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 『남한산성』 김훈과의 만남
원고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는 언어의 장인. 원고지와 대면한 그의 모습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만의 소설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김훈을 만났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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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듯 김훈의 문장은 독서하는 눈길을 오랫동안 멈추게 한다. 안개 낀 차밭을 휘어 감으며 조용히 그리고 묵직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심정이 되곤 한다. 김훈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위대한 무엇과 대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새삼 말을 말답게 하는 작가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원고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는 언어의 장인. 원고지와 대면한 그의 모습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현의 노래』『강산무진』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자기만의 소설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김훈을 만났다. 그는 작업실에서 연필을 깎으며 글을 쓰고 있었다.

“작업실은 언제 마련하셨어요?”

“이쪽으로 온 지 이삼 일 정도 돼요. 집에서는 일을 잘 못해요.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김훈의 작업실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가지런히 놓인 선글라스(계절별로 쓰는 것이 다르단다). 조그만 칠판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글이 쓰여 있었고, 책상에는 작은 구식 저울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다 쓴 몽당연필을 올려놓는다.

“선글라스가 왜 이리 많아요? 네 개나 있네요!” “모두 용도가 달라요. 계절별로 쓰는 선글라스가 따로 있거든요.” 제일 위 은색 테두리 선글라스는 겨울에 쓰는 거다.

“칠판에 왜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고 쓰셨어요?”

“군대 있을 때 총을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치라고 배웠어요. 그래야 그 총이 오래가고 녹이 안 슬고 제대로 기능을 하죠. 군인에겐 총이 생명이니까. 하루를 엄정하게 관리하자는 뜻인데… 군대 다녀온 지가 3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걸 써먹고 있네요.”

“조인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흔들리지 않게. 문장도 그렇게 조여야 하지요.”

“책상 위에 저울은 왜 올려놓으셨어요?”

“이 저울은 할아버지 소지품이에요. 한의사셨던 할아버지가 한약재의 무게를 재기 위해 이 저울을 사용하셨는데, 난 몽당연필을 올려놓지요. 몽당연필이 쌓이면 이 저울이 내려가요.”

작가들은 항상 글을 쓰는 것, 소설을 쓰는 것은 무척 지루한 작업이라고 고백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 식 소설 쓰기’를 권하고 -정해진 책상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앉아있는 것-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만년필 잉크를 확인해가며 글을 쓴다. 어쩌면 김훈도 쓰는 만큼 늘어나는 몽당연필 때문에 기울어지는 저울을 보면서 지루함을 이겨내고 다음 장을 쓸 힘을 내는 것일지도….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과 지우개로 소설을 쓰시나요.”

“네.”

“연필은 몇 자루 정도 쓰셨어요?”

“연필이 수도 없이 들어가죠. 몇 장 못 써요. 없어지는 것보다 깎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많아요. 참 아까워요.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연필이 독일산이네요? 독일산이 좋은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질감이 익숙해져서….”

“작업은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저는 아침에 작업실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한 장이나 반 장 정도 쓰면 그날 일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내가 알아요.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나 싶으면 나가서 놀죠. 그런 날은 앉아 있어봐야 일이 안 되니까. 오늘은 되는 날이다 싶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쓰지요.”

그는 연필로 글을 쓴다.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다 쓰고 남은 몽당연필은 저렇게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저울은 소설가 김훈의 할아버님이 쓰시던 거다. 김훈의 할아버님은 한의사셨다.

“주로 뭐하고 노세요?”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지면서)저는 노는 날은 들에 나가서 혼자 뛰어놀아요.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들판이 많이 나와요. 좋아요.”

“혼자 노는 걸 좋아하세요?”

“죽 혼자 놀았어요. 들판 뛰어다니고, 등산도 혼자 다녀요. 여럿이 다니면 시끄럽고 내 계획에 따라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안 따라오는 놈도 있고 모이라 하면 잘 안 모이고.”

“소설가로 사는 건 어떠세요? 노는 것만큼 재미있으신가요?”

“혼자서 하니까 아무런 구속이 없잖아요. 그것이 참 좋아요. 자기가 자기를 단속하고, 자기가 자신을 규율해 나가야 하니까 철통 같은 자기 규율을 해나가야 하지요. 그것이 매우 힘들어요. 나같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가서 놀고 싶지요. 이것을 견디고 자기가 자신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먹고사는 건 어떠세요? 요즘 글 써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던데요.”

“저는 겨우 먹고살아요. 책 팔아서 약간의 수입이 생기잖아요. 그 수입을 가지고 다음 책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되니까…. 책이 나오면 또 약간의 수입이 생겨서 다음 책 나올 때까지 살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갈 때가 되겠죠. 그러면 가면 되겠죠.”

마이 페이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소설가다. 그는 영화도 잘 안 보다고 했다. 왜 안 보느냐니까 ‘답답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 흐름에 상관없이, 세상 사람이 뭐에 관심을 가지는지 신경 쓰지 않아 낙후되어도 좋다. 시대의 뒷전이 되어 그저 혼자서 재미나게 들에서 노는 게 좋다고. 그런 그의 낙후성이 부러웠다.

김훈과 자전거 미니어처 그리고 그의 책 『남한산성』

“어느덧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네요,『남한산성』은.”

“내가 옛날부터 역사를 배경으로 하자고 생각한 것이 세 편이었어요. 이순신, 우륵, 남한산성. 이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쓰지 않을 예정이에요. 『칼의 노래』 이순신, 그 사람은 영웅이죠, 영웅. 군사적인 영웅이죠. 『현의 노래』 우륵은 예술의 영웅이고. 한 사람은 무기를 든 영웅이고, 또 한 사람은 악기를 든 영웅이죠. 남한산성은 영웅이 아니고, 치욕의 역사지요. 영광의 반대. 내가 쓸 건 다 썼어요.”

“병자호란에 끌리신 이유가 있나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어요. 성안에는 일만 명 정도의 군사가 있었고, 45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었고, 간장이 220독이 있었고, 약간의 화약이 있었고…. 적은 20만 명. 청나라 태종이 이끌고 온 가장 우수한 군사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어요.

완전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47일을 버텼는데 성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싸우자는 사람도 있고, 빨리 나가서 항복을 하자는 사람도 있고, 주전, 주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이 말 했다 내일은 저 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성을 일찌감치 빠져나가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끝까지 싸우자고 했다가 다음 날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성 밖에도 성 안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다고 해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도 있고, 자살하는 자도 있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별놈이 다 있지요. 난 그 다양한 모든 인간에게 다 그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거죠. 나름의 정당성과 내적 필연성이 있는 것으로 봤고, 또 그것을 드러내려고 했죠. 총체적인 비극의 전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려 한 거죠.”


“소설 속 인물 중 공감이 가는 인물이 있는지요.”

“저는 작가의 말에 밝혔지만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김상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주전파, 군사적 현실을 망각한 사람.”

“칸은요?”

“아주 무서운 리더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던 부족들을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서 청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명을 청으로 바꾼 무서운 리더. 힘 자체.”

“선생님은 그런 절대적인 힘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신가요? 권력이 아니라 힘 자체.”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십 세기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악의 모습. 그러나 근원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악인가요?”

“그것은 남의 자율적 삶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로 부수고 밟아버리고… 남이 남으로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그때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외양은 달라졌지요. 하지만 다르지 않죠. 본질적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한미 FTA 도 그렇죠. 그때나 지금이나 악한 시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죠.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더불어 시달리면서 저항하면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한 세계사의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잖아요. 그렇게 시달리면서 지지고 볶으면서 그럴 수밖에 없지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그는 매일 칠판에 적어놓은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인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설에서 인조라는 인물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모든 국면을 다 들여다보는 그런 인물로 그리려 했어요. 뚜렷한 행동이나 말이 없는, 언질로만 알 수 있는 베일 속의 인물. 인조는 비극적인 상황을 자기 몸으로 정리한 사람이에요. 올바른 삶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이외에는 길이 없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살아야지요. 그런 결단을 내린 인조가 훌륭했다기보다는 삶의 길이 그러한 거죠. 인조는 그 길을 간 것이고요.”

“그때의 리더와 오늘날의 리더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강한 외세와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조국의 운명이 갑갑한 것이죠. 앞으로도 그러할 텐데… 홀로 살 수는 없는 거예요. FTA라는 것도 그런 것이겠죠. 싸우면서 또 함께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거죠.”

“약한 나라의 숙명이네요.”

“우리는 어쨌든 어떤 시대가 되었든 살아남아야 하는 거예요.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운명 속에는 영광과 자족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치욕과 굴종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다 합쳐가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현실을 이야기할 때면 느껴야 하는 갑갑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신처럼 바짓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는 치욕만큼은 아니지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욕과 타협, 변명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번 소설은 문장이 짧아진 듯한데요.”

“문장이라는 것은 소설의 주제에 맞게 문체를 변형해 나가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긴 문장을 썼는데 이번에는 짧은 문장을 썼지요. 물론 여기서도 긴 문장, 아주 긴 문장도 있죠. 긴 문장과 짧은 문장 사이에서 리듬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남한산성』을 집필하시는 데에는 얼마가 걸렸나요?”

“준비한 것은 3년 전인데 쓰는 것은 7개월 정도. 매우 더뎠어요. 『칼의 노래』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거의 두 달 만에 쓴 거거든요. 『현의 노래』는 한 달 만에 썼고요. 이것은 일곱 달이 걸렸으니까 나로서는 엄청 힘이 든 거죠.”

“왜 힘이 많이 드셨어요?”

“우선 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등장인물이 많았어요. 인물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려놔야 하니까.”

“이번 작품 만족하시나요?”

“저는 소설을 끝낸 후에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교정도 안 봐요. 출판사에 갖다주면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가끔 책이 내 앞에 있으면 보는데 한 줄 읽어보면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싶어요.”

“선생님 단편도 좋아하는 독자가 참 많은데요. 단편에서 다루시는 소재와 장편에서 다루시는 소재가 참 다른 것 같아요.”

“분량이 짧으니까 수다를 떨 길이 없는 거죠. 글을 아껴서 써야 하잖아요.”

“단편 쓰는 것 재미있으세요?”

“단편은 생각보다 재미는 있어요. 원고지 100장에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성공하기가 참 어렵지요. 그리고 그것은 돈이 안 돼요. 단편소설 하나에 팔십 만원, 5만 원은 세금으로 떼요. 전 단편 하나 쓰는 데 석 달 걸려요. 아무 일도 안 하고 구상에서 탈고까지…. 그러면 그것 쓰는데 내 비용이 들어가요. 취재 다니고 자료 수집하고 담배 피워야 하고 원고지랑 연필을 사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십 원도 안 준다는 거잖아요. 할 수가 없죠. 좋아도 쓸 수가 없어요.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문화의 기초라고 하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가 없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그는 시무룩하다. 셔터를 누른 후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자못 어두운 얼굴로 “화난 표정 같아요”라고 말을 하고, 다시 카메라 너머에 있는 그를 보니, 그가 웃고 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

예전 한 강연회에서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밥벌이’라고 짧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밥벌이’를 위해서 글쓰기라는 지루한 노동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영원히 그곳에 수렴되기만 하는 아득한 치욕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무릅쓰고 오늘도 작업실에 앉아 모호한 언어와 씨름을 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달려드는 작가를 통해 독자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김훈 #남한산성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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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ufe76

2013.12.23

전에는 김훈 작가님 왜 마초라고 생각해서 싫어했는지 모르겠어요. 한 자루 칼 같은 문장 때문이었을까요. 작가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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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27

ㅎㅎ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글쓰기도 자전거를 관리하고 페달을 밟듯이 닥고 조이고 기름치면서 쓴다는것! 신간 기다립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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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ta

2007.07.01

칼의노래만 100만부라는데... 겨우 먹고사신다면....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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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