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외에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어요” - 『밥값』 정호승,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천양희
성기완, 이소원 두 사회자가 서로에게 물었다. “행복하세요?” 대답은 같았다. “행복한 거 같아요.”
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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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 이소원 두 사회자가 서로에게 물었다. “행복하세요?” 대답은 같았다. “행복한 거 같아요.” 대다수 독자들은 행복한가, 묻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조금 더 행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자기 스스로 ‘너 행복하니?’, ‘나는 행복할까?’ 물을 시간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만큼 ‘속도’가 대단히 빠른 시대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한 답이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막연히 ‘행복’을 떠올릴 때, 이 시대의 속도에 어지러움을 느낄 때, 종종 우두커니 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천양희 시인도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고 고백한다.
“2005년 발표한 시집 『너무 많은 입』 이후 6년 만의 시집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칠순 나이에 일곱 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깊고, 저 혼자 감격을 많이 했습니다(웃음)” 시인은 무대 위에서도 잠시 우두커니 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우두커니’란 단어는 부사입니다. 시집에서는 명사로 바꿨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헛것들 때문에 우두커니 서있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우두커니는 나를 받쳐주는 힘이 되기도 하죠. 저희 집에서 현관을 열고 우두커니 있다 보면 수락산 끝자락이 보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두커니’가 반짝하고 보입니다.”
시인은 높이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내던 젊은 날과는 달리 이제는 넓이와 깊이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평지 혹은 바닥에서 시작하는 시가 많아졌다. 이날 노래 손님으로 함께한 하이미스터메모리의 기억이 낭송한 시「바다보아라」에도 바닥이 등장한다.
자식들에게 바치노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 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없는 바다이신
받침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 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보아라」 전문)
시인은 이 시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한다. “어머니께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하셨지만, 홀로 언문을 깨치셨어요. 어느 날 제가 다니는 학교의 기숙사로 편지가 왔죠.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바다보아라’. 받침이 없었던 거죠.”
그녀는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낭만적이고, 자연스럽고, 자연적인 것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아쉽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의 아쉬움 중에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하지만 그것들은 시 안에 살아있습니다. 시속에 과거가 스며들어 있는 거 같아요.” 시인 그래서 더욱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 부분)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시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시인은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하며, 특히 “시인이 되고자 하신다면, 시간을 탕진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밥값』의 정호승 시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눈이 와서 좋았지만 오는 길이 정말 미끄러웠다”며, “삶의 여러 현장 ‘밥값’하시다 이곳까지 미끄러지지 않고 찾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왜 일까, ‘밥값’이라고 하면 마음 한 쪽이 아프다. “밥 먹다가 가끔 저도 ‘우두커니‘ 숟가락을 놓고 내가 ’밥값‘하는 사람인가 생각을 한다”는 시인은 표제작인 「밥값」의 첫 문장을 소개했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침에 출근하듯이 지옥에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죠. 그리고 이 말은 우리 ‘어머니’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밥값』에 실린 시편은 잘 빚어 낸 인절미처럼 두껍지도 길지도 않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점차 짧아지는 경향에 대하여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많은 말과 생각을 하는데 시가 이렇게 길어져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시의 본질은 침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처럼. 그동안 시에서 많은 말과 많은 서사를 담고 싶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짧되 풍요로운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슬픔 이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증명사진」부분)고 말한다. “비극에서 시가 발화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 때 비극 밖에 없더라고요. 시는 삶의 구체 속에서 꽃이 피어요. 제가 여러분들이 발견하지 못한 삶 속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호승 시인과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컬 배우이자 신인 가수로 활동 중인 민영기는 북콘서트를 앞두고 시인에게 사인을 받았다? 말한다. 그런데 그는 이런 구절을 써주었다고 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그는 작년에 결혼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독자들 몇몇이 먼저 웃었다.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년에 결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써드렸습니다(청중웃음). 결혼을 하면 새로운 외로움이 생기죠. 외로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집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순이 넘은 시인이 부모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제 삶속에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죠. 저는 20년생이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죠. 육체가 쇠잔할 때로 쇠잔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목욕을 건성으로 해드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있는 힘을 다해 깨끗이 해드리게 되더군요. ‘내가 스스로 씻지 못할 때, 누가 나를 씻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는「풀잎에게」라는 시를 통해 ‘늙은 아버지의 몸을 씻겨드리는 일은/내 시체를 씻기는 일’이며 ‘하루종일 밖에 나가 울고 돌아와/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공중목욕탕에 가서/정성껏 씻겨드리는 일은/내 시체의 눈물을 씻기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70년대 이후 시의 역사와 함께 한 그가 오늘날의 젊은 시인과 ‘시’에게 어떤 말을 전할지 궁금했다. “한국 현대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자와의 소통이 결핍되어있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디가 막힌 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의 내용과 정신이 물처럼 흘러가야 되지 않겠는가 싶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한국 현대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죠. 전통적 서정성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서정성을 회복시켜야겠죠.”
그는 “시의 짐은 무거워도 괜찮다”고 말한다.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
길을 떠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
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가절히 바랐으나
이슬에도 ?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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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한 답이지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막연히 ‘행복’을 떠올릴 때, 이 시대의 속도에 어지러움을 느낄 때, 종종 우두커니 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천양희 시인도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높이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내던 젊은 날과는 달리 이제는 넓이와 깊이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평지 혹은 바닥에서 시작하는 시가 많아졌다. 이날 노래 손님으로 함께한 하이미스터메모리의 기억이 낭송한 시「바다보아라」에도 바닥이 등장한다.
자식들에게 바치노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 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없는 바다이신
받침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 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보아라」 전문)
시인은 이 시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한다. “어머니께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하셨지만, 홀로 언문을 깨치셨어요. 어느 날 제가 다니는 학교의 기숙사로 편지가 왔죠.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바다보아라’. 받침이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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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낭만적이고, 자연스럽고, 자연적인 것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아쉽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의 아쉬움 중에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하지만 그것들은 시 안에 살아있습니다. 시속에 과거가 스며들어 있는 거 같아요.” 시인 그래서 더욱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 부분)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시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시인은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하며, 특히 “시인이 되고자 하신다면, 시간을 탕진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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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밥값』의 정호승 시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눈이 와서 좋았지만 오는 길이 정말 미끄러웠다”며, “삶의 여러 현장 ‘밥값’하시다 이곳까지 미끄러지지 않고 찾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밥값』에 실린 시편은 잘 빚어 낸 인절미처럼 두껍지도 길지도 않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점차 짧아지는 경향에 대하여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많은 말과 생각을 하는데 시가 이렇게 길어져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시의 본질은 침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처럼. 그동안 시에서 많은 말과 많은 서사를 담고 싶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짧되 풍요로운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슬픔 이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증명사진」부분)고 말한다. “비극에서 시가 발화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 때 비극 밖에 없더라고요. 시는 삶의 구체 속에서 꽃이 피어요. 제가 여러분들이 발견하지 못한 삶 속의 슬픔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호승 시인과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컬 배우이자 신인 가수로 활동 중인 민영기는 북콘서트를 앞두고 시인에게 사인을 받았다? 말한다. 그런데 그는 이런 구절을 써주었다고 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그는 작년에 결혼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독자들 몇몇이 먼저 웃었다.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년에 결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써드렸습니다(청중웃음). 결혼을 하면 새로운 외로움이 생기죠. 외로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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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순이 넘은 시인이 부모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시는 제 삶속에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죠. 저는 20년생이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죠. 육체가 쇠잔할 때로 쇠잔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목욕을 건성으로 해드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있는 힘을 다해 깨끗이 해드리게 되더군요. ‘내가 스스로 씻지 못할 때, 누가 나를 씻기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는「풀잎에게」라는 시를 통해 ‘늙은 아버지의 몸을 씻겨드리는 일은/내 시체를 씻기는 일’이며 ‘하루종일 밖에 나가 울고 돌아와/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공중목욕탕에 가서/정성껏 씻겨드리는 일은/내 시체의 눈물을 씻기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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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 시의 역사와 함께 한 그가 오늘날의 젊은 시인과 ‘시’에게 어떤 말을 전할지 궁금했다. “한국 현대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자와의 소통이 결핍되어있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디가 막힌 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의 내용과 정신이 물처럼 흘러가야 되지 않겠는가 싶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한국 현대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죠. 전통적 서정성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서정성을 회복시켜야겠죠.”
그는 “시의 짐은 무거워도 괜찮다”고 말한다.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
길을 떠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
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
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
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가절히 바랐으나
이슬에도 ?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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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etilove
201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