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낮엔 일하고 밤엔 막걸리를 마실 분, 작업복 챙겨서 변산으로 오세요” - 『흙을 밟으며 살다』 윤구병
도시의 ‘만드는 문화’가 아닌, 기르는 문화로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 윤 선생님은, 외람된 말이지만, 영혼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영성이셨습니다.
2010.03.18
작게
크게
공유
‘농부’. 누구보다 땅님의 힘을 믿고, 바람님, 해님, 물님, 별님 등 자연이라는 큰 선생님의 뜻을 받들고 합일점을 찾는 분, 이라고 단정한다면, 과장일까요. 물론 그 임들에 의해, 자연재해라는 이름 앞에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도 대개 그들입니다. 사람이 가진 결함과 연약함, 미욱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자연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자연에게서 배움을 얻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도시(인)가 망쳐 놓은, 혹은 도시내기들의 거지발싸개 가치관에 물든 이가 아니라면, 나는 많은 농부가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농촌이 도시보다, 농부가 도시내기보다 못하다는 인식은, 근대 이후 상품 경제 사회를 지배적인 가치로 받아들인 도시내기들의 협잡(?)에 의한 것입니다. 농촌/도시의 피착취/착취 관계가 불러온.
더구나 도시내기들은 개발과 발전을 명목으로 자연까지 착취합니다. 농촌(농부)을 희생해서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삽질’ 경제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지요. 권력을 쥔 도시내기들이 내놓은 명분이, 고작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차라리 깨 놓고 말하지 그랬어요.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많은 산업이 장땡이라고. 진짜 대(大)와 소(小)를 구분 못하는 아둔함. 똥오줌 못 가리는 철부지. 돈보다 중요한 게 있고, 돈 따위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함이 있다고 입놀림 하더니. 뭡니까, 이게.
과문한 탓에, 인간 중심으로만 사고했었습니다. 다른 생명체, 자연의 고마움까지는 생각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만 유독 자생 못하는 존재였어요. 육식이든 초식이든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생명의 유지를 위해선 뭐 하나 주는 것 없는 존재. 이산화탄소만 꾸역꾸역 내뱉으며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는 것에는 무심한 채 자신만을 위해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구호만 외쳐 댄 인간. 거참,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체에 면목이 없습니다.
너 혹시 ‘자연환원주의’ ‘농촌 로망’을 늘어놓고자 함이냐, 라고 되묻는다면, 에이~ 그럴 리가요.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의 ‘생명 에세이’ 연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흙을 밟으며 살다』(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을 읽고 든 도시내기의 생각입니다. 삶터로서 공동체를 이룬 것이 아닌, 삶의 도구로 전락시킨 자연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나,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윤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도시 사람들이라고 자연과 동떨어져 살지는 않는다.”(『흙을 밟으며 살다』, p.32)
저라는 도시내기는 자연과 맺은 관계를 제대로 생각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거개가 시골 사람들에게 아무 일품도 되돌려주지 않고 일방으로 시골 사람들을 부려서 밥상을 차린다. 하다못해 똥오줌마저 되돌려주는 일이 없다. 우리는 이런 일방관계를 착취라고 한다. 한마디로 도/농 사이의 관계는 착취/피착취의 관계다. 그런데 이 착취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의 뼛골을 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을 일방으로 착취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28)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 곳곳에서 배회하지만, 정작 도시의 삶에선 그 말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합니다. 65억 인류가 자연과 함께 발붙이고 사는 이 푸른 지구. 시속 11만km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행성, 지구. 그 지구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다른 생명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다른 생명의 고마움을.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건네고, 투기가 투자이며, 노후를 위한 방편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을 해 대는 이 사회. 불로소득과 일확천금, 로또나 대박을 노래로 흥얼거리며 꿈꾸게 만드는 시대. 더 높은 아파트와 마천루가 세워지는 것을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개발 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인 토건 국가의 정체성이, 시민의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회구조.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요.
다른 삶도 있다
저는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면서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먹고사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문제, 물론 가장 중요하고 모름지기 잘사는 사회는, 누구의 배도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먹고사니즘’은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며 죄짓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곤 합니다. 먹고살기에 바쁘단 핑계로 서로를 다독거리지도 않고, 남이야 어쨌든 제 살길만 찾겠다고 눈 부릅뜬 시절. 화폐를 희망으로 치환하고, 화폐에 모든 것을 걸고 배팅하는 무모함까지.
다른 삶. 세상엔 하나의 삶만 있진 않습니다. 특히 ‘슬플 때 생각을 다잡고, 기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승승장구할 때 성찰케 하고, 어려울 때 용기를 북돋는 시대의 어른들이 쓴 산문’을 보자면, 화폐나 상품에 삶 전체를 목매달고, 아이들 영혼을 거세시켜 신자유주의 잔혹극에 편입시키는 따위의 삶이 아니어도 좋을 다른 삶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겠지요. “오늘도 참 행복한 날이다. 오전에는 산에 올라가 커다란 마대로 솔잎을 네 마대나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 만큼 손에 땀나게 갈퀴질해서 군불 때는 아궁이 네 개에 하나씩 부려놓고, 막걸리 한 잔, 밥 먹고 낮잠 한숨. 그리고 날씨가 쌀쌀한 저녁 무렵을 타서 장작 패다 또 막걸리 한 잔. 저녁 먹으면서 서너 살짜리 우리 공동체 애들인 미로, 가을이, 진희, 마루랑 시시덕거리다 환한 반달이 비추어주는 고샅길 따라 내 방으로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3)
그래서 행복한 삶, 다른 삶을 살고 계신 윤구병 선생님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묻는 질문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신. 짠했습니다. 그 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 마음과 영혼을 저당 잡힌 채, 혹은 그것을 놓고 다듬을 틈도 없이 부대껴야만 하는 도시적 삶의 팍팍함 때문에 그랬나 봅니다. 영혼을 채우는 일, 마음을 놓는 일을 묻고 싶었습니다. 지난 3일이었죠.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윤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도시의 ‘만드는 문화’가 아닌, 기르는 문화로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 윤 선생님은, 외람된 말이지만, 영혼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영성이셨습니다. 책 이야기부터, 변산 공동체, 농촌 사회, 먹을거리 등과 함께 좀비를 길러 내는 제도권 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눴습니다. 목숨 지닌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삶을 잔치로 바꾸는 놀음을 거드는 교육을 실천하는 변산 공동체. 그런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놀이로 생과 영혼을 가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부족하지만, 큰절 한 번 올리고, 감사한 마음 전하며 시작된 이야기, 한번 들어 보시렵니까?
‘생명 에세이’ 선집으로 다시 태어난 40여 년 문제의식
40여 년 쌓인 문제의식을, 이번에 세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앞서 2년 전 내셨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와 어우러져 저는 ‘생명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우선 책으로 엮은 소회가 어떠신지요.
“선완규 선생(휴머니스트 편집인)이 (과거에 써 놓은) 6,000매 원고를 보면서 선집을 냈으면, 하는 생각을 전했어요. 워낙 오래전 써놓은 거라 요즘 도움이 되겠느냐 했는데, 우리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아져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글이 되는 것이 바란 바이지만, 상황이나 교육, 생태 문제가 더 악화된 측면이 있잖아요. 그때 쓸 땐, 크게 귀담아들을 얘기가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더러 귀담아 들을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골라서 묶어 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책 나온 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기억에서 잊힌 글도 많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읽어 보니 새삼스러운 측면도 있고. 참, 고맙습니다.”
제목이, 참 맛깔스럽습니다. 확 와 닿고 끌리는데, 제목 어떻게 만드셨어요.
“제목은 해명을 해야겠습니다.(웃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그 제목이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한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제 가난하지도 않고.’ 그랬는데, 그래도 제목은 출판사 권리니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했고요. 마찬가지로, 『흙을 밟으며 살다』나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는, 사실 우리말 질서에 맞진 않아요. 서양말과 달리 동사 원형을 쓰지 않거든요.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는다’든지 ‘둘러앉았다’고 하지, ‘둘러앉다’라고는 안 해요. 또 ‘살았다’나 ‘산다’라든지, ‘살다 보니’라고 쓰지만, ‘살다’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역시 제목은 출판사 고유 권한이니까, 굳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지만, 누가 여기에 대해 묻는다면 변명을 할 거다, 라고 했어요.(웃음)”
‘변산 공동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알려 주신다면.
“변산 공동체는 뭣보다 사람들만 사는 세상은 아닙니다. 지금은 사람 중심의 세계라서, 공동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늘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전제로, 밑바탕으로 깝니다. 아침?점심?저녁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은 자연에서 온 선물이라고 볼 수 있고, 땅속에 사는 지렁이부터 땅 위의 나무, 풀 모두를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하죠. 그뿐 아니라 물, 바람, 불(해), 흙 모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고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큰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물질과학을 하는 분들에겐, 정령 숭배 같은 느낌이 들지 몰라도, 저는 해, 달, 불, 물, 바람, 흙 모두 생명 공동체 일원이라고 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삶터라는 의미를 넘어선 것이죠.”
공동체나 책의 핵심은, ‘여러 생명체가 더불어 살자’ ‘다른 삶도 있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품 경제 사회에 대한 맹신과 그릇된 가치관이 바이러스처럼 퍼진 지금, 사람뿐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경시는 도를 넘어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를 진단해 주신다면.
“지금 도시 사회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고 진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사상 모든 도시 문명은 몰락했어요.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시, 즉 다른 생명 공동체 일원을 무시하고 오로지 사람만 다른 생명체보다 도드라진 위치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과 조화를 못 이뤄 언젠가는 멸망한다고 봅니다.
현재 도시 사회 구조는 옛날보다 훨씬 취약해요. 옛날에는 약탈의 형태일망정 생명 에너지를 이용해서 도시 사회도 함께 살아나갔어요. 도시 인구가 전체의 10%를 넘어서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위성 도시 비율이 80%를 넘어서고 물질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는데, 이것은 생체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급이 제한되고 교란될 소지가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원 고갈 등 물질 에너지 공급에 결함이 생긴다면 도시는 사흘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길을 찾겠느냐. 생명 공동체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외딴 섬이나 깊은 산 속,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동체를 매개로 자연에 어떻게든 다시 귀의하게 되는데 그 형태가 굉장히 폭력적일 것 같아서 우려는 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도시 문화는 멸망했다. (…) 도시의 삶 자체에 자기 파괴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도시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도시는 자급자족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에서는 참된 의미에서 자율적인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우선 도시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현대 도시는 다르지 않느냐, 비록 아직까지 먹이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옷과 집 문제는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변의 마을 공동체에 빨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시 밖으로 뻗는 문어발은 더 길고 억세야만 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p.81~82)
변산에서 공동체 꾸려 살아가기
지금 여기의 많은 우리에겐, 무한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무한히 분화되고 증가되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신화(?)가 지배합니다. 그런 신화를 거부한 선생님의 결단을 자극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워낙 촌놈이고 생김새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웃음) 제가 구 형제의 막내인데, 위로 여섯 형이 6?25때 죽자, 아버지가 남은 아들 셋을 농사꾼으로 만들어야 전란이나 전쟁판에서 지킬 수 있겠다 생각하셔서 귀농을 하셨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 문명에 대한 환상을 어렸을 때부터 깨트린 측면이 있고, 10여 년 이상 시골에 살면서, 무한하게 생산력이 늘고, 생산력이 늘면 무한히 증가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도시에서의 믿음이 깨졌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알게 됐는데, 농사꾼이 하는 일이 대단히 적어요. 무슨 말이냐면, 농사꾼이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어 주는 것을 끝내면, 나머지는 사람보다 훨씬 큰 존재인 물, 불, 흙 등이 24시간 일을 해서 곡식을 생산해요. 농민들은 자연을 상대로 잉여 노동을 할 수는 없거든요. 또 씨 한 알을 심으면 수천 알, 수만 알이 나오는데, 이걸 내 거라고 할 수가 없어요. 더 큰 존재들이 마련해 준 건데.
그리고 유기물은 도시에서 주고받는 화폐나 유가증권과 달리 그대로 축적해 놓으면 썩어 버려요. 내가 씨를 뿌린 것보다 수천, 수만 배 수확을 안겨 주니, 이걸 내가 전부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이걸 쌓게 되면 썩게 되는데, 썩히지 않으려면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눔이죠. 나무 밥상에 채소와 곡식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농사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각박하게 얼마나 일해서 얼마를 챙겨야 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도시 사회를 지배하는 도식이 마음에서 무너져 버렸고, 자연이 저를 무장해제 시킨 거죠.”
세계를 바꾸는 실천의 무기로서 진짜 삶과 자연에 손을 잡으신 것 같아요. 자연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살아가고 철학하기, 어떠세요.
“저는 아직도 풋내기 농사꾼이에요.(웃음) 저희 마을만 해도 팔구십 되신 노인네들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분들이 말씀하세요. 일생 동안 농사를 지어 왔지만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그분들이야말로 숨은 철학자시죠. 끊임없이 평생 동안 공부하고 배워 왔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자신을 낮추는 분들이고, 저는 아직 못 미쳐요.”
변산 공동체 15년. 쉽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 15년을 중간 정리해 주신다면요. 또 많은 이들이 들고났지만, 지금까지 공동체가 잘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요.
“결국 공동체는 자율적인 인간들이 도시에서 소외된 노동을 견딜 수가 없어서,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삶의 장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모인 곳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한 공동체가 최소한 완성된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삼십 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생명 공동체는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와, 부모 세대로 대표되는 현재, 아이들로 대표되는 미래가 한데 연대를 하고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형성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반환점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것은 생각보다 조금 빨리 이뤄졌고, 또 어떤 것은 욕심보다 더디거나 아직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큰 틀로 봐서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금 빨리 이뤄지거나 더디게 되고 있는 것은 뭐죠?
“조금 빨리 이뤄진 부분은, 교육입니다. 공동체를 이룬 젊은이들이 서로 눈이 맞아 짝을 이루고 태어난 아이들을 기르는 과정에서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서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 말고도 주변 아이들을 맞아서 교육시킬 수밖에 없던 부분이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죠. 그만큼 준비가 소홀해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합해서 초등학교 과정이 15명, 중?고등학교 과정이 7명 정도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더딘 것은, 공동체에 살면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대장간, 목공실, 약초 텃밭 등이에요. 지금까지 계속 마련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요.”
공동체에서 자란 맏이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한 세대가 지나 봐야 공동체 실험의 성패를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15년 어떻게 확신하고 계신지요.
“도시 사회가 현재의 교육 체계와 경제 제도를 갖고, 물질 자원에 100% 의존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서 비롯된 건데,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자각이나 재난 등을 통해 도시에서 탈출할 거예요. 이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삶터들이 여기저기 빨리 마련돼야 할 거예요. 그런 곳의 하나로 변산 공동체가 앞으로 꽤 소중한 몫을 할 텐데, 어떤 면에서는 힘에 겨운 몫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한 제안을 받았어요. 도시에서 다른 건 팔 게 없어서 자기 몸을 파는 사람들이 있고, 여자나 남자나 자기 몸을 파는 형태는 비슷한데 여자는 더 어려운 위치에 있잖아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도시에서 아이들이 잘 자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변산 공동체로 들어와 함께 살길이 없겠느냐는. 변산 공동체 같은 곳이 가장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변산 공동체의 품성이 좋고 너그러워서가 아니고 자연이 그 아이들을 감싸줄 수 있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
앞으로는 장애가 있거나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공동체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한두 군데가 아니라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데, 어느 한 곳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가 돼야(공동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돼요. 앞으로 조금 더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돼야죠. (제안은 받아들이셨어요?) 부모와 아이들에게 들어와서 함께 살자고 얘기한 상태입니다.”
변산 공동체의 ‘옛 세상 만들기 작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요.
“저는 인류의 희망이, 생산 공동체, 농어촌 같은 기초 생산 공동체에 있다고 봅니다. ‘옛 세상 만들기’라면 고대 노예제 사회로 돌아가자, 봉건제로 돌아가자,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사냥감 없는 원시 공동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현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어요. 그러면서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도 폐지했고, 지금은 임금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야 할 즈음이에요. 우리는 모든 족쇄를 피나는 투쟁을 통해, 올곧게 살려는 사람들이 민주?자유?평등의 재단에 흘린 피로 이만큼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옛 세상 만들기’는) 과거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생명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옛날 신분제 같은 게 아니고요. 미래 세상이 과거 세상을 딛고 가기는 하되, 지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으로 가자는 거니까, 이 길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 다른 삶이 있다는 것
글을 보자면, 행복이 뚝뚝 묻어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그전에 상품 경제 사회가 아니더라도, 시골 사람들이 화폐라는 것을 모르고, 물물 교환 형태로 부족한 것을 바꿔서 살아도 행복한 나날이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총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쑥대밭으로 만들기까지 나름 안정되고 행복했었죠. 이런 삶이 가능한 세계가 와야 해요. 화폐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와야 하고 올 수 있습니다. 화폐는 국제든 국가든, 늘 소수의 손에 집중해서 돌 수밖에 없어요. 돈이 행복을 가늠하는 세상에서는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돈으로 만일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재벌들은 자손들이 수만 대에 걸쳐 살 수 있는 행복을 쌓아 놨다고 볼 수 있겠으나, 칠순 가까운 한 재벌 회장이 사는 모습을 보세요. 걸핏하면 법정에 끌려가고, 참인지 거짓인지 몰라도, 범법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행위를 하면서 국민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게 이분들의 행복한 삶의 대가인가. 뭔가 씐 거죠. 화폐가 그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데, 이분들은 모를 거예요.”
돈을 많이 쌓아놓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는 터무니없는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는데, 나는 여태껏 돈 많은 사람 치고 발 뻗고 편히 잠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이 아무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 것은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돈과 범죄는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도 돈 때문에 설움 받지 않는 세상-이것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의 한 조건이다.(pp.118~119)
며칠 전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서울이 전쟁터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 백 배 공감했고요. 지금-여기는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합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다독이기를 포기하고 제 앞가림만 하겠다고 발버둥치고요. 지금 교육이 진짜 교육이 아니라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요.
“사람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살길을 유전 정보를 통해 대물려 받는 게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살길이 없습니다. 거미, 개미, 벌 등은 누가 집 짓는 법을 알려 주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집 짓는 능력을 타고 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교육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데, 지금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스스로 앞가림하고 오순도순 사는 게 사람인데, 지금 교육은 궁극 목표가 빠져 있어요. 집단 자살이나 학살로 몰아넣는 끔찍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 관료나 교사는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 집단 학살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나 교사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제도에 잘못이 있어요. 어쨌든 교육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을 지금처럼 12시간 좀비처럼 책상에서 붙들어 앉아 손발 꼼짝 못하고 머리만 굴리게 하는 건 아이들을 살아있는 채로 처형하는 것과 똑같아요. 사람은 몸을 놀려야 입 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어요. 머리를 굴려서 마련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을 손발이나 몸을 놀리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는다면 인류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놀려야 나라가, 인류가 삽니다. 그건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교육 제도가 완전히 혁명적으로 뒤바뀌지 않으면 삶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사회는 결국 죽음의 사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인 모두가 도시적 삶을 내던질 수는 없습니다. 당장 귀농은 아니더라도 선생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는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요.
“얼마 전 ‘좋은 교사 모임’에 가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안 교육만 살길은 아니고, 제도 교육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를 하면 현재의 교육 제도를 바꿀 수 있고 실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이를테면 아이들을 책상머리에 묶어 두지 마라,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충해라. 어떤 책을 보다가 재미없으면 내던지고, 어떤 책을 붙들고 몰두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보의 접근을 하게 돼요. 그게 아이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수업 시간을 단축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 운동은 도시에서 벌릴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야 가능합니다. 교육 관료나 정권 담당자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학부모예요. 교사는 그런 학부모와 끊임없이 연대해서 아이를 살리는 길을 찾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몸과 손발을 놀릴 수 있는 길도 찾아야 합니다. 풍물이나 탈춤, 밴드부를 조직해서 아이들이 경쟁보다 도와가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 학교 운동장엔 체육 시설만 있는데 절반을 갈라서, 그게 안 되면 화단이라도, 텃밭을 마련해서 김매고 씨 뿌리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한 마을에서 스무 가구만 연대하면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나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도시에서 30분만 나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복 받은 땅이에요. 스무 가구 중에 주말에 한 가구의 부모만 놀아 주면 서너 달에 한 번이지만, 아이들은 주말마다 자연과 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자연에서 자연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자는 거죠.
우리나라는 70%가 산지라 물질 자원으로 보면 세계 10위권 나라예요. 산에 교육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을 산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삼면이 바다니 바다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조금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넘치는 아이가 되면 시골에 가서 한 달 동안 일손을 돕도록 할 수도 있어요. 과로한 노동이 아니면 아이들도 즐거워합니다. 끊임없이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억지로 귀농하거나 자연과 가까워질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문만 열어주면 됩니다. 의식을 일깨운 부모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개인이 지배 세력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삶 외에 다른 삶의 이야기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 예로 삼척에 주순영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www.kulssugi.or.kr) 사무총장이신데, 이분이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진행하세요. 이걸 확장해서 학부모도 같이 쓰는 작업도 하셨어요.(『부모와 함께 쓴 모둠 일기』). 부모처럼 아이를 아끼는 교사가 아이 부모와 소식을 주고받고, 부모도 자발적으로 모둠 일기를 쓰면서 학교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잘 알고, 교사는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놀고 아이들 소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신뢰 관계가 굳어지고 참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아이들과 선생뿐 아니라 부모도 참여하는 가운데, 교육 혁명이 조그만 부분에서부터 이어 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동이 확산돼야 합니다. 아이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으려는 교육 관료들이 아무리 우리 아이들을 학대해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서 막아 내면 그 사람들도 무리한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길도 반드시 열려야 하고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삶이 올림픽도 아닌데, 삶 자체를 올림픽으로, 경쟁으로 몰아넣는 미친 속도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자연의 속도로 변속하면 어떤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동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사람은 대개 타율적인 통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특히 도시에선 타율적인 통제에서 삶이 이뤄지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고, 시간 단위로 타율적으로 강제되고. 이런 삶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귀농하는데, 한 일 년 농사짓고 살면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요. 변산 공동체에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농사짓거나 자율적으로 농사지을지언정 도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타율에 의해 강제되는 임금 노동, 노예 노동에서 벗어나 자기 가치 실현 노동으로 바뀌면, 한여름에도 시원할 때 일해야 하니까 5시에 일을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일하면 피로한 줄 몰라요. 그런데 강제 노동이 되면 짧은 시간을 노동해도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아니니까 굉장히 불행한 의식을 심어 주게 돼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람 모습을 갖추게 되고, 노동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돼야 하니까 노동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고요. 전체로서는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 그러지 않고 내일이면 늦을지 모릅니다.”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두 발로 걷고 작은 손으로 일해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빨리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사람은 두 발로 걷지 않고 네 굽으로 뛰는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멀리 훨훨 날아다녀야 더 잘 살 수 있었다면 날개를 달고 알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사람의 몸이 왜 이렇게 빚어졌는지, 왜 스스로를 이렇게 가꾸어왔는지 곰곰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6)
고마움 느끼고 살아가기
저는 현재 커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커피를 하고 나서야 한 끼 밥상을 위해 동원된 우주에 대해 고마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땅부터 햇빛과 바람, 비, 그리고 농부의 수고까지. 직접 수고로움을 행해 주시는 입장이신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 더 큰 기운들이 있어서 우릴 살리고 있는 거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제가 목숨 붙이고 사는 데, 목으로 드나드는 들숨 날숨이, 곧 목숨이고 바람입니다. 이런 대자연의 큰 기운들이 내게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 자주 생각해요. 내가 삶을 선택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바람이 없으면 나는 5분도 안 돼서 목숨을 잃을 겁니다. 그런 점에선 자율성이나 자유가 얼마나 자연 의존적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둘러싼 생명 공동체의 일원들이 저라는 도구를 빌려 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발적 가난의 즐거움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강요된 가난이 아닌, 기성 사회나 권력이 주입한 가치가 아닌 존재의 주인으로서 선택한 가치라서 느끼는 그런. 그것이 진짜 자유인이 아닐까 싶고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좀 더 들려주신다면.
“제가 즐겨하는 얘기인데, 변산 공동체의 앞?뒷산에는 도토리가 나는 상수리나무가 많아요. 이게 굵어 몇십 년이 자라면 수많은 도토리를 떨어트리는데, 상수리나무 소망은 단순합니다. 자기가 죽을 즈음, 한 그루의 상수리나무가 자라 대를 잇기를 바라죠. 온 산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의 도토리가 상수리나무로 자라는 대신, 수많은 도토리 알은 땅속에 있다가 지렁이나 다람쥐 밥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듯 모든 생명 공동체 일원이 볍씨 한 알을 떨어트리면 수천, 수억 알이 생기고 낳지만, 그 소망은 단순해요. 자기 대를 이은 튼튼한 후손 부부가 나오길. 그들이 수많은 열매와 알을 떨어트리는 건 나눔을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만남이 어디서 이뤄지느냐면, 먹고 먹히는 밥통에서 이뤄져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생체 보시를 해서. 사람은 먹여 살림으로써 생명 공동체가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의 생체 보시를 받으면서 생명계 전체를 위해 뭘 하고 있느냐, 자기를 어떤 방식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 현재 도시 사회는 받기만 하고 되돌릴 줄 모르는 삶이라, 문제가 큽니다.
가난은 목숨을 유지할 만큼만 자기 것으로 남기고 나눌 수밖에 없는 생명 공동체의 원리랄까요. 우리는 이런 기본 질서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야겠죠.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 돼서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를 해야 합니다. 강제된 노동이 아니고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되고 낭비 없이 실제로 우리 삶에 필요한 것만 누려야 하고요. 그것을 가난이든 검약이라 칭하든, 낭비를 하지 않는 것, 낭비하지 않는 삶이 가난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가난을 기리자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있는 사람들 덕에 없이나마 살아남았으니 모름지기 가난한 사람은 모두 잘사는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자는 뜻은 더더구나 아니다. 실제로 꼼꼼히 따져본다면, 부자가 베푸는 생색이 듬뿍 실린 시혜보다 가난한 사람이 자기도 몰래 베푸는 생색 안 나는 이웃 사랑이 더 크다. 부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는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가난한 어부가 한겨울에 풍랑을 무릅쓰거나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고, 오뉴월 땡볕에 벽돌처럼 살이 익는 걸 참아가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가꾸어내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밥상 공동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서로를 느끼고 감응하는 공동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얘기해 주고 싶으세요?
“밥상 공동체의 즐거움은, ‘민족의학연구원’이 꾸리고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의 점심을 예로 들면 좋겠네요. 도시에서 가장 건강을 해치기 쉬운 일을 맡고 있는 분들이 가난한 분들입니다. 가장 허드렛일을 하시니,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고 건강한 음식을 제일 먼저 먹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분들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몸을 놀려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대 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살려야 나라가 건강해져요.
그러나 그분들이 실제로는 유기농 음식을 먹을 형편이 안 되고, 그렇다면 유기농 음식은 부자들만 누려야 하느냐 이거죠. 밥상 공동체는 너나없이, 가난한 사람이나 넉넉한 사람이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위는 평등하거든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턱 없는 밥집’을 떠올렸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말라고 해서.(웃음) 그것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도 봤어요. 처음엔 그렇게 저항감이 있었던 사람도 지금은 100명 이상이 모여 즐겁게 먹고 깨끗하게 밥그릇을 비워요. 그게 새 밥그릇인 줄 알고 들고 가는 모습도 봤으니까.(웃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죠. 나쁜 물 들기가 더 쉽다는 말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아요. 좋은 것도 나쁜 것 못지않게 크고 넓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이런 밥상 공동체가 널리 확산되길 바라고요. 밥상에서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직접적이고 소중합니다.”
농산물, 즉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는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성품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나쁜 마음으로 기른 농산물은 질기고 맛도 없고요.
“농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농사꾼은 기본적으로, 모든 농산물은 그대로 두면 썩으니까 다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스스로 행복할 길을 찾아온 사람들인데, 어떤 면에선 잘못하면 폐쇄적이고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 세상이 우리 공동체보다 너그럽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사기꾼, 강도 등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살고 있잖아요. 반면 우리 공동체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하고만 살잖아요. 우리는 대단히 행복한 집단이고 그만큼 갈등과 모순이 적지만, 세상은 훨씬 더 큰 갈등과 모순을 안고 굴러가고 있어요. 그런 만큼 세상에서 배워야지, 우리가 세상을 가르치려는 생각은 안 되는 거죠. 동시에 세상의 슬픔과 아픔, 불의에 대해서 같이 아파하고 분노해야지, 등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부터 보리출판사 대표를 겸임하시면서 월?화?수 서울에서 생활하시잖아요. 어떠세요?
“많이 혼란스러워요. 시골에선 똥오줌을 자연에 되돌릴 수 있는데, 도시에 오니까 그게 안 되고, 물에 씻어서 버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똥은 별 수 없이 물로 씻어 내릴 수밖에 없는데, 오줌은 오래 묵힌 뒤 내려요. 그러면 도시 사람들이 눈을 찡그려요. 냄새 난다고.(웃음) 아, 도시 사회에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그 구조 때문에 죄를 더 짓고 살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보리출판사 대표라는 공식적인 직위를 받아들인 건, 그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 자연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기 위해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도움이 되는 책들을 꾸준히 내야 합니다. 평화라는 것이, 웃음을 짓고, 너 좋고 나 좋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전쟁광과 온몸으로 맞설 때만이 평화가 옵니다. 실제 싸울 생각이고요. 자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르는 평범한 악의 얼굴을 한 사람들,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힘이 되는 한 싸우려고 합니다. 곧,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라는 자서전을 내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만화책이 나오고, 현재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해 할 책들도 낼 예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귀감이 됩니다.”
‘민족의학연구원’ ‘문턱 없는 밥집’ ‘기분 좋은 가게’ 등 공동체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으신 듯한데, 각각 소개를 해 주신다면.
“보리를 아끼는 많은 마음씨 좋은 사마리아인들이 있습니다. 변산 공동체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은 무상입니다. 사실 우리 교육의 옛 전통이 그랬어요. 특수한 집단, 국가 행정을 맡는 관료 양성이나 장삿속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위한 특수 교육 기관은 돈을 받고 운영됐지만, 인간을 살리고 인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육은 수십만 년 동안 무상이었어요. 무상 교육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변산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세상 한가운데서 이뤄지는 일이라 기본적으로 재원이 필요한데, 그 재원을 마련해 주는 애독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지금 우리에겐 병원 문턱이 참 높지요. 첨단 의료 장비랍시고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도 하고. 면 소재지의 보건소에도 잘 못 가시는 시골 어르신들이 계세요. 이분들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첨단 장비나 설비가 아니고,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뜸?침으로 치료를 해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위한 기본 책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의학연구원에서 낸 책이 『손 주물러 병 고치기』 『발 주물러 병 고치기』 『약 안 쓰고 병 고치기』와 같은 것이었고, 앞으로 ‘몸 주물러 병 고치기’라든지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책을 낼 겁니다. 곁들여서 ‘동의본처도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4년 후면 『동의보감』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데, 국가 단위에서 의료에 관련된 책을 집대성한 적이 없는데, 이걸 한 번 해보려고 해요. 민족의학연구원은 그래서 설립됐습니다.
‘문턱 없는 밥집’이나 ‘기본 좋은 가게’는 도시 사람들이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해서 설립됐어요.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인데, 나라가 안 하니까, 소수가 모여서 하는 것뿐이에요.”
변산 공동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그분들께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세요.
아, 언제든지 최소한 3박 4일로 낮엔 일하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실 각오가 돼 있는 분은 작업복 한 벌 챙겨서 그냥 오시면 됩니다. 같이 일하고 농사지은 것을 나눠 먹으면서 자기 몸이, 마음가짐이 농사일에 맞는지를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지내면서, 맞으면 같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 변산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몸만 오시면 됩니다. 다만 떠날 때 돌아갈 교통비만 갖고 오시면 되고요.”
P.S
서툰 질문과 대응에도, 지긋이 말씀을 들어주시면서 너른 노장의 품으로 조곤조곤 답변해 주시는 윤구병 선생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오늘 하루. 생각합니다. 사는 게 고맙고 경이로운 일이구나. 오늘 하루 먹을거리를 비롯해 햇살님과 바람님, 비님이 감싸 준 나의 우주. 뭣보다 커피를 만드는 아직 철부지 커피 지망생이 품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씀도 함께 되씹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하는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또는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고맙습니다. 나를, 우주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 “도시에 남아 있기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젊은 당신들이 몸 놀려 나이 든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고, 나이 든 우리가 힘겹게 농사지어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흙을 밟으며 살다』, p.39) 도시내기인 제겐 참으로 뜨끔한 얘기지만, 내가 만드는 커피 한 잔, 내가 먹는 먹을거리 하나같이 잇닿아 있는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자면, 최소한 죄를 덜 짓는 방향으로 살아야겠구나, 다짐도 합니다. 그래, 실천해야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있으며, 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은 존재임을. “사람이 사람으로, 풍뎅이가 풍뎅이로 살 수 있는 건 전체의 생명체를 이어주는 그물망 속에서란다. 수십억 인구 가운데 생김이나 느낌이나 마음씀씀이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그렇게 해야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기 때문이야. 똑같다면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서 상호 교류는 일어나지 않아.”(『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51)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안타깝게도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애도를 표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법정 스님과 윤구병 선생님, 두 분이 건넨 말씀이나 철학이 아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난 2008년 길상사에 이런 법문 구절을 남기셨습니다. “돌이켜 보니 한 일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중 도둑질’을 하면서 너무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무소유에 대한 이 말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죠.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 (…) 이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맑은 가난, 자발적 가난. 어떤 식으로든 탐욕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도시 사회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 그야말로 탐욕의 결정체가 아닐까요. 부자보다 ‘잘사는’,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성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윤구병 선생님과 입적하신 법정 스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속도를 한참 더 늦춰야겠어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도시의 미친 속도에 어차피 맞추지 못하는 발걸음이었지만, 내 고유의 템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아 템포’(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인간 본디의 본래 속도와 생명 공동체가 지닌 각자의 속도로, 아 템포.
더구나 도시내기들은 개발과 발전을 명목으로 자연까지 착취합니다. 농촌(농부)을 희생해서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삽질’ 경제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지요. 권력을 쥔 도시내기들이 내놓은 명분이, 고작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차라리 깨 놓고 말하지 그랬어요.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많은 산업이 장땡이라고. 진짜 대(大)와 소(小)를 구분 못하는 아둔함. 똥오줌 못 가리는 철부지. 돈보다 중요한 게 있고, 돈 따위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함이 있다고 입놀림 하더니. 뭡니까, 이게.
과문한 탓에, 인간 중심으로만 사고했었습니다. 다른 생명체, 자연의 고마움까지는 생각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만 유독 자생 못하는 존재였어요. 육식이든 초식이든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생명의 유지를 위해선 뭐 하나 주는 것 없는 존재. 이산화탄소만 꾸역꾸역 내뱉으며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는 것에는 무심한 채 자신만을 위해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구호만 외쳐 댄 인간. 거참, 인간으로서 다른 생명체에 면목이 없습니다.
너 혹시 ‘자연환원주의’ ‘농촌 로망’을 늘어놓고자 함이냐, 라고 되묻는다면, 에이~ 그럴 리가요.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의 ‘생명 에세이’ 연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흙을 밟으며 살다』(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을 읽고 든 도시내기의 생각입니다. 삶터로서 공동체를 이룬 것이 아닌, 삶의 도구로 전락시킨 자연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나,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윤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도시 사람들이라고 자연과 동떨어져 살지는 않는다.”(『흙을 밟으며 살다』, p.32)
저라는 도시내기는 자연과 맺은 관계를 제대로 생각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거개가 시골 사람들에게 아무 일품도 되돌려주지 않고 일방으로 시골 사람들을 부려서 밥상을 차린다. 하다못해 똥오줌마저 되돌려주는 일이 없다. 우리는 이런 일방관계를 착취라고 한다. 한마디로 도/농 사이의 관계는 착취/피착취의 관계다. 그런데 이 착취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의 뼛골을 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을 징검다리 삼아 자연을 일방으로 착취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28)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 곳곳에서 배회하지만, 정작 도시의 삶에선 그 말이 제대로 녹아들지 못합니다. 65억 인류가 자연과 함께 발붙이고 사는 이 푸른 지구. 시속 11만km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행성, 지구. 그 지구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다른 생명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다른 생명의 고마움을.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건네고, 투기가 투자이며, 노후를 위한 방편이라는 그럴싸한 변명을 해 대는 이 사회. 불로소득과 일확천금, 로또나 대박을 노래로 흥얼거리며 꿈꾸게 만드는 시대. 더 높은 아파트와 마천루가 세워지는 것을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개발 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인 토건 국가의 정체성이, 시민의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회구조.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요.
다른 삶도 있다
저는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면서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먹고사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문제, 물론 가장 중요하고 모름지기 잘사는 사회는, 누구의 배도 곪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때로 ‘먹고사니즘’은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며 죄짓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곤 합니다. 먹고살기에 바쁘단 핑계로 서로를 다독거리지도 않고, 남이야 어쨌든 제 살길만 찾겠다고 눈 부릅뜬 시절. 화폐를 희망으로 치환하고, 화폐에 모든 것을 걸고 배팅하는 무모함까지.
다른 삶. 세상엔 하나의 삶만 있진 않습니다. 특히 ‘슬플 때 생각을 다잡고, 기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승승장구할 때 성찰케 하고, 어려울 때 용기를 북돋는 시대의 어른들이 쓴 산문’을 보자면, 화폐나 상품에 삶 전체를 목매달고, 아이들 영혼을 거세시켜 신자유주의 잔혹극에 편입시키는 따위의 삶이 아니어도 좋을 다른 삶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겠지요. “오늘도 참 행복한 날이다. 오전에는 산에 올라가 커다란 마대로 솔잎을 네 마대나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을 만큼 손에 땀나게 갈퀴질해서 군불 때는 아궁이 네 개에 하나씩 부려놓고, 막걸리 한 잔, 밥 먹고 낮잠 한숨. 그리고 날씨가 쌀쌀한 저녁 무렵을 타서 장작 패다 또 막걸리 한 잔. 저녁 먹으면서 서너 살짜리 우리 공동체 애들인 미로, 가을이, 진희, 마루랑 시시덕거리다 환한 반달이 비추어주는 고샅길 따라 내 방으로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3)
그래서 행복한 삶, 다른 삶을 살고 계신 윤구병 선생님이 궁금했습니다. 어떤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냐고 묻는 질문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신. 짠했습니다. 그 말.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 마음과 영혼을 저당 잡힌 채, 혹은 그것을 놓고 다듬을 틈도 없이 부대껴야만 하는 도시적 삶의 팍팍함 때문에 그랬나 봅니다. 영혼을 채우는 일, 마음을 놓는 일을 묻고 싶었습니다. 지난 3일이었죠.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윤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도시의 ‘만드는 문화’가 아닌, 기르는 문화로 문명사적인 대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 윤 선생님은, 외람된 말이지만, 영혼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영성이셨습니다. 책 이야기부터, 변산 공동체, 농촌 사회, 먹을거리 등과 함께 좀비를 길러 내는 제도권 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눴습니다. 목숨 지닌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삶을 잔치로 바꾸는 놀음을 거드는 교육을 실천하는 변산 공동체. 그런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놀이로 생과 영혼을 가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부족하지만, 큰절 한 번 올리고, 감사한 마음 전하며 시작된 이야기, 한번 들어 보시렵니까?
‘생명 에세이’ 선집으로 다시 태어난 40여 년 문제의식
40여 년 쌓인 문제의식을, 이번에 세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앞서 2년 전 내셨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와 어우러져 저는 ‘생명 에세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우선 책으로 엮은 소회가 어떠신지요.
“선완규 선생(휴머니스트 편집인)이 (과거에 써 놓은) 6,000매 원고를 보면서 선집을 냈으면, 하는 생각을 전했어요. 워낙 오래전 써놓은 거라 요즘 도움이 되겠느냐 했는데, 우리 상황이 과거보다 더 좋아져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글이 되는 것이 바란 바이지만, 상황이나 교육, 생태 문제가 더 악화된 측면이 있잖아요. 그때 쓸 땐, 크게 귀담아들을 얘기가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더러 귀담아 들을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골라서 묶어 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책 나온 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기억에서 잊힌 글도 많고.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읽어 보니 새삼스러운 측면도 있고. 참, 고맙습니다.”
제목이, 참 맛깔스럽습니다. 확 와 닿고 끌리는데, 제목 어떻게 만드셨어요.
“제목은 해명을 해야겠습니다.(웃음)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그 제목이 어떠냐고 물어서 ‘나는 한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제 가난하지도 않고.’ 그랬는데, 그래도 제목은 출판사 권리니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했고요. 마찬가지로, 『흙을 밟으며 살다』나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는, 사실 우리말 질서에 맞진 않아요. 서양말과 달리 동사 원형을 쓰지 않거든요.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는다’든지 ‘둘러앉았다’고 하지, ‘둘러앉다’라고는 안 해요. 또 ‘살았다’나 ‘산다’라든지, ‘살다 보니’라고 쓰지만, ‘살다’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역시 제목은 출판사 고유 권한이니까, 굳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지만, 누가 여기에 대해 묻는다면 변명을 할 거다, 라고 했어요.(웃음)”
‘변산 공동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알려 주신다면.
“변산 공동체는 뭣보다 사람들만 사는 세상은 아닙니다. 지금은 사람 중심의 세계라서, 공동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늘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전제로, 밑바탕으로 깝니다. 아침?점심?저녁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은 자연에서 온 선물이라고 볼 수 있고, 땅속에 사는 지렁이부터 땅 위의 나무, 풀 모두를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하죠. 그뿐 아니라 물, 바람, 불(해), 흙 모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고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큰 공동체 일원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물질과학을 하는 분들에겐, 정령 숭배 같은 느낌이 들지 몰라도, 저는 해, 달, 불, 물, 바람, 흙 모두 생명 공동체 일원이라고 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삶터라는 의미를 넘어선 것이죠.”
공동체나 책의 핵심은, ‘여러 생명체가 더불어 살자’ ‘다른 삶도 있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품 경제 사회에 대한 맹신과 그릇된 가치관이 바이러스처럼 퍼진 지금, 사람뿐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경시는 도를 넘어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를 진단해 주신다면.
“지금 도시 사회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고 진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사상 모든 도시 문명은 몰락했어요. 시간차가 있을 뿐이지.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시, 즉 다른 생명 공동체 일원을 무시하고 오로지 사람만 다른 생명체보다 도드라진 위치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과 조화를 못 이뤄 언젠가는 멸망한다고 봅니다.
현재 도시 사회 구조는 옛날보다 훨씬 취약해요. 옛날에는 약탈의 형태일망정 생명 에너지를 이용해서 도시 사회도 함께 살아나갔어요. 도시 인구가 전체의 10%를 넘어서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위성 도시 비율이 80%를 넘어서고 물질 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는데, 이것은 생체 에너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급이 제한되고 교란될 소지가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원 고갈 등 물질 에너지 공급에 결함이 생긴다면 도시는 사흘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길을 찾겠느냐. 생명 공동체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외딴 섬이나 깊은 산 속,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동체를 매개로 자연에 어떻게든 다시 귀의하게 되는데 그 형태가 굉장히 폭력적일 것 같아서 우려는 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도시 문화는 멸망했다. (…) 도시의 삶 자체에 자기 파괴의 원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도시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도시는 자급자족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도시에서는 참된 의미에서 자율적인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우선 도시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현대 도시는 다르지 않느냐, 비록 아직까지 먹이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옷과 집 문제는 자체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변의 마을 공동체에 빨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시 밖으로 뻗는 문어발은 더 길고 억세야만 한다.(『흙을 밟으며 살다』, pp.81~82)
변산에서 공동체 꾸려 살아가기
지금 여기의 많은 우리에겐, 무한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무한히 분화되고 증가되는 욕망을 무한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신화(?)가 지배합니다. 그런 신화를 거부한 선생님의 결단을 자극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워낙 촌놈이고 생김새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웃음) 제가 구 형제의 막내인데, 위로 여섯 형이 6?25때 죽자, 아버지가 남은 아들 셋을 농사꾼으로 만들어야 전란이나 전쟁판에서 지킬 수 있겠다 생각하셔서 귀농을 하셨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 문명에 대한 환상을 어렸을 때부터 깨트린 측면이 있고, 10여 년 이상 시골에 살면서, 무한하게 생산력이 늘고, 생산력이 늘면 무한히 증가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도시에서의 믿음이 깨졌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알게 됐는데, 농사꾼이 하는 일이 대단히 적어요. 무슨 말이냐면, 농사꾼이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어 주는 것을 끝내면, 나머지는 사람보다 훨씬 큰 존재인 물, 불, 흙 등이 24시간 일을 해서 곡식을 생산해요. 농민들은 자연을 상대로 잉여 노동을 할 수는 없거든요. 또 씨 한 알을 심으면 수천 알, 수만 알이 나오는데, 이걸 내 거라고 할 수가 없어요. 더 큰 존재들이 마련해 준 건데.
그리고 유기물은 도시에서 주고받는 화폐나 유가증권과 달리 그대로 축적해 놓으면 썩어 버려요. 내가 씨를 뿌린 것보다 수천, 수만 배 수확을 안겨 주니, 이걸 내가 전부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이걸 쌓게 되면 썩게 되는데, 썩히지 않으려면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눔이죠. 나무 밥상에 채소와 곡식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농사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각박하게 얼마나 일해서 얼마를 챙겨야 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순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도시 사회를 지배하는 도식이 마음에서 무너져 버렸고, 자연이 저를 무장해제 시킨 거죠.”
세계를 바꾸는 실천의 무기로서 진짜 삶과 자연에 손을 잡으신 것 같아요. 자연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살아가고 철학하기, 어떠세요.
“저는 아직도 풋내기 농사꾼이에요.(웃음) 저희 마을만 해도 팔구십 되신 노인네들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분들이 말씀하세요. 일생 동안 농사를 지어 왔지만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고. 그분들이야말로 숨은 철학자시죠. 끊임없이 평생 동안 공부하고 배워 왔는데도,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자신을 낮추는 분들이고, 저는 아직 못 미쳐요.”
“결국 공동체는 자율적인 인간들이 도시에서 소외된 노동을 견딜 수가 없어서, 노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삶의 장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모인 곳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한 공동체가 최소한 완성된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삼십 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생명 공동체는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와, 부모 세대로 대표되는 현재, 아이들로 대표되는 미래가 한데 연대를 하고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형성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반환점에 있다고 봅니다. 어떤 것은 생각보다 조금 빨리 이뤄졌고, 또 어떤 것은 욕심보다 더디거나 아직 이뤄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큰 틀로 봐서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금 빨리 이뤄지거나 더디게 되고 있는 것은 뭐죠?
“조금 빨리 이뤄진 부분은, 교육입니다. 공동체를 이룬 젊은이들이 서로 눈이 맞아 짝을 이루고 태어난 아이들을 기르는 과정에서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서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 말고도 주변 아이들을 맞아서 교육시킬 수밖에 없던 부분이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죠. 그만큼 준비가 소홀해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합해서 초등학교 과정이 15명, 중?고등학교 과정이 7명 정도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더딘 것은, 공동체에 살면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대장간, 목공실, 약초 텃밭 등이에요. 지금까지 계속 마련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요.”
공동체에서 자란 맏이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한 세대가 지나 봐야 공동체 실험의 성패를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15년 어떻게 확신하고 계신지요.
“도시 사회가 현재의 교육 체계와 경제 제도를 갖고, 물질 자원에 100% 의존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서 비롯된 건데,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자각이나 재난 등을 통해 도시에서 탈출할 거예요. 이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삶터들이 여기저기 빨리 마련돼야 할 거예요. 그런 곳의 하나로 변산 공동체가 앞으로 꽤 소중한 몫을 할 텐데, 어떤 면에서는 힘에 겨운 몫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한 제안을 받았어요. 도시에서 다른 건 팔 게 없어서 자기 몸을 파는 사람들이 있고, 여자나 남자나 자기 몸을 파는 형태는 비슷한데 여자는 더 어려운 위치에 있잖아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도시에서 아이들이 잘 자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변산 공동체로 들어와 함께 살길이 없겠느냐는. 변산 공동체 같은 곳이 가장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변산 공동체의 품성이 좋고 너그러워서가 아니고 자연이 그 아이들을 감싸줄 수 있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라.
앞으로는 장애가 있거나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공동체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한두 군데가 아니라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데, 어느 한 곳이라도 ‘이렇게 사는 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가 돼야(공동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돼요. 앞으로 조금 더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활성화돼야죠. (제안은 받아들이셨어요?) 부모와 아이들에게 들어와서 함께 살자고 얘기한 상태입니다.”
변산 공동체의 ‘옛 세상 만들기 작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요.
“저는 인류의 희망이, 생산 공동체, 농어촌 같은 기초 생산 공동체에 있다고 봅니다. ‘옛 세상 만들기’라면 고대 노예제 사회로 돌아가자, 봉건제로 돌아가자,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사냥감 없는 원시 공동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현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어요. 그러면서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도 폐지했고, 지금은 임금 노예제 사회에서 벗어나야 할 즈음이에요. 우리는 모든 족쇄를 피나는 투쟁을 통해, 올곧게 살려는 사람들이 민주?자유?평등의 재단에 흘린 피로 이만큼 평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됐어요. (‘옛 세상 만들기’는) 과거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생명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옛날 신분제 같은 게 아니고요. 미래 세상이 과거 세상을 딛고 가기는 하되, 지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으로 가자는 거니까, 이 길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 다른 삶이 있다는 것
“그전에 상품 경제 사회가 아니더라도, 시골 사람들이 화폐라는 것을 모르고, 물물 교환 형태로 부족한 것을 바꿔서 살아도 행복한 나날이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총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쑥대밭으로 만들기까지 나름 안정되고 행복했었죠. 이런 삶이 가능한 세계가 와야 해요. 화폐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가 와야 하고 올 수 있습니다. 화폐는 국제든 국가든, 늘 소수의 손에 집중해서 돌 수밖에 없어요. 돈이 행복을 가늠하는 세상에서는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돈으로 만일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재벌들은 자손들이 수만 대에 걸쳐 살 수 있는 행복을 쌓아 놨다고 볼 수 있겠으나, 칠순 가까운 한 재벌 회장이 사는 모습을 보세요. 걸핏하면 법정에 끌려가고, 참인지 거짓인지 몰라도, 범법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행위를 하면서 국민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게 이분들의 행복한 삶의 대가인가. 뭔가 씐 거죠. 화폐가 그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데, 이분들은 모를 거예요.”
돈을 많이 쌓아놓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는 터무니없는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는데, 나는 여태껏 돈 많은 사람 치고 발 뻗고 편히 잠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이 아무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 것은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돈과 범죄는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도 돈 때문에 설움 받지 않는 세상-이것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의 한 조건이다.(pp.118~119)
며칠 전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서울이 전쟁터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 백 배 공감했고요. 지금-여기는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합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다독이기를 포기하고 제 앞가림만 하겠다고 발버둥치고요. 지금 교육이 진짜 교육이 아니라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요.
“사람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살길을 유전 정보를 통해 대물려 받는 게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살길이 없습니다. 거미, 개미, 벌 등은 누가 집 짓는 법을 알려 주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집 짓는 능력을 타고 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교육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데, 지금 교육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스스로 앞가림하고 오순도순 사는 게 사람인데, 지금 교육은 궁극 목표가 빠져 있어요. 집단 자살이나 학살로 몰아넣는 끔찍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 관료나 교사는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 집단 학살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나 교사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제도에 잘못이 있어요. 어쨌든 교육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이들을 지금처럼 12시간 좀비처럼 책상에서 붙들어 앉아 손발 꼼짝 못하고 머리만 굴리게 하는 건 아이들을 살아있는 채로 처형하는 것과 똑같아요. 사람은 몸을 놀려야 입 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어요. 머리를 굴려서 마련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을 손발이나 몸을 놀리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는다면 인류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놀려야 나라가, 인류가 삽니다. 그건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교육 제도가 완전히 혁명적으로 뒤바뀌지 않으면 삶은 없습니다.”
“얼마 전 ‘좋은 교사 모임’에 가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안 교육만 살길은 아니고, 제도 교육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를 하면 현재의 교육 제도를 바꿀 수 있고 실제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이를테면 아이들을 책상머리에 묶어 두지 마라,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진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충해라. 어떤 책을 보다가 재미없으면 내던지고, 어떤 책을 붙들고 몰두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보의 접근을 하게 돼요. 그게 아이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수업 시간을 단축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 운동은 도시에서 벌릴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야 가능합니다. 교육 관료나 정권 담당자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학부모예요. 교사는 그런 학부모와 끊임없이 연대해서 아이를 살리는 길을 찾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몸과 손발을 놀릴 수 있는 길도 찾아야 합니다. 풍물이나 탈춤, 밴드부를 조직해서 아이들이 경쟁보다 도와가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 학교 운동장엔 체육 시설만 있는데 절반을 갈라서, 그게 안 되면 화단이라도, 텃밭을 마련해서 김매고 씨 뿌리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한 마을에서 스무 가구만 연대하면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나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도시에서 30분만 나가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복 받은 땅이에요. 스무 가구 중에 주말에 한 가구의 부모만 놀아 주면 서너 달에 한 번이지만, 아이들은 주말마다 자연과 접할 수 있어요. 그렇게 자연에서 자연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자는 거죠.
우리나라는 70%가 산지라 물질 자원으로 보면 세계 10위권 나라예요. 산에 교육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을 산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삼면이 바다니 바다에 풀어놓을 수도 있고. 조금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넘치는 아이가 되면 시골에 가서 한 달 동안 일손을 돕도록 할 수도 있어요. 과로한 노동이 아니면 아이들도 즐거워합니다. 끊임없이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억지로 귀농하거나 자연과 가까워질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문만 열어주면 됩니다. 의식을 일깨운 부모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개인이 지배 세력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삶 외에 다른 삶의 이야기에 자신을 밀어 넣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 예로 삼척에 주순영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www.kulssugi.or.kr) 사무총장이신데, 이분이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진행하세요. 이걸 확장해서 학부모도 같이 쓰는 작업도 하셨어요.(『부모와 함께 쓴 모둠 일기』). 부모처럼 아이를 아끼는 교사가 아이 부모와 소식을 주고받고, 부모도 자발적으로 모둠 일기를 쓰면서 학교에서 아이가 뭘 배우는지 잘 알고, 교사는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놀고 아이들 소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신뢰 관계가 굳어지고 참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아이들과 선생뿐 아니라 부모도 참여하는 가운데, 교육 혁명이 조그만 부분에서부터 이어 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운동이 확산돼야 합니다. 아이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으려는 교육 관료들이 아무리 우리 아이들을 학대해도, 교사와 학부모가 연대해서 막아 내면 그 사람들도 무리한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길도 반드시 열려야 하고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삶이 올림픽도 아닌데, 삶 자체를 올림픽으로, 경쟁으로 몰아넣는 미친 속도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자연의 속도로 변속하면 어떤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동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사람은 대개 타율적인 통제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특히 도시에선 타율적인 통제에서 삶이 이뤄지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고, 시간 단위로 타율적으로 강제되고. 이런 삶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귀농하는데, 한 일 년 농사짓고 살면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요. 변산 공동체에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농사짓거나 자율적으로 농사지을지언정 도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타율에 의해 강제되는 임금 노동, 노예 노동에서 벗어나 자기 가치 실현 노동으로 바뀌면, 한여름에도 시원할 때 일해야 하니까 5시에 일을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일하면 피로한 줄 몰라요. 그런데 강제 노동이 되면 짧은 시간을 노동해도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아니니까 굉장히 불행한 의식을 심어 주게 돼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람 모습을 갖추게 되고, 노동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돼야 하니까 노동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고요. 전체로서는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 그러지 않고 내일이면 늦을지 모릅니다.”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두 발로 걷고 작은 손으로 일해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빨리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사람은 두 발로 걷지 않고 네 굽으로 뛰는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멀리 훨훨 날아다녀야 더 잘 살 수 있었다면 날개를 달고 알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사람의 몸이 왜 이렇게 빚어졌는지, 왜 스스로를 이렇게 가꾸어왔는지 곰곰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126)
고마움 느끼고 살아가기
저는 현재 커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커피를 하고 나서야 한 끼 밥상을 위해 동원된 우주에 대해 고마움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땅부터 햇빛과 바람, 비, 그리고 농부의 수고까지. 직접 수고로움을 행해 주시는 입장이신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 더 큰 기운들이 있어서 우릴 살리고 있는 거지,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제가 목숨 붙이고 사는 데, 목으로 드나드는 들숨 날숨이, 곧 목숨이고 바람입니다. 이런 대자연의 큰 기운들이 내게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 자주 생각해요. 내가 삶을 선택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바람이 없으면 나는 5분도 안 돼서 목숨을 잃을 겁니다. 그런 점에선 자율성이나 자유가 얼마나 자연 의존적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둘러싼 생명 공동체의 일원들이 저라는 도구를 빌려 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발적 가난의 즐거움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강요된 가난이 아닌, 기성 사회나 권력이 주입한 가치가 아닌 존재의 주인으로서 선택한 가치라서 느끼는 그런. 그것이 진짜 자유인이 아닐까 싶고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좀 더 들려주신다면.
“제가 즐겨하는 얘기인데, 변산 공동체의 앞?뒷산에는 도토리가 나는 상수리나무가 많아요. 이게 굵어 몇십 년이 자라면 수많은 도토리를 떨어트리는데, 상수리나무 소망은 단순합니다. 자기가 죽을 즈음, 한 그루의 상수리나무가 자라 대를 잇기를 바라죠. 온 산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의 도토리가 상수리나무로 자라는 대신, 수많은 도토리 알은 땅속에 있다가 지렁이나 다람쥐 밥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듯 모든 생명 공동체 일원이 볍씨 한 알을 떨어트리면 수천, 수억 알이 생기고 낳지만, 그 소망은 단순해요. 자기 대를 이은 튼튼한 후손 부부가 나오길. 그들이 수많은 열매와 알을 떨어트리는 건 나눔을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만남이 어디서 이뤄지느냐면, 먹고 먹히는 밥통에서 이뤄져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생체 보시를 해서. 사람은 먹여 살림으로써 생명 공동체가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의 생체 보시를 받으면서 생명계 전체를 위해 뭘 하고 있느냐, 자기를 어떤 방식으로 내놓을 수 있느냐, 현재 도시 사회는 받기만 하고 되돌릴 줄 모르는 삶이라, 문제가 큽니다.
가난은 목숨을 유지할 만큼만 자기 것으로 남기고 나눌 수밖에 없는 생명 공동체의 원리랄까요. 우리는 이런 기본 질서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야겠죠.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 돼서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를 해야 합니다. 강제된 노동이 아니고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이 되고 낭비 없이 실제로 우리 삶에 필요한 것만 누려야 하고요. 그것을 가난이든 검약이라 칭하든, 낭비를 하지 않는 것, 낭비하지 않는 삶이 가난한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가난을 기리자는 뜻은 아니다. 그동안 있는 사람들 덕에 없이나마 살아남았으니 모름지기 가난한 사람은 모두 잘사는 사람 앞에 머리를 조아리자는 뜻은 더더구나 아니다. 실제로 꼼꼼히 따져본다면, 부자가 베푸는 생색이 듬뿍 실린 시혜보다 가난한 사람이 자기도 몰래 베푸는 생색 안 나는 이웃 사랑이 더 크다. 부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산해진미는 다 어디에서 온 것인가? 가난한 어부가 한겨울에 풍랑을 무릅쓰거나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고, 오뉴월 땡볕에 벽돌처럼 살이 익는 걸 참아가며 허리가 부러지도록 가꾸어내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것도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밥상 공동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서로를 느끼고 감응하는 공동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얘기해 주고 싶으세요?
“밥상 공동체의 즐거움은, ‘민족의학연구원’이 꾸리고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의 점심을 예로 들면 좋겠네요. 도시에서 가장 건강을 해치기 쉬운 일을 맡고 있는 분들이 가난한 분들입니다. 가장 허드렛일을 하시니,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고 건강한 음식을 제일 먼저 먹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분들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몸을 놀려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주를 대 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살려야 나라가 건강해져요.
그러나 그분들이 실제로는 유기농 음식을 먹을 형편이 안 되고, 그렇다면 유기농 음식은 부자들만 누려야 하느냐 이거죠. 밥상 공동체는 너나없이, 가난한 사람이나 넉넉한 사람이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위는 평등하거든요. 누구나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턱 없는 밥집’을 떠올렸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말라고 해서.(웃음) 그것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도 봤어요. 처음엔 그렇게 저항감이 있었던 사람도 지금은 100명 이상이 모여 즐겁게 먹고 깨끗하게 밥그릇을 비워요. 그게 새 밥그릇인 줄 알고 들고 가는 모습도 봤으니까.(웃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죠. 나쁜 물 들기가 더 쉽다는 말인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진 않아요. 좋은 것도 나쁜 것 못지않게 크고 넓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이런 밥상 공동체가 널리 확산되길 바라고요. 밥상에서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직접적이고 소중합니다.”
“농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농사꾼은 기본적으로, 모든 농산물은 그대로 두면 썩으니까 다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스스로 행복할 길을 찾아온 사람들인데, 어떤 면에선 잘못하면 폐쇄적이고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 세상이 우리 공동체보다 너그럽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사기꾼, 강도 등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살고 있잖아요. 반면 우리 공동체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하고만 살잖아요. 우리는 대단히 행복한 집단이고 그만큼 갈등과 모순이 적지만, 세상은 훨씬 더 큰 갈등과 모순을 안고 굴러가고 있어요. 그런 만큼 세상에서 배워야지, 우리가 세상을 가르치려는 생각은 안 되는 거죠. 동시에 세상의 슬픔과 아픔, 불의에 대해서 같이 아파하고 분노해야지, 등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부터 보리출판사 대표를 겸임하시면서 월?화?수 서울에서 생활하시잖아요. 어떠세요?
“많이 혼란스러워요. 시골에선 똥오줌을 자연에 되돌릴 수 있는데, 도시에 오니까 그게 안 되고, 물에 씻어서 버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똥은 별 수 없이 물로 씻어 내릴 수밖에 없는데, 오줌은 오래 묵힌 뒤 내려요. 그러면 도시 사람들이 눈을 찡그려요. 냄새 난다고.(웃음) 아, 도시 사회에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그 구조 때문에 죄를 더 짓고 살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보리출판사 대표라는 공식적인 직위를 받아들인 건, 그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살리자. 자연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기 위해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서 죽이는 끔찍한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도움이 되는 책들을 꾸준히 내야 합니다. 평화라는 것이, 웃음을 짓고, 너 좋고 나 좋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전쟁광과 온몸으로 맞설 때만이 평화가 옵니다. 실제 싸울 생각이고요. 자신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르는 평범한 악의 얼굴을 한 사람들,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상대로 힘이 되는 한 싸우려고 합니다. 곧,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라는 자서전을 내신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만화책이 나오고, 현재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해 할 책들도 낼 예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귀감이 됩니다.”
‘민족의학연구원’ ‘문턱 없는 밥집’ ‘기분 좋은 가게’ 등 공동체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으신 듯한데, 각각 소개를 해 주신다면.
“보리를 아끼는 많은 마음씨 좋은 사마리아인들이 있습니다. 변산 공동체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은 무상입니다. 사실 우리 교육의 옛 전통이 그랬어요. 특수한 집단, 국가 행정을 맡는 관료 양성이나 장삿속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을 위한 특수 교육 기관은 돈을 받고 운영됐지만, 인간을 살리고 인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육은 수십만 년 동안 무상이었어요. 무상 교육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변산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세상 한가운데서 이뤄지는 일이라 기본적으로 재원이 필요한데, 그 재원을 마련해 주는 애독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지금 우리에겐 병원 문턱이 참 높지요. 첨단 의료 장비랍시고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도 하고. 면 소재지의 보건소에도 잘 못 가시는 시골 어르신들이 계세요. 이분들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첨단 장비나 설비가 아니고,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뜸?침으로 치료를 해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위한 기본 책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의학연구원에서 낸 책이 『손 주물러 병 고치기』 『발 주물러 병 고치기』 『약 안 쓰고 병 고치기』와 같은 것이었고, 앞으로 ‘몸 주물러 병 고치기’라든지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책을 낼 겁니다. 곁들여서 ‘동의본처도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4년 후면 『동의보감』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데, 국가 단위에서 의료에 관련된 책을 집대성한 적이 없는데, 이걸 한 번 해보려고 해요. 민족의학연구원은 그래서 설립됐습니다.
‘문턱 없는 밥집’이나 ‘기본 좋은 가게’는 도시 사람들이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해서 설립됐어요.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인데, 나라가 안 하니까, 소수가 모여서 하는 것뿐이에요.”
변산 공동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그분들께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세요.
아, 언제든지 최소한 3박 4일로 낮엔 일하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실 각오가 돼 있는 분은 작업복 한 벌 챙겨서 그냥 오시면 됩니다. 같이 일하고 농사지은 것을 나눠 먹으면서 자기 몸이, 마음가짐이 농사일에 맞는지를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지내면서, 맞으면 같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 변산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몸만 오시면 됩니다. 다만 떠날 때 돌아갈 교통비만 갖고 오시면 되고요.”
P.S
서툰 질문과 대응에도, 지긋이 말씀을 들어주시면서 너른 노장의 품으로 조곤조곤 답변해 주시는 윤구병 선생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오늘 하루. 생각합니다. 사는 게 고맙고 경이로운 일이구나. 오늘 하루 먹을거리를 비롯해 햇살님과 바람님, 비님이 감싸 준 나의 우주. 뭣보다 커피를 만드는 아직 철부지 커피 지망생이 품고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씀도 함께 되씹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하는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또는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고맙습니다. 나를, 우주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 “도시에 남아 있기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젊은 당신들이 몸 놀려 나이 든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고, 나이 든 우리가 힘겹게 농사지어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흙을 밟으며 살다』, p.39) 도시내기인 제겐 참으로 뜨끔한 얘기지만, 내가 만드는 커피 한 잔, 내가 먹는 먹을거리 하나같이 잇닿아 있는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자면, 최소한 죄를 덜 짓는 방향으로 살아야겠구나, 다짐도 합니다. 그래, 실천해야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있으며, 나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은 존재임을. “사람이 사람으로, 풍뎅이가 풍뎅이로 살 수 있는 건 전체의 생명체를 이어주는 그물망 속에서란다. 수십억 인구 가운데 생김이나 느낌이나 마음씀씀이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그렇게 해야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기 때문이야. 똑같다면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서 상호 교류는 일어나지 않아.”(『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p.51)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안타깝게도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애도를 표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법정 스님과 윤구병 선생님, 두 분이 건넨 말씀이나 철학이 아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난 2008년 길상사에 이런 법문 구절을 남기셨습니다. “돌이켜 보니 한 일에 비해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중 도둑질’을 하면서 너무 빚을 많이 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무소유에 대한 이 말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윤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죠.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 (…) 이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흙을 밟으며 살다』, p.80)
맑은 가난, 자발적 가난. 어떤 식으로든 탐욕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도시 사회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 그야말로 탐욕의 결정체가 아닐까요. 부자보다 ‘잘사는’,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성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윤구병 선생님과 입적하신 법정 스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속도를 한참 더 늦춰야겠어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도시의 미친 속도에 어차피 맞추지 못하는 발걸음이었지만, 내 고유의 템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아 템포’(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입니다. 인간 본디의 본래 속도와 생명 공동체가 지닌 각자의 속도로, 아 템포.
13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maru
2012.04.13
도 전
2011.09.30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를 가진 윤선생님.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그런 미소와 웃음 보기 힘듭니다. 미간은 흐려지고 사람을 쳐다볼때도 삐딱한 시선이 난무하는 도시. 윤선생님 미소가 진정 최고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들의 천사
2010.04.01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