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에겐 ‘탐구 생활’이 필요해!
곤충에 관심이 없다고? 파브르의 인간적인 기록은 다른 사람(혹은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인간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글ㆍ사진 김수영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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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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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곤충기 세트
장 앙리 파브르 저/김진일 역/이원규 사진/정수일 그림 | 현암사

우리는 어렸을 적, 누구나 「탐구 생활」을 했었다. 아아, ‘남녀탐구생활’ 말고, 방학과 함께 찾아오는 「탐구 생활」 말이다. 보라색 표지를 넘겨 「탐구 생활」을 시작한 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 대해 주변 환경에 대해 탐구해야 했다. 하루의 일과표를 짜거나, 주변의 식물, 동물의 모양새를 따라 그려 넣어야 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한 것은, 내 어린 시절 한구석에 탐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거다. 페트병에다 상추를 심어 두고, 그림으로 그렸던 관찰 기록장, 학교 운동장의 꽃을 관찰했던 과학 보고서 등등이 떠오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상당히 많은 이공계 글쓰기를 접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파브르 곤충기』를 보면서, 나의 탐구 생활이 떠올랐다. 그건 마치 전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파브르가 56세 때부터 30년에 걸쳐 집필한 『파브르 곤충기』. 어린 시절 접한 『파브르 곤충기』는 부분만 발췌한 번역본이거나 곤충의 정보를 요약해 놓은 것이 대부분일 거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묘미는, 곤충의 정보가 나열된 행간 사이사이에 담겨 있는 과학자의 환호와 탄식, 혼잣말에 있다. 관찰의 시작부터 방법, 그 사이에 들었던 의문점과 해결 방법, 실험을 그만둬야만 했을 때의 심정이라든지, 하루 종일 벌레만 관찰하고 있느라고 경찰에게 추궁을 당하거나, 아낙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일화 등등 이 과학자의 꼼꼼한 생각의 기록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이런 문장과 맞닥뜨릴 때, 나는 종종 파브르에 대해 상상해 보곤 했다. “조롱박벌의 침, 건장한 먹잇감이라도 놀랄 만큼 빨리 쓰러뜨리는 그 침에 쏘이면, 과연 얼마나 아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자, 그렇다면 내 자신이 실험동물이 되어 보자.”(p.128)

곤충학자라기보다 철학자,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파브르의 곤충 묘사도 일품이다. “자, 드디어 조롱박벌이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는 번데기의 껍질만 벗으면 된다. 껍질은 본을 뜬 듯 몸에 꼭 맞는 얇은 막이며, 완전한 성충의 모습과 색깔을 보여 준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벌은 마지막 탈바꿈의 전주곡으로 갑자기 힘차게 발버둥친다.”(p.141) 번데기에서 막 벗어나는 벌의 몸짓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지 않은가.

이번에 완역된 『파브르 곤충기』는 40여 년을 곤충과 동고동락한 곤충학자 김진일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여러 번 번역된 적이 있었지만, 곤충학자의 원전 번역은 처음이라 더 의미 있다. 150년 전에 사용하던 학명은 현재에 맞는 학명을 추적해서 고쳤고, 본문 속 동식물은 우리나라의 서식 종과 가장 가깝도록 우리말 이름을 지었다. 정식 우리 이름이 있는 종은 따로 표시하여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여기에 생태 사진 전문 작가 이원규 씨의 생생한 곤충 사진과 만화가 정수일 씨의 일러스트가 가미되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곤충에 관심이 없다고? 파브르의 인간적인 기록은 다른 사람(혹은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인간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를테면, 의아한 장면을 목격한다. 조롱박벌은 왜 먹이를 창고에 넣기 전에 집 안을 둘러볼까? 혹시 집을 비운 새 침입자가 없었는지 살펴보는 걸까? (파브르라는 천재와 나라는 일반인이 다른 점이라면, 나는 상상에 그칠 뿐이지만, 파브르는 직접 관찰과 실험에 착수한다는 점!) 그리하여 기생파리가 틈만 나면 남의 먹을거리에다 자신의 알을 낳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 조롱박벌은 이런 기생파리에게 세금(!)을 바친다는 오묘한 자연의 질서까지 밝혀낸다.

이 과정 속에서 “내 짐작이 맞았다!” “벌레의 세상도 사람처럼 성공의 비결은 첫째도 뻔뻔하기, 둘째도, 셋째마저도 뻔뻔해야 할까?” “곤충의 본능에 대한 온갖 기능을 누가 다 설명할 수 있겠나? 조롱박벌의 지혜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의 판단력은 과연 얼마나 불쌍하단 말이더냐!” 등등 파브르의 추임새는 관찰의 생생함을 살리고, 당신에게도 기꺼이 탐험가의 심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이 아름다운 탐구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에게 탐구 생활이 얼마나 절실한가 느낄 수 있었다. 관찰은 대상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애정이고, 노력이 아닐까. 다른 것을 골똘히 관찰하는 것으로, 내 세계의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노 과학자의 기록을 통해 느꼈다. 애정을 전제한 관찰은, 반드시 의문을 잉태하기 마련. 만약 무엇인가를 알아 가는 데에 과정이 있다면, 이러한 사이클을 갖고 있지 않을까? 관심→관찰→의문→관찰→더 커진 관심(애정)→……→이해!

“곤충학은 곤충을 실제로 관찰해야 하는 것이지, 바늘에 꽂아 표본상자에 늘어놓는 것뿐이어서는 안 된다.”(p.147) 아무리 생각해도 파브르의 이 말은, 비단 곤충학에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다.

장 앙리 파브르

곤충학자이며 박물학자인 파브르는 1823년 프랑스 남부의 아베롱주 생레옹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가난했으나 면학 의욕이 남달라 고학으로 사범학교를 졸업해 19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독학으로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학사 자격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곤충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31세부터 본격적으로 곤충을 연구하기 시작해 이듬해인 1854년 31세가 되던 해에 레옹 뒤프르가 쓴 논문을 읽고 박물관 연보에 ‘노래기벌’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곤충 연구에 전념하여 30여 년에 걸쳐 곤충과 식물,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1878년 55세가 되던 해 『곤충기』 1권을 출간하였고 1907년까지 10권을 완성하였다.

#파브르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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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2.11

우와 파브르 곤충기 전집 완간이군요. 곤충기 이보다 더 생생하고 재밌는 이야기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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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모자

2010.06.05

곤충을 좋아하고 만지는 것은 더 좋아하는 아들한테 사주면 좋을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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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