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앞에서 오디션 봤어요”
3집 발매 기념 투어에 한창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데뷔 이래 음반과 공연 활동만을 고집하고도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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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발매 기념 투어에 한창인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데뷔 이래 음반과 공연 활동만을 고집하고도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몇 달 전 시작한 정엽의 라디오 프로 <푸른 밤, 정엽입니다>를 제외하고 정엽, 나얼, 성훈, 영준으로 구성된 이 보컬 쿼텟의 동반 방송활동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동안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방송매체 출현을 꺼리는 그룹으로 인식되어 왔다.
정엽은 이런 행보와 반대로 뭇사람과의 교감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멤버다. 2008년 솔로 데뷔작 를 내놓은 이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것을 만회라도 하듯 치열하고 또 열심이다. 그룹 활동 외에 솔로 아티스트, 프로듀서, 라디오 진행 또 에코브릿지와 작곡팀 허니듀오(Honeydew'o)를 꾸리는 등 범위도 다양하다.
인터뷰 내내 신중한 답변들이 흘러나왔다. 그의 음악처럼 차분했다. 대화는 지난 1월 22일 성황리에 판매된 3집의 한정판 LP 이야기로 시작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LP를 들을까’하는 의구심과 고가(11만원)인 탓에 우려도 있었지만, 전국에서 371장뿐인 앨범을 손에 넣으려고 상경한 팬들의 열띤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레트로 소울’을 LP레코드에 담아 본질적 어울림을 주조해낸 것이 팬들의 호응을 끈 셈이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을 한정판 LP로 발매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딱히 누구의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저희끼리 예전부터 하고 싶던 작업이었어요. 집에 LP레코드와 턴테이블이 있어요. 저는 ‘희망사항’이 수록된 변진섭 선배님 2집을 포함해서 가요 LP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어릴 적 기억 속의 그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현재 소속사로 옮기고 나서야 실행하게 됐죠. LP에서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노이즈, 그런 아날로그적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앨범 발매 기념으로 전국 투어가 한창인데 콘서트를 해보니 반응이 어떻던가.
“작년 12월 18일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 대전, 대구 등 7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쳤고요, 마지막으로 오는 2월 12, 13일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사실 대중매체 출연이 잦지 않아서 걱정이었지만 많이 찾아와주셔서 얼떨떨했죠. 특히 지방에 계신 분들이 우리 음악을 아실까 궁금했는데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워서 정말 놀랐어요.”
솔로 공연도 전부 매진이었다. 콘서트를 찾는 이유가 대중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갈증을 해소하는 차원이지 않을까.
“글쎄요. 그런 이유도 있겠죠? 잘은 모르겠지만.”
2010년 10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있었던 세 번째 단독 콘서트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네, 맞아요. 색다른 면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편곡도 다르게 했지만, 음악적으로 새로운 걸 못 보여드린 것 같아 많이 아쉬웠어요.”
무대에서 춤을 춰볼 생각은 없나.
“몸이 따라 준다면 뭐.(웃음) 특히 맥스웰의 라이브 무대를 보면 짜인 안무는 아닌데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있어요. 리듬이죠. 저도 그게 정말 하고 싶어요. 작년에는 춤을 제대로 배워서 리듬감을 익혀볼까 했는데, 게으른 탓인지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제대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매체활동이 드물다 보니 감춘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에 반해 정엽의 라디오 출연은 다소 의외인데, 어떻게 된 건가.
“제 개인적으론 솔로 작품을 내고 나서 라디오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분들은 저희가 매체 출현을 안 하는 것이 콘셉트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건 아녜요. 실은 나얼이 공개적인 자리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부담도 많이 가져서요. 그래서 저희는 행사 제의가 들어오면 멤버 모두가 ‘오케이’ 한 것만 참여해요. 데뷔 때, 한 명이라도 ‘노’하면 안하기로 약속한 건 지금도 변함없고요. 반면에 각자 활동은 당연히 오픈 마인드예요. 저도 그렇고요.”
<푸른 밤, 정엽입니다>를 진행 중인데 라디오는 어떤가?
“이제 겨우 100일 좀 지나서 아직 어색하긴 한데요, 재미있어요. 워낙 라디오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라디오를 하면서 좋다고 느낀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나.
“최근 알게 된 옥상달빛의 음악이 좋더라고요. 옥상달빛이 코너 게스트를 하기 전까지 그 분들을 몰랐죠. 라디오가 인연이 돼서 자연스레 접했는데 따뜻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얼핏 보면 목소리에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느낌이 묻어나지만, 다른 자리에서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의 매력을 언급한 적이 있고, 송창식의 「담뱃가게 아가씨」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저는 장르 안 가리고 다양하게 듣는 성격이에요. 어렸을 때는 메탈을 들었고요. 광팬일 정도였죠. 배리 매닐로우 같은 이지 리스닝 스타일의 음악도 많이 좋아해요. 저는 좋아하는 장르가 정말 많아요. 각 장르마다 개성이 확실하잖아요.”
「담뱃가게 아가씨」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 보다는 솔로 앨범에 더 적합하지 않았나.
“사실 그러고 싶었어요. 나중에 제가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 때 넣고 싶어서 굉장히 고민했죠. 넣을까 말까. 그런데 굳이 순서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활동 기간에 비해 다양한 색깔의 보이스, 음악의 스타일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8~9년간 활동하면서 에디션(발표한 작품)이 많지 않으니까요. 정규앨범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것 같아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이번 음악이 억누르는 스타일이라 다소 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사실 저희들은 뭔가 생?하고 음악을 하지는 않아요. 뭔가를 의도해서 억누른 것이 아니거든요. 이번 앨범은 딱히 ‘무슨 콘셉트로 가자’하고 진행한 건 아니고요, 각자가 만든 곡을 가져와서 같이 들어보고 좋다 싶으면 작업하는 방식이었어요.”
솔로 앨범을 제작했을 때는 분명한 접근법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앨범을 만들 때엔 파트를 4분의 1로 나눠야 했잖아요. 반면 솔로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목소리니까 부담은 갔지만, 그것조차 하고 싶던 것이었죠. 앨범에 수록하고 싶었던 곡들은 대개 팀 곡으로 쓰기 애매했던 곡인데 꼭 부르고 싶어서 묵혀 왔던 노래들이었고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가창력이 탁월한 네 멤버가 모인 팀이다. 정엽의 시각에서 각 멤버 의 장점을 이야기해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얼의 라이브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나얼은 최고의 테크니션 같아요. 진정한 프로죠. 제가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테크닉에선 최고예요.
영준은 특유의 보컬 톤을 지니고 있고, 목소리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정말 묘해요. 묵직한 톤이 한국 사람에게선 흔치 않은 느낌인데, 그런 느낌을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영준은 그게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이 매력이죠.
성훈은 정말 어떤 음색보다도 독창적이에요. 혹자는 김건모 선배와 음색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굉장히 개성 있죠. 특히 본인이 피아노를 치면서 재즈곡을 부를 때 가장 빛이 나요. 이번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에 수록된 「With chocolate」에서 스캣을 굉장히 잘했거든요. 원래는 아주 아이돌스러운 곡이 나올 뻔 했는데, 저희가 만류했죠.(웃음) 공연 때는 오히려 타이틀곡보다도 호응이 좋았어요.”
데뷔 전까지 고생한 기간이 있지 않았나.
“군대 전역해서 데뷔를 했으니 늦게 시작한 거죠. 다행히 해군 홍보단에서 군 생활을 했고, 그 전엔 여러 기획사를 전전했어요. 5명, 7명으로 구성했다가 엎어진 사례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가수를 하겠다고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언제쯤인가.
“제대로 시작한 적이 없었어요. 준비만 하다가 다 엎어졌죠. 후에 영장 받고 나서 해군 홍보단에 지원했는데, 김건모, 유희열 선배님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운 좋게 뽑힌 것이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다행히 음악으로부터 멀어지진 않았으니까요.”
소속사를 전전하던 시절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젊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제대하자마자 계약을 하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 1집을 낸 뒤에 소속사랑 트러블이 있었거든요. 그때가 더 힘든 시간이었죠. 그렇다고 특별히 큰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희가 처음 나올 때부터 나얼의 네임 밸류 덕에 주목 받아서 그 정도의 시련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적은 나이가 아닌데,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아쉽죠. 조금 더 일찍 눈 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저때만 해도 실용음악과라는 것도 없었고. 반대로 연륜이 쌓이고 음악을 하게 되니까 시야가 넓어진 것도 같아요. 지금은 천천히 배워가는 것이 좋아요. 뛰어가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는 거고요.”
앨범 에서 베스트를 꼽는다면.
“글쎄요.(웃음) 녹음하고 나니까 다 아쉽더라고?. 스티비 원더에게 바친 마지막 트랙 「Too shy to say」도 굉장히 신경 쓴 곡이었고, 「Saturday night」도 코드 두 개가지고 만들었고, 가사도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쓴 곡이었어요. 나름 신경 써서 만든 곡이죠.”
주요 곡들의 후렴구에서 두성을 이용하는 스타일인데 그 이유가 있다면.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에디션이 별로 없어서 그렇죠. 저희도 그것에 대한 딜레마가 있었어요. 「You are my lady」나 「나랑 가자」도 만들다보니 제2의 「Nothing better」 같이 된 거고요. 이 점은 다음 작품을 통해서 차차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Nothing better」가 사랑 받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진짜 감사한 일인데요. 이심전심인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사랑하고 있던 시기라서 곡도 빨리 나왔고, 가사가 그냥 나왔어요.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부른 것 같아요.”
특히 펑키(funky)한 「Get you」도 좋았다.
“제가 펑크(funk)를 굉장히 좋아해요. 심지어 앨범을 내기 전까지 홍대 클럽 신에서 그 장르로 공연을 많이 했어요. 밴드 이름이 맥스라고, 완전히 펑키한 팀이었어요.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 들을까봐 가명을 쓰고 무대에 올랐고요. 밴드의 객원 보컬인 것처럼 나가서 노래 부르고 그랬는데, 사실은 밴드의 정규 멤버였던 거죠. 공연 때 맥스웰 노래를 진짜 많이 했어요. (웃으며) 그 팀의 건반이 바로 ‘에코브릿지’였고요.”
에코브릿지와 결성한 작곡팀 허니듀오(Honeydew'o)는 정엽의 솔로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군 홍보단 시절 선후임으로 만나 현재는 환상의 팀워크를 보이며 작곡 듀오로 활동 중이다. 끈끈하게 맺어진 팀워크의 근간엔 음악적 공감대 뿐 아니라 인간적인 신의도 큰 역할을 한다. 음악은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아닌, 정엽 말에 따르면 ‘주위 사람들과 연을 만들어주고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다.
에코브릿지와 작업을 많이 했다. 자신의 보컬을 피아노로 풀어주는 소울 메이트랄까.
“해군 홍보단에서 제 맞후임이었어요.(웃음) 그 당시 건반을 쳤고, 전 노래를 불렀죠. 10년 지기예요. 군 생활 중에 힘들 때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자리 잡으면 둘이 뭔가 해보자’라고 얘기하곤 했어요. 내무반 뒤에서 담배피우며 한 이야기가 현실이 된 거죠. 그리 대단한 꿈은 아니었지만.”
둘이 같이 작업할 때 어떻게 파트를 분담하나.
“예전에는 그런 것 없이 막무가내로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같이 멜로디를 만들면, 편곡은 에코가 하고 가사는 제가 써요. 작업은 만나서 같이 하고요.”
둘의 조화가 가장 근사하게 이뤄진 곡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일 많이 알려진 노래인 「Nothin' better」죠. 둘이 앉아서 30분 만에 쓴 곡이에요. (흡사 맥스웰과 스튜어트 매튜맨의 관계 같다고 했더니) 극찬이죠.”
「Love you」를 보면 에코브릿지의 건반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워크가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피아노의 즉흥적 매력을 좀 더 확장시킬 의향은 없는가.
“글쎄요. 앞으로도 다양한 색깔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아직까지는 갑작스러운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절제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같아요. 물론 답습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화려한 것보다는 은은한 매력이 오래 남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자평 한다면.
“은근히 허니듀오로 곡을 많이 줬어요. 아직은 위상이라고 할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닌데 허니듀오로서 영역을 더 퍼트리는 것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아요. 섭외는 많이 들어와요. 단지 저희 둘 다 게을러서 그렇지.(웃음) 섭외 온 걸 다 했으면 정말 많이 곡을 썼을 거예요.”
호흡이 잘 맞는 결정적 이유가 있나.
“안 맞은 것 같으면서도 진짜 잘 맞아요. 서로 좋아하는 거나,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거든요.”
가사를 쓰면서 사실과 허구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
“곡마다 다른데, 8대 2? 7대 3? 당연히 사실에 바탕을 두고요. 만약 허구일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거죠. 제가 상대방에게 이별을 말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식으로요.”
지금까지는 사랑 이야기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 살면서 현실 속의 고통도 있을 테고, 분노도 있을 것인데, 가사의 폭을 넓히고 싶은 생각은 없나.
“좀 더 나이가 들면 다양한 감성이 샘솟겠죠. 저는 오히려 어렸을 때 사랑이야기를 안 썼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 목표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이 저에게 음악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사랑하는 친구들이랑 인생을 동반키 위해서 한다고 그러거든요. 멤버들과 음악 활동을 하는 이유도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도 같이 벌고 그러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이죠.”
자신을 싱어로 이끈 계기나 가수가 있다면.
“사실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형이랑 <원종배의 영 팝스>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음악을 접했어요. 팝송을 많이 들었죠, 빌보드 차트 순위도 다 외우고. 어린 마음에 그 때는 ‘가요는 음악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재하 선배님의 유작을 들었는데, 정말 좋은 거예요. “아, 가요도 진짜 좋구나!”라고 느끼면서 그 때부터 가리지 않고 다 듣기 시작했죠.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아티스트는 유재하 선배님이에요.”
팝 쪽에는 없었나.
“팝도 많죠. 말씀 드렸다시피 메탈을 좋아해서 유럽 쪽의 아티스트가 많이 있었고요. 곡 중에는 글렌 메데이로스와 바비 브라운의 「She ain't worth it」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외라고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라디오 밖에 없었으니까요. 또 라디오에선 아메리칸 탑40 같은 상위권의 곡만 들을 수 있었잖아요.”
본받고 싶은 뮤지션은 있나.
“정말 많은데. 사실 무대에 서는 가수들은 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노래 잘 부르는 가수를 정의해본다면?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요. 김장훈 선배를 예를 들면 가창력이 수려하기보단 거친데 들었을 때 뭔가 느껴지거든요.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질 정도로요. 감성을 전달하는 힘이 있는 가수가 좋은 가수인 것 같아요. 정확히 멜로디를 지킨다거나 음역대의 폭이 넓은 것은 크게 중요치 않다 생각해요. 한 구절을 불러도 사람들이 들었을 때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느낀다면 좋은 가수겠죠.”
이론적인 실력과 기교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인가.
“물론 기본적인 노력은 굉장히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미친 사람처럼 노래 연습을 했고요.”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듣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소스가 많이 생기게 되잖아요. 한 장르만 국한해서 듣거나, 특정 장르만 들으면 당연히 레퍼토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음악을 많이 들으면 표현력이 넓어진다고 봅니다.”
요즘 들어 한층 더 바빠졌는데 발성 연습은 매일하나.
“아니요. 연습 안 한지는 오래 된 것 같아요. 17년 가까이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가까이 연습했는데 지금은 연습할 시간도 많이 없고, 많이 게을러지기도 했고요.(웃음) 그 대신 앨범 녹음기간이 긴 편이라 레코딩 할 때 연습을 많이 하죠. 준비하는 기간이 1년 정도 되니까요. 그때 아니면 연습은 많이 못해요.”
목 푸는 방법이 따로 있나.
“그런 건 없어요. 저는 굉장히 방목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술이랑 담배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사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해요.”
인정받는 보컬리스트로서 아이돌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좋아요. 지난번에 아침 방송에서 제게 인터뷰를 온 적이 있었어요. 대충 질문을 들으니 요즘 트렌디한 아이돌 음악 붐에 대해서 비판해달라는 뉘앙스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였거든요. 일단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고, 무대에서 그렇게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좋다고 이야기 드렸죠.”
내 삶의 베스트 앨범을 뽑아본다면.
“맥스웰 1집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좋다고 이야기 드렸죠.”
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보컬리스트로서 지금의 색깔에 많은 영향을 미쳤죠. 스티비 원더는 전집이 다 좋은데, 그중 최고의 앨범은 인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에서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를 좋아해요. 조지 마이클의 보컬은 제가 평가할 수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죠.”
리메이크 앨범을 계획 중이라는데, 예상 레퍼토리를 소개해 달라.
“송창식 선배님의 「왜 불러」를 제 스타일로 부르고 싶고요. 최백호 선배님의 「사랑은 언제나 고독의 친구였다」라는 노래도 좋아해요. 그런 곡들이 제 머릿속 리스트에 있고요. 만약에 리메이크를 한다면 그 분 세대들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요. 현재 많이 리메이크 된 곡들보다 더 윗세대 선배님들의 노래를요.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도 정엽씨가 부르면 멋질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해보고 싶네요.”
2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올 가을에 낼지, 아니면 조금 더 날짜를 당길지, 후반기로 갈지 아직은 논의 중이에요. 다른 일 들이 많이 겹쳐 있어서…”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녹음을 한다면 어떤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나.
“일렉트로니카요. 또 포크 록도 부르고 싶고요. 하고 싶은 음악들이 무궁무진해요.”
인터뷰 : 임진모, 성원호, 박봄, 홍혁의
사진 : 김민호
정리 : 성원호
정엽은 이런 행보와 반대로 뭇사람과의 교감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멤버다. 2008년 솔로 데뷔작
인터뷰 내내 신중한 답변들이 흘러나왔다. 그의 음악처럼 차분했다. 대화는 지난 1월 22일 성황리에 판매된 3집의 한정판 LP 이야기로 시작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LP를 들을까’하는 의구심과 고가(11만원)인 탓에 우려도 있었지만, 전국에서 371장뿐인 앨범을 손에 넣으려고 상경한 팬들의 열띤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레트로 소울’을 LP레코드에 담아 본질적 어울림을 주조해낸 것이 팬들의 호응을 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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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누구의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저희끼리 예전부터 하고 싶던 작업이었어요. 집에 LP레코드와 턴테이블이 있어요. 저는 ‘희망사항’이 수록된 변진섭 선배님 2집을 포함해서 가요 LP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어릴 적 기억 속의 그 느낌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현재 소속사로 옮기고 나서야 실행하게 됐죠. LP에서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노이즈, 그런 아날로그적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앨범 발매 기념으로 전국 투어가 한창인데 콘서트를 해보니 반응이 어떻던가.
“작년 12월 18일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 대전, 대구 등 7개 도시에서 공연을 마쳤고요, 마지막으로 오는 2월 12, 13일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사실 대중매체 출연이 잦지 않아서 걱정이었지만 많이 찾아와주셔서 얼떨떨했죠. 특히 지방에 계신 분들이 우리 음악을 아실까 궁금했는데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워서 정말 놀랐어요.”
솔로 공연도 전부 매진이었다. 콘서트를 찾는 이유가 대중매체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갈증을 해소하는 차원이지 않을까.
“글쎄요. 그런 이유도 있겠죠? 잘은 모르겠지만.”
2010년 10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있었던 세 번째 단독 콘서트
“네, 맞아요. 색다른 면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편곡도 다르게 했지만, 음악적으로 새로운 걸 못 보여드린 것 같아 많이 아쉬웠어요.”
무대에서 춤을 춰볼 생각은 없나.
“몸이 따라 준다면 뭐.(웃음) 특히 맥스웰의 라이브 무대를 보면 짜인 안무는 아닌데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있어요. 리듬이죠. 저도 그게 정말 하고 싶어요. 작년에는 춤을 제대로 배워서 리듬감을 익혀볼까 했는데, 게으른 탓인지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제대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매체활동이 드물다 보니 감춘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에 반해 정엽의 라디오 출연은 다소 의외인데, 어떻게 된 건가.
“제 개인적으론 솔로 작품을 내고 나서 라디오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분들은 저희가 매체 출현을 안 하는 것이 콘셉트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건 아녜요. 실은 나얼이 공개적인 자리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부담도 많이 가져서요. 그래서 저희는 행사 제의가 들어오면 멤버 모두가 ‘오케이’ 한 것만 참여해요. 데뷔 때, 한 명이라도 ‘노’하면 안하기로 약속한 건 지금도 변함없고요. 반면에 각자 활동은 당연히 오픈 마인드예요. 저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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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정엽입니다>를 진행 중인데 라디오는 어떤가?
“이제 겨우 100일 좀 지나서 아직 어색하긴 한데요, 재미있어요. 워낙 라디오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라디오를 하면서 좋다고 느낀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나.
“최근 알게 된 옥상달빛의 음악이 좋더라고요. 옥상달빛이 코너 게스트를 하기 전까지 그 분들을 몰랐죠. 라디오가 인연이 돼서 자연스레 접했는데 따뜻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얼핏 보면 목소리에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느낌이 묻어나지만, 다른 자리에서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의 매력을 언급한 적이 있고, 송창식의 「담뱃가게 아가씨」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저는 장르 안 가리고 다양하게 듣는 성격이에요. 어렸을 때는 메탈을 들었고요. 광팬일 정도였죠. 배리 매닐로우 같은 이지 리스닝 스타일의 음악도 많이 좋아해요. 저는 좋아하는 장르가 정말 많아요. 각 장르마다 개성이 확실하잖아요.”
「담뱃가게 아가씨」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 3집 보다는 솔로 앨범에 더 적합하지 않았나.
“사실 그러고 싶었어요. 나중에 제가 리메이크 앨범을 만들 때 넣고 싶어서 굉장히 고민했죠. 넣을까 말까. 그런데 굳이 순서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활동 기간에 비해 다양한 색깔의 보이스, 음악의 스타일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8~9년간 활동하면서 에디션(발표한 작품)이 많지 않으니까요. 정규앨범도 손에 꼽을 정도고. 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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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이번 음악이 억누르는 스타일이라 다소 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사실 저희들은 뭔가 생?하고 음악을 하지는 않아요. 뭔가를 의도해서 억누른 것이 아니거든요. 이번 앨범은 딱히 ‘무슨 콘셉트로 가자’하고 진행한 건 아니고요, 각자가 만든 곡을 가져와서 같이 들어보고 좋다 싶으면 작업하는 방식이었어요.”
솔로 앨범을 제작했을 때는 분명한 접근법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앨범을 만들 때엔 파트를 4분의 1로 나눠야 했잖아요. 반면 솔로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목소리니까 부담은 갔지만, 그것조차 하고 싶던 것이었죠. 앨범에 수록하고 싶었던 곡들은 대개 팀 곡으로 쓰기 애매했던 곡인데 꼭 부르고 싶어서 묵혀 왔던 노래들이었고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가창력이 탁월한 네 멤버가 모인 팀이다. 정엽의 시각에서 각 멤버 의 장점을 이야기해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얼의 라이브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나얼은 최고의 테크니션 같아요. 진정한 프로죠. 제가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테크닉에선 최고예요.
영준은 특유의 보컬 톤을 지니고 있고, 목소리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정말 묘해요. 묵직한 톤이 한국 사람에게선 흔치 않은 느낌인데, 그런 느낌을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영준은 그게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이 매력이죠.
성훈은 정말 어떤 음색보다도 독창적이에요. 혹자는 김건모 선배와 음색이 비슷하다고 하는데 굉장히 개성 있죠. 특히 본인이 피아노를 치면서 재즈곡을 부를 때 가장 빛이 나요. 이번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에 수록된 「With chocolate」에서 스캣을 굉장히 잘했거든요. 원래는 아주 아이돌스러운 곡이 나올 뻔 했는데, 저희가 만류했죠.(웃음) 공연 때는 오히려 타이틀곡보다도 호응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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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까지 고생한 기간이 있지 않았나.
“군대 전역해서 데뷔를 했으니 늦게 시작한 거죠. 다행히 해군 홍보단에서 군 생활을 했고, 그 전엔 여러 기획사를 전전했어요. 5명, 7명으로 구성했다가 엎어진 사례도 있었고요.”
그렇다면 가수를 하겠다고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언제쯤인가.
“제대로 시작한 적이 없었어요. 준비만 하다가 다 엎어졌죠. 후에 영장 받고 나서 해군 홍보단에 지원했는데, 김건모, 유희열 선배님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운 좋게 뽑힌 것이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다행히 음악으로부터 멀어지진 않았으니까요.”
소속사를 전전하던 시절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젊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제대하자마자 계약을 하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 1집을 낸 뒤에 소속사랑 트러블이 있었거든요. 그때가 더 힘든 시간이었죠. 그렇다고 특별히 큰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저희가 처음 나올 때부터 나얼의 네임 밸류 덕에 주목 받아서 그 정도의 시련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적은 나이가 아닌데,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사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아쉽죠. 조금 더 일찍 눈 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저때만 해도 실용음악과라는 것도 없었고. 반대로 연륜이 쌓이고 음악을 하게 되니까 시야가 넓어진 것도 같아요. 지금은 천천히 배워가는 것이 좋아요. 뛰어가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는 거고요.”
“글쎄요.(웃음) 녹음하고 나니까 다 아쉽더라고?. 스티비 원더에게 바친 마지막 트랙 「Too shy to say」도 굉장히 신경 쓴 곡이었고, 「Saturday night」도 코드 두 개가지고 만들었고, 가사도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쓴 곡이었어요. 나름 신경 써서 만든 곡이죠.”
주요 곡들의 후렴구에서 두성을 이용하는 스타일인데 그 이유가 있다면.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에디션이 별로 없어서 그렇죠. 저희도 그것에 대한 딜레마가 있었어요. 「You are my lady」나 「나랑 가자」도 만들다보니 제2의 「Nothing better」 같이 된 거고요. 이 점은 다음 작품을 통해서 차차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Nothing better」가 사랑 받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진짜 감사한 일인데요. 이심전심인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사랑하고 있던 시기라서 곡도 빨리 나왔고, 가사가 그냥 나왔어요.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부른 것 같아요.”
특히 펑키(funky)한 「Get you」도 좋았다.
“제가 펑크(funk)를 굉장히 좋아해요. 심지어 앨범을 내기 전까지 홍대 클럽 신에서 그 장르로 공연을 많이 했어요. 밴드 이름이 맥스라고, 완전히 펑키한 팀이었어요.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 들을까봐 가명을 쓰고 무대에 올랐고요. 밴드의 객원 보컬인 것처럼 나가서 노래 부르고 그랬는데, 사실은 밴드의 정규 멤버였던 거죠. 공연 때 맥스웰 노래를 진짜 많이 했어요. (웃으며) 그 팀의 건반이 바로 ‘에코브릿지’였고요.”
에코브릿지와 결성한 작곡팀 허니듀오(Honeydew'o)는 정엽의 솔로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군 홍보단 시절 선후임으로 만나 현재는 환상의 팀워크를 보이며 작곡 듀오로 활동 중이다. 끈끈하게 맺어진 팀워크의 근간엔 음악적 공감대 뿐 아니라 인간적인 신의도 큰 역할을 한다. 음악은 단순히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아닌, 정엽 말에 따르면 ‘주위 사람들과 연을 만들어주고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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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브릿지와 작업을 많이 했다. 자신의 보컬을 피아노로 풀어주는 소울 메이트랄까.
“해군 홍보단에서 제 맞후임이었어요.(웃음) 그 당시 건반을 쳤고, 전 노래를 불렀죠. 10년 지기예요. 군 생활 중에 힘들 때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자리 잡으면 둘이 뭔가 해보자’라고 얘기하곤 했어요. 내무반 뒤에서 담배피우며 한 이야기가 현실이 된 거죠. 그리 대단한 꿈은 아니었지만.”
둘이 같이 작업할 때 어떻게 파트를 분담하나.
“예전에는 그런 것 없이 막무가내로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같이 멜로디를 만들면, 편곡은 에코가 하고 가사는 제가 써요. 작업은 만나서 같이 하고요.”
둘의 조화가 가장 근사하게 이뤄진 곡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일 많이 알려진 노래인 「Nothin' better」죠. 둘이 앉아서 30분 만에 쓴 곡이에요. (흡사 맥스웰과 스튜어트 매튜맨의 관계 같다고 했더니) 극찬이죠.”
「Love you」를 보면 에코브릿지의 건반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워크가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피아노의 즉흥적 매력을 좀 더 확장시킬 의향은 없는가.
“글쎄요. 앞으로도 다양한 색깔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아직까지는 갑작스러운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절제하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같아요. 물론 답습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화려한 것보다는 은은한 매력이 오래 남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자평 한다면.
“은근히 허니듀오로 곡을 많이 줬어요. 아직은 위상이라고 할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닌데 허니듀오로서 영역을 더 퍼트리는 것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아요. 섭외는 많이 들어와요. 단지 저희 둘 다 게을러서 그렇지.(웃음) 섭외 온 걸 다 했으면 정말 많이 곡을 썼을 거예요.”
호흡이 잘 맞는 결정적 이유가 있나.
“안 맞은 것 같으면서도 진짜 잘 맞아요. 서로 좋아하는 거나,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거든요.”
가사를 쓰면서 사실과 허구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
“곡마다 다른데, 8대 2? 7대 3? 당연히 사실에 바탕을 두고요. 만약 허구일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거죠. 제가 상대방에게 이별을 말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식으로요.”
지금까지는 사랑 이야기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 살면서 현실 속의 고통도 있을 테고, 분노도 있을 것인데, 가사의 폭을 넓히고 싶은 생각은 없나.
“좀 더 나이가 들면 다양한 감성이 샘솟겠죠. 저는 오히려 어렸을 때 사랑이야기를 안 썼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 목표를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이 저에게 음악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사랑하는 친구들이랑 인생을 동반키 위해서 한다고 그러거든요. 멤버들과 음악 활동을 하는 이유도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도 같이 벌고 그러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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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싱어로 이끈 계기나 가수가 있다면.
“사실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형이랑 <원종배의 영 팝스>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음악을 접했어요. 팝송을 많이 들었죠, 빌보드 차트 순위도 다 외우고. 어린 마음에 그 때는 ‘가요는 음악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재하 선배님의 유작을 들었는데, 정말 좋은 거예요. “아, 가요도 진짜 좋구나!”라고 느끼면서 그 때부터 가리지 않고 다 듣기 시작했죠.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아티스트는 유재하 선배님이에요.”
팝 쪽에는 없었나.
“팝도 많죠. 말씀 드렸다시피 메탈을 좋아해서 유럽 쪽의 아티스트가 많이 있었고요. 곡 중에는 글렌 메데이로스와 바비 브라운의 「She ain't worth it」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외라고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라디오 밖에 없었으니까요. 또 라디오에선 아메리칸 탑40 같은 상위권의 곡만 들을 수 있었잖아요.”
본받고 싶은 뮤지션은 있나.
“정말 많은데. 사실 무대에 서는 가수들은 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노래 잘 부르는 가수를 정의해본다면?
“어느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요. 김장훈 선배를 예를 들면 가창력이 수려하기보단 거친데 들었을 때 뭔가 느껴지거든요.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질 정도로요. 감성을 전달하는 힘이 있는 가수가 좋은 가수인 것 같아요. 정확히 멜로디를 지킨다거나 음역대의 폭이 넓은 것은 크게 중요치 않다 생각해요. 한 구절을 불러도 사람들이 들었을 때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느낀다면 좋은 가수겠죠.”
이론적인 실력과 기교보다는 감성적인 측면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인가.
“물론 기본적인 노력은 굉장히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미친 사람처럼 노래 연습을 했고요.”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듣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소스가 많이 생기게 되잖아요. 한 장르만 국한해서 듣거나, 특정 장르만 들으면 당연히 레퍼토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음악을 많이 들으면 표현력이 넓어진다고 봅니다.”
요즘 들어 한층 더 바빠졌는데 발성 연습은 매일하나.
“아니요. 연습 안 한지는 오래 된 것 같아요. 17년 가까이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가까이 연습했는데 지금은 연습할 시간도 많이 없고, 많이 게을러지기도 했고요.(웃음) 그 대신 앨범 녹음기간이 긴 편이라 레코딩 할 때 연습을 많이 하죠. 준비하는 기간이 1년 정도 되니까요. 그때 아니면 연습은 많이 못해요.”
목 푸는 방법이 따로 있나.
“그런 건 없어요. 저는 굉장히 방목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술이랑 담배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사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해요.”
인정받는 보컬리스트로서 아이돌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는 좋아요. 지난번에 아침 방송에서 제게 인터뷰를 온 적이 있었어요. 대충 질문을 들으니 요즘 트렌디한 아이돌 음악 붐에 대해서 비판해달라는 뉘앙스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였거든요. 일단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고, 무대에서 그렇게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좋다고 이야기 드렸죠.”
내 삶의 베스트 앨범을 뽑아본다면.
“맥스웰 1집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좋다고 이야기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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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앨범을 계획 중이라는데, 예상 레퍼토리를 소개해 달라.
“송창식 선배님의 「왜 불러」를 제 스타일로 부르고 싶고요. 최백호 선배님의 「사랑은 언제나 고독의 친구였다」라는 노래도 좋아해요. 그런 곡들이 제 머릿속 리스트에 있고요. 만약에 리메이크를 한다면 그 분 세대들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요. 현재 많이 리메이크 된 곡들보다 더 윗세대 선배님들의 노래를요.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도 정엽씨가 부르면 멋질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해보고 싶네요.”
2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올 가을에 낼지, 아니면 조금 더 날짜를 당길지, 후반기로 갈지 아직은 논의 중이에요. 다른 일 들이 많이 겹쳐 있어서…”
그렇다면 지금 당장 녹음을 한다면 어떤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나.
“일렉트로니카요. 또 포크 록도 부르고 싶고요. 하고 싶은 음악들이 무궁무진해요.”
인터뷰 : 임진모, 성원호, 박봄, 홍혁의
사진 : 김민호
정리 : 성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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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잠파노
2013.12.03
인터뷰 기사 너무 잘 보았습니다^*^
큰엄마
2013.12.03
아자아자 파이팅!!!
adel007
20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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