <느낌표>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지원을 받아 휴가를 간 거였어요. 이번에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무언가 정리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는데, 그게 남미가 된 거죠. 여행을 통해 그런 것들을 풀다 보니, 아프리카 때와는 생각하는 것도 달라졌고요. ‘인생이 뭔가’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카라카스에 갔는데 우리 60년대처럼 길거리 노점상들이 쫙 앉아있어요. 동대문, 남대문 시장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단속 경찰이 오니까 사람들이 휙 사라지는 거예요. 어디로 가나 따라가봤어. 골목 뒤에 모여있더라고요. 거기서 막 투덜거리고, 괜찮다고 웃기도 하다가 10분쯤 지나니까 다시 나와서 물건을 팔아요. 1000원, 2000원 벌려고. 그걸 보니까 사는 게 사실 별 거 없는데, 좀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지금처럼 커피 마시고, 조금 여유 있다고 인생 즐기는 것도 좋지만, 허투루 살 것도 아니다. 그런 얘기를 책에 쓴 거죠.
그간 이력을 찾아보니 피디님은 이제껏 독하다고 할 만큼 성실하게 살아오셨던데요!(웃음)
성실하게 살았지. 그런데 더 열심히 살아야 돼요! 사람들이 그렇게 찬바람 맞아가면서,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일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사람들 반도 안될 것 같아. 이번 여행을 통해 시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불과 1초 전에 흘러간 시간도 돌아오지 않아요. 종착역으로 가까이 가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거야? 어찌됐건 죽는 날까지 살아가잖아요. 사는 동안에는 열심히 살아야죠.
그래서 돌아오신 후 일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놀고 있습니다.(웃음) 내년 초에 방송할 새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어요. 기획에 앞서 지금은 잠시 비우고 있는 상태고, 금방 다시 또 달려야죠!
“자신감의 본질은 ‘근거 없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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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파이팅!’하는 느낌!(웃음)
그렇지! 나의 목적이 그거였어요. 일관되게 의식했던 생각은 ‘시간과 인생이 짧다’라는 것. 그런 인생을 살 때 용기라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내가 죽기 전에 돌아봤을 때, 나는 몇 번이나 용기를 내봤을까? 사랑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주저하지 마라.
피디님은 피디님 인생에서 용기를 낸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연출작을 살펴보면, 여러 번 도전을 하셨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후배가 하나 있어요. 가끔 연락을 하는데, 몇 년 전에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제가 만든 프로그램 명을 쭉 쓰고는, ‘생각해보니 형이 만든 프로그램들은 용기였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랬어요.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하려면 정말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 이제는 어느 정도 명성이 있으니까,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도 그 명성이 어디 가지 않아요.
<나는 가수다>를 할 때도 사람들이 말렸어요. ‘그거 안 해도 최고의 피디란 소리 들을 텐데, 괜히 했다가 실패하면 명성에 금이 가고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 하고 싶었어요. 성공하는 일은 어렵지만, 실패하면 또 어때. 허락을 받으러 갔더니 ‘좋아, 근데 뭐할 건데.’ 그러더라고요. ‘아직은 모르는데, 하면 잘 할 자신 있다’(좌중 폭소)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론 불안해하죠. 그러다 만든 게 <나는 가수다>예요. 하고 나니 두 가지 마음이 들었죠. 내 스스로 대견한 마음과 안도의 한숨. ‘아, 살았다’(웃음) 그러니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이런 건 안중에도 없어요. 내가 성공시켰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아이템도 없이 일단 ‘하겠다. 잘할 자신 있다’고 선언하신 게 정말 충격적인데요?(웃음)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내년에 뭘 하겠다고 온갖 인터뷰에 얘기하고, 위에다가도 얘기했어요. 내가 새로운 프로 한다고 하니까 뭐 있는 줄 알잖아요? 하나도 없어요. (좌중폭소)
그냥 ‘용기’에서 시작하는 거군요!
네. 자신감. 하지만 그 밑에는 불안감이 있죠.
그 자신감의 근거는 뭔가요?(웃음)
저에게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우선 순위를 정해놨어요. 기업체 강연을 가면 돈을 많이 주지만, 제가 몇 분이라도 강연할 시간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먼저 강연을 하겠다고요. 가장 의미 있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기회가 있으면 학생들과 얘기를 많이 해요. 그때마다 하는 얘기가, 용기를 내란 거예요.
사회가 위축되어 있고, 젊은이들은 자신감을 상실한 시대다. 스펙? 취직? 이게 다 뭐냐. 그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그럼 아이들이 묻죠.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냐? 피디님은 성공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맨 처음,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는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자신감의 본질이 뭘까요. 자신감은 근거가 없어야 자신감이에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데에서 나오는 거라면 그건 자신감이 아니죠.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용기를 갖는 것,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나 좋을 대로 자신을 갖는 것. 그게 자신감이에요. 성공, 실패와는 관계 없어요. 용기를 내서 성공하고 나니, 그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뿐이죠. 그러니까 근거를 찾다 위축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존감. 자기를 믿는 힘이 필요할 테고, 그러려면 자기 자신과 약속을 잘 지켜야겠어요. 자기한테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피디님은 어떠신가요?(웃음)
저는요. 뭐 하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끝까지 해요. 나는 7년 째 헬스를 하고 있거든요. 뒤에서 보면 청년이에요.(웃음) 7년 전에, 몸이 중요하다. 아저씨 같은 몸으로는 프로그램을 할 수 없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헬스를 시작했어요. 그걸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다고 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왜 이걸 하나’ 생각도 해보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해내고 마는 건, 성취감 때문인가요? 유전자 덕분일까요?
기쁨, 희열을 위해서 달려간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뭐 그것 말고도 달려갈 게 많으니까.(웃음) 체질적으로 끝까지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성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가수다> 떠나고 진짜 행복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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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도 그랬어요?
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나무에 누가 빨리 올라가나 내기를 했어요. 막 올라가고 보니까 내가 1등이야.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짜식들, 봤지?’하니까, 아래 열댓 명 친구들이 부러워했어요. 근데 올라오긴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게 겁나더라고. 애들이 딱 알아차리고, ‘높이 올라갔다고 자랑하더니, 쌤통이다. 뛰어 봐 뛰어 봐’ 놀리는 거예요. ‘에이~ 못 뛰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딱 뛰어내렸어요.
뛰는 순간 다리가 너무 아픈 거야. 다리가 부러졌어요. 애들이 ‘우와!’ 하는데 다리 아픈 척 하면 쪽팔리니까(웃음) 내가 진짜 아픈데 내색도 안하고 집에 걸어갔잖아. 다리가 붓고 난리가 났어요. 할머니가 너 왜 그러냐고. 집 옆에 있는 경희 의료원에 업고 갔어요. 다리 부러져서 한 달을 입원했어요.(웃음)
<나는 가수다> 하차 이후에 인터뷰를 많이 하셨어요. 그때마다 ‘난 행복해. 제일 행복하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이것도 아프지만, 남들 앞이라 아프지 않은 척 하신 건 아닌가요?(웃음)
그건 진심이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밤잠 안 자가며 동료들과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돌아올까? 정말 행복한 거예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그 4개월 간의 시간이 너무 좋아요.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설정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PD, AD, 작가, FD, 가수, 카메라맨 300명 되는 사람이 그거 하나를 위해서 가는 거야. 내가 ‘된다, 대박 난다. 가자.’ 해서 갔는데 그게 됐잖아. 얼마나 행복해요. 최고지.
이전 프로그램들도 많은 사람과 함께 협력했고 성공했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점이 달랐나요?
이번에는 나와 같이 일하는 스텝들과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더 생긴 것 같아요. 내가 나이가 든 거죠. 이전에는 ‘니들 까불지 말고 나만 따라와.’ 하면 애들이 툴툴대면서도 따라왔어요. 해보니 되니까, ‘그래. 이사람 얘기가 맞구나.’ 이러고 왔는데. 이번에는 이 사람들을 설득했어요. ‘괜찮아. 잘될 거야.’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아, 이 사람은 믿을 만하다. 같이 가자.’는 심정적인 동의를 다 얻은 상태에서 단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인간적인 면에서도 동료가 되는 거죠. 그 전에는 시스템에 의한 단합이고, 맡은 바 역할을 다하라는 독려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다가갔더니, 자기들이 저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더 열심히 해요. 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작가, 스탭들 처음 봤다니까. 진짜 동료가 딱 생기는 거죠.
그렇게 좋았을 때 떠나서 더 아쉬웠겠어요.
아쉽죠. 다른 게 아니라, 나와 심정적인 연대감이 생긴 아이들과 떨어지게 되니까. 하지만 프로그램은 잘 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아쉬운 것. 이후의 나의 행보. 이런 것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겠다 해서 남미로 가게 된 거죠.
시청자와 연애(?)하는 진짜 남자 김영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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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나? 가수다>를 보니 어떠셨나요?
좀 아쉬웠죠. 프로그램은 잘 되고 있는데, PD입장에서 보면 좀 더 발전했어야 되는데, 포맷은 발전하지는 않고, 기존 포맷에서 가수만 바꿔 끼고 있으니까. 신정수PD하고도 많이 얘기 했어요. 변화를 줘라. 애를 낳아놨는데, 유치원생으로 성장 시켜야 됐는데 왜 아직 걸음마밖에 못 하냐. 호주도 같이 다녀왔고, 요즘도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정수가 “아, 형은 나한테 선물을 줘야 해. 내가 형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하더라고요……. 사주기로 했습니다.(웃음)
피디님에게 대중은 어떤 존재인가요? 항상 시청자의 행복을 위해서 방송하신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이번 일을 통해서도 대중의 존재감을 체감하셨을 것 같고요.
정말 중요하죠. 여론에 의해 하차한 일로, 사람들은 제가 충격을 받고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 여론이나 언론에 굉장히 내성이 쌓인 사람입니다. 20년 동안, 내가 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여론이나 언론에서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질타와 공격도 많았어요. 칭찬을 받았다고 들뜨고, 공격받는다고 좌절하는 단계는 지났죠. 이번에도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저를 옹호하는 여론도 있었고요.
나쁜 여론도 여론이고, 좋은 여론도 여론이에요. 변하지 않는 여론은 여론이 아니에요. ‘야~ 나가수 최고다.’ 이랬다가 ‘저게 뭐야. 나가수 없애라’. 그랬다가 김건모 손 떨고 노래하니까. ‘김영희 복귀시켜라.’ 그랬잖아요. 난 그게 여론이라고 생각해. 변해야 여론이지. 그래야 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긴장을 하고,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지. 변하지 않는 여론, 그건 신념이에요. 사회적 신념은 공통적으로 가질 수 없잖아요.
대중의 생각과 내 생각의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고,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그렇게 성공을 하면 더 희열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쳐보지도 않는다는데, 저는 인터넷에 올라온 의견을 다 봐요. 내공이 있잖아.(웃음) 다 받아들인다고.
피디님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예요? 그런 게 없을 것 같아서요.(웃음)
어려운 질문인데. 내가 무서워하는 게 뭐가 있지? 내 시간 중에 90퍼센트 이상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간이에요. 나머지는 가족과 있는 시간이고요. 일 할 때 가장 두려운 건 시청자예요. 시청자들이 과연 이걸 좋아해줄까? 이게 가장 두려워요.
시청률이 아니고, 이 프로그램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실질적인 주인인 시청자들이 이것을 좋아해야 하는데,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두려운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하는 대상이 가장 두려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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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을 때, 과연 받아줄까 안받아줄까 그런 마음이군요.
그런 마음이죠.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서 최선을 다해서 뭔가 했는데, 그것을 안 좋아하면, 아우~(웃음) 혹시 서바이벌을 오해해서 싫어하면 어떡하나. <나는 가수다>도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 거예요. 진짜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 진심을 조금만 알아주면, 시청자들도 이해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6:4 정도는 좋아하는 거야. 그러다 7:3 그러다가 갑자기 막 쏠렸다가 또 다시……. 시청자들의 정서가 긍정적으로 돌아서니까 안도, 기쁨이 대부분이지 그 외의 아쉬움은 크지 않아요. 내가 왜 행복하고 괜찮다고 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물씬하네요. 프로그램 뿐 아니라 피디님 자체도 공익적이신 것 같아요.(웃음)
그건 오해에요. 나는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고, 아무리 진지한 순간이라고 해도, 유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해요. 제 프로그램들이 예능치고는 진지해서, 내가 잘못 포장된 것 같아.(웃음) 여자들은 잘 몰라요. 저는 여자들이 훨씬 더 우월하게 셋팅되었다고 생각해요. 남자는 오히려 바보같이 셋팅이 됐는데, 사회적 혜택에 의해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가 바보 같은가 하면, 남자는요.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하면 자기가 행복한 거야.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그래?. 내가 행복하니, 여자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이런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 중에는 없어. 그러니 얼마나 바보예요. 여자는 그걸 싹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웃음) 여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하는지 알게, 남자는 그렇게 해주잖아요.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게 남자에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시청자들이 내 프로그램을 보고 행복해하면, 난 정말 행복한 거야. 나의 몸 구조가 그렇게 셋팅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행복하면 내가 며칠 밤 잠을 못 자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좋아하는 반응이 딱 나타나고, 시청률이 오르는 거 보면 말이에요.
“진심으로 대하면 인간적인 권위가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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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라는 일은, 수장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권위를 가져야 하는 위치인데, 예민한 연예인들을 상대로 존경과 권위를 어떻게 조율하시나요?
내가 워낙 재미있는 사람이잖아요. 평소에는 웬만하면 재미있게, 유쾌하게 지내요. 이소라씨가 언젠가 그러더라고. 너무나 다정하게 얘기하다가도 어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할 땐, ‘안 돼요. 안됩니다.’ 그러고 끝이라는 거야. 그런 게 어쩔 때는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대요. 그렇게 일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진지하고 권위적이면 사람들이 숨막혀서 살겠어요? 평소에는 유쾌하다가, 정말 권위가 필요할 때만 그 진지함을 보여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애프터도 있어요. <나는 가수다> 녹화 끝나면 새벽 2시든, 3시든 술 한잔 먹고 가라고 해요. 스텝들이 전하면 ‘내일 뭐 스케줄 있는데’ 그러면 ‘국장님이 다 와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아, 그래?’ 이러고 다 오는 거야. 다 와.(웃음) 그 자리에는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안 마셔도 되고, 바쁘면 사이다 한 잔 하고 빨리 가면 됩니다. 왔다 가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한 배를 탔으니까. 혹시 오늘 기분이 좋아서 밤새 술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끝까지 대작을 해준다고 하죠.
그 자리에서는 일 얘기를 많이 하는데, 99퍼센트가 칭찬이에요. 일 할 때는 주로 엄하게 야단치고, ‘안돼. 이거 해야 돼’하다가, 그 자리에서 일주일간 기분 좋았던 얘기 다 해주죠. 그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다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요. ‘넌 어떻게 거기다 쿠션을 가져다 둘 생각을 하니. 27년 만에 너처럼 일 잘하는 애는 처음 봤다.’ 그러면 신나 하죠.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또 깨지는 거야. ‘야이씨, 편집을 이 자식아, 이리와!’(웃음)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야, 너 어떻게 10분만에 편집을 이야~’(좌중 폭소) 근데 그게 전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얘기하니까, 아이들도 저를 진심으로 대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은 거야. 인간적인 권위가 생기는 거죠. 지금도 제작진이 나를 많이 그리워해요. 물리적으로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가 그립다는 얘기를 한대요.
뿌듯하시겠어요.
뿌듯하죠. 후배들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만들었으니까. 행복한 사람이에요. 다음에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요.
지난 피디로서의 시간들, 돌아보면 어떠세요?
피디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혜택과 운과 지원을 받았던, 축복받은 피디 생활을 한 것 같아요. 각 분야에서 최고들만 모여서 내가 생각했던 몇 배 이상을 해주니까요. 나만 잘하면 대박이야.(웃음) 개인적으로는 할 때마다 부족한 것들이 보이니까, 다음엔 더 잘해야겠다 생각을 하고요.
내년에 하려는 것도 <나는 가수다>보다는 최소한 더 잘해야지.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가족에게 좀더 성실하고 싶어요. 친구나 동료들에게 인간적으로는 더 잘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앞으론 좀더 잘 하려고요.
다 가진 분이시군요.(웃음)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행복해요. 행복은 주관적인 거니까, 되게 행복해요. 그러나 늘 좀더 가족에게 잘해주고 싶고. 앞으로 몇 년 간은 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올 테니 더 잘해야죠. 아내도 지금 갱년기 이런 때잖아요.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런데 내가 같이 있는 시간도 많이 없고……. 그래도 내가 맨날 재미있게 해주니까.(웃음)
여행을 떠나서, 시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요. 지금의 시간은 김영희 피디님 인생에 어떤 시간쯤 되는 것 같나요?
지금은 딱 반쯤 왔는데, 그래도 꽤 괜찮은 시간인 것 같아요.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이 남아있고, 더 용기를 내서, 더 멋있게 뭔가를 하고 싶어요.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멋있게 하고 싶어요. 일단, 내년에 성공해야 하는데. 큰일났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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