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 장군의 검을 다시 보았다.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그 장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검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얼마인가 달라져서 이 자리에 다시 서 있다. 칼 앞에서, 나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를 느꼈다. 충무공 이순신은 어디까지 감내해야 했던 것일까. 칼은 아직도 깊게 울고 있었다. 어린 나는 칼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온전히 칼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길을 걸어 내려왔다. 베어야 할 것을 베어 산하를 물들이리라는 공의 검명이 떠올랐다. 베어지지 않는, 그러나 베어야만 했던 것들에 울었던 검이 생각나 씁쓸해졌다. 울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면사첩을 대하고도 공은 웃어야 했다. 셋째 면의 죽음을 듣고도, 백의종군 길에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도 드러내어 울 수 없었다. 엉망이 된 몸을 끌고 바닷가에 다다라 남겨진 12척의 배를 보았을 때, 그러고도 다시 한 번 삼도 수군통제사를 맡으라는 명을 받았을 때에도 공은 울 수 없었다. 공의 몸은 공의 것이 아니었다. 공의 몸은 임금의 것이었고, 나라의 것이었고, 백성의 것이었다. 그랬기에 울음은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었고, 삼킨 울음은 더욱 깊게 묻혔다. 그 울음을 머금은 칼은 그래서 무거워 보였다.
수많은 사지를 공은 비길 데 없이 무거운 장검 한 자루로 베어냈다. 명량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원균을 비난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얽혀 빚어진 비극에, 그는 가장 큰 톱니바퀴였을 뿐이다. 칠천량 이후, 조선 수군은 배 12척이 전부였다. 명량에서 공은 아마도 자신의 키보다도 큰 검을 들고서 지휘했을 것이다. 고작 12척으로 구사할 수 있는 다른 진법은 없었다. 울돌목에서, 공은 일자진으로 적을 맞았고, 끝내 이겼다. 서해가 걸려 있었고 나라가 걸려 있었고 백성이 걸려 있었다.
명량을 앞두고 공은 적었다.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공은 무거운 검을 자청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 나는 공의 장계를 무인의 자신감으로 읽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로 듣던 이순신은 언제나 완벽했다. 과거 시험부터 마지막 그의 바다 노량까지, 무패의 장군. 빈틈없는 공사 처리.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 그러나 처음으로 읽은 『난중일기』에는 아팠다는 기록이 유난히 많았다.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의 장군은 언제나 강하고 완벽한 모습이었다. 아파서 드러누웠다는 기록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몇 해 전 가을 처음으로 『칼의 노래』를 읽고 현충사를 다시 찾았을 때에야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난중일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 못했다. 일기에서 장군은 언제나 담담했다. 일과만을 간단하게 기록할 경우가 많았고, 따로 생각을 말하는 일은 적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그 무게까지, 칼에 묻어야만 했던 울음까지 읽어내기엔 너무 어렸었다.
어느새 날이 지고 있었다. 나는 길 위에 서서 처음 아산을 찾았을 때를 생각했다. 그가 힘이 셌을 거라고 생각했다. 키가 클 거라고도 생각했다. 두 자루의 칼을 보고 어렸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에게 그것은 당연했다. 그는 바다를 호령했던 영웅 이순신이었으므로.
어둑해진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서 어쩌면 오늘 아산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처럼, 장군 이순신을 영웅으로만 기억해야 했을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찾아간 그의 검 앞에서 나는 인간 이순신을 만났다. 그는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칼은 부러지지 않은 채로 남아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나는 칼의 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깊게 흘렀던 공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차에 올랐지만 칼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랜 세월로 가라앉은 칼의 울음은, 이제는 낮고 조용했다. 그것은 또한 깊고 무거웠다. 공이 아닌 그 누구에게 맡겼더라도 무거웠을 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졌기에 칼은 지금까지도 남아 속으로만 울고 있는 것일 터였다. 분노와 배신, 슬픔과 공허. 그 모든 것을 감내한 한없이 조용한 칼의 노래에, 영웅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에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족적인 책임감만으로 나는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남긴 족적을 내가 밟아갈 수 있을까. 타는 듯한 하늘, 저무는 현충사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나에게 물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다시 아산을 찾은 날, 나는 칼의 울음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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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맘
2007.11.17
eehwan
2007.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