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건 반드시 되돌려주는 바보
15년 동안 지켜 본 박명수는 물론 후자다. 은혜 갚는 바보가 승리하는 세상을 보여준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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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사자성어>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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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 어려울 잊을

남에게 입은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는다

연예인 결혼식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웬만큼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면 초대장(청첩장)을 반드시 지참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소란스런 입구를 가까스로 통과한 일반 하객은 그때부터 본의 아니게 일종의 관객이 된다. 예식이 끝나면 한 편의 연극, 혹은 뮤지컬을 본 느낌으로 귀가하게 될지 모른다.

개그계의 거성으로 불리는 박명수의 결혼식 역시 노래와 춤, 코미디가 뒤섞인 호화 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 했다. 강호동, 이휘재, 김제동 등 TV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연예인들로 객석은 차고 넘쳤다. 사회자는 이 시대 최고의 MC로 손꼽히는 유재석, 축하 공연 역시 오락 프로의 대명사 ‘무한도전’ 멤버들이 총동원됐다. 성시경의 감미로운 축가도 일품이었다. 이런 리얼 스토리를 드라마, 혹은 쇼 프로로 제작하자면 출연료만도 억대에 육박할 것이다.

이 화려한 결혼식에 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드라마도 있었다. 마흔을 눈앞에 둔 박명수는 미모의 여의사를 배필로 맞이하기 위해 무던히 애태웠다고 자백했다. 깨질 뻔했던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던 듯하다. 결혼식 당일 뮤직비디오로 보여준 ‘바보에게 바보가’라는 노래를 미리 장모님 앞에서 불러 허락을 받아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나왔다.

주례를 맡은 나에게도 이 결혼은 인연이 각별하다. 알고 보니 신부의 아버지는 30년 전 동료 교사였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대를 미룬 채 모교에 부임한 새내기 국어 교사였고 그분은 갓 결혼한 미남 수학 선생님이었다. 첫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가물거린다. 제대 후 방송사에 입사하면서 소식이 끊겼는데 이번에 박명수 덕분에 30년 전 직장 동료들과 감격의 조우를 하게 됐다.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연출할 당시 ‘시네마천국’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분위기 전환용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패러디한 적이 있다. 신인이던 박명수는 그 당시 주로 바보 역할을 맡았는데 어떤 상황, 어떤 배역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즐겁게 연기했다. 그 모습이 가상해서 신인 연기상을 주었는데 그 후 나를 만날 적마다 그 상이 제 인생에 등불이 됐다는 말을 했다. 정식으로 상을 준 것도 아니고 코미디 프로에서 웃기려고 준 상에 그토록 감사해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거성’이 된 후에도 그 마음, 그 태도가 달라지지 않은 게 신기했는데 드디어 인생 제2막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내게 요청을 한 것이다.

예식장에서 만난 미남 수학 선생님은 이제 반백의 교감 선생님으로 변했다. 아직도 신랑이 불안하고 걱정된다는 장인의 농 섞인 말에 나는 진담으로 화답했다.

“그의 무한도전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눈에 보이는 외양은 일부이고 속속 드러날 재능이 무궁무진하다.”

살아보니 세상의 바보는 두 종류다. 받은 걸 금세 잊어버리는 바보와 받은 건 반드시 되돌려주는 바보. 15년 동안 지켜 본 박명수는 물론 후자다. 은혜 갚는 바보가 승리하는 세상을 보여준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주철환의 사자성어>는 춘명출판사와 함께하며, 매주 목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주철환 #사자성어 #박명수
1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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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03

박명수씨의 결혼식 주례 맡으신 분이 쓰시는 칼럼이라니 뭔가 대단한 느낌이 드네요. 박명수씨 하긴 나이가 들어 뜬 케이스고 게다가 그렇게 젊고 예쁜 신부를 맞았으니 당연히 각골난망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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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31

각골 난망 한자의 머릿부분이 뚝 베어나갔지만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어요. 개그게의 고성! 박명수라는 이물에 대비시킨 설명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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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08.15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개되는 사자성어 재미있네요. 박명수생각하면 바로 각골난망이 연상될 듯합니다.ㅎㅎ '은혜갚은 바보가 승리하는 세상'이 상식이 되어야 되는데 비정한 현실세계에서는 뭔가 clear하지 않은 마무리들어 많이 있지요. 밟고 비틀고 등등 박명수 열심히 노력하는 개그맨으로 보는데 앞으로도 롱런할 거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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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어 교사로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MBC 방송사에 입사해 [일요일 일요일 밤에], [퀴즈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대학가요제]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OBS 경인TV 사장, JTBC 대PD,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는 그가 40여 년간 고수해온 좌우명으로, 지금껏 좌우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자부한다. 감사한 사람들 덕분이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고 재미있는 시와 노래를 흥얼거리며 살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의미를 짚어보는 나이가 되었다. 남은 날들을 더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는 것이 목표다. 방랑자였던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남달랐다. 축구 명문이었던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늘에 앉아 응원만 했고 악보도 못 그리면서 제멋대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실력 있고 정 많은 국어선생님을 만나면서 자신도 일찌감치 국어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고 2년 반 동안 교단에서 문학도, 팝송도 즐겁게 가르쳤다. 제대 말년에 우연히 본 방송사 시험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신나게 연출하다가 틈나면 글 쓰고, 시간 나면 강단에도 서더니 언제부턴가 포털 사이트에 ‘유명한 PD’라고 치면 연관검색어로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뜬다. 사람들은 그를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정의 무대], [대학가요제] 등을 연출한 전설의 ‘스타 PD’로 기억한다. ‘누군가 꿈을 이루면 그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대학교수로 7년 반 동안 많은 방송인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건 ‘꿈이 있다’는 거라고 속삭이는 그는 오늘도 꿈의 공장에서 30년째 현장을 서성이고 있다. 아직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야 하는 희망과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1990, 1991)을 비롯하여, 백상예술대상 우수작품상(1995), 방송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1996), 경실련 선정 시청자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1998), 방송위원회 프로그램기획부문 대상(1997), 한국여성단체연합 평등방송 디딤돌상(1999),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공로상(2002) 등의 수많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그동안 『오블라디 오블라다』,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청춘』,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퀴즈아카데미 1, 2』, 『30초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PD는 마지막에 웃는다』, 『주철환 프로듀서의 숨은 노래 찾기』, 『상자 속의 행복한 바보』, 『시간을 디자인하라』, 『나는 TV에서 너를 보았다』, 『스타의 향기』, 『거울과 나침반』, 『PD마인드로 성공인생을 연출하라』 등 15권의 책과 2장의 앨범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