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성찰 이끄는 ‘유념해야 할 한마디’
이태 전,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의 속편에 해당하는 『존재의 이유』를 리뷰하면서, 대학입시 수험생을 위한 논술 부교재를 염두에 두고 번역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전편의 번역은 기약이 없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전편이 우리말로 옮겨졌다.
글ㆍ사진 최성일
200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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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철학자 A.C. 그레일링의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The Meaning of Things』(남경태 옮김, 에코의서재, 2006)은 『존재의 이유The Reason of Things』(남경태 옮김, 사회평론, 2003)와 짝을 이룬다. 두 책은 그레일링이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Guardian> 토요일자 평론 코너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한다.

이태 전,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의 속편에 해당하는 『존재의 이유』를 리뷰하면서, 대학입시 수험생을 위한 논술 부교재를 염두에 두고 번역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전편의 번역은 기약이 없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전편이 우리말로 옮겨졌다. 전편의 이른 번역은 아무래도 대입에서 대학들이 논술시험의 비중을 강화하는 움직임과 맞물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의 비중을 높이고 중고등학교에서 독서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나는 서울대 이병민 교수의 「논술시험에 대한 몇 가지 질문」(<한겨레> 2006년 9월 19일자)에 크게 공감한다. “과연 논술시험이 어떤 성격의 시험이냐는 것이다. 논술시험이 글쓰기 시험인지 아니면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을 재는 시험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나는 논술시험이 글쓰기 시험이든, 아니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든, 그것이 얼마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여부에 몹시 회의적이다. 논리시험이라면 변별력이 거의 없을 것이고, 글쓰기 시험이면 모든 학과가 글재주 있는 학생을 우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독서교육 실행을 포함한 내신 성적 강화 방침이 공교육을 지탱한다는 측면을 무시할 순 없다. 또한 논술시험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게다가 덕분에 그레일링의 책 같은 좋은 책들이 번역되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책의 수준이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좀 높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디언>의 ‘유념해야 할 한마디’ 칼럼을 엮은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은 속편보다 쉽다. 61가지 주제를 ‘성찰해야 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 ‘아껴야 할 것들’의 세 갈래로 나눴는데 어쩐 일인지 ‘아껴야 할 것들’에 대한 공감도가 제일 떨어진다.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그레일링이 머리말에서 한 다짐이 내 뇌리에서 희미해진 탓이 더 큰 듯싶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삶의 지도와 같은 구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성찰을 자극하고 대화에 도움이 되기 위한 의도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 결정적인 주장 따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실은 나 스스로도 미덕을 실천하지 못하고 악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마당에 자못 현인인 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레일링의 시각에 대체로 동의한다. 특히, 그의 종교관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도덕과 관련하여 그레일링은 “종교적 도덕은 단지 부적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도덕적”이고, “종교는 반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고 질타한다. “서양의 나약한 성직자들이라고 해서 다르리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교회는 항상 인간 활동의 일부분, 그것도 주로 성에 관련된 부분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 교회는 언제나 성적 행동에 주목하고 구속하고자 하며, 그와 연관된 인간의 행동을 요란하게 성토하면서 도덕 문제 전반에 걸쳐 권위를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교회가 참된 도덕의 문제에는 대체로 부적절하거나 눈에 띄게 반도덕적이라는 점은 쉽게 증명될 수 있다.”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는 자본주의의 추세를 저지하려는 태도와 관행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정의롭고 환경 친화적인 미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작은 자치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에 존재한 자급자족식 ‘농촌 문명’인데, 어느 역사학자는 그러한 사회 체제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취’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대응으로 농촌 생활로 돌아가자고 권하거나, 소비를 축소시키고 성장을 제한하며 균형과 억제를 내세우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는 소수뿐만 아니라 그 대열에 동참하기를 열망하는 다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더러 서구(유럽)중심의 관점이 읽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문화와 민족성을 혼동해선 안 되고 “문화의 유산은 민족의 정체성과 같지 않다”는 지적은 십분 공감한다. “민족주의는 한마디로 악”이라는 견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날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해외 식민지가 독립을 추구했을 때 지배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은 민족주의밖에 없었다”는 표현에선, 제국주의를 안이하게 인식하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인다.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도 그렇다. “사실 오늘날의 문제는 서구 각국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남을 침략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정권들과 너무 자주 타협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크나큰 고통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국의 비용을 절감하고 국내에서 말썽을 빚지 않겠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영국이 아직도 자행하고 있는 제국주의 침탈을 먼저 반성할 일이다.

『존재의 이유』는 ‘유념해야 할 한마디’에다 다른 지면에 발표한 서평들을 덧붙였다. 미겔 데 우나무노의 말대로 “철학자는 무엇보다 박식한 사람”이기에 그레일링의 철학칼럼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아울러 분명한 관점이 독자로 하여금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논쟁을 유도한다. 당연히 여기서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고 그러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마음에 안 드는 대목은 중국을 “민주적 책임이 면제된 곳” 또는 “끔찍한 재앙”으로 표현한 것 정도다. 여기에는 얼마간 편견이 개입된 것으로 여겨지나 참정권의 소중함과 유토피아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싸워온 역사를 기억하라는 그의 충고는 차선의 선택도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정작 당혹스러웠던 것은 ‘자연스러움’을 근거 삼아 안락사와 동성애자 부부의 양육, 그리고 인간 복제의 정당성을 거침없이 주장한 것이었다. 논의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당혹감도 커졌지만 그레일링의 논리를 반박할 여지가 없어 더욱 난처했다. 옮긴이 후기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점을 핑계로 살짝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안락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에 대한 규정은 지은이의 독특한 문화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사실 이 주제는 세계와 인간의 철학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환경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된다. 요컨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본다면 인위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이 된다.”

그레일링은 삶의 여러 문제를 짚어 보는 중에도 도덕을 비중 있게 논의하고 일관되게 자유를 옹호한다. “자유 사회의 근본은 개인의 자율성과 상호 관용이다.” 인물 중에서는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영국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을 편애한다. 자전적 기록인 「소크라테스가 보낸 초대장」은 해즐릿에 필적하는 뛰어난 수필로 보인다.

“내가 평생을 철학도로 살도록 만든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카르미데스와 나눈 대화였다. 나는 열두 살 때 영어로 번역된 그 대화편을 읽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조숙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다 철학자의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운은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을 단지 받아들일 만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고 삶을 송두리째 바칠 만한 것쳀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러셀을 많이 닮은 그레일링은 『러셀Russel』(우정규 옮김, 시공사, 2000)이라는 제목의 러셀 입문서를 펴냈다. 그레일링은 러셀이 동시인들 가운데 명성을 누린 까닭을 “그가 사회적?정치적 및 교육적 토론들에 다양한 공헌을 했기 때문”으로 본다. 하지만 “그가 지속적인 명예를 누릴 만했던 진정한 이유는 논리학과 철학에 대한 획기적이고도 전문적인 기여 때문이다.”

『러셀』을 통해 그레일링은 이 두 영역에서 러셀이 쌓은 업적을 간추린다. 그래도 “이 책의 목적이, 수리 논리학의 전문적인 사항들은 물론 철학적 논증들에 대한 상세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해설에 치중한다. 그렇지만 약간의 논의 또한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철학을 삶에 응용하는 방식”은 그레일링이 러셀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영국 철학의 한 전통으로 볼 수 있는 계보에서 그레일링은 러셀과 젊은 철학자 스티븐 로 사이에 놓인다. 그레일링의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존재의 이유』를 스티븐 로의 철학 입문서 『철학학교 1, 2』(하상용 옮김, 창비, 2004)와 함께 읽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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