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한 젊은 날을 위하여 - 포토그래퍼 백성현
그의 사진들은 보는 사람 안에 있는 희로애락을 깨운다. 사진이라는 창을 사이에 두고 그가 느꼈던 감정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재능이 그의 사진에는 깔려 있다.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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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야. 백성현의 포토 에세이 『당신에게 말을 걸다』를 처음 집었을 때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코요태의 래퍼 빽가가 책을 냈다고 해서, 사진 좀 찍는 연예인이 사진집을 냈구나, 심드렁한 기분으로 책을 들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책은 묵직해서였다. 의욕과 욕심이 느껴지는 무게였다. ‘그저 그런 사진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걸 주장하는 듯한 무게감에 진지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사백 페이지를 훌쩍 넘긴 책에는 사진을 사랑하는 스물아홉 청년의 이십 년 사진과의 질긴 인연과 자기 일상을 열심히 살기 위해 발버둥친 이야기가 글과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사진과 글로 복기하면서, 상처도 실패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의 사진들은 보는 사람 안에 있는 희로애락을 깨운다. 사진이라는 창을 사이에 두고 그가 느꼈던 감정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재능이 그의 사진에는 깔려 있다.
생애 첫 책(『당신에게 말을 걸다』)을 냈다. 아무래도 사진전을 할 때나 자기 사진이 잡지에 실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책이 나온 후에, 주변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감격스러웠다. 출판사에서 갓 나온 책을 손에 쥐는데, 가슴 한쪽이 뻐근하더라.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책이 꽤 두껍다.
원래는 그것보다 훨씬 원고가 많았는데 30% 정도를 덜어냈다.
어떤 내용이 빠졌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스튜디오를 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빠졌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는데 분량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빼게 됐다. 다음 기회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책에서 어려웠던 지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았다. 부모님께서 마음 아파하시지 않던가?
엄마가 책을 보고 울면서 전화하셨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대학 못 간 이야기, 이런 형편에 무슨 사진이냐 싶어서 남대문 시장에 가서 사진기를 판 이야기, 어렵게 사진을 다시 시작했는데 사진기자재를 도둑맞은 이야기…… 처음엔 쓰기 싫었다. 집 형편이 어려운 게 자랑이 아니지 않나?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책에 쓴 이야기 중에서 친한 친구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시기를 벗어났고 그 때의 상처가 아물었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요태 래퍼 빽가의 사진집인 줄 알았는데, 포토그래퍼 백성현을 만난 기분이다.
많은 분들이 그래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코요태의 래퍼 빽가가 낸 책이 아니라 사진가 백성현이 낸 책이니까. 처음 사진가로 활동할 때 가장 속상한 것이 사람들이 나를 사진가로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진 찍는 사람이니까 사진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건 상식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는데, 시간과 내 노력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십 년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사진가로 받아들여주겠지.
앞으로 연예 활동을 할 생각이 있나?
나는 코요태 활동을 할 때도 연예 활동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예인을 특별하게 취급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 이전에 댄서와 모델로도 일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진은 좀 다르다.
고등학교 때 사진을 전공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사진은 운명이다. 내 인생을 지탱해 준 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가족, 두 번째가 사진이다. 엄마는 굉장히 생활력이 강하고 다부지고 자식이 잘못하면 호되게 야단치는 분이시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엉뚱하고 기발하시다. 아버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끔 못 따라간다.(웃음) 두 분은 자식들에게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하셨고, 그렇게 살고 계시다. 그런 부모님이 있어서 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진. 사진은 내 평생의 연인이다.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 더 애틋하다. 사진기를 처음 잡았을 때가 아홉 살 때였다. 장롱에 숨겨진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엄마 몰래 들고 나와 친구들을 찍었다. 야단을 맞아도, 두들겨 맞아도 ‘다시는 사진을 안 찍겠다’는 말을 안 했다. 맞는 것보다 사진을 못 찍는 게 더 슬펐으니까. 결국 엄마가 졌다. 우는 나를 데리고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 필름 현상을 맡겼다. 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취미가 없다. 술도 잘 안 마시고, 당구도 안 친다. 게임도 못한다. 사진을 찍는 걸 빼고는 하는 게 없는 셈이다. 아마, 내 인생에는 ‘사진’이라는 두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물론 좋아서 하고 있겠지만 분명 사진 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 사진 하느라 있는 돈은 다 사진에 쏟아 붓고 남들처럼 연애도 못하니까.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 그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삼사일 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방송 나가서 몇 시간 수다 떨어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사진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웃음) 그렇지만 아주 잠깐동안만이다. 그건 몸이 힘들어서 드는 생각이지 사진 때문에 드는 생각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 스스로 운명이라고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포토그래퍼로 자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굳이 말하자면 포트레이트 사진을 잘 찍는 것 같다.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 사진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참, 밝고 환하게 웃고 있더라. 열일곱의 순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없다. 그 사진은 그때에만 찍을 수 있는 순간을 잡았다. 사진이 좋은 점이 이런 거다. 몇 십 년 후에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이 재생된다. 많은 것을 잊고 살지만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점도 사진의 매력 중 하나다.
스튜디오는 언제 오픈했나?
재작년에 열었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빚까지 져서 낸 스튜디오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안간힘을 썼다. 공사도 전부 내 손으로 했고, 원목을 사다가 테이블을 만들고, 하다못해 전선이나 전구도 다 내가 발품을 팔아 사 온 것이다. 겨울에 공사를 해서 무척 추웠지만 매일 매일 파이팅 했다. 그렇게 힘들게 낸 스튜디오라 그런지 여기만 나오면 힘이 난다. 작업이 힘들어도, 사진이 잘 안 풀려도 여기만 오면 기운을 내게 된다. 여기 있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다 내 손을 거친 것이라 애착도 크다.
나중에 유명해져서 훨씬 더 좋은 스튜디오를 가진다고 해도 이곳만큼은 특별하진 않을 것 같다.
누구나 처음은 특별하니까. 가수들도 첫 무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잊어버리지 않지만 열일곱 번째 무대를 기억하진 못한다. 이곳은 내가 살면서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 좋은 스튜디오를 갖게 된다고 해도, 이 스튜디오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십 대의 내가 부러울 것 같다. 스물아홉의 내가 해맑게 웃는 열일곱의 나를 부러워하듯.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일반인들도 전문가 못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포토그래퍼가 볼 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차이는, 프로는 돈을 받고 아마추어는 돈을 받지 않는다.
굉장히 명쾌하고 단순한데…….
아마추어는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 되고 프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프로의 사진과 아마 사진 사이에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만큼 잘 찍는 아마추어도 많다. 다만, 프로는 좀더 능숙하겠지. 프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어야 된다. 기계적인 것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의사소통까지. 그렇다고 내 개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내 개성을 조화시키는 것도 프로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의를 해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거절한다는 게 내 나름의 원칙이다.
그러면 일하기 어렵지 않나?
세상에는 포토그래퍼의 수만큼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존재 이유가 있는 거다. 어떨 때는 이 개성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저 개성을 원한다. 그래서 그 많은 포토그래퍼들이 밥을 굶지 않고 산다.(웃음)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개성이고 감성이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사진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테크닉은 누구나 3년 정도만 하면 거의 다 익힐 수 있다. 그 다음은 감각 싸움이고, 크리에이티브로 자기가 얼마만큼 역량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다. 사진 속의 무언가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데, 그것이 개성이고 감성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나 사이에 사진을 접점으로 뭔가를 느끼고 환기하게 되는 거다. 내 사진을 원하는 건 내 감성과 내 개성이 그쪽에 원하는 이미지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접점이 없으면 사진 작업하기가 힘들다. 나도 그쪽도 서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으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큰 마찰 없이 일해온 것 같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으니 필카 쪽에 더 애착이 있을 것 같다.
일로 하는 건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개인적인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워서 그쪽이 더 익숙하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하는 데 비해, 서른여섯 장의 필름을 가지고 찍을 때는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누르게 된다. 디지털은 사진을 찍은 후에 수정할 수 있지만 필름은 그럴 수 없다. 찍는 순간에 집중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진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집중해서 셔터를 누를 때의 그 느낌은 디지털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인화해서 사진이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 기대감도 있다. 디지털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덜하다. 나는 앨범 세대, 필카 세대라 그런지 디카로 사진을 찍어도 꼭 인화를 한다. 손을 만질 수 있고, 앨범에 끼워 펼쳐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사랑한다. 디지털도 디지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필름 카메라가 좋다.
디지털로 찍으면서 수정은 많이 하는 편인가?
꼭 필요한 부분에만 하려고 한다. 수정하는 걸 좋아하는 사진가는 없다. 일단 힘이 너무 들고.(웃음) 나는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나도록 수정하는 편이다.
지금 가장 찍고 싶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이십 대의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거칠지만 새롭고 영감을 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아직은 연륜이나 깊이보다 젊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에 도전하고 싶다. 완벽한 ?진보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진 말이다. 나에게 사진은 감성의 고유이며 타인과의 소통이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감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봐 주는 사진, 보고 좋다고 느끼는 사진을 찍는다. 이것은 내가 나이를 더 먹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10년 후쯤에는 뉴욕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 이건 아마 이룰 수 있을 거다. 뉴욕에 있는 에이전시 여덟 곳에 사진을 보냈는데, 네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마, 이중 한 곳과는 계속 일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모든 사진작가들의 꿈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내 사진을 싣고, 퓰리처상을 받는 것. 나는 일부러 목표를 높이 잡는다. 목표가 높을수록, 이루기 힘들수록 더 많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 하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 목표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의 사진들은 보는 사람 안에 있는 희로애락을 깨운다. 사진이라는 창을 사이에 두고 그가 느꼈던 감정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진을 찍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재능이 그의 사진에는 깔려 있다.
생애 첫 책(『당신에게 말을 걸다』)을 냈다. 아무래도 사진전을 할 때나 자기 사진이 잡지에 실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책이 나온 후에, 주변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감격스러웠다. 출판사에서 갓 나온 책을 손에 쥐는데, 가슴 한쪽이 뻐근하더라.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책이 꽤 두껍다.
원래는 그것보다 훨씬 원고가 많았는데 30% 정도를 덜어냈다.
어떤 내용이 빠졌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스튜디오를 내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빠졌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는데 분량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빼게 됐다. 다음 기회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엄마가 책을 보고 울면서 전화하셨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대학 못 간 이야기, 이런 형편에 무슨 사진이냐 싶어서 남대문 시장에 가서 사진기를 판 이야기, 어렵게 사진을 다시 시작했는데 사진기자재를 도둑맞은 이야기…… 처음엔 쓰기 싫었다. 집 형편이 어려운 게 자랑이 아니지 않나?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책에 쓴 이야기 중에서 친한 친구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시기를 벗어났고 그 때의 상처가 아물었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요태 래퍼 빽가의 사진집인 줄 알았는데, 포토그래퍼 백성현을 만난 기분이다.
많은 분들이 그래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코요태의 래퍼 빽가가 낸 책이 아니라 사진가 백성현이 낸 책이니까. 처음 사진가로 활동할 때 가장 속상한 것이 사람들이 나를 사진가로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진 찍는 사람이니까 사진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건 상식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는데, 시간과 내 노력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십 년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사진가로 받아들여주겠지.
앞으로 연예 활동을 할 생각이 있나?
나는 코요태 활동을 할 때도 연예 활동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예인을 특별하게 취급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 이전에 댄서와 모델로도 일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진은 좀 다르다.
고등학교 때 사진을 전공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사진은 운명이다. 내 인생을 지탱해 준 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가족, 두 번째가 사진이다. 엄마는 굉장히 생활력이 강하고 다부지고 자식이 잘못하면 호되게 야단치는 분이시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엉뚱하고 기발하시다. 아버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끔 못 따라간다.(웃음) 두 분은 자식들에게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하셨고, 그렇게 살고 계시다. 그런 부모님이 있어서 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진. 사진은 내 평생의 연인이다.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 더 애틋하다. 사진기를 처음 잡았을 때가 아홉 살 때였다. 장롱에 숨겨진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를 엄마 몰래 들고 나와 친구들을 찍었다. 야단을 맞아도, 두들겨 맞아도 ‘다시는 사진을 안 찍겠다’는 말을 안 했다. 맞는 것보다 사진을 못 찍는 게 더 슬펐으니까. 결국 엄마가 졌다. 우는 나를 데리고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 필름 현상을 맡겼다. 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취미가 없다. 술도 잘 안 마시고, 당구도 안 친다. 게임도 못한다. 사진을 찍는 걸 빼고는 하는 게 없는 셈이다. 아마, 내 인생에는 ‘사진’이라는 두 글자 말고는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사진이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물론 좋아서 하고 있겠지만 분명 사진 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 사진 하느라 있는 돈은 다 사진에 쏟아 붓고 남들처럼 연애도 못하니까.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 그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삼사일 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방송 나가서 몇 시간 수다 떨어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사진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하고 있지만.(웃음) 그렇지만 아주 잠깐동안만이다. 그건 몸이 힘들어서 드는 생각이지 사진 때문에 드는 생각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 스스로 운명이라고 생각한 일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굳이 말하자면 포트레이트 사진을 잘 찍는 것 같다.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 사진이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참, 밝고 환하게 웃고 있더라. 열일곱의 순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없다. 그 사진은 그때에만 찍을 수 있는 순간을 잡았다. 사진이 좋은 점이 이런 거다. 몇 십 년 후에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이 재생된다. 많은 것을 잊고 살지만 사진 한 장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점도 사진의 매력 중 하나다.
스튜디오는 언제 오픈했나?
재작년에 열었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빚까지 져서 낸 스튜디오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안간힘을 썼다. 공사도 전부 내 손으로 했고, 원목을 사다가 테이블을 만들고, 하다못해 전선이나 전구도 다 내가 발품을 팔아 사 온 것이다. 겨울에 공사를 해서 무척 추웠지만 매일 매일 파이팅 했다. 그렇게 힘들게 낸 스튜디오라 그런지 여기만 나오면 힘이 난다. 작업이 힘들어도, 사진이 잘 안 풀려도 여기만 오면 기운을 내게 된다. 여기 있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다 내 손을 거친 것이라 애착도 크다.
나중에 유명해져서 훨씬 더 좋은 스튜디오를 가진다고 해도 이곳만큼은 특별하진 않을 것 같다.
누구나 처음은 특별하니까. 가수들도 첫 무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잊어버리지 않지만 열일곱 번째 무대를 기억하진 못한다. 이곳은 내가 살면서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 좋은 스튜디오를 갖게 된다고 해도, 이 스튜디오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십 대의 내가 부러울 것 같다. 스물아홉의 내가 해맑게 웃는 열일곱의 나를 부러워하듯.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일반인들도 전문가 못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다. 프로페셔널한 포토그래퍼가 볼 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차이는, 프로는 돈을 받고 아마추어는 돈을 받지 않는다.
굉장히 명쾌하고 단순한데…….
아마추어는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면 되고 프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프로의 사진과 아마 사진 사이에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만큼 잘 찍는 아마추어도 많다. 다만, 프로는 좀더 능숙하겠지. 프로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어야 된다. 기계적인 것에서 클라이언트와의 의사소통까지. 그렇다고 내 개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내 개성을 조화시키는 것도 프로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의를 해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거절한다는 게 내 나름의 원칙이다.
그러면 일하기 어렵지 않나?
세상에는 포토그래퍼의 수만큼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존재 이유가 있는 거다. 어떨 때는 이 개성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저 개성을 원한다. 그래서 그 많은 포토그래퍼들이 밥을 굶지 않고 산다.(웃음)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개성이고 감성이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사진에 감동하는 사람은 없다. 테크닉은 누구나 3년 정도만 하면 거의 다 익힐 수 있다. 그 다음은 감각 싸움이고, 크리에이티브로 자기가 얼마만큼 역량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다. 사진 속의 무언가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되는데, 그것이 개성이고 감성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나 사이에 사진을 접점으로 뭔가를 느끼고 환기하게 되는 거다. 내 사진을 원하는 건 내 감성과 내 개성이 그쪽에 원하는 이미지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접점이 없으면 사진 작업하기가 힘들다. 나도 그쪽도 서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으니까. 다행히 아직까진 큰 마찰 없이 일해온 것 같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으니 필카 쪽에 더 애착이 있을 것 같다.
일로 하는 건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개인적인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배워서 그쪽이 더 익숙하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하는 데 비해, 서른여섯 장의 필름을 가지고 찍을 때는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누르게 된다. 디지털은 사진을 찍은 후에 수정할 수 있지만 필름은 그럴 수 없다. 찍는 순간에 집중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진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집중해서 셔터를 누를 때의 그 느낌은 디지털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인화해서 사진이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 기대감도 있다. 디지털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덜하다. 나는 앨범 세대, 필카 세대라 그런지 디카로 사진을 찍어도 꼭 인화를 한다. 손을 만질 수 있고, 앨범에 끼워 펼쳐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사랑한다. 디지털도 디지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필름 카메라가 좋다.
디지털로 찍으면서 수정은 많이 하는 편인가?
꼭 필요한 부분에만 하려고 한다. 수정하는 걸 좋아하는 사진가는 없다. 일단 힘이 너무 들고.(웃음) 나는 필름 카메라 느낌이 나도록 수정하는 편이다.
지금 가장 찍고 싶은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이십 대의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거칠지만 새롭고 영감을 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아직은 연륜이나 깊이보다 젊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에 도전하고 싶다. 완벽한 ?진보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진 말이다. 나에게 사진은 감성의 고유이며 타인과의 소통이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감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봐 주는 사진, 보고 좋다고 느끼는 사진을 찍는다. 이것은 내가 나이를 더 먹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10년 후쯤에는 뉴욕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 이건 아마 이룰 수 있을 거다. 뉴욕에 있는 에이전시 여덟 곳에 사진을 보냈는데, 네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마, 이중 한 곳과는 계속 일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모든 사진작가들의 꿈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내 사진을 싣고, 퓰리처상을 받는 것. 나는 일부러 목표를 높이 잡는다. 목표가 높을수록, 이루기 힘들수록 더 많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 하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 목표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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