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은 '와인 만화'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직접 그린 만화로 신인 만화가상을 여러 번 타기도 했다. 내가 만화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내가 접했던 경험들이 바탕이 됐기 때문인 것 같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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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만화가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직접 그린 만화로 신인 만화가상을 여러 번 타기도 했다. 내가 만화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내가 접했던 경험들이 바탕이 됐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자유 시간에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지난 2007년 1월에 한국에 갔을 때 『신의 물방울』의 번역판을 발행하는 출판사 관계자가 “한국은 저출산 사회이지만 그만큼 부모가 교육에 돈을 투자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힌다”고 했다. 멋지다.

최근 많은 일본 아이들은 노는 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허비한다. 아니면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한다. 책을 읽거나, 해질녘까지 밖에서 뛰어다니며 ‘구김살 없이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여유가 그들에게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가끔씩 나에게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만화를 어떻게 그리게 됐는지 궁금해 한다. 아마 『신의 물방울』의 전개 방식이 독특하고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고, 와인에 대한 표현들도 현학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남동생이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신나는 게임이 없었다. 비디오도 DVD도 없었고, 재미난 TV 프로그램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간이 남아돌았고 집에 있는 갖가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부모님과 함께 옛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우리 남매는 학원에도 가지 않았고, 공부는 숙제를 하는 정도였다).

특히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하숙하는 사람도 있어서 9명이 함께 지냈다.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배울 것도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을 통해 들었던 여러 경험이 좋은 추억이 됐다.

당시 어머니는 집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셨다. 그래서 집안엔 미술에 관한 책들과 자료들이 넘쳐났다. 집에 있는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게 그림이 가득 담긴 미술책들이었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와 모네의 그림은 아름다웠으며, 루소의 그림은 무척 신기했다.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에피소드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그림인데 어딘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도 잘 놀았다. 당시에는 아직 ‘공터’가 있어서 근처 아이들이 딱히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함께 모여 날이 저물도록 뛰어 놀았다. 요즘 일본의 아이들은 밖에서 놀 때면 위험인물을 경계해 부모가 옆에서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부모 대신 이웃 노인들이 아이들을 멀리서 돌봐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안심하고 마음껏 놀 수 있었다. 우리 남매는 그런 이웃 노인에게 무척이나 사랑을 받았다. 우리 집 맞은편에 사셨던 할머니는 여러 가지 식물을 키우셨다. 우리에게 꽃과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고, 집에 놀러 가면 간식으로 달콤한 과자를 내주셨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요즘 젊은 사람들보다는 꽃과 나무 이름을 잘 안다. 사회의 약자로만 보이기 쉬운 노인의 참다운 인자함과 위대함도 안다.

우리 남매의 이런 유소년 시절의 경험은 지금 『신의 물방울』의 세계에도 살아있다. 도미네 잇세가 ‘샤토 무통 로쉴드 1982년산’을 마시고 마음에 그린 밀레의 ‘만종’, 프랑스인 셰프가 메종 루 뒤몽Maison Lou Dumont의 ‘뫼르소Meursault 2003년’을 마셨을 때 떠올린 고흐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는 예전 그림책에서 자주 펼쳐 봤던 명화다. 그리고 간자키 유타카가 유언장에 제3사도의 이미지로 묘사한 ‘향수’의 표현은 그야말로 우리가 보낸 어린 시절의 그리운 풍경이다.

나와 남동생은 실제로 와인을 마시면서 옛날 경험들을 떠올린다. 옛날에 먹었던 프랑스 요리부터 예전에 읽었던 책,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 인상 깊게 봤던 그림 등이 내 안에 새겨져 있어, 그것들이 와인의 맛과 함께 다시 연상되는 것 같다. 어릴 적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와인뿐 아니라 표현하는 사람으로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자라나는 일본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 근사한 와인을 마신다면 무엇을 떠올릴까. 그것이 게임의 주인공이라면 참으로 삭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에 빈약한 놀이밖에 경험하지 못한 어른은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와인을 ‘풍부하고 우아하게’ 즐기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신의 물방울』의 줄거리는 이미 밝혀진 대로 주인공들이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12사도 와인과 최후의 와인 하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마지막 와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떠오를 만한 와인을 넣고 싶다.

『신의 물방울』을 쓰기 전에는 『사이코 닥터』『미스터리 극장 에지』 같은 만화 등을 동생과 함께 그려 왔다. 지금도 소년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소년 형사』라는 작품을 동생과 함께 쓰고 있다.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추리 만화들이다.

난 어릴 때부터 셜록 홈스와 괴도 뤼팽을 보며 밤잠을 설쳤던 ‘추리 소녀’였다. 일본 미스터리 작가인 요코미즈오 세시와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소년 탐정단 아케치 고코로』 등 주옥같은 일본의 추리 명작들도 거의 다 읽었을 정도였다. 특히 아서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스』는 내게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줬다. 제일 처음 읽은 책이 『얼룩무늬 끈』이라는 소설이었는데 너무 감동한 나머지 『셜록 홈스』 시리즈를 전부 사서 읽었다. 당시 남동생도 내가 사온 책을 전부 읽었을 것이다. 이처럼 추리 만화들은 극적 긴장감을 더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높여 준다.

지금도 둘이서 미스터리 만화를 쓰고 있는 것이 그때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신의 물방울』을 탄생시킨 것도 바로 어린 시절에 접했던 추리 소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자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고백하자면 『신의 물방울』 역시 와인 만화가 아니다. 와인을 소재로 하는 추리 만화다. 일부러 미스터리 풍으로 만들기 위해 주인공이 미스터리 와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줄거리로 삼았다. 『신의 물방울』 에피소드에도 미스터리 작가가 등장하는 것은 나의 기호와 무관치 않다. 『신의 물방울』이 끝나면 다음 작품도 미스터리를 써 볼까 생각 중이다.

한 가지를 더 고백 하자면 난 매번 작품에 필명을 사용한다. 실제 나의 본명은 기바야시 유코다. 내가 필명을 사용하는 것은 내 작품들이 대부분 미스터리 만화이기 때문에 예측 불허의 신비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는 것처럼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작품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의 물방울』에서 쓰는 아기 다다시에서 성은 내 실제 성에서 ‘기’를 따왔다. 다다시의 한자漢字인 ‘나오’는 중성적인 느낌으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것 같아서 선택했다. 아마기세 마루라는 이름으로도 미스터리 만화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쓰고 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와인의 기쁨>은 ‘중앙books’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신의물방울 #와인
5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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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snow

2020.10.10

이 사람이 그 미스터리 극장 에지 작가였어? 와 핵 깝놀!!! 어쩐지 느낌이 비슷하더라니만... 그래도 요새 마리아주 편에서는 이전 신의물방울 때보다 와인 지식이 많이 늘어난거 같아서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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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23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은 대체로 교과서나 참고서일텐데 말이죠. ㅋㅋ. 정말 요즘 세대들은 어릴 때 추억하면 떠올리는 게 게임이 될 거같아요. 그렇다고 아이들끼리 놀러 다니게 하기도 워낙 세상이 뒤숭숭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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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khan

2007.12.11

인생의 40고개를 넘기전까지 내가 경험하였던 술 중의 대다수가 어린시절 심부럼때부터 마셔왔던 설탕 탄 막걸리, 소주, 맥주, 위스키, 진 등이였다. 물론 달콤한 진x포도주도 마셔보았지만 와인을 마실 기회는 잘 없었다. 왜냐구요 앞에서 열거한 술들이 그를 마실 틈을 주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어느 미모의 여대생에게 가우다시(똥폼)을 잡으려고 들런, 레스토랑에서 웨이터가 권하는 화이트 와인의 그 텁텁한 맛의 선입감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선입감이 깨어지게된 것은 얼마전에 일이었다. 지난 10월 뉴질랜드에 출장을 갔었는데, 식사와 함께 곁들게 된 ice wine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무식을 나타내기라도 하려는 듯 "왜 이렇게 달죠? 설탕을 넣었나요?"라며 무식을 뽐내었다. 출장 기간 내에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게 되어었는데 그것이 국내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고있는 것인줄 몰랐던 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다. 요즘같이 진눈깨비가 스산히 휘감는 밤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과 함께 그라스에 자주 와인을 채우게되는데, 이 글을 읽고나서 비로소 와인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여겨지는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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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타다시

10여 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기바야시 신(樹林伸), 기바야시 유코(樹林 ゆう子) 남매의 공동 필명으로, 이 외에도 공동 혹은 한 명이 사용하는 아리모리 조지(有森丈時), 아마기 세이마루(天樹征丸), 아오키 유야(靑樹佑夜), 안도 유마(安童夕馬), 이가노 히로아키(伊賀大晃) 등의 필명이 있다. 흔히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를 '아기 타다시 A', 동생인 기바야시 신은 '아기 타다시 B'로 나눠 부른다. 이 두 사람은 와인을 소재로 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신의 물방물』 뿐만 아니라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한국 출간명 『소년탐정 김전일』)』, 『시바토라』 등 대히트작들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여러 개의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보니 베일에 가려진 부분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 동생인 기바야시 신의 프로필만이 떠올라 있었지만, 두 사람의 공동필명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세계의 만화시장을 한 번 더 들썩였다. 아기 타다시 A,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는 아기 콤비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여성지에서의 만화 원작 및 르포 기사 게재 등 프리 저널리스트로서 정열적으로 활동을 펴고 있다. 아기 타다시 B, 동생 기바야시 신은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하였고, 1987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 입사하여 다년간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독립하여 만화 스토리 작가, 소설가, 드라마 기획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의 물방울』은 두 사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5분 거리에 살며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공동의 와인셀러로 만들고,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스토리를 이끌어낸다는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동 집필을 한다고 한다.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스토리로 다양한 팬층을 갖고있는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