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관객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크리에이터다. 1987년 극단 산울림의 <숲속의 방>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지난 20년 동안 무대 미술 분야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무대예술상을 휩쓸었고, 배우나 연출가가 아닌 스태프로는 처음으로 이해랑 연극상을 받았을 만큼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font color="#daad88">최인호 작가의 소설에 빠져서 연세대 영문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 후에 김우중 회장처럼 되겠다는 결심으로 경영학과에 진학하셨다면서요. 무언가 목표가 생기면 확실히 밀어붙이는 타입이신가 봐요.
</font>뭐, 그런 편이죠. 목표 의식이 뚜렷하게 생기는 거니까. 대학 들어가기 전에는 최인호 선배가 우상이었고, 그 후에는 김우중 회장이 우상이었어요. 김우중 회장이 연대 경영학과 출신이거든요. 거길 들어갔다 졸업한 후에 바로 김우중 회장의 회사에 들어간 거죠.(웃음) 대우전자를 한 일 년 반인가 다녔어요.
<font color="#daad88">다소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꾸신 셈인데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font>좋아했죠. 그런데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안 했죠. 대학 다닐 때 연극반을 했는데, 연극반이었다고 하면 보통은 연기를 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전 학교 다닐 때도 무대 담당이었어요. 그때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 같아요.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회사원 생활을 하는 동안 그때와 만족도가 비교가 됐어요. 그래서 직업을 바꿨죠.
<font color="#daad88">문득 궁금해진 건데 선생님 대에는 조립식 장난감이 흔한 게 아니었죠?
</font>그런 게 없었죠. 우리 어릴 때는 장난감을 가게에서 산다? 이런 개념이 없었어요. 특히 저는 시골 출신이어서 자기한테 필요한 모든 장난감은 스스로 만들어 썼어요.
<font color="#daad88">여담이지만 시골의 한 축구 선수가 도시에 올라와서 겪은 문화적 쇼크는 사람들이 나물을 시장에서 사먹는다는 거였대요. 나물은 밭에서 뽑아 먹는 거 아닌가, 하면서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성적으로 풍요롭다는 걸 느껴요.
</font>저의 가장 큰 스승은 언제나 자연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어렸을 때 자연 속에서 뛰놀던 게 지금까지도 자양분으로 남아 있어요.
<font color="#daad88">선생님의 무대를 보면 무엇보다 이야기와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본을 충실하게 보며 작업하시나요.
</font>그건 기본인 거죠. 대본을 충실하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창작극인 경우에는 대본 형성 과정에서부터 개입을 하거든요.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고요, 대본이 쓰이는 과정에서부터 같이 만들어간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무대 미술로 인해 없던 신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영웅>의 만주 벌판을 달려오는 기차 장면 있죠. 그 상황에 그 장면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넣는 거죠. 저는 창작 초연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요.
<font color="#daad88">굉장히 바람직한 작업 방식이네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작업 방식이 일반화돼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거나, 반대로 형편없는 작품을 볼 때면 스태프들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죠.
</font>그렇죠. <영웅>을 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냈고요. 누구한테서 아이디어가 나오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누가 냈건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반영이 되니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면 서로 더 빛나게 만들어내는 것, 그게 소위 말하는 크리에이티브 팀의 힘이죠.
<font color="#daad88">
창작자들에게 흔히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넉넉하지 못한 제작비 문제에 따른 고충이에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좋은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 않으세요?
</font>예산이 많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고, 예산이 적다고 해서 나쁜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예산이라는 것도 일의 범위이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 방법을 찾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예산이 풍부해서 쓸데없는 것들을 만들어 공연이 나빠지는 경우도 봤어요. 또 반대로 부족한 예산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무대를 채워서 작품이 더 좋아지는 경우도 보고요. 결국은 예산 싸움이 아니라 상상력의 싸움이죠.
<font color="#daad88">제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가 <퀴즈쇼> 무대예요. 영상 사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무대에서 영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신 건 언제부터예요?
</font>예전부터 이런저런 작품에서 영상을 많이 사용했는데 대량으로 쓴 건 <퀴즈쇼>가 처음이었죠. 공연의 첫 장면을 윈도우 화면으로 시작하자, 인터미션 때는 화면 보호기를 스크린에 띄워놓자, 이런 아이디어는 굉장히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건 우리 일상 속에서 당연한 풍경이잖아요. 윈도우 화면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마감하니까.(웃음) 일상에서는 당연한 건데 무대화했을 경우 관객들은 즐거워하죠.
<font color="#daad88">무대에서 영상 사용이 활발해지는 추세인데 영상 사용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은 어느 정도의 값을 치르고 오는 거니까 다른 볼거리를 원하는데, 영상을 사용하면 너무 쉽게 간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font>무대에서 영상을 영화처럼 사용하면 관객들은 영화와 비교를 하겠죠. 무대에서는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영상의 새로운 가치를 전달해야죠. 가령 <퀴즈쇼>에서 사용됐던 영상들이 영화 같은 영상은 아니잖아요. 그건 무대에서만 쓰일 수 있는 영상이죠.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는 거니까요.
<font color="#daad88">영상 사용은 <영웅>에서도 돋보였어요. <영웅>을 본 사람이라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차 신’을 뽑을 거예요. 그 장면에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정도였죠. 그 장면은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font>기차 신은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장면이에요. 윤호진 연출이 “<영웅>을 어느 극장에서 할래?”라고 물었을 때, 윤 대표님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내가 이 공연이 브로드웨이에도 가야 하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면 공연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있다고 했죠. 그래서 처음부터 LG아트센터에서 하자고 했어요. 우리나라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극장과 가장 유사한 공연장이 엘지거든요. 엘지는 옆 무대가 없어요. 그러니까 무대 옆에서는 절대로 기차가 들어올 수 없어요. 처음부터 이런 극장에서 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이 안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는 거죠. 아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면 기차를 옆 무대에 두고 했을 거예요. 누구나 다하는 방식으로 했을 지도 몰라요.
<font color="#daad88">극장을 미리 정해 놓고 작업을 했다니 그저 놀라워요. 그래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font>그렇죠. 무대디자이너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극장을 정하는 프로듀서가 누가 있겠어요. 보통 공연 2년 전에 대관을 해야 하는데.
<font color="#daad88">그리고 얼마 전에 <광화문 연가>를 보면서 궁금했던 건, 마름모꼴 무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하는 점이에요.
</font>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극장이에요. 무대 폭이 26미터이거든요. <영웅>의 무대 폭이 12미터였는데 <영웅>이 <광화문 연가>보다 훨씬 큰 이야기잖아요. <광화문 연가>는 대여섯 명이 펼치는 사랑이야기거든요. 노래도 거대한 노래들이 아니고, 전부 독백 형식의 노래들이고. 이런 공연을 세계 최대의 극장에서 해야 된다는 점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석을 줄이고 관객들의 시야를 확보하면서 무대를 좁힐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첫 번째였고요. 다른 이유는 이 공연이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도 없이 장면이 바뀌는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변화되는 장면들은 양쪽 옆 무대에다 처리를 한 거죠. 본 무대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요. 그래서 암전 없이 계속 무대가 바뀔 수 있는 거죠.
<font color="#daad88">공연을 보면서 크리에이티브 팀이 별로 고민 없이 작품을 만들었다 싶은 가장 단적인 예가 매 장면마다 암전으로 장면 변환을 하는 공연이죠.
</font>관객들이 어두운 무대를 보는 동안 무대를 전환하는 건 현대적이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또 역동적이지 않은 방법이어서 관객들이 좋아하지도 않고요. 좋은 공연이 될 조건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는 거죠. 어떻게 하면 불을 끄지 않고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무대를 바꿀 것인가, 그 점에 신경을 많이 써요. <광화문 연가>도 그렇게 만들어졌고요. 그게 아니었으면 공연 시간이 20분 더 길어졌을 수도 있어요.
<font color="#daad88">지금까지 작업하셨던 무대 중 가장 쉽게 고민이 확 풀렸던 무대와, 정말 어렵게 탄생한 무대가 있나요?
</font>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어떤 공연은 대본을 덮으면서 머릿속에 무대가 다 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본인하고 잘 맞는 공연인 거죠. 본인이 좋아서 만들었는데 관객들이 좋아하기까지 하면 최상이죠. 그런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죠. 저하고 안 맞는 경우에 그랬을 거예요.
<font color="#daad88">어떤 종류의 공연하고 잘 맞으시는데요?
</font>전 우아하고, 발랄하고, 명랑하고, 귀족적이고, 이런 쪽을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말하자면 비극 쪽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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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가 들어오는 작품을 모두 다 하실 순 없을 텐데 작품 선별하는 데 기준이 있나요.
</font>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어차피 한두 번 하고 말 것도 아니고 평생을 할 건데 하는 시간 동안 행복해야죠. 같이 만드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일 때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잖아요.
<font color="#daad88">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font>독서를 많이 하라는 이야기를 하죠. 요즘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미리 결정돼 있는 것들을 너무 많이 본단 말이죠. 지하철에서도 전부 핸드폰으로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고, 영화 보고, 잡지 보고, 모든 것들이 누군가가 다 시각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그냥 다시 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상상력이 키워지는 것보다 텍스트를 보면서 그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 그게 상상력을 키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font color="#daad88">상상력이 돋보이는 것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무언가요?
</font>전 <레 미제라블>을 제일 좋아해요. 그게 처음으로 본 외국 뮤지컬이에요.(웃음) 그 작품이 뛰어난 상상력이 있는 무대거든요. 일방적으로 거창하게 차려서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죠. 예를 들면 자베르 형사가 세느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같은 거 있죠. 실제 다리를 만들어 놓고 밑에 실제 소용돌이치는 물을 만들어 놓고, 물방울 튀기며 뛰어들게 만드는 것보다도 그게 더 극장적인 방법이거든요. 극장에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이죠. 관객들 눈앞에 그림을 보여주는 것보다 관객들 머릿속에 스스로 그리도록 자극하는 그런 방법을 더 좋아해요.
<font color="#000000">*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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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0000">*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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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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