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 대통령을 ‘짝사랑’해 왔다. 그중에도 민주당 소속 대통령에겐 헛된 기대감이 지나쳤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하는 것이나 호전성은 외려 공화당 출신을 뺨치는데 말이다. 착각의 시작은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다. 그가 과연 쿠바 사태를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여부와 그의 ‘밝힘증’은 논외로 하자.
『성문 종합영어』 독해 지문으로 처음 접한 그의 대통령 취임 연설문 일부는 수상쩍었다. 그의 격언이 된 구절은 특히 그랬다. “그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사이먼 마이어?제레미 쿠르디, 『위대한 연설 100』, 이현주 옮김, 쌤앤파커스, 2010, 216쪽)
진보 성향의 리버럴한 대통령이 멸사봉공(滅私奉公)을 강조하다니! 미국에서도 ‘케네디 신화’는 많이 퇴색한 모양이다. 하지만 신화는 계속된다. 2008년 11월 4일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버락 H.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는 ‘검은 케네디’다. 오바마 진영의 선거구호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였다.
YES24에서 검색되는 오바마 관련서는 100종을 웃돈다. 찬양 일색은 아니어도 절대 다수가 긍정적이다. 오바마를 비판한 책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마저 오바마와 그의 팬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준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 양편에서 오바마의 실체를 해부한 책 두 권은 각기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6부 제목에 있는 오바마의 이름이 차례와 본문의 6부 표지 면에서 공히 “오마바”로 오자가 난 것은 블록 복제의 폐단이긴 하지만, 그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는 사람은 ‘오바마’인지 ‘오마바’인지 헛갈리는 게 사실이다. 나도 그랬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배경을 탐구한 것까지 뭐라 할 순 없지만, ‘빌더버그 그룹’에 대한 논의는 압축하는 게 어땠을까?
세계 권력구조의 정점을 이룬다는 “빌더버그 그룹은 1954년 네덜란드 베른하르트 왕자가 ‘빌더버그 호텔’에서 창립했다. 미국과 유럽 정계를 비롯해 관계, 재계, 언론계 등의 유력인물 100~150여 명으로 구성된 우파 수구보수 그룹이다.” 또한 빌더버그 그룹은 “미국의 외교위원회(CFR)와 삼변회(Trilateral Commission) 등과 함께 커튼 뒤에 숨어서 은밀히 세계를 조종한다고 해서 ‘그림자 정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해마다 나라를 바꿔가며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참석자들의 비밀준수 서약 때문에 회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그런 안개를 걷어내어 회의의 실상을 전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나, 미국과 유럽의 주류 언론사는 빌더버그 그룹과 한통속이다.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리스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신문사와 ABC, CBS, NBC 같은 방송사의 간부들도 회의에 참석한다.
그렇지만 이들 언론사는 빌더버그 회의 자체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하여 이 책은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다니엘 에스툴린의 『The True Story of The Bilderberg Group』에 기대어 빌더버그 그룹의 실체에 다가선다. 빌더버그 그룹과 관련된 오바마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오바마가 빌더버그 그룹의 ‘간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알렉스 존스)가 오바마가 금융 지배세력의 총애를 받던 적임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지난 2008년 6월이었다. 2008년 6월은 미국 버지니아 챈틸리에서 빌더버그 회의가 열렸던 때다. 그 회의가 열리던 날, 국영언론은 아침 일찍 오바마 후보의 시카고와 중서부 지역의 유세일정을 떠들어댔다. 하지만 난 그게 99% 오보일 가능성을 불과 며칠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오바마는 시카고로 가는 발길을 돌려 버지니아 주 워싱턴 외곽 챈틸리의 웨스트필즈 메리엇호텔에서 열린 빌더버그 회의에 민주당 대선 후보를 다투던 힐러리 클린턴과 몰래 참석했다는 것이다. 또한 빌더버그는 오바마의 경제팀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엔 빌더버그 비밀회원들이 수두룩하다.
탐사전문 기자이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알렉스 존스는 오바마가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와는 다르게 “소신과 철학으로 똘똘 뭉친 원칙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몸은 백악관에 있지만 정신은 월가에 있다”는 것이다. “부시가 기름 묻은 석유장사치들로 백악관에 울타리를 쳤다면 오바마는 손때 묻은 달러장사치들로 울타리를 쳤다.”
알렉스 존스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 철회와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으로 드러난 오바마의 기만성, 수준 미달의 공약 실행, 오바마가 미디어의 ‘얼굴마담’이자 국제금융세력의 ‘세일즈맨’인 점 등을 직시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실체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오바마와 부시는 50보, 100보 아니었나.
이 책은 독자가 받을 충격을 우려하는 저자의 군걱정과는 별개로 찝찝한 측면이 있다.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앤드류 잭슨 대통령, 그리고 존 F. 케네디를 숭앙하고 투쟁의 전범(典範)인 양 제시한 것이 그렇다. 아무튼 알렉스 존스의 책(혹은 다큐멘터리)은 “좌파나 우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초당파적인 기록이다.”
보수우파 색채가 짙은 저널리스트 미셸 말킨의 『기만의 정권(Cuture of Corruption)』(김태훈 옮김, 시그마북스, 2010)은 일관된 저자의 당파성이 몹시 거슬린다. 그런데도 책을 다 읽은 게 신기할 정도다. 한국어판 『기만의 정권』은 표지부터 문제가 없지 않다. 헤드카피 “탈세와 부정으로 얼룩진 오바마 정권의 이면”은 오바마 정부를 부패한 집단으로 몰아가려한다는 점에서 다소 선정적이다.
세상에 탈세와 부정으로 얼룩지지 않은 정부가 어디 있는가. ‘부패한 (정치)문화’라는 폭넓은 의미의 원제목을 특정 정권만을 지칭한 것처럼 협소하게 의역한 것은 저자의 의도를 거스른다. 미셸 말킨은 권말에다 63쪽에 걸쳐 논거의 출처를 나열할 만큼 ‘영악하다’. 논거에 덧붙인 그녀의 말본새는 때로 고약하다. 또한 같은 말은 반복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미셸 말킨의 표적은 오바마 대통령이라기보다 미국 민주당이다. 미 공화당을 대놓고 편들진 않지만, 그러는 게 더욱 거슬린다. 그녀는 자신이 지지하는 공화당의 일부 극소수 정치인을 ‘쪼다’로 여기는 것 같다. 한데 제43대 대통령 조지 부시에 대해선 매우 정중하다. 그만한 대통령이면 괜찮다는 듯이. 그녀에게 로널드 레이건은 완전 ‘짱’이다.
미셸 말킨은 후보자가 낙마를 거듭한 오바마 정부의 첫 내각 인선을 비꼰다. “반면 <내셔널 저널(National Journal)>에 따르면 전임 대통령들의 경우 빌 클린턴은 8년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여섯 번, 조지 W. 부시는 두 번, 조지 H. 부시와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는 한 번의 고위직 지명철회를 기록했다.” 오바마의 공약 불이행에 대해선 질타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 거부감은 미셸 말킨의 싸잡은 비난이 부당한 까닭이다. 미셸 말킨은 오바마가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한 찰스 프리먼이 “이스라엘의 방어정책이 테러리즘의 주된 원인이라는 시각을 가진 과격한 반이스라엘주의자”라는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 기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법무부 관료일 때, 푸에르토리코 민족해방군 테러리스트를 사면하는 데 관여한 것은 장관 임용의 심각한 결격 사유란다. 테러범을 변호한 “급진좌파 변호사”를 맹비난하는 건 약간 어이가 없다. 그러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아직 노조 설립과 가입의 자유가 미흡한 우리로선 그녀가 강조하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권리”는 나중 문제다.
미셸 말킨처럼 오바마의 잘못된 각료 인선을 비판하고, 백악관에 로비스트를 들이지 않겠다던 공약의 불이행을 꼬집는다. 티모시 카니는 미셸 말킨보다 공화당을 좀 더 자주 언급한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보는 시각은 알렉스 존스와 유사하다. 알렉스 존스의 반대론이 일방적 선언에 그친다면, 티모시 카니의 구체적 접근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의 원제목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 형태의 조어(造語)다. 의역한 한국어판 제목이 그리 문제될 것 없지만, 본문에서 일부 직함의 흐릿한 번역은 다소 아쉽다. 앨 고어는 1992년 선거에서 “부주지사”(38쪽)가 아니라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였다. 세크러터리(Secretary) 티모시 가이스너는 “재무부 비서실장”(74쪽)이 아니라 재무장관이다.
티모시 카니가 말하는 “오바마노믹스란 새로운 규제, 세금, 보조금을 만들기 위해 거대기업과 정부가 제휴하는 정치 전략이다.” 오바마노믹스의 근간이 되는 경제 원칙은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해 산업을 집중시키고 거대기업을 편애”하는 것이다. 카니는 오바마가 겉으론 민중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속으론 새로운 기업주의를 시도하고 있다며 “이 책은 이것을 밝히기 위해 씌어졌다”고 덧붙인다.
아무튼 티모시 카니는 큰 정부와 거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이 ‘잘못된 통념’은 거대기업과 거대정부는 서로 대립하며, 정부는 규제를 통해 거대기업을 제한하고, 거대기업은 (정부의 규제가 아닌) 자유방임적인 경제체제를 원한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우린 그런 ‘잘못된 통념’조차 없다. 정부와 대기업은 상호보완적이다.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오바마의 아프팍 전쟁』(차승일 옮김, 책갈피, 2009) 필자들의 성향은 알렉스 존스보다 더 왼쪽이다. 이들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대한 압축된 논의는 순도가 높다. 아프팍(AfPak) 전쟁은 미국과 파키스탄 합동 군사작전의 결과 발생한 전쟁을 오바마 정부 관리들이 편의상 부르는 명칭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분쟁은 서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다.”(제프 브라운, 「파키스탄- 미국 제국주의의 취약한 고리」)
영국의 아동문학가 조너선 닐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선한’ 전쟁인가?」는 현지 체류 경험이 밑바탕을 이룬다. 닐은 인류학자로서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 조사를 벌이며 유목민들과 친분을 쌓았다.
“책과 아프가니스탄 부자들은 아프가니스뫅이 마치 명예로 움직이는 사회인 양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내가 알고 지내던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서 ‘명예’에 해당하는 단어가 튀어나온 경우를 단 한 번밖에 듣지 못했다. 그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오히려 ‘수치’였다. 정부와 사회가 온통 부패했고 모든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었다.”
닐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과거에 이슬람의 이름으로 영국과 맞서 싸운 세 번의 전쟁(1838년의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1878~1880년의 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1919년의 3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모두 이겼다.” 1979년 성탄절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7년에 걸친 전쟁은 4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소련에 맞선 전쟁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은 승리한다.
9.11 테러를 빌미로 촉발된 5차 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침략자의 패퇴가 점쳐진다. “이제 아프가니스탄 인들은 미국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다. 그들은 영국을 세 차례 격퇴했고 최근에는 소련을 상대로 승리한 기억도 있다. 동시에 이들은 승리의 대가가 엄청나게 비싸리라는 점도 알고 있다.” 조너선 닐이 전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비정부기구(NGO)의 부패상은 놀랍다.
외국계 NGO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외 원조금을 착복했다. 첫째는 봉급과 수당이다. “고참 NGO 간사들은 아프가니스탄 장관들보다 훨씬 더 많이 번다. 카불의 한 NGO 사무실에서 일하는 외국인 간사 한 명의 월급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현지인 스무 명의 월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다.” NGO의 고위급 외국인 간부들은 공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수수하기도 한다.
“서구의 사회주의자, 세속주의자, 페미니스트 일부는 우익 이슬람주의 세력이 저항을 이끌고 있는 점을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거꾸로 이해한 것이다. 우익 이슬람주의 세력이 저항을 주도하는 이유는 좌파들과 세속주의자들이 점령군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뒤늦게 저항의 길을 선택한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인들이 처음부터 저항을 호소했던 사람들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의 좌파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해야 하는 이유」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팍 전쟁에서 강온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개발 원조’라는 당근보다 ‘경량화 군대 증파’라는 채찍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의 계획은 럼스펠드 사퇴 이후 이미 계속 진행 중인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의 수를 기존의 3만 명 수준에서 앞으로 2년 안에 5만 명 수준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는데, 이 계획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그러면 오바마는 어째서 확전을 꾀하는 것일까? 그건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목적은 여전히 점령 자체다. 미국의 목표는 이 전략적 요충지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선조들의 꿈이 우리 시대에도 살아 있는지 여전히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진 힘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바로 그 답입니다.”(2008년 11월 4일 미국 대선 승리 수락연설, 『위대한 연설 100』, 293쪽)
최성일
csi67
2010.07.02
무덤덤
201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