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알면, 밥이 되고 깨어 있는 소비자가 될 수 있다! - 『법은 밥이다』 장진영
‘법을 아는 것’이, ‘곧 밥을 먹는 것’이 된 시대라고 말하는 책이 있다. 『법은 밥이다』(장진영 지음 | 끌레마 펴냄). 낯익은 이름이다.
201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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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궁금했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하는 말. 흔히 이 말은, 법을 논할 필요도 없이, 법적인 강제가 개입될 필요도 없이, 이른바 ‘착하게 사는 사람’을 일컫는 상투어다. 그렇게 오랫동안 별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았는데, 수년 전부터 ‘법 없이 살 사람’은 다른 뜻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 잡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에 100위에 오른 엄청난 갑부(라고 쓰고, ‘졸부’(졸렬한 부자)라고 읽는다). 희한한 기업 지배 구조와(노동자의 피땀으로 축적된) 돈으로 대한민국의 법 위에 군림한다. 누구나 알듯, 정직과는 거리가 먼 삶이면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며 이 웃음기 지워진 세상에 실웃음을 안겨 준 분. 정직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뀐 건 아닌가, 순간적으로 혼란을 안겨 주는 저 유머러스함. 어쨌든 그 양반은, 법 없이 살 사람임이 분명하더라.
그러니까, 요즘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애초 알던 것과 반대의 뜻일 수도 있다. 무법자. 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법이 엄연히 존재해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특정인에겐 적용되지 않는 그런 경우. 좋겠다. 법 없이 살아서! 헐, 방금 한 말. 그냥 웃어 넘겨라.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니까. ‘법’ 얘기를 하자니, 요 몇 년간 그런 생각도 들었다는 거다. 정색하고 ‘아니 그럼, 지금은 법이 필요 없는 시대란 말이냐!’고 되묻지 마시란 얘기다. 난, 법을 아주 잘 ‘준수’하는 사람이다.
사실, 세상이 살벌해지고 강퍅해질수록 법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한국을 감싼 이후,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듣게 된 말 중의 하나가 이것 아녔을까. “법으로 해결하자.” 미디어를 통해서도 숱한 경제 법률 용어가 쏟아져 나왔다. 언제 ‘개인 회생’이니 ‘파산’ ‘면책’과 같은 단어를 흔하게 접해 봤던가. ‘집단소송제’는 또 어떻고.
‘법을 아는 것’이, ‘곧 밥을 먹는 것’이 된 시대라고 말하는 책이 있다. 『법은 밥이다』(장진영 지음 | 끌레마 펴냄). 낯익은 이름이다. 오줌싸개 명예훼손 공방 등을 통해 법에 대한 다층적인 가치와 함의, 혹은 풍자를 담아냈던 <무한도전 - 죄와 길>에서 유재석 쪽의 대리인. 이미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낯익은 그다. 뭣보다, 사법연수원 시절 카드사 항공 마일리지 일방 축소 무효 소송을 내 승소를 이끌어 냈던 인물. 대형 카드사와 로펌을 상대한 소송에서 1만 명이 넘는 카드 사용자가 구제됐고, 밀린 마일리지를 받아 냈던 사건이다.
그 밖에도 장 변호사는 페놀 오염 손해배상청구 소송, 경유차 환경 개선 부담금 취소 소송 등에서 승소하고 최근 시티은행 카드의 항공 마일리지 제공 기준 변경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비자 대변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그는,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자가 결국 우리 세계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낸 것도 그런 이유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법률 용어를 정리해줌으로써, 소비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한편으로 책을 낸 것이 어지간히 부담도 됐나 보다.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악몽처럼 달고 다니듯,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합격이 취소되거나 연수원 입학이 취소되는 꿈에 진저리를 치듯, 그는 책 때문에 꿈에서도 시달린다. 군대 재입대나 사시 불합격 꿈도 꾸지 않았던 낙천적인 그가, 얼마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 그런 그를 지난 17일 역삼동에 위치한 법률 사무소에서 만나, 책과 법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법률 용어 사전’이 나온 계기
이름 때문에 오해도 받았겠다. 여성이 연상되는 이름이기도 하고, 고인이 된 영화배우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고.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
“음,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이름 때문에 편한 점이 있었다. ‘장진영’이라고 하면, 영화배우와 이름이 똑같다며 사람들이 기억을 잘하더라. (이름이) 나한테 도움이 됐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동기생 중에 같은 이름의 여성이 있다. 지금 검사 하고 있다. 그 검사와 장진영 판사도 있다. 역시 여성이다. 그렇게 법조계에 세 명이 있는데, 모여서 장진영 검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장진영 클럽’을 만들자고.(웃음) 영화배우도 클럽에 같이 넣어서. 진짜(고 장진영과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거의 찾았었는데…….”
책은 일종의 사전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책을 보니 사전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어떻게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싶었나.
“책을 쓰게 된 기획 의도를 말해야겠다. 내가 법대에 다녔는데, 대학교 1학년 때는 어쨌든 법률 용어를 모르잖나. 법률 용어 사전을 처음 샀다. 그런데 뭔 말인지, 용어 해설이 더 어려운 거다. 책꽂이에 꽂아 놓고 결국 버렸다. 어쨌든 변호사가 됐고,(이하 <솔로몬>)을 했는데, 프로그램 성격상 사람들에게 법률을 쉽게 설명해야 될 의무가 있다. 사전을 우연히 다시 봤는데, 20년 전이랑 똑같이 어려운 거다. 문제가 있다! <솔로몬>은 50대의 중학교를 졸업하신 분도 알 수 있게끔 해야 했다. 그런 개념을 도입한 법률 용어 사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대처법까지 다룬 법률 상식 책은 많은데, 법률용어를 쉽게 풀어놓은 책이 없더라. 사실 법률 용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과 개념만 있으면 응용이 가능하다. 그만큼 용어가 중요한데, 그런 책이 없으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전식 편제와 분야별 서술의 장점을 모두 살려서 기술했다. 법률 분야별로 구성할 경우, 법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소유권, 물권, 채권, 점유권 등을 설명하기 어렵고, 사전식으로 구성할 경우, 법률 개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주요 표제어는 ‘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표제어와 관련된 용어들은 표제어 하위에 배치함으로써 법률체계를 유기적?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했다.(p.9)
그런 문제의식을 언제부터 품었고, 어떤 계기로 출판하게 됐나.
“내가 몰랐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예를 들어, 매매하면 파는 사람이 매도인, 사는 사람이 매수인인데, 그걸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 대학을 나온 분들까지도. 그래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를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얘기하는 중에 그런 콘셉트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였다. 희한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진 거지.”
책 출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없나.
“지난해 4월에 시작했는데, 7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3개월이면 원고 넘기고 손 털겠다, 했는데, 10개월도 빠듯했다. (독촉 많이 받았겠다.) 아, 마감 독촉 많이 받았다.(웃음) 지난해 2월부터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시작했고, 맡고 있는 사건들, 방송, 그러니까 책을 쓸 짬이 안 나더라. 가족도 있으니 애들과도 놀아 줘야 되지. 시간 확보를 많이 못 했는데, 언제 책을 이렇게 썼느냐고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한다. 비밀이 있다. 차를 잘 안 갖고 다녔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용어 2~3개씩 정리하고 그랬다. 줄거리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많이 어렵진 않았다. 법정 가서 기다리면서도 치고. 자투리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법률 용어, 일상과 생활에 필요한 이유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재미있는 제목이기도 하고,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딱 보여준다. 요즘 말로, ‘제목의 좋은 예’랄까.(웃음) 모음만 살짝 바꿔 ‘법’과 ‘밥’을 등가시킨 이 제목, 어떻게 나왔나.
“처음에는 ‘경제법률 지식사전’이었다. 그런데 마케팅 교수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책 얘기를 꺼냈다. 제목을 알려 주니까, 교수들이 하나같이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지금 제목이) 떠올랐다. 경제법률 지식사전인데, 경제생활을 잘하려면 이 법률 용어들을 알아야 한다. 법은 밥이다. 법을 알아야 밥을 굶지 않는다. 처음 제목하고도 벗어나지 않고 말랑말랑하고. 출판사에 가서 지금 제목으로 하자고 했고, 출판사에서도 좋아하더라.”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도, 법이야말로 밥이다. 밥벌이의 수단. 장 변호사에게 법은 어떤 존재인가.
“법은 나한테 밥벌이 수단이기도 하지. 법하고 밥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다. 법대생들은 자신들을 ‘밥대생’이라고 한다. 이상하게 밥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학생 식당에 가면 맨 앞에 있는 애들이 법대 애들이다.(웃음) 지금 나한테는 직업(법)이 생계 수단이라는 것뿐 아니라, 즉 나만의 밥이 아니고 일반인들이 밥을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룰이 법이다. 그 룰을 어기면 콩밥을 먹게 되는 거고, 잘 지키면 집에서 하는 밥을 먹을 수도 있고.(웃음) 그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룰이 곧 법이다.”
책에 법률 용어 360개가 실렸다. 무수히 많은 법률 용어 중에 어떤 기준에 의해 간택된 건가.
“처음 기획할 때 기준은,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는 용어들이어야 한다는 거였다.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런 것들. 그렇게 하면 형사, 민사, 노동도 다 다뤄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넓었다. 생각한 것이, 돈과 관련된 그런 용어만 모아 보자. 그게 일차적인 관심사가 될 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과 관련돼서 문제될 수 있는 것을 우선 뽑았다. (몇 개나 뽑았나, 줄여 나간 건가?) 아니다. 처음에 한 150개 정도 뽑히더라. 늘려간 거다. 풀다 보면서 새끼를 치게 된 거다. 예를 들어, ‘담보’라는 용어를 풀다 보면, ‘저당권’과 같이 꼭 알아봐야 하는 용어들이 나오게 되는 거지.”
한 번에 다 읽어 볼 책이라기보다 옆에 끼고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는 그런 책이더라. 생명력이 꽤 길 것 같다. 가정상비약 아닌, ‘가정 상비책’이라고 할까.(웃음)
“상담하다 보면, ‘돈을 안 갚아요, 받아주세요.’라면서 많이 오신다. 그런데 돈이 오간 근거를 달라고 하면, ‘없어요. 친한 친구라 차용증을 안 썼어요.’ 이런 분들이 많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청구하느냐고 물으면, 하여튼 줬다는 거야.(웃음) 그렇게 답답할 때가 있다. 보통 제사 지낼 때 지방(紙榜) 쓰는 법을 인터넷 등에서 찾아보잖나. 결혼식 갈 때도 마찬가지고. 틀리게 써도 집안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찾아본다. 그렇지만 법은 우리가 제대로 모르면 집이 망할 수도 있다. 집에 이런 것을 두고 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부록(필수 법률 서식 33 노트)도 넣었다. 필요할 때마다 봤으면 좋겠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어려운 부탁이 있다. 법률 용어 360개 중에 독자들이 이것만큼은 꼭 봐줬으면 하는 용어가 있다면.
“음, 필수 용어라……. 그건 당장 쉽지 않고. 이런 건 있다. 사실 변호사는 돈 꿔줄 때 차용증이나 현금 보관증을 꼭 받으라는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쉽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한테 어떻게……. 조금 더 실질적인 고민을 하자면, 현금 보관증도 간단하게 쓰면 되긴 해도,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 돈 얼마를 보냈으니 갚아라. 상대방이 고맙다고 답신이 오면, 그것만 저장해 두면 된다. 차용증이 없어도 훌륭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책에도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는 팁을 넣어 놨다.”
“이제는 내 재산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 상식을 넘어 기본적인 법률 지식도 알아야 하는 시대”라고 했지만, 대중들에게 법은 아직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 같다. 문화사회적으로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건데,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언제부터인가 희박해졌다. 과거를 봐라.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기록이 꼼꼼하잖나. 아마 일제 때부터 그렇게 된 것 같다. 뭔가 기록에 남겼다가 발각되면 잡혀갈 수도 있어서 그런 기록 문화가 없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남기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법도 문자고, 문자로 남겨야 의미가 있는데, 그런 것과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생활 적용이 어렵고. 이성보다는 인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또 법이라는 것이 딱딱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잖나. ‘너하고 나 사이에 무슨…….’ 그런 말들이 법을 멀리하게 한다.
믿고 간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는데, 그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런 걸(기록이나 문자) 남겨야 한다. 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라고 얘기한다. 정말로 그렇다. 계약서가 있으면 배신하고 싶어도 억제가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돈을 빌렸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한 사람만 계약서를 썼다. 그러면 계약서를 쓴 사람한테 먼저 갚는다. 그러면 관계가 유지된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일수록 신경을 써야 한다.”
똑똑한 소비자가 필요하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 어떤 변호사는 싫어하던데, 혹시 싫어하는 말 있나?
“‘세상에는 나쁜 변호사와 더 나쁜 변호사만 있다.’는 조크도 있다.(웃음) 물론 미국식 조크다. 미국에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다 보니, 부작용이 많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닌데, 점점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변호사가 반성해야 하는 면도 있다. 옳지 못한 것을 돈 받고 하고. 부정적인 면이 있어서 비판받을 만도 한데, 그래도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변호사에게 갈 수밖에 없지 않나. 미워도 가까이 둘 수밖에 없는 변호사다. 변호사를 기득권 세력으로만 보고 그러는 건, 억울한 면이 있다.”
변호사의 중요한 도구도 언어라고 생각한다. 법정 등에서 사용하는 법률 언어와, 법률 용어 사전이지만 책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어떻게 다르던가.
“직업상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법률가들이다. 말하자면 선수들이라, 선수끼리 쓰는 용어는 간결하고, 길지 않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지면 다른 일반인들이 못 알아듣게 하려는 게 아니고,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툭툭 튀어나온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법률가끼리 쓰는 말에 익숙해지다 보니 상대방도 알겠거니 착각을 하는 거지.(웃음) 법정을 가면 판사들도 어려운 말을 쓰고. 일반인들하고 얘기할 땐 풀어서 일반인 눈높이로 얘기해 줘야 한다.
언어가 물론 상호 소통을 하는 기능을 하지만, 전문 용어만 쓰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서 쓰는 언어의 종류는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이 일반인들에게 내가 하는 법을 이해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해 보니 너무 어렵더라.(웃음) 두 가지 정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예를 들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금 얼마에 금전을 변제하여야 한다.’라고 해보자. 이걸 풀어야 했는데, 고민이 채권자나 채무자라는 용어를 써도 될까. 풀면 이렇게 된다. ‘돈을 빌린 사람은 빌려 준 사람에게 돈을 갚을 때가 다 됐으므로 돈을 갚아야 한다.’ 길이가 2배로 훨씬 길어진다. 비효율적이나 감당해야 하는 건데, 처음에는 채권자나 채무자는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해서 풀 생각을 안 했다. 출판사에서 풀어야 한다고 하더라. 수위를 어디까지 낮출 것인가 어려웠다.
둘째, 우리 법률 용어에 일본식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안 풀리는 말도 많다. 예를 들면 ‘급부’. 일본식 말이다. 급부는 단순히 돈을 주는 것을 넘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이를 포괄하는 우리 단어는 없다. 그대로 쓰면 너무 추상적이고. 고민 많이 했다. 어떤 경우엔 성공을 했고, 어떤 경우엔 피치 못해서 썼다.(웃음)”
방송 등을 통해 이미 ‘스타 변호사’다. <무한도전>은 하나의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은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지하철에서 마음 놓고 입 벌리고 자지도 못한다던데, 이런 유명세 어떤가.
“<솔로몬> 때부터 노출이 됐는데, 조금씩 실감을 했다. 이번 <무한도전>이 결정적이었다. 요즘 두 번 이상씩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놀라서. 그 시선을 느낀다. 두 번 이상 쳐다보는 사람이 <무한도전> 이후 20명 가운데 7~8명쯤 된다. 그중에서도 ‘오~’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가 계속 있다. 알아보는 사람은 많다 보니, 정말 제약이 많다.(웃음) TV에 노출됐다는 차이뿐인데, 사람들은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지하철을 타고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비웃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아는 척을 하면서 법률 상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졸지에 무료 법률 상담까지 하는 거지. 안 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 요즘은 차를 타고 다니는 횟수가 많아졌다.”
사법연수원 시절의 카드사 마일리지 일방 축소 무효 소송을 시작으로, 화제가 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소비자 대변인’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이 타이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과분하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법연수원 시절에 카드사 마일리지 소송을 해서 만 명 넘게 구제됐다. 이차적으로 지금 시티은행이랑 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10만 명 정도 된다. 디젤차 소유자 대신 환경 개선 부담금 취소 소송도 했고. 내가 하는 일 상당 부분이 소비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옛날 1990년에 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시위를 많이 했다. 기존의 투쟁 방식은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떼를 쓰고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비된 제도 안에서 신사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는 면이 강하지 않나. 옛날부터 서민이라기보다, 소비자를 위한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꿈이 소비자를 위한 단체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고시 공부할 때부터 그런 것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관심이 있었고.
대학 때도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총학생회는 학내 사정이나 생활 주변의 불편함 같은 것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과도했다. 할 일이 100이면 70~80은 학생 복지 등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사회 이슈를 고민해야 했는데, 거꾸로 됐다. 불만이었다. 학생 운동 주류에 낄 수도 없었고. 졸업하고 몇 년 있으니 비주류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으로 나오고 하더라. 앞으로 정치도 이념적이 아닌 생활 밀착형으로 가야 한다.”
법대를 다녔고, 항공사에서 5년 근무했고, 법조계에 뛰어들었다. 변호사 말고 판?검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회사를 그만둔 계기가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멋있고 재밌어 보였다. 항공사 법무팀에 있다가 변호사와 일을 함께하게 됐는데, 그 사람들 방도 따로 있고, 졸릴 때 잘 수 있겠다 싶었다.(웃음) 법대 다닐 땐, 사실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일 터지면 수습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변호사 중에서는 기업에 일이 터지기 전에 참여해서 협상도 하고 싸움도 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계약이 어긋나서 서로 싸움이 났을 때 끼어드는 게 아니고. 최근에 아랍에미레이트(UAE) 원전 수주할 때도 변호사가 크게 기여했다. 그런 식으로 계약 단계에서 개입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판사 될 생각은 없었고 검사는 해볼 만하다 싶었는데, 나이 들 만큼 들어서 호사였다. 식구들도 있고, 변호사도 재밌겠다 싶었다.”
법률 용어 사전을 냈으니, 대중이 법과 가까워지기 위한 에세이나 스토리텔링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생각 있나.
“아직은 콘텐츠가 부족하다. 좀 더 내공을 쌓아야 될 것 같다. 그런 류의 책이 진짜 내 책이겠지.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고. 좀 더 여문 다음에 하고 싶다. 이번 책도 물론 훈련이 됐는데, 이런 류의 책을 좀 더 내보고 싶다. 약간 내 시각도 들어가겠지만, 국민들에게 관심 있는 판결들을 모아서 해설하는 그런 책도 내보고 싶다. 출판사랑 얘기도 하고 있다. 기밀인데 왜 누설했느냐고 할까?(웃음)
이번에 책을 처음 써 본 건데, 재미도 있고, 고달프기도 했다. 알차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기도 하고. 내겐 똑똑한 소비자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런 걸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재를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계속 해 나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비자라고 하면 약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라서 약자가 아닐 수도 있다. 깨어 있는 소비자일 때 약자가 아닐 수 있다. 깨어 있으려면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이 책이 그런 걸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집 안에 한 권씩 놓고 서식지 같은 것을 필요할 때마다 찾아봐도 좋겠고.”
예를 들자면, 한 잡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에 100위에 오른 엄청난 갑부(라고 쓰고, ‘졸부’(졸렬한 부자)라고 읽는다). 희한한 기업 지배 구조와(노동자의 피땀으로 축적된) 돈으로 대한민국의 법 위에 군림한다. 누구나 알듯, 정직과는 거리가 먼 삶이면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며 이 웃음기 지워진 세상에 실웃음을 안겨 준 분. 정직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뀐 건 아닌가, 순간적으로 혼란을 안겨 주는 저 유머러스함. 어쨌든 그 양반은, 법 없이 살 사람임이 분명하더라.
사실, 세상이 살벌해지고 강퍅해질수록 법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한국을 감싼 이후,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듣게 된 말 중의 하나가 이것 아녔을까. “법으로 해결하자.” 미디어를 통해서도 숱한 경제 법률 용어가 쏟아져 나왔다. 언제 ‘개인 회생’이니 ‘파산’ ‘면책’과 같은 단어를 흔하게 접해 봤던가. ‘집단소송제’는 또 어떻고.
‘법을 아는 것’이, ‘곧 밥을 먹는 것’이 된 시대라고 말하는 책이 있다. 『법은 밥이다』(장진영 지음 | 끌레마 펴냄). 낯익은 이름이다. 오줌싸개 명예훼손 공방 등을 통해 법에 대한 다층적인 가치와 함의, 혹은 풍자를 담아냈던 <무한도전 - 죄와 길>에서 유재석 쪽의 대리인. 이미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낯익은 그다. 뭣보다, 사법연수원 시절 카드사 항공 마일리지 일방 축소 무효 소송을 내 승소를 이끌어 냈던 인물. 대형 카드사와 로펌을 상대한 소송에서 1만 명이 넘는 카드 사용자가 구제됐고, 밀린 마일리지를 받아 냈던 사건이다.
그 밖에도 장 변호사는 페놀 오염 손해배상청구 소송, 경유차 환경 개선 부담금 취소 소송 등에서 승소하고 최근 시티은행 카드의 항공 마일리지 제공 기준 변경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비자 대변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그는, 현명하고 똑똑한 소비자가 결국 우리 세계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낸 것도 그런 이유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법률 용어를 정리해줌으로써, 소비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한편으로 책을 낸 것이 어지간히 부담도 됐나 보다.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악몽처럼 달고 다니듯,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합격이 취소되거나 연수원 입학이 취소되는 꿈에 진저리를 치듯, 그는 책 때문에 꿈에서도 시달린다. 군대 재입대나 사시 불합격 꿈도 꾸지 않았던 낙천적인 그가, 얼마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 그런 그를 지난 17일 역삼동에 위치한 법률 사무소에서 만나, 책과 법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법률 용어 사전’이 나온 계기
이름 때문에 오해도 받았겠다. 여성이 연상되는 이름이기도 하고, 고인이 된 영화배우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고.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
“음,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이름 때문에 편한 점이 있었다. ‘장진영’이라고 하면, 영화배우와 이름이 똑같다며 사람들이 기억을 잘하더라. (이름이) 나한테 도움이 됐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동기생 중에 같은 이름의 여성이 있다. 지금 검사 하고 있다. 그 검사와 장진영 판사도 있다. 역시 여성이다. 그렇게 법조계에 세 명이 있는데, 모여서 장진영 검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장진영 클럽’을 만들자고.(웃음) 영화배우도 클럽에 같이 넣어서. 진짜(고 장진영과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거의 찾았었는데…….”
책은 일종의 사전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책을 보니 사전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어떻게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싶었나.
“책을 쓰게 된 기획 의도를 말해야겠다. 내가 법대에 다녔는데, 대학교 1학년 때는 어쨌든 법률 용어를 모르잖나. 법률 용어 사전을 처음 샀다. 그런데 뭔 말인지, 용어 해설이 더 어려운 거다. 책꽂이에 꽂아 놓고 결국 버렸다. 어쨌든 변호사가 됐고,
사전식 편제와 분야별 서술의 장점을 모두 살려서 기술했다. 법률 분야별로 구성할 경우, 법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소유권, 물권, 채권, 점유권 등을 설명하기 어렵고, 사전식으로 구성할 경우, 법률 개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주요 표제어는 ‘가나다순’으로 배열하고, 표제어와 관련된 용어들은 표제어 하위에 배치함으로써 법률체계를 유기적?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했다.(p.9)
그런 문제의식을 언제부터 품었고, 어떤 계기로 출판하게 됐나.
“내가 몰랐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예를 들어, 매매하면 파는 사람이 매도인, 사는 사람이 매수인인데, 그걸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 대학을 나온 분들까지도. 그래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를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얘기하는 중에 그런 콘셉트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였다. 희한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진 거지.”
책 출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없나.
“지난해 4월에 시작했는데, 7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3개월이면 원고 넘기고 손 털겠다, 했는데, 10개월도 빠듯했다. (독촉 많이 받았겠다.) 아, 마감 독촉 많이 받았다.(웃음) 지난해 2월부터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시작했고, 맡고 있는 사건들, 방송, 그러니까 책을 쓸 짬이 안 나더라. 가족도 있으니 애들과도 놀아 줘야 되지. 시간 확보를 많이 못 했는데, 언제 책을 이렇게 썼느냐고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한다. 비밀이 있다. 차를 잘 안 갖고 다녔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용어 2~3개씩 정리하고 그랬다. 줄거리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많이 어렵진 않았다. 법정 가서 기다리면서도 치고. 자투리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법률 용어, 일상과 생활에 필요한 이유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재미있는 제목이기도 하고,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딱 보여준다. 요즘 말로, ‘제목의 좋은 예’랄까.(웃음) 모음만 살짝 바꿔 ‘법’과 ‘밥’을 등가시킨 이 제목, 어떻게 나왔나.
“처음에는 ‘경제법률 지식사전’이었다. 그런데 마케팅 교수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책 얘기를 꺼냈다. 제목을 알려 주니까, 교수들이 하나같이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지금 제목이) 떠올랐다. 경제법률 지식사전인데, 경제생활을 잘하려면 이 법률 용어들을 알아야 한다. 법은 밥이다. 법을 알아야 밥을 굶지 않는다. 처음 제목하고도 벗어나지 않고 말랑말랑하고. 출판사에 가서 지금 제목으로 하자고 했고, 출판사에서도 좋아하더라.”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도, 법이야말로 밥이다. 밥벌이의 수단. 장 변호사에게 법은 어떤 존재인가.
“법은 나한테 밥벌이 수단이기도 하지. 법하고 밥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다. 법대생들은 자신들을 ‘밥대생’이라고 한다. 이상하게 밥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학생 식당에 가면 맨 앞에 있는 애들이 법대 애들이다.(웃음) 지금 나한테는 직업(법)이 생계 수단이라는 것뿐 아니라, 즉 나만의 밥이 아니고 일반인들이 밥을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룰이 법이다. 그 룰을 어기면 콩밥을 먹게 되는 거고, 잘 지키면 집에서 하는 밥을 먹을 수도 있고.(웃음) 그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룰이 곧 법이다.”
책에 법률 용어 360개가 실렸다. 무수히 많은 법률 용어 중에 어떤 기준에 의해 간택된 건가.
“처음 기획할 때 기준은,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는 용어들이어야 한다는 거였다.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런 것들. 그렇게 하면 형사, 민사, 노동도 다 다뤄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넓었다. 생각한 것이, 돈과 관련된 그런 용어만 모아 보자. 그게 일차적인 관심사가 될 거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과 관련돼서 문제될 수 있는 것을 우선 뽑았다. (몇 개나 뽑았나, 줄여 나간 건가?) 아니다. 처음에 한 150개 정도 뽑히더라. 늘려간 거다. 풀다 보면서 새끼를 치게 된 거다. 예를 들어, ‘담보’라는 용어를 풀다 보면, ‘저당권’과 같이 꼭 알아봐야 하는 용어들이 나오게 되는 거지.”
한 번에 다 읽어 볼 책이라기보다 옆에 끼고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는 그런 책이더라. 생명력이 꽤 길 것 같다. 가정상비약 아닌, ‘가정 상비책’이라고 할까.(웃음)
“상담하다 보면, ‘돈을 안 갚아요, 받아주세요.’라면서 많이 오신다. 그런데 돈이 오간 근거를 달라고 하면, ‘없어요. 친한 친구라 차용증을 안 썼어요.’ 이런 분들이 많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청구하느냐고 물으면, 하여튼 줬다는 거야.(웃음) 그렇게 답답할 때가 있다. 보통 제사 지낼 때 지방(紙榜) 쓰는 법을 인터넷 등에서 찾아보잖나. 결혼식 갈 때도 마찬가지고. 틀리게 써도 집안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찾아본다. 그렇지만 법은 우리가 제대로 모르면 집이 망할 수도 있다. 집에 이런 것을 두고 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부록(필수 법률 서식 33 노트)도 넣었다. 필요할 때마다 봤으면 좋겠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어려운 부탁이 있다. 법률 용어 360개 중에 독자들이 이것만큼은 꼭 봐줬으면 하는 용어가 있다면.
“음, 필수 용어라……. 그건 당장 쉽지 않고. 이런 건 있다. 사실 변호사는 돈 꿔줄 때 차용증이나 현금 보관증을 꼭 받으라는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쉽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한테 어떻게……. 조금 더 실질적인 고민을 하자면, 현금 보관증도 간단하게 쓰면 되긴 해도,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 돈 얼마를 보냈으니 갚아라. 상대방이 고맙다고 답신이 오면, 그것만 저장해 두면 된다. 차용증이 없어도 훌륭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책에도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는 팁을 넣어 놨다.”
“이제는 내 재산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 상식을 넘어 기본적인 법률 지식도 알아야 하는 시대”라고 했지만, 대중들에게 법은 아직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 같다. 문화사회적으로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건데,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언제부터인가 희박해졌다. 과거를 봐라.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기록이 꼼꼼하잖나. 아마 일제 때부터 그렇게 된 것 같다. 뭔가 기록에 남겼다가 발각되면 잡혀갈 수도 있어서 그런 기록 문화가 없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남기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법도 문자고, 문자로 남겨야 의미가 있는데, 그런 것과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생활 적용이 어렵고. 이성보다는 인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또 법이라는 것이 딱딱하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잖나. ‘너하고 나 사이에 무슨…….’ 그런 말들이 법을 멀리하게 한다.
믿고 간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는데, 그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런 걸(기록이나 문자) 남겨야 한다. 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라고 얘기한다. 정말로 그렇다. 계약서가 있으면 배신하고 싶어도 억제가 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돈을 빌렸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한 사람만 계약서를 썼다. 그러면 계약서를 쓴 사람한테 먼저 갚는다. 그러면 관계가 유지된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일수록 신경을 써야 한다.”
똑똑한 소비자가 필요하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 어떤 변호사는 싫어하던데, 혹시 싫어하는 말 있나?
“‘세상에는 나쁜 변호사와 더 나쁜 변호사만 있다.’는 조크도 있다.(웃음) 물론 미국식 조크다. 미국에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다 보니, 부작용이 많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닌데, 점점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변호사가 반성해야 하는 면도 있다. 옳지 못한 것을 돈 받고 하고. 부정적인 면이 있어서 비판받을 만도 한데, 그래도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변호사에게 갈 수밖에 없지 않나. 미워도 가까이 둘 수밖에 없는 변호사다. 변호사를 기득권 세력으로만 보고 그러는 건, 억울한 면이 있다.”
변호사의 중요한 도구도 언어라고 생각한다. 법정 등에서 사용하는 법률 언어와, 법률 용어 사전이지만 책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어떻게 다르던가.
“직업상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법률가들이다. 말하자면 선수들이라, 선수끼리 쓰는 용어는 간결하고, 길지 않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지면 다른 일반인들이 못 알아듣게 하려는 게 아니고,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툭툭 튀어나온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법률가끼리 쓰는 말에 익숙해지다 보니 상대방도 알겠거니 착각을 하는 거지.(웃음) 법정을 가면 판사들도 어려운 말을 쓰고. 일반인들하고 얘기할 땐 풀어서 일반인 눈높이로 얘기해 줘야 한다.
언어가 물론 상호 소통을 하는 기능을 하지만, 전문 용어만 쓰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서 쓰는 언어의 종류는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이 일반인들에게 내가 하는 법을 이해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해 보니 너무 어렵더라.(웃음) 두 가지 정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예를 들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금 얼마에 금전을 변제하여야 한다.’라고 해보자. 이걸 풀어야 했는데, 고민이 채권자나 채무자라는 용어를 써도 될까. 풀면 이렇게 된다. ‘돈을 빌린 사람은 빌려 준 사람에게 돈을 갚을 때가 다 됐으므로 돈을 갚아야 한다.’ 길이가 2배로 훨씬 길어진다. 비효율적이나 감당해야 하는 건데, 처음에는 채권자나 채무자는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해서 풀 생각을 안 했다. 출판사에서 풀어야 한다고 하더라. 수위를 어디까지 낮출 것인가 어려웠다.
둘째, 우리 법률 용어에 일본식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안 풀리는 말도 많다. 예를 들면 ‘급부’. 일본식 말이다. 급부는 단순히 돈을 주는 것을 넘어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이를 포괄하는 우리 단어는 없다. 그대로 쓰면 너무 추상적이고. 고민 많이 했다. 어떤 경우엔 성공을 했고, 어떤 경우엔 피치 못해서 썼다.(웃음)”
방송 등을 통해 이미 ‘스타 변호사’다. <무한도전>은 하나의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은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지하철에서 마음 놓고 입 벌리고 자지도 못한다던데, 이런 유명세 어떤가.
“<솔로몬> 때부터 노출이 됐는데, 조금씩 실감을 했다. 이번 <무한도전>이 결정적이었다. 요즘 두 번 이상씩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놀라서. 그 시선을 느낀다. 두 번 이상 쳐다보는 사람이 <무한도전> 이후 20명 가운데 7~8명쯤 된다. 그중에서도 ‘오~’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가 계속 있다. 알아보는 사람은 많다 보니, 정말 제약이 많다.(웃음) TV에 노출됐다는 차이뿐인데, 사람들은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지하철을 타고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비웃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아는 척을 하면서 법률 상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졸지에 무료 법률 상담까지 하는 거지. 안 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 요즘은 차를 타고 다니는 횟수가 많아졌다.”
“과분하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법연수원 시절에 카드사 마일리지 소송을 해서 만 명 넘게 구제됐다. 이차적으로 지금 시티은행이랑 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10만 명 정도 된다. 디젤차 소유자 대신 환경 개선 부담금 취소 소송도 했고. 내가 하는 일 상당 부분이 소비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옛날 1990년에 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시위를 많이 했다. 기존의 투쟁 방식은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떼를 쓰고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비된 제도 안에서 신사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는 면이 강하지 않나. 옛날부터 서민이라기보다, 소비자를 위한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꿈이 소비자를 위한 단체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었다. 고시 공부할 때부터 그런 것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관심이 있었고.
대학 때도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총학생회는 학내 사정이나 생활 주변의 불편함 같은 것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과도했다. 할 일이 100이면 70~80은 학생 복지 등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사회 이슈를 고민해야 했는데, 거꾸로 됐다. 불만이었다. 학생 운동 주류에 낄 수도 없었고. 졸업하고 몇 년 있으니 비주류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으로 나오고 하더라. 앞으로 정치도 이념적이 아닌 생활 밀착형으로 가야 한다.”
법대를 다녔고, 항공사에서 5년 근무했고, 법조계에 뛰어들었다. 변호사 말고 판?검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회사를 그만둔 계기가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멋있고 재밌어 보였다. 항공사 법무팀에 있다가 변호사와 일을 함께하게 됐는데, 그 사람들 방도 따로 있고, 졸릴 때 잘 수 있겠다 싶었다.(웃음) 법대 다닐 땐, 사실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일 터지면 수습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변호사 중에서는 기업에 일이 터지기 전에 참여해서 협상도 하고 싸움도 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계약이 어긋나서 서로 싸움이 났을 때 끼어드는 게 아니고. 최근에 아랍에미레이트(UAE) 원전 수주할 때도 변호사가 크게 기여했다. 그런 식으로 계약 단계에서 개입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판사 될 생각은 없었고 검사는 해볼 만하다 싶었는데, 나이 들 만큼 들어서 호사였다. 식구들도 있고, 변호사도 재밌겠다 싶었다.”
법률 용어 사전을 냈으니, 대중이 법과 가까워지기 위한 에세이나 스토리텔링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생각 있나.
“아직은 콘텐츠가 부족하다. 좀 더 내공을 쌓아야 될 것 같다. 그런 류의 책이 진짜 내 책이겠지.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고. 좀 더 여문 다음에 하고 싶다. 이번 책도 물론 훈련이 됐는데, 이런 류의 책을 좀 더 내보고 싶다. 약간 내 시각도 들어가겠지만, 국민들에게 관심 있는 판결들을 모아서 해설하는 그런 책도 내보고 싶다. 출판사랑 얘기도 하고 있다. 기밀인데 왜 누설했느냐고 할까?(웃음)
이번에 책을 처음 써 본 건데, 재미도 있고, 고달프기도 했다. 알차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기도 하고. 내겐 똑똑한 소비자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런 걸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재를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계속 해 나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비자라고 하면 약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수라서 약자가 아닐 수도 있다. 깨어 있는 소비자일 때 약자가 아닐 수 있다. 깨어 있으려면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이 책이 그런 걸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집 안에 한 권씩 놓고 서식지 같은 것을 필요할 때마다 찾아봐도 좋겠고.”
9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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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알리시아
2010.04.18
이분 질문하시는거 은근히 날카로우시던데... ㅎㅎ
쪼꼬젤리
2010.04.02
붕붕이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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