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 김진혁 PD, <지식채널 e>를 말하다 - 『감성 지식의 탄생』 김진혁
기존의 EBS 다큐멘터리를 예고편처럼 짧게 소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지식채널 e>, 처음에는 이름도 없이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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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거나 “어?”하는 사이

<지식채널 e>의 타이틀 첫 화면은 치지직거리는 상태로, 정규방송이 끝나고 정파가 된 모습이다. 그러고 나서 검은 화면이 되었다가 ‘지식채널 e’ 글자가 뜬다.(…) 정규방송과는 완전히 다른, 또는 정규방송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새롭고 신선한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다.(p.39)

5분짜리 영상이었다. 광고도 다큐멘터리도 아니었다. <지식채널 e>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5분은 지식을 전하는 데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광고 사이, 채널을 돌리는 사이에 등장해, 게릴라식으로 ‘켜졌다 꺼졌다’. <지식채널 e>를 보고 나면, 잠시 본 것을 되짚으며 생각하는 사이. “아!” 무릎을 치거나, “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가 생겨났다. 사이에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사이’를 남긴 프로그램. EBS 김진혁 PD는 <지식채널 e>를 그렇게 만들었다.

기존의 EBS 다큐멘터리를 예고편처럼 짧게 소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지식채널 e>, 처음에는 이름도 없이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교육적이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될 순 없을까? 광고나 영화, 뮤직비디오처럼 재미있고 볼거리 넘치는 영상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런 면에서 <지식채널 e>는 좋게 말해 혼성모방과 퓨전이고, 쉽게 말하면 모든 ‘가능한’ 것들을 잡탕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김진혁 PD는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270여 편의 <지식채널 e>를 만들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은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블로그로 영상을 퍼 나르며 응원했다.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는 한국 PD 대상 교양정보부문상 등을 수상하며 격려도 받았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성과를 거둔 셈.

<지식채널 e>는 어떻게 태어났고 진화했나? 김진혁 PD는 <지식채널 e>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궁금할만한 이야기를 엮어 『감성지식의 탄생』을 냈다. 단순한 제작기가 아니다. 프로그램을 완성해간 과정, 고민들이 꼼꼼하게 담겨있다. 음악, 영상, 자막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 속에 담겨있는 제작진의 노력과 열의를 엿보고 나니, <지식채널 e>의 1초, 한 컷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자 김진혁 PD의 상식적인 태도와 생각, 명확하고 깔끔한 문장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마주앉은 김진혁 PD는 그런 문장을 닮은 사람이었다. <지식채널 e>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정리가 된 듯, 어느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가 말하는 <지식채널 e>는 상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이고, 김진혁 PD에게 상식이란, 표면보다 본질, 진짜 중요한 것을 구분해내는 생각의 틀이다. 그 틀을 주조해낸 김진혁 PD에게 물었다.

2008년 ‘기륭전자 편’을 마지막으로 그는 <지식채널 e>를 떠났다.(인사이동으로 떠나야 했다.) 그는 현재 편성기획팀 소속이다.


“생각을 바꾸는 지식, 세상을 바꾸는 지식 <지식채널 e>”

『감성지식의 탄생』이 나왔습니다.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지식채널 e>를 하면서 깨달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아이템화 되는 내용들은 일차적으로 저에게 영감을 주거나 깨달음을 준 것들이거든요. 제작자일 뿐 아니라 시청자로 살아온 3년이죠. 이것이 왜 나에게 영감을 줬을까 질문을 던졌을 때 내용적, 기술적으로 여러 가지 답변을 할 수 있겠죠. 그런 고민들, 느?들을 순서대로 담은 책이에요.”

지식 채널 영상이 쓰이는 곳이 많아요. 수업이나 프리젠테이션 직전에 오프닝 영상으로도 자주 봤고, 올해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쓰이게 됐어요. 지식채널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지식채널 e>이 혼자 성과를 이뤄냈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사람들이 더 이상 계몽적인 정보습득을 달가워하지 않고, 거부감을 갖게 됐어요. 한발 나아가 정보를 통해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더라고요. 기존 프로그램처럼 깔끔하게 끝나서 딱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뭔가 생각하게끔 유도하고자 했죠, 2004년만 하더라도 생각을 촉발할 수 있는 매개체, 틀이 될만한 게 없었어요. 일반 성인들에게뿐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게 좋은 성과라고 봅니다.”

유튜브나 블로그가 한창 활발할 때여서, <지식채널 e>가 더 쉽게 유통될 수 있었죠. 시기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UCC를 겨냥했던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인터넷부터 현재 소셜 네트워크까지, 전반적인 소통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어요. 만약 그런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지식채널 e>가 대중화되지 못했을 거예요.”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재미죠. 일단 끝까지 봐야 뭐든 얘기할 수 있잖아요. 영화나 연극과 달리 TV는 채널을 돌리다가 보는 건데, 5분 밖에 안 되니, 잡아 끄는 힘이 가장 중요했어요. 재미, 즉 대중성을 가장 중요시했고요. 이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감 혹은 생각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템 선정에 고심했습니다.

유명세를 탄 이후로는 아이템 선정에 자유로웠지만, 초기에는 대중적 아이템을 찾으려고 정말 애썼어요. 보면 아시겠지만, 상업적인 프로그램들, 대중적인 강점을 가진 영상들을 많이 벤치마킹했고요. 메시지는 교양적이더라도, 기술적인 면에서 뮤직비디오, 영화 같은 편집 방법을 차용했죠.

내용으로 화두를 던지려고 했어요. 본 사람이 섣불리 하나의 방향성을 갖지 않도록, 다양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유도했죠. 이를테면, 선과 악 구도에 초점을 맞추거나,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피하고, 얽혀 있는 문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확대했어요. 그런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적이면 뭐 어떻고, 보수적이면 또 어떻습니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식채널 e즘’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식채널 e즘’은 좌파든 우파든 소외된 것을 되돌아보고 편견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능력을 갖는 것을 말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청자들 스스로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나는 나름대로 이것이 <지식채널 e>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지식채널 e>를 설명할 때, 상식적이라는 말을 강조하셨어요. 진보와 보수를 관통하는 상식의 힘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게 시대의 흐름인 것 같아요, 단순히 제작진 몇 명이 상식을 이야기해도 시대가 안 받쳐주면, 우리들만의 목소리로 끝나기 마련인데, 공명이 있었다는 거죠. 그 얘기는 더 이상 이념이라든지, 무슨 주의라는 얘기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 보편성이 힘을 갖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휴머니즘 같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에 우리 사회가 부합하길 원하게 됐고요.

<지식채널 e>의 상식은 대중들의 힘으로 지켰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 갈 수도 있던 길이었거든요. 맞아, 당연한 얘기네, 이렇게 반응해주셔서 계속 갈 수 있었죠. <지식채널 e>를 만들면서 제 나름대로 가졌던 상식에 대한 믿음은 이제 확신으로 자리잡은 셈입니다.”


무엇을 보여준다는 건, 어떤 것을 보여주지 않는 행위인데요. 보여줄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서 더 소외된, 더 약한 그룹이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보여줬을 때 가장 많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두 가지 축에 교차점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먼저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지식채널 e>의 커다란 주제는 소외입니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이 진보적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을 텐데요.

“많이 들었죠.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진보 정당과 지식채널이 유사한 아이템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하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굉장히 달라요. 일반 분들은 세세한 차이까지는 눈여겨보지 않으시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보적이면 뭐 어떻습니까, 보수면 뭐 어떤가요? 올바르고 상식적이면 될 뿐이죠. 중요한 건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올바르고 신뢰할 만 한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든 보수든 상식 안에 존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진보가 상식 안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보수가 상식 밖에 있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죠. 그런데도 진보의 수가 훨씬 적고 보수가 많다고 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보수가 진짜 보수인가 의심해 볼 수도 있겠죠. 이제는 조금 다른 분류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진보나 보수가 우리 사회에서 본연의 힘을 못쓰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라고 유추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강풀 만화를 생각하시면 돼요. 강풀이 아마 저랑 동갑이 아닐까 싶은데. 그 사람 만화를 잘 보시면, 어떻게 보면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진보라고 할 순 없거든요. 그 만화도 굉장히 상식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감성도 휴머니즘이죠. 정의나 투쟁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 상식적인 태도는 방송인으로서의 자세인가요. 평소에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계셨나요?

“둘다요. 세대론으로 얘기하는 게 막연하고 작의적이지만, 제가 X세대거든요. 무슨 무슨 세대라는 게 처음 나온 세대에요.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이후 등장한 94학번인데, 그래서인지 개인적인 성향이 있고 갇히는 걸 싫어해요. 탈계몽, 탈권위적인 마인드가 있고, 배낭여행이 시작된 때기도 하죠.(웃음) 무엇보다 시청자 스스로 생각해서 결론을 내린다는 방식이 상당히 바람직하잖아요. 누가 뭐라 그래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안티가 없는 좋은 가치이기 때문에 삶에도,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지식채널 e>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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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제작방식을 만들어낸 <1초>편. 핵심문장은 <지식채널 e>의 ‘메시지’가 되고, ‘필’은 ‘콘셉트’가 되고, 좌충우돌은 ‘브레인스토밍’이 되었다.(p.27)

5분짜리 창작물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게 아닐 텐데.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면 뭘까요?

“재미있어서요. 아이템이 계속 바뀌면서 새로운 걸 다루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 안? 새로운 지식들을 접할 수 있는 거죠. 대중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서지만, 제작진에게도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정보를 다루니 지루할 틈이 없고, 하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 가고 재미있어요.”

가열차게 만들어내는 동안 매너리즘은 없었나요?

“매너리즘은 반복에서 오거든요. 체력적인 매너리즘은 진작에 왔지만, 정신적으로는 매너리즘을 느낄 수가 없죠. 계속 새로운 걸 하니까. 보시는 분은 항상 음악, 자랸, 화면 아냐? 하시겠지만, 제작진은 결코 그렇게 만들지 않았거든요. 지난번과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늘 검토하며, 보이지 않은 수많은 장치들을 시도했어요. 3개월 정도에 따라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낀다고 판단했고, 절대로 3개월 전에 흥행했던 방법을 새로운 아이템에 적용하지 않으려고 했고요. 가끔 망하더라도.(웃음)”

영상적 감각이 중요할 텐데요. 영상적 감각은 어떻게 늘 신선도를 유지하시나요?

“제일 좋은 건 벤치마킹이죠. 신선하다고 말하는 영상을 계속 보는 거죠. 그걸 보면 또 다른 어떤 영감들이 계속 떠올라요. 장르를 가리지 말고. 특히 모든 영상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는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시길 바라요. 본인의 취향을 떠나서 예술영화부터 아주 상업적인 영화까지 보는 편이에요. 그게 기본 베이스가 됩니다. 그 이상의 투자대비 효과가 좋은 게 없지 않나 싶어요.”

글쓰기가 굉장히 단도직입적이고, 명쾌합니다. 글쓰기는 어떻게 단련하셨는지요?

“많이 쓰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양이 질을 담보하더라고요. 많이 쓰다 보면 자기 글의 문제점이 뭔지 알게 돼요. 연상적 글쓰기를 해보는 것도 좋아요. 이를테면, 아무 단어나 휙 던져놓고, 오래 생각하지 말고 쓰는 거죠. 내 안에 이미 글이 있는데, 아직 나는 모른다는 마인드로. 먼지 털 듯 내 안에 있는 걸 발굴해간다는 마인드로 쓰는 거죠. 순발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본인을 아는 게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의외로 본인이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기쁨도 있고요.(웃음)”

이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되셨을 때 굉장히 허전하셨겠어요.

“그랬죠. 당연히.”

광우병을 다룬 ‘17년 후’가 방송에 나가고, 청와대의 전화를 받은 EBS 제작진이 방영을 금지시켰죠. 그리고 이어진 인사이동 때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보복인사란 말이 많았는데요.

“원칙적으로 따지면 인사보복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고요. 정기 인사 발령 때까지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다가 간 거니까. 좋은 분을 덕분에 공정방송위를 거쳐 사측의 사과를 받았어요. 그리고 프로그램 자체에 어떤 요구 없이 다시 모든 것을 복귀시켰죠. KBS가 파업의 선제조건으로 내건 공정방송위가 EBS에는 그때부터 아직까지 살아있고, 훼손된 적이 없어요.”

지금은 간섭이 없는 상태인가요?

“아뇨. 그렇지 않죠. 다만, 그런 부분들이 투명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는 거죠.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만이 생기고,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헸던 마음이 이해는 돼요. 제작자 입장에서는 EBS가 <지식채널 e>를 잘 지켜오고, 소통점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17년 후’ 사건 이후, 아이템을 선정할 때 눈치를 보거나 하진 않으셨어요?

“항상 그런 목소리나 시선을 고려하죠. 여기에는 우선순위가 중요해요. 정말 디테일하게 고려할 건 다해요. 그런데 그런 걸 1순위로 염두에 두진 않아요. 그런 정치적인 부분은 고려 순위를 뒤쪽으로 뺍니다. 일단 아이템 선정할 때는 원칙적인 선에서 선정하고 구성했습니다.”


“<지식채널 e>, 변화의 물결에 미리 올라탄 프로그램”


68혁명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든 부정적으로 바라보든 ‘물리적인’ 프레임에서 보면 ‘실패한 혁명’이다. 정치적 결과물을 얻는 것이 혁명이라면, 68혁명은 그저 열심히 투쟁했을 뿐 정권 교체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무의미한 실패였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 혁명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태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이 변화를 자막에는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변한다’라고 표현했다.)(p.180)”

김진혁 PD는 지금 여기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예전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제도와 구조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 재배치하는 도구는 트위터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트위터를 하고 있으면 기존의 정보가 재배치 되면서, 자기의 존재마저도 재배치돼요. 특정 대상을 좀 더 알고, 모르고를 떠나, 어떤 대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링크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죠.”

그 변화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관계 측면에서 재배치되는 거죠. 더 이상 어떤 리더를 따라간다는 생각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를테면 대통령을 뽑을 때 자기가 지지해서 뽑은 게 아니라 고용한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정치를 바라볼 때, 이건 혁명인 거거든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대세는 누구다. 누가 정의로운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주권자는 왕이고, 하인을 부리듯 선거에 임하죠. 이런 상황이니 과거의 구태의연한 틀 안에서의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속에서의 소비와 생산, 세계관, 민족의식은 무색해지는 거죠.”

이런 변화는 어떤 일을 계기로 일어났다고 보시나요?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에요. 이명박 정권 전부터 시작됐다고 봐요. CEO 대통령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죠. 대통령은 회장님이 아니거든요. 필요에 의해서 CEO를 고용한 거죠. 현 정권뿐 아니라 대부분을 그렇게 판단하는 거죠. 이것이 지난 정권에서부터 이뤄진 변화죠. 지난 정권과 이번 정권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제대로 된 분석이나 평가가 이루어진 게 없어요. 하지만, 현재 트위터 등 이런 소셜 네트워크가 그 단초라고 봐요. 사람 생각이 변화의 실마리고, 그런 변화의 물결을 올라탄 게 <지식채널 e>인 거죠.”

러한 변화 속에서 체험하는 지식, 깨닫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감성적 접근을 시도한 것인가요?

“감성이라는 것은 편의상 지칭하는 것이지, 감성과 이성은 별개가 아니라고 봅니다. 감성을 설명하자면, 이런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학생이 학업고단으로 자살을 했어요. 그 학생이 느끼는 감정 상태를 감성이라고 보는 거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느끼는 걸 감정이라고 표현해요. <지식채널 e>는 포인트를 감성에 맞춥니다. 감정에 포인트를 맞추면 그건 계몽적인 태도예요. 이렇게 느껴라 하는 거죠. <지식채널 e>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최대한 자세하게 드러내고. 느끼는 것은 시청자의 몫으로 던지는 거죠. 지식채널이 감정을 다루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아요.”


“자유로운 생각, 상식적인 태도…… 자존감에서 비롯”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입니다.
빈틈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있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사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지식채널 e-<스페셜>편)


지식채널 5년의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지식채널 e>가 PD님 개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일단 제 머릿속이 재배치가 됐고요. 모순되어 있거나, 고정관념이 있던 부분이 깔끔하게 청소되고, 이유 없이 막혀있던 부분이 열리게 됐어요. 1차적으로는 저 자신에 대해서, 2차적으로는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좀더 상식에 입각한 합리적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죠. 사실 이게 바로 교육의 결과인 셈이거든요. 상식적인 수준에서 교육을 받으면 사람이 누구나 이런 식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거죠. <지식채널 e>만큼 교육적인 게 없구나 싶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기본적으로 개궂은 편이고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갈증이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이런 직업을 택했는지도 모르죠. 특별히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건 좋아합니다. 그런 소통을 통해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현실화되고, 그걸 같이 느낄 때 다가오는 감동이 있잖아요. 그런 감동을 느끼는 걸 참 좋아해요.”

소외된 것에 대한 인정이 많으면서도 감정적이지 않고, 열의가 넘치고 뜨거움이 있는데도 한결같이 상식적인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이런 캐릭터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성장했을 때 시대상황이 영향을 끼쳤겠죠. 제가 보냈던 학창시절은 아마 요즘 20대가 꿈에 그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엄청난 구타와 문제점? 많았지만, 저희는 자살을 잘 안 했어요. 왜냐면 맞아도 다 같이 맞으니까. 맞으면 맞았지, 정신적 굴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반에서 꼴찌 하는 친구도 자존심이 엄청 셌거든요.(웃음)

개발독재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어찌 보면, 시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학생들에게는 엉뚱한 자유와 엉뚱한 형태의 평등이 있던 때였어요. 그렇게 초중고를 나왔어도, 대학교에 올라오면 현실과 싸우게 되잖아요. 봤더니 선배들이 이미 다 해결을 해놨어(웃음) 그래서 좋다, 하면서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겼다든지. 제가 보기에는 이런 환경들이 열정이나 뜨거움, 상식에 대한 믿음, 자존감을 키울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축복받은 세대죠.

제가 좀더 강한 측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면 꼭 저만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예전 친구들을 만나도 그런 묘한 여유가 있어요. 친구들이 먹고 살기가 쉬운 건 아닌데도, 뭔가 여유가 있어요. 억매이지 않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굉장히 분노하고, 이전에 촛불 집회 때 모인 사람들 중에 30대가 많았잖아요. 그런 세대적인 특성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놀았다고 하셨는데, 지금 지니고 있는 생각의 힘은 어떻게 갖췄다고 생각하세요?

“음, 일단 반골기질이 있었고요. 납득이 안 되는 걸 납득시키려고 하는 데에 거부감이 컸어요.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지식채널 e>처럼 문제의식만 갖고 끝나는 게 아니라,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후를 생각해볼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지식채널 e>를 만나 기회를 갖게 된 셈이죠. 해답은 아니지만, 해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름의 도구를 얻었다고 할까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지금 교육은 문제가 많겠네요. 때리지 않아도 굉장히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식으로 체벌하는 곳이 많잖아요.

“지금의 교육환경은 단점만 모아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구타가 완전 없어진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지식채널 e>에서 교육문제를 엄청나게 많이 다뤘죠. 반응도 가장 많았어요. 초등학생의 참담한 현실을 다룬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 현재까지 홈페이지에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이야기예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지식채널 어플?! 또 다른 차원의 세상 열릴 것”


블로그, 스마트폰, 트위터……. 미디어 환경이 굉장히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식채널 e>와 미디어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확실한 건 피드백에 좀 더 민감해져야 되요. 2004년에 <지식채널 e>의 피드백 관리는, 지금 일반 방송프로그램이 하는 정도로 앞서 갔어요. 그럼 지금은 그만큼의 격차를 가지고 더 민감해져야겠죠. 거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수준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완벽한 답을 완성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대안이 나왔다면 빨리 프로그램에 적응하면서, 계속 테스트해봐야 한다는 거죠. 트위터처럼 빠른 반응을 어떻게 프로그램에 적용할 것인가. 그렇다면 제작 시스템을 현재처럼 유지할 것인가, 바꿔야 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겠죠.”

보니까 시청자들이 직접 만든 <지식채널 e> UCC도 많더라고요. 덧글을 다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피드백도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것 같아요.

“사실 아이폰 어플을 건의해볼까 생각해요. 일반 시청자들이 <지식채널 e>를 만들 수 있는 툴을 하나 마련해줘야 되요. 아마 2, 3년 전만해도 만들어도 사람들이 안 했을 테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거든요.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가만히 있는 데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그런 어플이 나오면 아마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누구나 <지식채널 e>를 만들고 내보낼 수 있다면 또 다른 ?원의 세?이 펼쳐질 거예요.”

<지식채널 e> 어플은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메시지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을 테니

“스마트 폰으로 톡톡 쳐서, 자막, 화면 움직임 네 가지 정도만 있어도 되죠. 무료는 네 가지, 유료는 한 여섯 가지 제공.(웃음) 귈면 뿈과 무료 두 개, 유료 몇 개.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가장 큰 고민거리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식채널 e> 그 이후요. 지적 자극을 받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힘을 가졌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거든요.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측면이라면 아이폰 어플을 만들어야죠. 인문학이 결합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든지. 생각하는 것 이후의 상황이 정말 궁금하고, 뭘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돼요. 물론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지만, 지금 분명 어떤 흐름 속에 있고, 그 흐름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거든요. 저는 방송을 하는 사람이니까, 미리 한 발짝 앞서서 프로그램을 준비해놓고 기다려야죠. 그물을 치고 기다려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웃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짧은 드라마예요. 논픽션의 한계를 해소해보고자, <지식채널 e>에 이야기 카테고리를 만든 거거든요. 기존의 어떤 드라마 장르가 아니라 SF, 스릴러 등 파격적인 장르를 믹스시켜보고 싶어요. 이야기의 힘이 강력하되, <지식채널 e>처럼 어떤 결론을 쥐어주지 않도록 하고요.”


오래전부터 드라마,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을 말씀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예요?

“뒤섞여 있는 상황을 사선으로 잘라, 단면을 보는 걸 좋아해요. 추한 인간, 한편 또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걸 통해 사람들이 감추고 드러내기 싫어하는 모습을 드러내보고 싶어요.”

PD님이 만든 드라마, 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빨리 만드는 것보다는, 뭔가 더 쌓는 게 중요해요. 미쳐질 때 폭발해야지. ‘그렇게 하고 싶은 드라마 하시네요’하고 봤는데 꽝이면.(웃음)”


[첨부영상] <지식채널 e> 400회 스페셜 편. 이 프로그램이 해온 것, 하고자 한 것이 잘 함축되어 있다.






#김진혁 #감성 지식의 탄생 #지식채널e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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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08.14

참 괜찮은 무엇인가 의미를 준다고 할까요?~~타방송국보다 시청할 유인이 약했는데 EBS에서 기억나는 프로입니다. 예전 EBS는 '지금은 마로니에는'을 참 재밌게 본 기억이 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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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2010.10.27

늘 생각합니다. 건강보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건 없다고..
볼때 마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받아서.. 가슴한켠이 짠해지는
지식채널 e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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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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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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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EBS(한국교육방송) 피디. 1974년에 태어났다. 중학교 때 방송부에서 처음으로 캠코더를 접하고는 영상에 관한 일을 꿈꾸었다. 뷰파인더 속 세상은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잘라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EBS에 입사했다. '직업 탐구'라는 프로그램으로 피디로 데뷔한 뒤 '효도우미 0700' '미래의 조건' 등을 연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길든 지독한 ‘지식의 편식’ 탓이다. 주입식 교육 때문에 약해진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알려주는 지식,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지식을 찾아 헤매고 있다. 투수 손을 떠난 공이 배트에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 벌이 살기 위한 날갯짓을 200번 하는 시간. 2.4명,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 총구를 떠난 총알이 900미터를 날아가 표적을 관통하는 시간. 그리고. 우주에서 79개의 별이 사라지는 시간…. “1초” 2005년 9월 5일 ‘1초’라는 타이틀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무려 6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EBS의 다큐멘터리 '지식채널e'. ‘암기=지식’이라는 틀을 깨고 ‘지식=생각하는 힘’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제시한 이 프로그램은, 중고등학교 수업 교재로 활용될 만큼 획기적인 기획으로 인정받았다.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라는 김진혁 PD의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5분짜리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자신과는 별 상관없던 환경·인권·노동·언론 등의 사회적 문제가 '지식채널e'라는 옷을 입는 순간, 개인의 문제로 탈바꿈한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생각과 질문, 반성과 고민을 요구하며,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시작되는 지식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리고 자신의 의심조차 의심하라!’김진혁 PD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길든 지독한 ‘지식의 편식’ 탓이다. 주입식 교육 때문에 약해진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알려주는 지식,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지식을 찾아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