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 “삶은 모순을 인정하는 것”- 『엄마의 집』의 작가 전경린
이번에 출간된 소설 『엄마의 집』을 통해 전경린은 전례 없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집을 갖는 엄마 ‘미스 엔’과 스무 살 딸 ‘호은’이 완성해가는 집과 일상, 사랑의 풍경을 풍요롭게 그려냈다.
2008.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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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이 달라졌다. 개인의 욕망과 내면에 천착하던 그의 시선이 ‘가족’으로 옮겨졌다. 최근작 『엄마의 집』(열림원, 2007)은 이를 보여주는 문학적 변화의 증거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환과 멸』『물의 정거장』『바닷가 마지막 집』,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열정의 습관』『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열정의 습관』『황진이』 등을 써낸 전경린은 문학동네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한민국 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의 작가다.
특히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김윤진 주연의 영화 <밀애>로 영화화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02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디렉터스컷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 김윤진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이름, 전경린
이번에 출간된 소설 『엄마의 집』을 통해 전경린은 전례 없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집을 갖는 엄마 ‘미스 엔’과 스무 살 딸 ‘호은’이 완성해가는 집과 일상, 사랑의 풍경을 풍요롭게 그려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줄이기로 하고, 간단히 줄거리만 소개하면 이렇다.
주인공 호은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스무 살이 된 호은은 엄마가 집을 갖게 되자 그를 찾아 나선다. 지은 지 이십 년쯤 된, 재개발을 해야 할 만큼 낡은 아파트. 그러나 공존과 독립이 가능한 집이었다.
이렇듯 제자리를 찾은 엄마와 달리, 아빠는 새엄마의 딸 승지를 호은에게 맡긴 채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린다. 결국 엄마와 호은, 승지는 ‘엄마의 집’에 가족처럼 모여 살게 된다.
전경린의 기존 독자라면 그의 새로운 변화를, 그의 새로운 독자라면 ‘전경린 읽기’에 심취될 만한 흥미로운 캐릭터,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달 25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열린 강연회장은 이러한 작품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행사였다.
이날 전경린은 메모한 몇 장의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긴장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종이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웃음 넘치는 강의는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 변화, 『엄마의 집』을 곱씹어 볼 만한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전경린의 목소리는 종이처럼 얇았다. 그러면서도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독자들 앞에 선 그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저도 역시나 밀폐된 공간에서 방문을 꼭 잠그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나서는 걸 피해왔다는 작가 전경린. 그녀는 “오늘 할 말을 적어 왔는데, 읽다시피 할 터이니 양해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소설가가 된 이유… 누군가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객석을 메운 독자 모두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그가 밝힌 소설가가 된 이유.
“먼저 출퇴근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첫 직장을 다닐 때도 매일매일 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염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에요. 경남의 작은 소읍에서 태어났는데 일상에서 쓰는 사투리와 책에 나오는 표준어와의 간극을 메우는 데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누구와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생각하고 책을 읽고 몽상에 빠지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은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이어 소설을 향한 의지와 열망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글을 매개로 해서 누군가와 깊이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언어에 대해 집착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나의 상상과 소설 속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작가가 되고 보니 더 기쁜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도 기쁨이며 경험과 글쓰기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는 ‘직업윤리’ 때문에 소설가가 된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유가 뭘까.
“얼마 전 인터뷰를 할 때 ‘작가는 좋은 사람이냐?’는 질문에 웃었는데요. ‘직업윤리적으로 작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작가들은 이 세계의 윤리와 가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저마다 독특한 시각으로 남다른 자극을 합니다.
작가들은 예외적이고 비주류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가지고 보편성을 창조하기도 하고, 보편성을 넓히기도 하고, 보편성을 뒤집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는 이 세계에 대한 모성적 자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작가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본 신작 『엄마의 집』에 대한 소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이 많았다.
『엄마의 집』, 어떤 소설인가?
“이 책에 나오는 ‘집’은 엄마가 화가로서의 본업을 버리고 15시간씩 일해서 마련한 집입니다. 많은 상징성이 있지요. 엄마와 엄마의 애인이 다정한 저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사랑과 외로움, 갈망과 상처, 모호한 분노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주인공 호은은 막연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죠.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건강히 나아갑니다. 88년 이후에 태어나 저항할 역사, 반항할 권력도 없습니다. 저성장세대의 해결해야 할 과제만 버겁게 놓여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원, 영어공부, 남자를 사귈 것인지, 여성을 사귈 것인지 혹은 둘 다를 사귈 것인지를 고심합니다.”
엄마
“호원은 엄마를 ‘미스 엔’이라고 부릅니다. ‘미스 엔’이란 엄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처녀의 길을 간직한 채,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독립한 여자입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집을 마련한 여자입니다. 우리 삶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본질에서 떠날 때가 있고, 받아들이고 머무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여기 이곳’이라고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떠나는 존재입니다.
엄마는 삶의 변화 앞에서 흔들리지만, 결혼을 유보하고 독립적인 삶을 공존시키는 인물입니다. 또한, 딸과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어떤 해결도 없이 문제를 묵묵히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빠
“우리 주변에는 ‘386’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대로 걸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시대가 바뀌면서 생의 바닥을 버티는 호원의 아빠를 통해 386의 한 면을 옹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작품의 의도
“삶의 괴로움과 권태가 없는 곳은 없지만, 삶의 자리와 문제들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타클라마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죽음의 사막, 즉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삶 역시 타클라마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들어선 이상, 살아서는 삶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삶의 본질은 문제를 사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모순을 보면서도 굴절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목에 걸린 가시같이 모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태도가 삶을 긍정하는 힘이라 생각했고 이번 소설에서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집』은 남다른 가정 형태의 인물이 아닌,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집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유일한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삶이란 어떤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했느냐?’이며 경험을 사유로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깊은 인내와 사유의 힘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자신만의 소설가인 것입니다.
어느 독자에게 소설 읽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 있다고 했습니다. 힘껏 살고 싶다는 용기가 솟구친다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존재론적으로 더 삶답다거나, 더 윤리적인 것의 가치 척도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가족이란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 있는 생의 한 면입니다. 사실, 나는 의식이 싹틀 무렵 가족에 대해 무관심했고, 떨어져 나가려고만 했습니다. 분리와 격리만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던 것이지요. 어쩌면 나는 타고난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릅니다. 일정량의 그리움과 결핍이 늘 필요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혈육, 가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인 애정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한 개인으로 어느 정도 성숙되고 난 뒤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혈육애’와 ‘가족 정신’은 아주 다른 말이라는 겁니다. 저는 ‘가족 정신’을 더 좋아합니다. 혈육들도 ‘가족 정신’ 아래서 객관적인 인격, 혈육이 아니더라도 개별적인 인간으로 공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가족과 전혀 다른 모습의 집과 가족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엄마의 집』입니다.”
“삶의 긍정이란 메시지를 강화하고 싶었다”
“이 소설을 낸 후 들은 평은 이렇습니다. ‘많이 달라졌다. 밝아졌다, 환해졌다, 공기가 따뜻해졌다.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다, 타자와의 관계로 나아갔다.’ 나는 이 변화 역시 하나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자아와 개인의 욕망’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가족 역시 한 개인의 실존적 관계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남다른 가정의 아픔을 우화적으로 환하게 그려내고, 의식의 풍경에 집중해서 삶의 긍정이라는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소설가다.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는데, 지금까지 쓰고 있는 필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로가 간격을 가진 후 살아 있음을 소중히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몸속을 흐르는 따스한 물, 즉 생명을 지켜주는 힘입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낍니다. 당연합니다.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존재입니다. 전작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의 작가 후기를 보니 달라지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요 속에서 긴장과 굴절과 모순을 읽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나의 소설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새로운 주제에 빠지는 낯선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쓰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꿈 같은 부정형의 형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호한 욕망에 사로잡혀 다음 소설로 다가갈 것입니다.”
30여 분의 강연이 끝나고, 한 작가 지망생의 질의에 대해 그녀가 대답했다.
“많은 책을 읽는 건 기본이고요, 남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아끼지 말고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자기만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전경린은 이번 작품 『엄마의 집』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글쓰기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글쓰기는 내 속으로 삼켜진다. 내 속으로 들어온 문장들은 어느새 나를 점거하고 육화된다. 작품이 일단 진행된 이상, 나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삼켜진 문장들이 몸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이 완성되어 나와 분리된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나는 탈영한 병사처럼 다시 붙들려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붙들려갔다. 공사 중인 건축물을 닮은 그 조붓하고 컴컴하고 적막한 소설의 입구로 들어갈 때마다 조금 무섭고 외로웠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환과 멸』『물의 정거장』『바닷가 마지막 집』,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열정의 습관』『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열정의 습관』『황진이』 등을 써낸 전경린은 문학동네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한민국 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의 작가다.
특히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김윤진 주연의 영화 <밀애>로 영화화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02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디렉터스컷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 김윤진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이름, 전경린
주인공 호은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스무 살이 된 호은은 엄마가 집을 갖게 되자 그를 찾아 나선다. 지은 지 이십 년쯤 된, 재개발을 해야 할 만큼 낡은 아파트. 그러나 공존과 독립이 가능한 집이었다.
이렇듯 제자리를 찾은 엄마와 달리, 아빠는 새엄마의 딸 승지를 호은에게 맡긴 채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린다. 결국 엄마와 호은, 승지는 ‘엄마의 집’에 가족처럼 모여 살게 된다.
전경린의 기존 독자라면 그의 새로운 변화를, 그의 새로운 독자라면 ‘전경린 읽기’에 심취될 만한 흥미로운 캐릭터,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달 25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열린 강연회장은 이러한 작품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행사였다.
이날 전경린은 메모한 몇 장의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긴장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종이를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웃음 넘치는 강의는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 변화, 『엄마의 집』을 곱씹어 볼 만한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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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목소리는 종이처럼 얇았다. 그러면서도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독자들 앞에 선 그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저도 역시나 밀폐된 공간에서 방문을 꼭 잠그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나서는 걸 피해왔다는 작가 전경린. 그녀는 “오늘 할 말을 적어 왔는데, 읽다시피 할 터이니 양해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소설가가 된 이유… 누군가와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객석을 메운 독자 모두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그가 밝힌 소설가가 된 이유.
“먼저 출퇴근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첫 직장을 다닐 때도 매일매일 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염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에요. 경남의 작은 소읍에서 태어났는데 일상에서 쓰는 사투리와 책에 나오는 표준어와의 간극을 메우는 데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누구와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생각하고 책을 읽고 몽상에 빠지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은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이어 소설을 향한 의지와 열망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글을 매개로 해서 누군가와 깊이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언어에 대해 집착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나의 상상과 소설 속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작가가 되고 보니 더 기쁜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도 기쁨이며 경험과 글쓰기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는 ‘직업윤리’ 때문에 소설가가 된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유가 뭘까.
“얼마 전 인터뷰를 할 때 ‘작가는 좋은 사람이냐?’는 질문에 웃었는데요. ‘직업윤리적으로 작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작가들은 이 세계의 윤리와 가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저마다 독특한 시각으로 남다른 자극을 합니다.
작가들은 예외적이고 비주류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가지고 보편성을 창조하기도 하고, 보편성을 넓히기도 하고, 보편성을 뒤집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는 이 세계에 대한 모성적 자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작가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본 신작 『엄마의 집』에 대한 소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이 많았다.
『엄마의 집』, 어떤 소설인가?
“이 책에 나오는 ‘집’은 엄마가 화가로서의 본업을 버리고 15시간씩 일해서 마련한 집입니다. 많은 상징성이 있지요. 엄마와 엄마의 애인이 다정한 저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사랑과 외로움, 갈망과 상처, 모호한 분노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주인공 호은은 막연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죠.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건강히 나아갑니다. 88년 이후에 태어나 저항할 역사, 반항할 권력도 없습니다. 저성장세대의 해결해야 할 과제만 버겁게 놓여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원, 영어공부, 남자를 사귈 것인지, 여성을 사귈 것인지 혹은 둘 다를 사귈 것인지를 고심합니다.”
엄마
“호원은 엄마를 ‘미스 엔’이라고 부릅니다. ‘미스 엔’이란 엄마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처녀의 길을 간직한 채,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독립한 여자입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집을 마련한 여자입니다. 우리 삶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본질에서 떠날 때가 있고, 받아들이고 머무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여기 이곳’이라고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떠나는 존재입니다.
엄마는 삶의 변화 앞에서 흔들리지만, 결혼을 유보하고 독립적인 삶을 공존시키는 인물입니다. 또한, 딸과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어떤 해결도 없이 문제를 묵묵히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빠
“우리 주변에는 ‘386’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대로 걸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시대가 바뀌면서 생의 바닥을 버티는 호원의 아빠를 통해 386의 한 면을 옹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작품의 의도
“삶의 괴로움과 권태가 없는 곳은 없지만, 삶의 자리와 문제들을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타클라마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죽음의 사막, 즉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삶 역시 타클라마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들어선 이상, 살아서는 삶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삶의 본질은 문제를 사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모순을 보면서도 굴절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목에 걸린 가시같이 모순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태도가 삶을 긍정하는 힘이라 생각했고 이번 소설에서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집』은 남다른 가정 형태의 인물이 아닌,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집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유일한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삶이란 어떤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했느냐?’이며 경험을 사유로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깊은 인내와 사유의 힘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자신만의 소설가인 것입니다.
어느 독자에게 소설 읽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 있다고 했습니다. 힘껏 살고 싶다는 용기가 솟구친다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존재론적으로 더 삶답다거나, 더 윤리적인 것의 가치 척도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가족이란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 있는 생의 한 면입니다. 사실, 나는 의식이 싹틀 무렵 가족에 대해 무관심했고, 떨어져 나가려고만 했습니다. 분리와 격리만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던 것이지요. 어쩌면 나는 타고난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릅니다. 일정량의 그리움과 결핍이 늘 필요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혈육, 가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인 애정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한 개인으로 어느 정도 성숙되고 난 뒤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혈육애’와 ‘가족 정신’은 아주 다른 말이라는 겁니다. 저는 ‘가족 정신’을 더 좋아합니다. 혈육들도 ‘가족 정신’ 아래서 객관적인 인격, 혈육이 아니더라도 개별적인 인간으로 공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가족과 전혀 다른 모습의 집과 가족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엄마의 집』입니다.”
“삶의 긍정이란 메시지를 강화하고 싶었다”
“이 소설을 낸 후 들은 평은 이렇습니다. ‘많이 달라졌다. 밝아졌다, 환해졌다, 공기가 따뜻해졌다. 긍정적이고 포용적이다, 타자와의 관계로 나아갔다.’ 나는 이 변화 역시 하나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자아와 개인의 욕망’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가족 역시 한 개인의 실존적 관계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남다른 가정의 아픔을 우화적으로 환하게 그려내고, 의식의 풍경에 집중해서 삶의 긍정이라는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전경린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화려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소설가다.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전경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춘문예에 응모할 때 임시로 지었는데, 지금까지 쓰고 있는 필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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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간격을 가진 후 살아 있음을 소중히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몸속을 흐르는 따스한 물, 즉 생명을 지켜주는 힘입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낍니다. 당연합니다.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존재입니다. 전작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의 작가 후기를 보니 달라지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요 속에서 긴장과 굴절과 모순을 읽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나의 소설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새로운 주제에 빠지는 낯선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쓰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꿈 같은 부정형의 형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호한 욕망에 사로잡혀 다음 소설로 다가갈 것입니다.”
30여 분의 강연이 끝나고, 한 작가 지망생의 질의에 대해 그녀가 대답했다.
“많은 책을 읽는 건 기본이고요, 남과 다르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아끼지 말고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자기만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전경린은 이번 작품 『엄마의 집』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글쓰기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글쓰기는 내 속으로 삼켜진다. 내 속으로 들어온 문장들은 어느새 나를 점거하고 육화된다. 작품이 일단 진행된 이상, 나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삼켜진 문장들이 몸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이 완성되어 나와 분리된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나는 탈영한 병사처럼 다시 붙들려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다시 붙들려갔다. 공사 중인 건축물을 닮은 그 조붓하고 컴컴하고 적막한 소설의 입구로 들어갈 때마다 조금 무섭고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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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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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7.11
ㅋㅋ^^;
2008.02.19
이렇게 영상으로 나오니 더 민망민망~~ ㅋㅋ 인터뷰도 했는데... 저 또~~ 좋은 기회 주실꺼죠`?
jjelove
200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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