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흰 공간,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흰 옷의 현대인들, 나일 강을 둘러싼 대지와 그 위를 걷는 누비아 여인들의 실루엣, 엇갈린 마음과 피라미드를 상징하는 에메랄드 빛 삼각형, 현대의 런웨이를 재현한 듯 알록달록 화려한 공주의 드레스룸까지… 한창 공연 중인 <아이다>는 그 어떤 공연보다도 이미지의 여운이 강하게 남는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 화려하고도 상징적인 이미지의 향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30여 년간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병행해 온 다재다능한 디자이너 밥 크로울리의 작품이다. 이미 영국에서 연극,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최면을 거는 듯한 미니멀한 무대로 명성이 높은 그에게 브로드웨이의 러브콜은 아마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카루셀>(1994), <아이다>(2000), <히스토리 보이즈>(2006), <코스트 오브 유토피아>(2007), <메리 포핀스>(2007)까지 다섯 작품으로 토니 어워즈의 죖최우수 무대디자인 상’을 다섯 번 휩쓴 이 거장은 우리 나이로 56세인 현재까지도 여전히 좋은 대본을 받아,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지 온전히 자신이 채워야 하는 ‘타블라 라사(Tabula Rasa)’의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다>가 국내 초연된 지 5년 만에 다시 공연되고 있는 지금, 2000년 디즈니가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하지 않았던 뮤지컬이자 본인에게는 두 번째 토니상을 안겨줬던 <아이다>에 대해 서면을 통해 이야기했다.
<font color="#0084a0">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font>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 가족들과 오페라 하우스나 지역 아마추어 드라마 공연을 하는 극장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일랜드 투어 중이었던 <올리버!>를 봤지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무대디자이너 션 케니(Sean Kenny)가 작업한 그 무대는 모든 장치를 없애고, 극장의 벽과 조명 장치를 드러낸 독특한 형태였어요. 문득 무대 디자인이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무대디자이너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 전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요.
<font color="#0084a0">당신은 30년 동안,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과 스무 편 이상,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스물다섯 편 이상의 연극 무대 디자인 작업을 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장르별 무대 작업의 차이가 있나요?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나요? </font>
오페라, 연극, 발레, 뮤지컬 작업을 하는 것은 각 장르가 매우 다르지만 또 같은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꼼꼼히 주제를 찾아 그간 제 눈을 통해 보아온 특별한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무대는 세상에 대한 가장 좋은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font color="#0084a0">당신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font>저는 잉글랜드의 연극 학교에서, 두 가지를 함께 작업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가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할 수 없다면, 관객들은 공연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을 가질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font color="#0084a0">한국 관객들이 당신의 무대를 본 것은 <아이다>가 유일합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본 <메리 포핀스>, <타잔> 등의 무대는 색감이 뚜렷하고, 단순하고도 상징적이었습니다. <러브 네버 다이즈>는 몽환적이기도 했고요.
</font>앞서 말씀하신 세 작품 모두 디즈니 작품이지만, 디즈니를 위해 저만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저는 심플하면서 생생하고 직접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무대 영상을 좋아하고,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는 자연주의 방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시각적으로 시적이고 추상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들이 보면서 상상할 수 있는 무대가 좋습니다.
<font color="#0084a0">그래서인지 <아이다>의 무대와 의상 또한, 고증보다는 상징적인 면이 부각된 현대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font>때때로 현대적인 것을 무대 디자인과 의상에 반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관객은 스토리를 위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지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font color="#0084a0">라다메스와 군인들, 아이다의 연보랏빛 드레스나 누더기 망토 등 ‘선’을 강조한 동양적인 느낌이 드는 의상, 색감과 실루엣이 강조된 무대 표현에 조명까지 더해져 시각적 시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의상과 무대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나요?
</font>의상은 일본식 디자인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양의 디자인을 좋아해요. 복잡하고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죠. 시각적 표현에서는 그간 다수의 셰익스피어 연극의 무대 작업을 해왔던 것이 <아이다>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러한 표현들은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이죠. 여기에 나타샤 캣츠(Natasha Katz)라는 아주 훌륭한 조명디자이너의 능력까지 더해져 공연 전체가 아주 아름답고 절묘하게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font color="#0084a0">1막에는 더할 수 없이 화려한 색감의 무대와 의상을 선보였다면, 2막에는 암네리스의 붉은 드레스 외엔 캐릭터 대부분의 의상이 무채색에 가까웠습니다.
</font><아이다>에선 비극이 진행됨에 따라 무대와 의상의 색감이 점점 더 또렷해집니다. 밝은 색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진해져간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font color="#0084a0"><아이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과 의상이 있나요? 가장 어렵게 작업한 장면은 무엇입니까?
</font>‘가장 마음에 드는’ 의상이나 디자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일 강과 시장, 그리고 텐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큰 실크 천을 사용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세 장면이 하나의 천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마지막 ‘무덤 장면’인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그 장면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친밀한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font color="#0084a0">당신은 토니 어워즈 ‘최우수 무대 디자인 상’에 10번 노미네이트되었고, <아이다>를 비롯한 다섯 작품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성취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font><카루셀>로 처음 토니 상을 받았을 때는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상을 받은 공연뿐 아니라 저의 다른 모든 공연 또한 사랑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한번 받기도 힘든 토니상을 여러 번 받은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죠.
<font color="#0084a0">2009년 영국의 ‘인디펜던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무대는 내가 가장 행복하게 느끼는 곳이며, 원하는 어느 곳이든 당신을 데려다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대’라 말했습니다. 무대는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앞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대는 무엇입니까?
</font>공연에는 경계가 없고, 무대 위에선 가장 단순한 수단으로 ‘어떤 것이든’ 보여줄 수 있지요. 이를 통해 관객은 충분히 모든 세상을 스스로의 머릿속에 잘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좋은 공연, 좋은 작업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입니다.
<font color="#0084a0">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font>영국왕립발레단(The British Royal Ballet)의 새로운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험(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무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3월 2일에 오픈할 예정인데, 매우 흥미롭고도 으스스한 작품이죠!
<font color="#0084a0">한국에는 당신의 무대를 보고 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font>보는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적인 관점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눈으로 본 세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달라 말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진 못했지만, <타잔>, <메리 포핀스>, <러브 네버 다이즈> 등이 한국에서 상연되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font color="#000000">*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0호 2011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font>
<font color="#000000">*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font>
김유리
![[더뮤지컬] 우란문화재단, 사람과 작품이 우선이다](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8/20250805-01a6e9d3.jpg)
![[더뮤지컬]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미학적 가치](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4/20250430-b23d8c36.jpg)
![[더뮤지컬] <인화> 외면과 배제가 아닌 것](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4/20250430-f2b5a203.jpg)
![[더뮤지컬] <원스> 기타와 피아노가 만나, 음악의 힘을 말하다](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3/20250312-797d1de0.jpg)
![[여성의 날] 논바이너리의 여성적 기원 - 그녀와 그를 지나 당신(they)으로](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3/20250304-488cc3d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