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YES24 문학캠프]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 지리산 문학캠프
지리산 문학캠프는 YES24가 주최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 노벨문학상 후보를 추천하세요’의 후속 행사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 1위로 뽑힌 김훈(1회), 공지영(2회), 신경숙(3회)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낮에는 지리산 주변을 관광하고, 밤에는 작가를 만나 문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이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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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작가 신경숙, 공지영, 김훈과 만나는 지리산 문학캠프가 2006년 8월 24일에서 26일까지 지리산에서 있었다. 지리산 문학캠프는 YES24가 주최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 노벨문학상 후보를 추천하세요’의 후속 행사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 1위로 뽑힌 김훈(1회), 공지영(2회), 신경숙(3회)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낮에는 지리산 주변을 관광하고, 밤에는 작가를 만나 문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이었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안고 흘러간다

버스는 섬진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차 재배지에 걸맞게 섬진강 주변 지역은 해가 쨍하게 빛나다가도 갑자기 안개가 사위를 감싸고, 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비를 뿌려댔다. 강은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산은 뭉글뭉글 구름을 피어 올린다. 쌍계사에 도착할 즈음 소나기가 한차례 내렸다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쌍계사는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도 절 쪽으로 물이 넘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 출신인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대웅전이 공사 중인 점이 아쉬웠지만, 미소 지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마애불과 꽃담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각별했다.

대웅전 앞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가 서 있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것으로 유명한 비석이지만, 이 고장 사람에게는 6.25와 지리산 빨치산으로 기억되는 비석이다. 폭탄을 맞아 여기저기 갈라졌고, 표면에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빨치산이 가져간 재봉틀을 가져오기 위해 쌀을 이고 갔다는 할머니, 가족들 중 죽지 않은 자가 없었던, 그 두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타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과 혼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가지는 한스러운 여운까지. 지리산이 품은 슬픈 역사는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워놓고 있었다.


쌍계사 초입에서



섬진강변에서. 섬진강은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첫날밤,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

뚫어져라 쳐다보는 독자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나 보다. 수줍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앉은 작가는 무지개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여기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무지개를 봤어요. 사진기가 없어서 눈에 담았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지 흘러간다,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기쁘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문학캠프에 모인 모든 분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시간을 충만히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한 후,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작품 『종소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돌아온 새 같다. 이젠 어디에나 깃들일 수 있는 새 같다. 낯선 새 한 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당신이었다.」로 시작되는 단편 소설 『종소리』는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도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진정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가 중간 중간 쉬면서, 각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편하게 털어놓았다. 언제 작품을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작품을 쓰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의 목소리가 작품과 꼭 어울리라는 법은 없지만, 신경숙 씨의 목소리와 그녀의 소설은 썩 잘 어울렸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섬세한 문장들을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듣는 것은 색다르고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종소리』는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찻집에서 있다가 보면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 것들을 소설로 써요. 『종소리』도 옛 직장을 찾아오는 회사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쓴 것입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인간의 이러저러한 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어요. 사무실에 갇힌 남자, 그 반대편에 있는 여자, 그 위에서 굽어보고 있는 새. 그리고 그 새를 통해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떠올랐어요.”

남편은 크론키드카나다라는 희귀한 병을 앓는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후, 부부관계는 오히려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 “불행이 온 후, 그 불행 앞에 서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거예요. 살다가 보면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그 순간에 문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지점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작가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

『종소리』를 읽고 나서 독자들의 질문에 작가가 대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작가도 독자도 처음엔 수줍어했지만 금방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왜 작가가 되었는지, 작품을 쓸 때 혹시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진 않았는지, 작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는지, 소설을 쓸 때 특별한 습관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리산 문학캠프에서 만난 작가 신경숙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작가가 되었어요. 지금도 과정에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쓴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미래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작품을 쓸 때는 쓰는 것만으로 벅차 읽어줄 사람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여러분과 나 사이에 소설이 있다, 독자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녀를 문학 독자에게 널리 알린 첫 번째 작품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뜻밖의 성공’을 거둬 다음 소설을 쓸 수 있는 여유와 소원이었던 넓은 책상을 선사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다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마음이 들떠 있잖아요. 저도 서른이 되기 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동생에게 1년 동안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1년 동안 단편소설 여섯 편을 썼어요. 그 단편 소설들이 『풍금이 있던 자리』에 실린 작품들입니다. 일년 동안 실컷 작품을 썼으니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출판사에서 책을 더 찍어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책을 낸지 일주일 만이었어요. 그 책이 잘 팔려서 저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신경숙 작가는 작품을 쓰려고 책상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지만 일단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끝을 낼 때까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하면서 글쓰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많은 인간관계들이 끊기고 연애도 충분히 못해봤어요. 글 쓸 때 버릇이라면, 청소를 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글을 쓸 때는 약속도 안 만들고,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은 하지 않아요. 아, 그리고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버릇이 있어요. 머리는 절대 안 감으면서.(웃음)” 그러면서 글쓰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일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독자에게 싸인하는 신경숙. 손톱에 들인 봉숭아꽃물이 곱다
문학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8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 문학에 진지하게 도전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런 예비 작가에게 신경숙 씨는 몇 가지 소중한 충고를 했다. 작품을 시작하면 무조건 완성시켜라,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라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끝을 내야 합니다. 중단하고 포기하면 계속 중단하고 포기하게 되니까요. 자꾸 쓰다보면 ‘이것이 소설인가 보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해요. 소설가 지망생들의 원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세 번째 덕목쯤은 된다고 생각해요. 독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녀 역시 작품을 쓰지 않을 때는 항상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머리가 왠지 느슨해졌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잘 안 읽히는 책에 도전한다. 그림책과 시집은 항상 뒤적거리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계절별로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겁니다. 한 계절 동안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샅샅이 찾아서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그런 것이 쌓이면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겨요. 한 작가의 작품을 죄다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권할 만 해요. 모든 작품을 읽다보면, 그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세계를 자기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녀 역시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청준, 조세희, 최인훈 등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찾아 7~8번씩 되풀이해서 읽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책의 미래, 독서의 미래가 어둡게 점쳐지는 오늘, 그녀는 독서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영화와 같은 영상물은 그 자리에 그냥 있기만 하면 되요. 영화관에 가서 2시간만 앉아 있으면 영화를 다 보게 되죠. 책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 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줄로 넘어갈 수 없고, 한 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으니까요. 책 한 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거예요. 자기 눈으로 짚어가며 한 줄 한 줄 겪어나간 경험의 총합이 독서니까요.”

노고단에 올라 구름과 함께 밥을 먹다

지리산 문학캠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노고단 산행이 있는 둘째 날이다.

버스는 먼저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지리산 정통종주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 탑을 지나 법당에 이르는 과정은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절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화엄사는 특이하게도 일주문에서 비스듬한 위치에 대웅전이 있는, 태극 문양을 닮은 배치를 하고 있다는,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으며 경내에 들어섰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저 멀리 웅장한 대웅전이 한 눈에 보이면서 찾아온 이를 압도하는 절들과는 다르게, 화엄사는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제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는 절, 빛바랜 단청은 소박한 나무빛깔에 가까워져 간다. 어느 것 하나 들떠있는 구석이 없이 새벽처럼 맑은 기운을 뿜어낸다. 절을 감싸고 있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시원했다. 절구경은 접어두고 계곡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만큼.

각황전 뒤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이름대로 사자 네 마리가 위층 기단에 기둥처럼 서 있다. 왜 사자인지 궁금해 절에 계시는 보살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사자후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자는 부처님을,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란다. 사자를 탑 사방에 세워둔 것은 부처님의 진리가 사방에 넘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해 도시락과 얼린 물, 비옷을 나눠받고 노고단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쉬지 말고, 속도도 늦추지 말고, 무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올라간다”고 가이드는 호언장담했지만, 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오르막길. 가이드가 ‘노고단 대피소’가 보이면 절반 온 것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거리의 절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올라가면서 알게 되었다. 약 35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시종 완만한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다가 막판에 등장하는 오르막은 지친 사람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체력이 없다면 오기로, 다들 기어서 올라가든 끌려서 올라가든 노고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노고단. ‘진짜’ 노고단은 개방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 올라가지 못했지만 구름에 싸여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행을 마치고, 피아골의 한 야영장에서 퀴즈 이벤트를 가졌다.


지리산 노고단 올라가는 길



가장 즐거운 도시락 까먹는 시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노고단 풍경


둘째 날 밤,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단상에 나란히 앉은 두 작가는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다. 김훈 작가는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작가는 혼자서 글 쓰는 사람인데,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글을 정말 똑바로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훈 작가의 뒤를 이어, 공지영 작가는 “생애 네 번째 등산을 오늘 여러분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작년 문학캠프의 금강산이었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라는 말로 인사를 맺었다.

첫날밤과 마찬가지로 먼저 작가의 작품 낭독이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두 번째 장을 낭독했고, 김훈 작가는『강산무진』에 실린 ‘화장’이라는 단편 소설을 조금 낭독했다.

작품 낭독이 끝난 후, 각각 읽은 부분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먼저 공지영 작가. “제가 읽은 부분은 유정이 모니카 고모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운전하여 가는 장면입니다. 저는 소설의 첫 부분에 상징적인 것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 부분의 경우, 하늘과 땅의 경계, 어둠과 빛에 관한 이야기,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어떤 만남이 진정한 사랑을 통한 것이었다면 거기엔 신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첫 부분에 암시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한 장을 다 읽은 공지영 작가와 달리 김훈 작가는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로 시작되는 장의 두어 단락쯤 읽다가 “이쯤 읽고 말지요.”라고 낭독을 마치고는 “‘화장’은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의 아득함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 아득하고, 부옇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가요. 사랑이라는 것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요. 절망적이기까지 한 일이지요.”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독자와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활짝 웃고 있는 김훈 공지영 작가


소설 쓰기, 밥벌이의 지겨움

낭독이 끝난 후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질문 ‘왜 작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두 작가는 같은 답을 했다. ‘밥벌이’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 먼저 김훈 작가의 대답. “소설은 나에게 밥벌이의 노동입니다. 매우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지요. 소설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쓰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겠지요. 저의 경우 27년 동안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가 쓴 글이 제가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사에 넘겨야 합니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할 수 없이 비통하죠. 그것을 견디며 밥벌이의 노동을 합니다.”

공지영 작가도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식솔들이 많이 딸려서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책 읽고 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글을 좀더 잘 써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라면 자유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공지영 작가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면 책을 읽는다. 슬럼프도 크게 겪은 기억이 없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도 그냥 쓴다. 그렇게 쓰다보면 신기하게도 슬럼프가 지나간다고. 특별히 글을 쓰면서 구애받는 것은 없지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나오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70% 완성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요.”

매일매일 꾸준히 쓴다는 것은 김훈 작가도 똑같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 달랐다. “작가가 자기 통제를 못하면 건달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전, 아침에 일어나 연필을 깎으면 예감이 옵니다. 오늘은 두 장 정도 쓰겠구나, 그러면 정말 하루가 끝날 때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두 장 밖에 채우지 못합니다. 안되겠구나 싶은 날도 있죠. 그런 날은 그냥 나가서 놉니다.(웃음)”

대부분의 작가가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하는 요즘, 김훈 작가는 아직도 연필과 원고지를 고집한다. “연필로만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못된 버릇인데요. 컴퓨터로 쓰려고 해봐도, 컴퓨터를 만지면 꼭 고장이 나요. 연필로 글을 쓰기 때문에 저는 글이 잘 안 써지면 연필 탓을 합니다. 그리고 나가서 딴 연필을 사옵니다만, 그런다고 글이 잘 써지겠어요.(웃음)”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공지영 작가



독자들과 대화하던 중 웃음을 터뜨린 김훈 작가


소설가로 내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학창생활은 어땠을까? 공지영 씨는 중고등학교 때 새침한 학생이었고, 대학교 때는 동기 120명 중 끝에서 세 번째를 할 만큼 공부를 안했다. 김훈 씨는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사회인이 되기 전에 학생들을 몰아둔 포로수용소 같은 곳이잖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1년 내내 데모를 하고, 수업은 휴강이고, 학교 문을 닫아 놓고, 최루탄을 쏘고 그랬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학교는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동기들과 선배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데모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대학을 중퇴했지만 대학을 안나왔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자격지심이 없다. 2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소설가로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로 그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다.

“나는 인생에 생로병사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병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웃음) 생로병사는 인간의 문제이고, 그것은 합쳐진 것,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감과 죽어감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닐까, 깨닫고 있죠. 저의 문학은 더럽고 억압적이고 가엾은 중생들의 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그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 때문에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자로서 자신의 직업적 정신이 썩어문드러진’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저항도 분명 있었지만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기자로서 전 정당한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문제를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고 좌절한 채로 다음 세대-공지영 작가의 세대-로 넘겨 버렸죠.”

데뷔할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공지영 작가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1980년대에 제 문학관이 성립되었습니다.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가 되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그리고 요즘에 와서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나의 문학관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가를 고민해 봤어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사회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은 항상 현시대에 맞추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죠. 살아있는 모든 것은 환경에 맞춰 살아나가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일 안타까운 점은 새로운 시도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죠. 시위문화만 봐도, 정권은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시위하시는 분들은 별로 변한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소외되어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요.”

한 독자는 김훈 작가에게 ‘나이가 들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거기에 대해 그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에 제가 60살입니다. 앞으로 서너 편만 쓰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소설로 씌어질 이야기가 쌓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너 편은 기어코 쓰고 가려고요.” 그러면서 후세가 자신을 작가로 기억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김훈, 공지영이 생각하는 좋은 문장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 체험 중에 인간이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언어의 한계가 눈에 보이니까,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한국어가 불편해요. 조사 때문에요. 한국어는 조사가 없으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조사가 몇 개 안되잖아요. 한 움큼도 안 되는 조사를 가지고 살림을 살아야 하니 옹색해요.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그가 생각할 때 좋은 문장은 조사가 돌출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런 문장을 쓰는 건 아주 힘든 일이죠.”

그에 비해, 공지영 작가는 괴테의 ‘모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 같은 문장을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여성작가가 대거 등장하고, 여성적인 글쓰기가 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문장에 대해 공을 들이는데, 문장에 대해 이런저런 시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쯤부터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과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 사이에 간격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녀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인생 전체가 ‘찰칵’하고 잡히는 문장이며, 순간적이고 섬광적인 생각을 잡아내는 문장이다. 그녀가 쓰고 싶은 문장은 그렇게 인생 자체를 순간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문장이다.

질문은 독서는 왜 해야 하는지, 문학의 매력이 무엇인지로 이어졌다. 공지영 작가는 ‘오픈북 오픈마인드’라는 말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나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저는 책만 본 세대입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나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이야깁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책 속에 길이 있나요? 책 속엔 글자가 있죠.(웃음) 사실 전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사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이 세상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책 속의 길은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 세상과는 상관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바꾸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폭탄이 바꾼 세상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는 길은 멀고도 아득한 길이지만, 이 길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일은 눈물겹게도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두 작가는 독자들에게 덕담을 하면서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했던 독자와의 만남을 끝맺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스님에게 했답니다. 그러자 스님이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걸어갈 때 걸어가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라고 반문했죠.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일어서면서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느냐’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 이 시간 끝나고 술 마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웃음) 순간순간을 명징하고 열렬하게 살아가세요.(공지영)”

“사소한 일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단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인류는 잘 모른다. 나는 다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사랑한 것이다’ 그 말처럼 개별적인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어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훈)”


작가에게 질문하는 독자



독자에게 사인하는 김훈 작가



공지영 작가의 사인.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일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담양 대나무숲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걷다

마지막 날 아침, 버스는 담양을 향했다. 목적지는 죽록원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죽록원에 들러 대숲을 산책하고, 담양의 명물이라는 죽통밥을 먹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걸었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담양읍에서 순천으로 가는 24번 국도의 약 9킬로미터는 보존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가로수 길을 남겨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2박 3일 내내 약이라도 올리듯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쌍계사를 둘러볼 때도, 노고단에서 내려올 때도, 피아골에서 퀴즈 이벤트를 할 때도 비가 쏟아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비였다. 그 비구름이 지리산에서 쫓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 서울로 들어왔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해산장소인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말끔히 그쳐있었다. 지리산 문학캠프의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지는, 상쾌하게 갠 파란 여름 하늘이었다.

문학캠프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애를 써주셨다. 허순용 팀장님을 비롯한 YES24 직원 분들과 웹투어의 가이드 분들. 비가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끝까지 즐거웠던 것은 이분들 덕택이다. 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독자들에게 나누어준 신경숙, 공지영, 김훈 작가님, 쌍계사의 문화재해설사 분, 담양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담양군청의 직원 분, 일정 동안 안전하게 차를 운전해주신 기사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찍은 단체 사진.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로 남기를 바란다.


#지리산 문학캠프 #YES24 문학캠프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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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초롱

2011.07.04

아래 댓글에 쓰인 것처럼 류화선님 글을 잘 쓰시네요. 마치 행사에 같이
갔다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그러나 군더더기 없이 잘
쓰셨습니다. 또 이글을 보니 2011년 행사에 꼭 참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평소에 소설을 잘 안읽는 편이지만 만약 당첨이 되면 2011년
행사에 참가하는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 보고 참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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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u1005

2006.09.06

언제 이런행사를(아쉬움)..참가 자격이 있었던가요?
국내작가의 이런모임이 자주 있길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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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sis

2006.09.05

부럽네요ㅜㅜ 신경숙님 정말 팬인데 언제 볼 기회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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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는『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봉순이 언니』『착한 여자 1?2』『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높고 푸른 사다리』『해리 1?2』『먼 바다』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산문집『상처 없는 영혼』『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딸에게 주는 레시피』『시인의 밥상』『그럼에도 불구하고』등이 있다. 2001년 21세기문학상, 2002년 한국소설문학상, 2004년 오영수문학상, 2007년 한국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 부문), 2006년에는 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단편「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해리 1·2』가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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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인간 내면을 향한 깊은 시선, 상징과 은유가 다채롭게 박혀 빛을 발하는 문체,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한국의 대표 작가다. 1963년 1월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야 겨우 전기가 들어올 정도의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근처에서 전기회사에 다니며 서른 일곱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사는 '닭장집'에서 큰오빠, 작은오빠, 외사촌누이와 함께 한 방에서 살았다. 공장에 다니며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다 최홍이 선생님을 만나 문학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컨베이어벨트 아래 소설을 펼쳐 놓고 보면서, 좋아하는 작품들을 첫 장부터 끝장까지 모조리 베껴 쓰는 것이 그 수업 방식이었다. 그 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85년 『문예중앙』에 중편소설 「겨울우화」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다. 스물두 살에 등단하였을 때는 그리 주목받는 작가는 아니었다. 1988년 『문예중앙』신인상에 당선된 뒤 창작집 『겨울우화』를 내었고,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일하기도 하다가 1993년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오래 전 집을 떠날 때』,『딸기밭』, 장편소설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혹은 다가설 수 없는 것들에 다가서고자 하는 소망"을 더듬더듬 겨우 말해 나가는 특유의 문체로 슬프고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신경숙의 첫 장편소설 『깊은 슬픔』은 한 여자와, 그녀가 짧은 생애 동안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여자 '은서', 그리고 '완'과 '세'라는 두 남자를 소설의 표면에 떠올려놓고 있다. 그들 세 사람을 맺어주고 환희에 빠뜨리며 절망케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올이 얽히고 풀림에 따라, 고향 '이슬어지'에서 함께 자라난 세 사람의 운명은 서로 겹치고 어긋난다. 그러나 『깊은 슬픔』이 정밀하게, 더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실린 시선으로, 그리하여 진하고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그려 보이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운명이 화해롭게 겹치는 국면이라기보다, 자꾸만 어긋나면서 서로의 기대와 희망을 배반하는 광경이다. 아니, 차라리 그들의 관계에선 겹침이 곧 어긋남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불행했던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신경숙의 『외딴방』은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고 내일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려웠던 그 시절을 되짚어 보게함으로써 현재를 돌아보는 자성(自肖)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의 자폐적 기질,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동경, 삶의 속절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요히 수납하는 태도 등이 어디서 발원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성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정점이자 제목 그대로 외딴방에서 외롭게 죽어간 한 가여운 넋에 대한 진혼가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신경숙은 자신의 체험을 질료로 한 글쓰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준다.『풍금이 있던 자리』는 유부남과 불륜의 관계에 있는 여자가 그 남자와 새로운 삶을 꾸리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되짚어준다. 특히 화자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새 여자와 어머니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삶에 찌들어 꾸밈이란 없이 소박하게 가정을 꾸려 나갔던 이 땅을 일구어낸 「어머니」와,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 땅의 「여성」과의 사이, 그 사이를 보여준다. 그 사이 속에는 무시 할 수 없는 사회 통념이 들어가 있다. 「어머니」를 긍정해야하면서 동시에 부정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이중적 잣대는 있지도 않는 풍금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내고 제 3의 새 여자, 또 다른 화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한다. 2007년 겨울부터 2008년 여름까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어 뜨거운 호응을 얻은 『엄마를 부탁해』는 섬세하고 깊은 성찰, 따뜻한 시선의 작가의 절정의 기량으로 풀어낸 엄마 이야기이자 엄마를 통해서 생각하는 가족 이야기이다.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 하던, 그래서 당연히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엄마가 어느날 실종됨으로써 시작하는 이 소설은, 가족들 각자가 간직한, 그러나 서로가 잘 모르거나 무심코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과 가족들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11년 'Please Look After Mom'라는 제목의 영문판이 제작되어 출간 전부터 호평을 받고 있으며,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22여 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일곱번째 장편소설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사랑의 기쁨과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청춘세대를 향한 신경숙 문학의 간절하고 절실한 소통의 발신음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쳀 시대와 시간을 뚫고 나가 어떻게 서로를 성장시키며 불멸의 풍경이 되는지를 여러 개의 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지듯 보여준다. 팔 년 만에 출간되는 여섯번째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은 세계로부터 단절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풍경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일곱 편의 순례기로, 익명의 인간관계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특유의 예민한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키는 문체로, 소외된 존재들이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삶의 신비와 절망의 극점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빛들을 포착해내어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바닥 모를 생의 불가해성을 탐색한다. 2013년에 출간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명랑하고 상큼한 유머로, 반짝이는 스물여섯 편의 짧은 소설들을 담은 소설집으로, 산다는 것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일상의 순간들에 스며들어 그리움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이자, 달이 듣고 함빡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엮었다. 이외의 작품으로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감자 먹는 사람들』, 『오래 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종소리』,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짧은 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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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