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엔 모두 팬케이크를 - 심플 핫케이크
200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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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들은 화가 몹시 났으나, 그래도 상대편 꼬리를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서 성이 머리끝까지 올라 이제는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편을 잡아먹으려고 나무 둘레를 마구 뱅글거리며 돌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빨리 뛰게 되니까 나중에는 모두 눈앞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호랑이 발이 있는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호랑이들이 점점 빨리 뛰게 되자, 마지막에는 모두 그 자리에 녹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무 뿌리 둘레에는 녹은 버터(인도에서는 그것을 ‘기이’라 부릅니다만)가 큰 물이 괸 자리처럼 번져 있었습니다.
한편, 아빠 검둥이 잠보는 커다란 놋남비를 들고 일터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호랑이들의 자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니, 이거 버터 아냐? 아주 좋은 버터인데? 가져다가 엄마 검둥이 맘보에게 요리를 시켜야지.”
아빠 검둥이 잠보는 그 버터를 깨끗이 큰 놋남비에 담아 가지고 엄마 검둥이 맘보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엄마 검둥이 맘보는 이 녹은 버터를 보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야, 오늘 저녁은 모두 맛있는 빵을 만들어 먹자!” 하고 엄마 검둥이 맘보가 말했습니다.
엄마 검둥이 맘보는, 밀가루, 달걀, 우유, 설탕, 그리고 버터를 준비해서 아주 맛있는 팬케이크를 잔뜩 만들어 놓았습니다. 호랑이들에게서 나온 녹은 버터로 구워 놓으니 그 팬케이크는 꼭 호랑이 새끼 모양 노랗고 진한 흙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한데 모여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엄마 검둥이 맘보는 그 팬케이크를 스물일곱 개나 먹었습니다. 아빠 검둥이 잠보는 쉰다섯 개나 먹었습니다. 그런데, 꼬마 검둥이 삼보는 백예순아홉 개나 먹었습니다. 아무튼 배가 한참 고팠으니까요.
- 헬런 베너만Helen Bannerman, 『꼬마 검둥이 삼보The Story of Little Black Sam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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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다 뿐인가. 그 동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버터와 팬케이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궁금증이 생긴 데다가 호랑이를 무서워하긴커녕 오랫동안 식재료인줄 알고 자라왔다.
삼보의 호랑이 버터로 만든 팬케이크를 기억한다는 내게 친구는 엄청나게 반가워하며 자긴 삼보 역할로 유치원에서 연극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런 동화 처음 들어봤다며 호랑이 버터가 웬 말이냐, 할 때마다 답답해서 혼났다고 한다. 하긴 나 또한 주변의 친구들 중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고, 호랑이가 뱅글뱅글 돌다가 버터가 되었다고 한참 설명하는 내게 그 멍든 데 바르는 호랑이 기름을 말하는 것이냐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이 동화는 간단한 유아를 위한 동화책이지만 ‘검둥이’라는 표현을 쓰고, 팬케이크를 엄청나게 먹어 치우는 모습으로 흑인을 희화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출판이 금지되거나 ‘삼보’란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붙였어야 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동화가 될 기회를 놓친 것 같다. 하지만 그 책을 읽었던 아주 어릴 때의 나를 기억해보면 팬케이크를 먹는 흑인이 무식해 보인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도 호랑이가 버터가 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삼보 옆에서 팬케이크를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침을 흘렸을 뿐이다.
삼보를 괴롭히던 호랑이가 사냥꾼이 와서 죽이는 것도 아니고 뱅글뱅글 돌다가 맛난 버터가 되어 팬케이크로 다시 태어나는데, 어린이의 눈높이에 딱 맞는 재미있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닌가? 종종, 어른들만의 답답한 잣대로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뇌 속에 벽을 쌓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호랑이가 녹은 버터와 엄청난 양의 팬케이크 이야기는 몇 년 전 스노우캣도 YES24에 책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이 동화 이야기를 그린 적이 있었다. ‘호랑이가 뱅글뱅글 돌아서 치즈가 되었다.’라는 내용(보러 가기)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호랑이가 녹아서 변한 것은 원서에도 있듯 치즈가 아니라 버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이ghee라고 불리는 정제버터인데 물소 젖으로 만든 버터를 천천히 끓이면 밑에 우유 단백질과 불순물들이 가라앉고 맑은 우유지방만 남게 되는데 이 맑은 버터가 바로 기이다. 열을 가해 약간 고소한 향도 더해지고 실외에서도 잘 상하지 않고 발화점도 높아져서 찍어 먹는 간단한 소스 역할에서부터 볶고 튀기는 용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서양 요리에서도 종종 쓰이는데 옛날에는 고기나 생선을 이용한 파테 또는 병조림 등이 상하지 않도록 위에 마개를 치는 역할로도 이 정제버터가 종종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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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영국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팬케이크는 스코치 팬케이크scotch pancake, 또는 드롭 스콘Drop-scones라고 불리는 작은 팬케이크인 듯싶다. 10cm 정도로 작게 부치는 드롭 스콘은, 스콘처럼 티타임에 자주 등장하지만 스콘처럼 오븐에 넣어서 굽는 것이 아닌, 잘 달구어진 팬에 묽은 반죽을 떨어뜨리듯(drop) 굽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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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케이크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부를 이용해 요리를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조리법들을 만들어 내 문화로 발전시켜 왔지만 가끔은 가장 간단한 조리법들이 그 나라의 재료들과,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까지 모두 다 투영시켜 보여주곤 하는데 어느 나라에나 있는, 탄수화물을 액체에 개어, 재료를 곁들여 굽거나 구워서 다른 요리를 곁들이곤 하는 팬케이크야말로 대표적이면서 완벽한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빈대떡이나 전, 부꾸미나 메밀전병들은 물론이고 아까 언급한, 콩이냐 세몰리나냐 메밀이냐, 들어가는 향신료와 필링에 따라 수십 가지 종류가 있는 남인도의 얇은 팬케이크 도사dosa, 사과를 넣기도 하는 독일의 판쿠헨Pfannkuchen, 두껍게 부쳐서 메이플 시럽과 버터 큰 조각, 블루베리나 딸기를 곁들여 내는 미국식 팬케이크, 캐비아와 사워크림을 곁들여 먹는 러시아의 메밀 팬케이크 블리니Blinis, 프랑스 전역에 퍼져있는 얇은 팬케이크 크레페Crepe, 이태리 토스카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군밤 가루로 만들어 부치고 리코타 치즈를 발라 돌돌 말아먹는 네치necci, 멕시코의 또르띠야Tortilla와 브라질의 타?오카 팬케이크 비주Biju까지, 쓰고 발음하기 어려운 동·북유럽의 팬케이크들과 중국의 수많은 전병들과 베트남의 쌀종이들을 이용한 수많은 요리, 단팥을 끼운 일본의 팬케이크들이나 오코노미야키까지, 리스트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간편하고 맛있는 팬케이크에는 재미있고 깊은 종교적 의미도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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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40일간의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주의 화요일은 Shrove Tuesday, fat Tuesday라고도 불리는 일명 팬케이크 데이다. 정교회는 재의 수요일 없이 월요일에 사순을 시작해 그 전 주간을 팬케이크 주간(Maslenitsa)으로 삼고 축제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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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엄격하게 금육과 절제를 실행해야 하는 사순 시기를 시작하기 전, 부엌에 남아 있는 사순 때의 금지 음식, 고기나 버터, 우유 특히 달걀과 같은 음식을 다 먹어 치워버리기 위해 생긴 팬케이크 데이는 작게는 집에서 팬케이크만 부쳐 먹지만 더 넓게 나아가서는 절제와 참회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인간적으로 망가지는 시기와 맞물린다.
전 세계적으로 카니발이나 가면무도회. 사육제, 고유의 거리행진 페스티벌이 집중적으로 많이 열리는 시기가 바로 팬케이크 데이를 마지막으로 하는 사순 전의 시기이기도 하다.
단식과 금육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절기가 다가오니, 전날 마지막으로 실컷 달걀과 지방이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거나 당분간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니 정신줄 놓고 밤새 며칠간 놀아보자고 모든 이들이 의기투합한다. 다음날부터 다이어트 해야 하는 사람이 전날 잔뜩 먹어두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려나? 화요일에 모두 배부르게 먹고 다음날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날 단식하고 미사에 참석하고 머리에 재를 뿌려 참회하며 부활까지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도 좋아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 팬케이크 데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기념하는 내용이 굉장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팬케이크 또한 달걀과 지방이 기름지고 풍부한 맛에, 만들기도 간편하고 프라이팬을 휘둘러 던졌다 받아내는 재미까지 있으니 축제스럽다. 무엇보다 힘들게 고행을 하기 전 한번 신나게, 기름지게 만들어 먹어보자란, 너무나 인간적인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들었다. 그리고 작년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카니발을 겪으며, 인생 살면서 다시는 못 놀 것처럼 목숨 걸고 밤새 노래하며 춤추며 노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보고 사순 이전의 축제를 정말 잘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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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돌아오는 화요일 메밀가루를 좀 섞고 오트밀을 넣어 약간 뻑뻑하게 부치는 버몬트 스타일의 팬케이크를 만들까 드롭 스콘을 만들어 잉글리쉬 커스터드를 곁들일까 아직 고민 중이다. 모든 이들과 나의 행복을 위해 팬케이크를 뒤집으며 작은 소망도 빌어볼 참이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모든 이들이 즐겁게 노는 카니발처럼 칼로리 신경 쓰지 않고 통통하고 두툼하게 구운 팬케이크 높게 겹쳐놓고 메이플 시럽을 붓거나, 얇디얇은 크레페 잔뜩 부쳐놓고 돌돌 말아먹을 크림이나 녹인 초콜릿, 과일, 또는 햄이나 치즈를 곁들여 쌓아놓고 신나게 먹어대는 크레페 파티를 여는 것도 아주 재미있을 듯하다. 한번도 만들어 본적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자. 지역의 특징에 맞는 가루로 결이 고운 반죽을 만들고, 팬을 잘 달궈 익히면 남녀노소 누구나 팬케이크를 잘 만들 수 있다. 처음 잘못 부친 팬케이크에 서운해 하지 말자. 옛 러시아 속담에도 “첫 번째 블리니는 누구나 실패한다.”란 말이 있을 정도니까. 김치전이나 달래와 바지락 살을 썰어 넣은 봄 향기 가득한 해물전도, 수수부꾸미나 메밀총떡도 안될 것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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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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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꽃남에서 계속 핫케이크가 나오던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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