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콜센터』, 소설집 『쇼룸』을 통해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핍진하게 그려온 소설가 김의경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두리안의 맛』에 수록된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사회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공장에 출근하고, 팬데믹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어른들의 관심 밖에 놓인 비행청소년들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이틀에 한 번 꼴로 당일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촘촘하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부품처럼 부려지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복판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비단 청년세대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고 은퇴 이후의 삶이 막막해지면서 노후 준비 또한 녹록지 않아 이렇다 할 대안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 힘겨운 공존을 눈앞에 두고 세대 간의 결속을 위해 이 소설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앤솔러지를 제외하고 6년 만에 출간된 소설집인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쇼룸』 이후로 6년이 지났네요. 장편소설을 쓰면서 틈틈이 쓴 단편소설을 모아서 출간한 뒤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표지가 참 예쁘게 나왔어요. 표지에 그려진 여성을 봤을 때 눈물이 찔끔 났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제 소설의 등장인물은 여전히 청년이 많은데 나는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오래도록 청년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쓰기 힘들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전에 없이 눈물이 나온 것 같아요.
『두리안의 맛』에는 팬데믹 동안 쓰인 글이 많이 수록되었는데요. 그 시절을 같이 지나온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글을 쓰실 때 작가님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가 궁금해요.
사실 저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도 않고 여행을 즐기는 편도 아닌데 팬데믹 기간 동안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몇 년 전에 갔던 태국 여행도 떠올랐고요.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을까 생각했고 코로나 관련 사건들을 간단히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팬데믹 당시의 일들도 조금씩 잊혀가고 있지만 확진된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면서 비난하고 격리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글을 쓸 때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좀 슬펐어요. 팬데믹처럼 연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 시기는 없을 거예요. 우리는 하나로 이루어진 덩어리구나, 돕지 않으면 무사히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시간이었어요.
편집자 님도 그랬지만, 기자님들도 ‘여성 연대’ 소설이라고 하셨어요. 그런가? 하고 다시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소설에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서로 돕고 있었어요. 『헬로 베이비』는 여성 연대를 염두에 두고 썼지만 단편소설 같은 경우는 일 년에 한두 편 썼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거든요. 왜 여성 연대 소설이 많은가 생각해보니 저는 소설가가 된 이후로 전업 작가로 살았지만 가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등단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면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요. 특히 올해는 반려견이 아파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틈틈이 단기알바를 했어요. 반복 육체노동이었는데 이삼십대에 했을 때도 힘들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하려니 더 힘들었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 저를 챙겨주는 사람은 대체로 또래 여성이나 이모님들 같은 여성이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저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을 챙겨주게 되더라고요. 이십대 휴학생이 있었는데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일터는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그런 경험과 생각들을 소설에 녹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연대라는 공통분모가 생긴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품을 따라 읽고 계신 독자님들은 이번 소설집에서 ‘내가 바라고 기다려온 글’이라는 감상을 가지실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청년세대부터 노년층까지, 그리고 공장 노동자부터 파워블로거까지, 전작들과 결은 비슷하지만 이야기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글감은 어떻게 찾으시게 되었나요?
여전히 글감은 경험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는 것 같습니다. 취재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고요. 모르는 사람을 취재하기도 하지만 주변인들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어머니가 식품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 집에 가서 최대한 상세히 취재를 해뒀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녹음을 하고 녹취를 풀고 장면을 상상하는 식으로요. 그때 취재한 덕분에 「순간접착제」를 쓸 수 있었어요. 또 제가 시디공장에서 단기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을 「시디팩토리」에 녹였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신문사에서 태국 여행을 보내주셨는데 팸투어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기사를 한 꼭지 써야 했어요. 그때 ‘팸투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태국에서 받은 느낌을 기록해두고 방문한 태국 명소들, 제가 투숙한 호텔과 풀빌라를 사진으로 남겨뒀어요. 언젠가는 쓸 때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평소 취재를 하는 편이에요. 좀 묵혀둔 재료들이 소설에 더 유용하게 쓰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생생한 경험도 좋지만 경험을 즉시 글로 옮기기보다는 경험한 것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상상력이 덧입혀질 틈을 주는 거죠.
표제작 『두리안의 맛』이 짚어내는 현대 사회의 이면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달콤한 과육을 맛보기 위해 투박한 외형과 꼬릿한 향을 견뎌야 하는 게, 팸투어(협찬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불편해도 견뎌야 하는 윤지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요. 사실 팸투어가 아니어도 삶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윤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작가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나요?
(제가 쓴 소설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윤지가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했어요. 한 번쯤 버럭 화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무테안경이 윤지의 빌라에 들어왔을 때는 정강이를 한 대 발로 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윤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일할 때 감정은 접어둬야 할 때가 있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저 역시 윤지처럼 일단 책임감 있게 제 역할을 수행할 것 같아요. 같은 팀으로 일을 하고 있고, 어쨌든 팸투어 기자 신분으로 그곳에 간 것이니까요.
「순간접착제」에서 삼각김밥 공장에 들어간 ‘나’와 ‘예은’이 칠십대 노동자 ‘소순’을 경계하는 것이나 「주인집 딸」의 ‘나’가 주인집 딸에게 집을 양보해줄 수 없어 곤란한 것, 그리고 「호캉스」에서 ‘나’와 ‘혜수’가 청소노동자를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 등 넉넉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부딪히는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인간다움’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게 되기도 했고요. 작가님께서는 삶을 살아가며 가장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생존’에 중점을 두고 살아왔어요. 어릴 때 어머니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오래도록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저에게는 한동안 살아남기, 자립하기가 과제였던 것 같아요. 개인파산 면책을 받고 조금 안정을 찾은 지금은 ‘공존’에 대해 생각합니다. 공존은 연대와 통하는 개념이기도 하죠. 세상에는 많은 구분이 존재해요. 임대동과 일반동이 섞인 아파트가 있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죠. 정규직과 비정규직, 반려인과 비반려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년과 노인이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요. 공존에 대해 생각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어디서든 잘 공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잘 공존하는 것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나의 시야 또는 세계가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감상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하지만, 『두리안의 맛』을 쓸 때 작가로서 가졌던 바람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굳이 알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굳이 자신의 것이 아닌 힘듦과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 나 살기도 너무 힘들다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을 책임지고 사는 것만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우리 모두가 모여서 이룬 것이고 나는 사회의 일부니까 공동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두리안의 맛』을 읽은 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등단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쓰고 싶은 글을 반도 못 썼어요. 그래서 좀 더 속도를 내볼 생각입니다. 한국사회의 문제와 시대상을 담은 소설을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작가의 권한으로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만나게 하고 그들이 어떻게 나아가는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습니다. 『두리안의 맛』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다음 작품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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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