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있는 뮤지컬 배우, 강필석
무대 위의 그가 워낙 강렬했던지라 인터뷰가 조금은 긴장되지만, 내면에는 그만큼의 부드러움을 지녔을 것이라는 기대에 딱 기분 좋은 설렘이다.
2010.11.17
작게
크게
공유
|
토요일 정오. 햇빛 잘 드는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 위의 그가 워낙 강렬했던지라 인터뷰가 조금은 긴장되지만, 내면에는 그만큼의 부드러움을 지녔을 것이라는 기대에 딱 기분 좋은 설렘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기다리는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이 쌓이면서 좋았던 설렘은 고통스럽게 잘라내야 했던 토요일 아침의 단잠과 누적된 피로를 상기시킨다. 40분을 넘길 무렵에는 본연의 활화산 같은 성질이 곱게 포장한 사회성을 누르고 폭발할 지경이다. 그렇게 성난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무렵, 그는 환한 미소를 한 아름 머금고 나타났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강렬함으로 기억되던 배우 강필석 씨에게는 놀랍게도 엄청난 애교가 있었다.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닌데, 제가 너무 큰 죄를 지어서 해결해야 하니까요(웃음).”
절대 그의 애교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다시 날을 잡아야 하기에, 어떻게든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의 임무였기에 노여움을 달랜 것이다. 비록 언제고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얻기는 했지만(수첩에 적어 놨다!) 결코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어쨌든 그렇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강필석 씨는 11월 23일부터 대학로 더 굿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연습에 한창 몰두하고 있다. 전작인 뮤지컬 <틱틱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급한 마음과 달리 몸이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 팔뚝을 통해 주입되는 영양제와 피로회복제에 간신히 의존하고 있다. 하긴 그는 올해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해 이맘때 <내 마음의 풍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뒤에 <김종욱 찾기> <레인맨> <번지점프를 하다> <틱틱붐> 그리고 까지. 올해 여섯 작품에 참여했네요.”
|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엣지(edge)’라는 말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모서리나 벼랑’ 등의 사전적 의미가 있대요. 저희가 보고 있는 건 그렇게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사실 그동안 기승전결이 강한 작품을 해 와서, 처음에는 10여 개의 에피소드로 꾸며지는 작품이 낯설었어요. 그런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누구나 겪는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얘기니까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엣지 있게’ 풀어가야죠(웃음).”
아직도 꿈과 사랑을 찾느라 방황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다 찾았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20대의 신념과 열정이 식은 30대는 해답 없는 물음과 선택, 무너짐의 연속이다.
“사실 어렸을 때는 무언가 찾으려는 에너지가 있고, 그렇게 무작정 달려가기만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뭘 하고 있는지를 많이 생각하게 돼요. 가끔은 ‘그냥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거든요.”
강필석이 극중 가장 공감하는 에피소드는 역시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10년 가까이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좋아한다는 말도 못하고, 어쩌면 환상만 키워가는 것 같아요. 잘못 꺼냈다 아예 볼 수 없게 될까봐 얘기도 못했는데, 이러다 나중에 말하지 못한 걸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계속 답답한 거죠.”
아, 이 불완전연소상태. 그 답답함을 우리는 십분 이해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품고 있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각자의 ‘젊음’을 얘기하고 무대에 녹여낸다. 그런데 불현듯 함께 무대에 서는 최재웅 씨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의 이미지도 외모도 참 비슷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재웅이가 대뜸 ‘누구지?’하고 묻더라고요.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웃음). 처음에는 저희도 캐스팅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둘 다 가라앉은 사람이라서. 덕분에 재웅이가 좀 더 촐랑대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 나한테 안 맞아’라며 힘들어해요(웃음).”
|
가라앉은 이미지 때문일까? 2004년 데뷔한 강필석은 줄곧 색깔 짙은 작품의 비중 강한 역할만 맡으며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관객들의 평가와 달리, 그 역시 스스로 정말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역할도 있다.
“<김종욱찾기>는 제가 처음으로 도전한 밝은 작품이에요. 그전까지는 제가 죽거나 누구를 죽이거나 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강필석이 김종욱?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김종욱찾기>를 하면서 배우로서 많이 열렸죠. 그전에는 저한테만 집중했는데, 이 작품은 넓게 보지 않으면 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관객들의 웃음을 처음으로 느끼고, 그게 힘이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반면 <내 마음의 풍금>은 23살을 연기해야 해서 그런지, 잘 못하겠더라고요. 작품은 재밌었는데, 닭살이 마구 돋아서 힘들었어요(웃음).”
|
“<맨 오브 라만차>는 세 번을 봤는데, 매번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걸 꿈꿨는데, 한 번 크게 상처를 받은 뒤로 낯도 가리고 피곤한 관계는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돈키호테를 보니까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저게 맞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점점 현실과 멀어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돈키호테는 좀 더 나이가 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그는 무작정 쏟아내는 것보다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에 집중한다.
“
벼랑 끝에 서 있는 후배들에게도 그는 욕심을 버리고 내면을 채우라고 말한다.
“기술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언젠가 ‘오늘 공연이야?’라고 말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극장가는 게 정말 좋았는데, 자꾸 기술자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쉬어야겠다 생각했죠.
저희는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직업인데,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틀린 거잖아요. 후배들을 보면 춤이나 노래나 기술적인 것들을 신경 쓰는데, 안을 더 채웠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그런 테크닉이 모자라도 자신의 마음을 채우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당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고요.”
어깨에 힘을 빼고 욕심을 버리고, 그만큼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 강필석.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일까?
“
무대 위에서 완벽해 보이는 그이지만, 그 역시 여전히 벼랑 끝을 걷고 있다. 꿈과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그래서 문득
2개의 댓글
필자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did826
2012.08.28
앙ㅋ
201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