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감성마을에는 감성이 산다 - 이외수 감성마을 탐방기
감성마을 입구는 가난한 지자체(이 부분은 작가의 표현을 빌림)가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그러나 조금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주차장으로 시작됐다. 버스가 머리를 들이밀다 실패한, 입구가 좁고 심하게 꺾인 주차장. 그러나 옹기종기 모여선 독자들 얼굴에는 ‘드디어’라는 기대 어린 푯말이 어지러이 교차했다. 적어도 이외수 작가를 만나는 자리에는 불편함에 대한 불평불만은 없었다. 누가 가녀린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쉽사리 불만을 토로할까.
200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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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행 버스 속에서는, 30여 명 독자들이 저마다 어떤 사연과 설렘과 바람으로 감성마을을 향하는지 눈치 챌 수 없었다.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우중의 감성마을 방문이라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느낌만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구나.’
내게 작가 이외수는 비와 깊이 얽혀 있다. 대학 시절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려 소용이 없어진 우산을 기어이 접어들고, 바지 동동 걷어붙이고, 나와 다섯 친구들이 서대문 푸른극장까지 걸어갔던 기억 때문이다. 일상이 팍팍할 때마다 툭하면 떠오르는 어렸던 날의 그림. 김 오르는 더운 체취를 푹푹 내뿜으며 보았던 영화는 이외수 원작의 <들개>였다. 마치 들개 자신처럼 다가온 이외수라는 이미지. 그 이미지는 내 청춘의 표상이었다. 우리들 여섯 사이의 사랑과 우정과 미움과 질투까지도 내게는 이외수라는 이름과 얽혀 남아 있다. 비가 왔다. 참 희한한 공교로움.
광주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감성마을 입구는 가난한 지자체(이 부분은 작가의 표현을 빌림)가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그러나 조금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주차장으로 시작됐다. 버스가 머리를 들이밀다 실패한, 입구가 좁고 심하게 꺾인 주차장. 그러나 옹기종기 모여선 독자들 얼굴에는 ‘드디어’라는 기대 어린 푯말이 어지러이 교차했다. 적어도 이외수 작가를 만나는 자리에는 불편함에 대한 불평불만은 없었다. 누가 가녀린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쉽사리 불만을 토로할까. 게다가 쾌활함과 산전수전, 공중전을 수없이 치른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사모의 안내와 접대 앞에서라면.
세상에, 닭백숙이 점심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초복이라 그렇다고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때로 귀찮을 수 있는 ‘무슨 무슨 날 챙기기’에서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던가. 마음이 녹진해졌고, 한 밥상에 앉은 이들 사이에서는 스스럼없는 얘기들이 오갔다.
광주에서 왔다는 이, 대구에서 왔다는 이, 부산에서, 수원에서, 인천에서 왔다는 이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작가 이외수의 ‘열혈팬’이었다. 말 그대로! 이외수의 책이라면 한 권도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는 누구와 누구 앞에서 그저 이미지 하나만 들고 때늦은 추억을 되씹으려 했던 나는 위축됐다.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라니! ‘이외수’라는 이름 하나로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 양 집안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모습은 신자 아닌 이가 바깥에서 교회당을 들여다보는 그런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현상’이라고들 한다. 이외수 현상. 작가로서는 드물게 화려한 인터넷 편력에다, 최근 TV 연예프로 출연이나 CF 촬영, 시트콤에의 등장이 몰고 온 ‘이외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화제가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적어도 독자 이벤트에 떨어졌다고 하여 따로 차를 몰고 찾아오는 열성은 그런 ‘드러남’을 뛰어넘는 무엇에 이끌린 것이었을 터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이외수 신드롬은 20여 년 전, 그 무렵부터 스물스물 또는 화끈하게 이따금 있어왔으므로.
잉어를 닮은 물고기
이외수 선생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침하지 못했다.’는 출판사와 YES24 측의 미안한 양해 말에 마치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독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요즘으로서는 드문 광경이다. 이들도 다른 데서는 한 목소리 하는 목청 높은 사람들일 텐데, 그 참 묘하다 싶은. 묘한가? 그렇다면 그걸 작가 이외수의 한 특징으로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예상치 못한 행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싶게 만드는 것. 그 특징을 ‘기벽(奇癖)’에 따른 것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작가가 텔레비전에서 말했듯이 절망적이었던 나날에 살기 위해 한 몸부림이었다면 그걸 기벽으로 굳이 못 박을 필요 없을 것 같아서다. 어쨌든 작가와 탁구를 치는 기회는 그 일로 인해 사라졌다. 사실 비 오는 날 눅눅한 몸으로 탁구 치는 것도 썩 좋은 아이디어는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 시작했다.
사모가 독자들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자기소개를 하게 하고, 중간 중간 유머를 끼워 넣어 분위기를 어루만지는 동안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하악하악』에서 독자들과 친근해진 정태련 화백이 나와, 그림 사인을 해주었다. 더러는 한 사람이 몇 권의 책을 들고 서기도 하여 사인할 책의 양이 만만찮았는데도 일일이 잉어를 닮은 물고기와 수초를 그려주는 손길이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한쪽에서는 화백의 부인이자 역시 『하악하악』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박경진 화백도 정성스럽게 물고기를 그려주며 사인회를 했다. 그 힘줄 선 손놀림에 매혹되어 가만히 보고 서 있자니 말없이 사람들을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윽고 노란 옷을 입고 ‘예쁜’ 모습으로 나타난 이외수 선생은, 아마 당신으로서는 익숙할 환영을 독자들로부터 받았다. 당연지사다. 열혈팬들이었으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할 얘기를 다 안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고, 과연 시원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삶과, 성공과, 작가 자신의 책에 대한 얘기. 책 읽는 것, 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 웃음이 점점 더 크게 번져나갔다.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고, 분위기가 그랬다. 웃어도 되고, 박수해도 되고, 다른 생각과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10년을 깎아 바쳐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공론이다. 한 가지를 정해 10년을 깎아 바치면, 즉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전력하면, 누구나 상위 10퍼센트에 들 수 있고, 먹고살 걱정에서 놓여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병뚜껑 줍기도 10년을 하면 그 속에 담긴 숱한 컨텐츠를 확보할 수 있고,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10년 속에 깃든 고통과 고난과 수고로움을 회피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 그 순간 모인 이들 모두가 자신이 과연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한 가지에 바친 10년이 있었던가 반추했을 것이 분명하고, 혹은 앞으로 그럴 자신이 있는가 어림해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찾아온 이들 중 꽤 많은 수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들을 포함해 블로깅이 일반화된 세태를 감안해서인지 이외수 선생은 글쓰기의 기본을 일러주었다.
1. 많은 어휘를 채집해 두었다가 가장 적확한 어휘를 맞춰 쓰는 훈련을 하라. (이때 당신의 단어 채집장이 스무 권이 넘었었다는 체험을 곁들였다.)
2. 주어, 보어, 목적어, 술어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법을 지킨 문장을 써라.
3. 한 문장에 수식어는 둘 이하로 최소화하라.
4.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분명한 주제를 지녀라.
아마, 뭘 좀 써보려고 시도한 사람들 누구나 이 지침에 공감하리라.
이어진 질문 시간은 그야말로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글쓰기에 관해, 힘든 삶을 견디는 법에 대해 제각각 무수한 질문을 안고 온 듯,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밖은 비가 내려 서울 갈 길이 바쁘다는 것도 아랑곳 않고 질문이 쏟아졌다.
‘저들 모두는 가장 힘든 삶을 살아본 적 있고, 굶주림을 참으며 뼈를 깎아 소설을 써 온, 누구보다 화려하지 않은 모습을 지닌 이 작가에게 기대고 싶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매너 있고, 점잖은 어휘를 구사하는 다른 작가보다, 예순두 살에 무척 나이 들어 보이고, 그러나 마음이 젊은 이 작가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구나. 이외수 선생은 인심 좋게 사람들이 바라는 위무를 해주었다. 고운 말은 아니지만 질박한 말로, 다 이해하고, 그러나 전력투구하여 나름의 성공을 일궈가며, 내 행복이 남의 눈물을 만들지 않게만 열심히 살라고 얘기해 주었다. 질문한 사람 중 선생의 책 10권을 받는 행운을 누린 세 사람은 열렬한 부러움의 눈길 때문에 뒤통수가 뜨거웠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감성은 가볍지 않다
그림 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물씬한 선생의 사인회는 바닥에 앉아 이루어졌고, 이어 우연찮게도, 장작불로 구운 삼겹살을 중심으로 차려진 저녁 밥상을 이외수, 정태련, 박경진 작가와 한자리에 앉아 먹었다. 당신들이 어찌나 편안하고 소탈한지,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앉은 밥상에서 온갖 농담들이 오갔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어느 작가와 마주앉아 이리 편안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충 식사를 마친 선생은 한 움큼의 알약을 남 볼세라 얼른 삼키고 모두에게 노래 한 자락을 들려주었다. 찾아와주고,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보너스쯤 되는 노래. 무슨 안녕이라고 했는데, 잘 모르는 노래였지만 구성진 노래였고, 귀에 담기 좋을 정도였다.
헤어지는 인사는 꾸물꾸물거리는 가운데 오고갔다. 보내는 이들이나, 떠나는 이들이나 이리 헤어짐에 미련 많은 사람들이니, 선생이야 그렇다 치고 독자들도 아마 주변에서 감성적이라는 소리 꽤나 들을 거라 여겨졌다. 돌아오는 버스 밖으로도 비가 내렸다. 무지갯빛 취침등이 켜진 차 안, 여기저기서 잠든 머리들이 꾸벅거렸다. 서울에 도착하면 또 제각기 흩어질 사람들. 그들 중 한 사람은 이번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문자가 로또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이번 감성마을 나들이가 그야말로 일생을 함께할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을 터다. 또 어떤 이는 지난한 삶 속에서 얻어진 경험과 깨달음이 농축된 선생의 작품이 자신의 힘든 삶에 가장 큰 위안이 된다고도 했다. 문외한의 마음에도, 문학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은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감성 충전. 감성조차 온갖 상품 광고에 쓰이는 마케팅 용어로 전락해 버린 가벼운 세상에서 제대로 감성 충전 한 번 하고 온 개운한 기분을 맛보았다. 감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돌이켜 보니 그 모든 즐거움 뒤에, 계속 서서 이런저런 치다꺼리를 하느라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못 본 사모의 뒷모습이 아련히 남는다. 아줌마에게만 유독 느껴지는 그런 동지의식일 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참 희한한.
내게 작가 이외수는 비와 깊이 얽혀 있다. 대학 시절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려 소용이 없어진 우산을 기어이 접어들고, 바지 동동 걷어붙이고, 나와 다섯 친구들이 서대문 푸른극장까지 걸어갔던 기억 때문이다. 일상이 팍팍할 때마다 툭하면 떠오르는 어렸던 날의 그림. 김 오르는 더운 체취를 푹푹 내뿜으며 보았던 영화는 이외수 원작의 <들개>였다. 마치 들개 자신처럼 다가온 이외수라는 이미지. 그 이미지는 내 청춘의 표상이었다. 우리들 여섯 사이의 사랑과 우정과 미움과 질투까지도 내게는 이외수라는 이름과 얽혀 남아 있다. 비가 왔다. 참 희한한 공교로움.
광주에서, 대구에서,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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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마을 입구는 가난한 지자체(이 부분은 작가의 표현을 빌림)가 나름대로 공들여 만든, 그러나 조금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주차장으로 시작됐다. 버스가 머리를 들이밀다 실패한, 입구가 좁고 심하게 꺾인 주차장. 그러나 옹기종기 모여선 독자들 얼굴에는 ‘드디어’라는 기대 어린 푯말이 어지러이 교차했다. 적어도 이외수 작가를 만나는 자리에는 불편함에 대한 불평불만은 없었다. 누가 가녀린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쉽사리 불만을 토로할까. 게다가 쾌활함과 산전수전, 공중전을 수없이 치른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사모의 안내와 접대 앞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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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닭백숙이 점심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초복이라 그렇다고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란, 때로 귀찮을 수 있는 ‘무슨 무슨 날 챙기기’에서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던가. 마음이 녹진해졌고, 한 밥상에 앉은 이들 사이에서는 스스럼없는 얘기들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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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왔다는 이, 대구에서 왔다는 이, 부산에서, 수원에서, 인천에서 왔다는 이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작가 이외수의 ‘열혈팬’이었다. 말 그대로! 이외수의 책이라면 한 권도 빼놓지 않고 탐독했다는 누구와 누구 앞에서 그저 이미지 하나만 들고 때늦은 추억을 되씹으려 했던 나는 위축됐다.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랑이라니! ‘이외수’라는 이름 하나로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 양 집안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모습은 신자 아닌 이가 바깥에서 교회당을 들여다보는 그런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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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이라고들 한다. 이외수 현상. 작가로서는 드물게 화려한 인터넷 편력에다, 최근 TV 연예프로 출연이나 CF 촬영, 시트콤에의 등장이 몰고 온 ‘이외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화제가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적어도 독자 이벤트에 떨어졌다고 하여 따로 차를 몰고 찾아오는 열성은 그런 ‘드러남’을 뛰어넘는 무엇에 이끌린 것이었을 터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이외수 신드롬은 20여 년 전, 그 무렵부터 스물스물 또는 화끈하게 이따금 있어왔으므로.
잉어를 닮은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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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선생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침하지 못했다.’는 출판사와 YES24 측의 미안한 양해 말에 마치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독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요즘으로서는 드문 광경이다. 이들도 다른 데서는 한 목소리 하는 목청 높은 사람들일 텐데, 그 참 묘하다 싶은. 묘한가? 그렇다면 그걸 작가 이외수의 한 특징으로 규정해도 좋을 듯하다. 예상치 못한 행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마음으로 받아주고 싶게 만드는 것. 그 특징을 ‘기벽(奇癖)’에 따른 것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작가가 텔레비전에서 말했듯이 절망적이었던 나날에 살기 위해 한 몸부림이었다면 그걸 기벽으로 굳이 못 박을 필요 없을 것 같아서다. 어쨌든 작가와 탁구를 치는 기회는 그 일로 인해 사라졌다. 사실 비 오는 날 눅눅한 몸으로 탁구 치는 것도 썩 좋은 아이디어는 아닌 것처럼 생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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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가 독자들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자기소개를 하게 하고, 중간 중간 유머를 끼워 넣어 분위기를 어루만지는 동안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하악하악』에서 독자들과 친근해진 정태련 화백이 나와, 그림 사인을 해주었다. 더러는 한 사람이 몇 권의 책을 들고 서기도 하여 사인할 책의 양이 만만찮았는데도 일일이 잉어를 닮은 물고기와 수초를 그려주는 손길이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한쪽에서는 화백의 부인이자 역시 『하악하악』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박경진 화백도 정성스럽게 물고기를 그려주며 사인회를 했다. 그 힘줄 선 손놀림에 매혹되어 가만히 보고 서 있자니 말없이 사람들을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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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노란 옷을 입고 ‘예쁜’ 모습으로 나타난 이외수 선생은, 아마 당신으로서는 익숙할 환영을 독자들로부터 받았다. 당연지사다. 열혈팬들이었으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할 얘기를 다 안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고, 과연 시원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삶과, 성공과, 작가 자신의 책에 대한 얘기. 책 읽는 것, 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 웃음이 점점 더 크게 번져나갔다.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고, 분위기가 그랬다. 웃어도 되고, 박수해도 되고, 다른 생각과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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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깎아 바쳐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공론이다. 한 가지를 정해 10년을 깎아 바치면, 즉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전력하면, 누구나 상위 10퍼센트에 들 수 있고, 먹고살 걱정에서 놓여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병뚜껑 줍기도 10년을 하면 그 속에 담긴 숱한 컨텐츠를 확보할 수 있고,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10년 속에 깃든 고통과 고난과 수고로움을 회피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 그 순간 모인 이들 모두가 자신이 과연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한 가지에 바친 10년이 있었던가 반추했을 것이 분명하고, 혹은 앞으로 그럴 자신이 있는가 어림해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찾아온 이들 중 꽤 많은 수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들을 포함해 블로깅이 일반화된 세태를 감안해서인지 이외수 선생은 글쓰기의 기본을 일러주었다.
1. 많은 어휘를 채집해 두었다가 가장 적확한 어휘를 맞춰 쓰는 훈련을 하라. (이때 당신의 단어 채집장이 스무 권이 넘었었다는 체험을 곁들였다.)
2. 주어, 보어, 목적어, 술어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법을 지킨 문장을 써라.
3. 한 문장에 수식어는 둘 이하로 최소화하라.
4.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분명한 주제를 지녀라.
아마, 뭘 좀 써보려고 시도한 사람들 누구나 이 지침에 공감하리라.
이어진 질문 시간은 그야말로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글쓰기에 관해, 힘든 삶을 견디는 법에 대해 제각각 무수한 질문을 안고 온 듯,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밖은 비가 내려 서울 갈 길이 바쁘다는 것도 아랑곳 않고 질문이 쏟아졌다.
‘저들 모두는 가장 힘든 삶을 살아본 적 있고, 굶주림을 참으며 뼈를 깎아 소설을 써 온, 누구보다 화려하지 않은 모습을 지닌 이 작가에게 기대고 싶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매너 있고, 점잖은 어휘를 구사하는 다른 작가보다, 예순두 살에 무척 나이 들어 보이고, 그러나 마음이 젊은 이 작가에게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구나. 이외수 선생은 인심 좋게 사람들이 바라는 위무를 해주었다. 고운 말은 아니지만 질박한 말로, 다 이해하고, 그러나 전력투구하여 나름의 성공을 일궈가며, 내 행복이 남의 눈물을 만들지 않게만 열심히 살라고 얘기해 주었다. 질문한 사람 중 선생의 책 10권을 받는 행운을 누린 세 사람은 열렬한 부러움의 눈길 때문에 뒤통수가 뜨거웠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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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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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물씬한 선생의 사인회는 바닥에 앉아 이루어졌고, 이어 우연찮게도, 장작불로 구운 삼겹살을 중심으로 차려진 저녁 밥상을 이외수, 정태련, 박경진 작가와 한자리에 앉아 먹었다. 당신들이 어찌나 편안하고 소탈한지,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앉은 밥상에서 온갖 농담들이 오갔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어느 작가와 마주앉아 이리 편안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충 식사를 마친 선생은 한 움큼의 알약을 남 볼세라 얼른 삼키고 모두에게 노래 한 자락을 들려주었다. 찾아와주고,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보너스쯤 되는 노래. 무슨 안녕이라고 했는데, 잘 모르는 노래였지만 구성진 노래였고, 귀에 담기 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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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인사는 꾸물꾸물거리는 가운데 오고갔다. 보내는 이들이나, 떠나는 이들이나 이리 헤어짐에 미련 많은 사람들이니, 선생이야 그렇다 치고 독자들도 아마 주변에서 감성적이라는 소리 꽤나 들을 거라 여겨졌다. 돌아오는 버스 밖으로도 비가 내렸다. 무지갯빛 취침등이 켜진 차 안, 여기저기서 잠든 머리들이 꾸벅거렸다. 서울에 도착하면 또 제각기 흩어질 사람들. 그들 중 한 사람은 이번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문자가 로또 맞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이번 감성마을 나들이가 그야말로 일생을 함께할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을 터다. 또 어떤 이는 지난한 삶 속에서 얻어진 경험과 깨달음이 농축된 선생의 작품이 자신의 힘든 삶에 가장 큰 위안이 된다고도 했다. 문외한의 마음에도, 문학이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은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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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충전. 감성조차 온갖 상품 광고에 쓰이는 마케팅 용어로 전락해 버린 가벼운 세상에서 제대로 감성 충전 한 번 하고 온 개운한 기분을 맛보았다. 감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돌이켜 보니 그 모든 즐거움 뒤에, 계속 서서 이런저런 치다꺼리를 하느라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못 본 사모의 뒷모습이 아련히 남는다. 아줌마에게만 유독 느껴지는 그런 동지의식일 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참 희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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