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소중한 두 사람을 잃고 자신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청소 노동자 박복희, 행복은 돈으로 사는 거라고 고아로 버림받으며 살아온 자신에게 행복은 사치라고 믿는 백화점 직원 설진아, 전쟁고아로 살다 처음 행복을 가져다준 아내를 잃은 뒤로 행복한 순간이 가장 두렵다는 경비원 구창수, 앞뒤가 다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구청장 후보 아들 안지호. 이들은 까멜리아 싸롱에 머무는 49일 동안 싸롱의 직원들과 함께 웰컴 티타임, 심야 기담회, 성탄전야 음감회, 제야 송년회, 흑야 낭독회, 고요 조찬회, 설야 차담회, 월야 만찬회에 참여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용기를 내 자신을 털어놓고 서로를 알아간다. 사람과 사람은 대화를 나눠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작가가 완성해 낸 가슴 뭉클한 이야기는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지를 찾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에세이 『선명한 사랑』 작가 고수리가 이번에는 첫 장편 소설로 돌아왔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기묘한 다방, 까멜리아 싸롱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첫 장편소설 『까멜리아 싸롱』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그간 써오신 글들과는 사뭇 달랐을 것 같아요. 집필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셨을지가 궁금해요.
수리수리고수리 『까멜리아 싸롱』 나와라 얍! 마법 주문을 외운 것처럼 온전히 제가 만든 세계를 보여드릴 수 있다니 얼떨떨하고 신기합니다. 그동안 저는 주로 에세이를 써왔고, 청소년 소설 등단 전후에도 단편 소설들만 써왔거든요. 대체로 단편 이야기를 만드는 데 익숙하고 능숙한 작가였어요. 이렇게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설정하고,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성을 구축하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이야기를 써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모쪼록 영상적으로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혔으면 좋겠단 바람이었어요. OTT 드라마 8부작을 구성하듯이 엔딩점을 설정하고 인물과 인물 사이에 극적인 서사를 이어가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제가 만든 세계에 푹 빠져서 인물들과 같이 살아본 기분이랄까요. 저야말로 『까멜리아 싸롱』에 다녀온 사람 같아요.
『까멜리아 싸롱』 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환상적인 공간, 까멜리아 싸롱에서 보낸 마흔아홉 번의 밤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작품을 구상하신 계기를 들려주세요.
오랫동안 글쓰기 수업과 독서 모임을 이끌었던 경험이 최초의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끄는 모임에선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눠요. 이력서 공란을 채우듯 소개하고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긴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갑니다. ‘마주 대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라는 게 대화의 본뜻이잖아요. 까멜리아 싸롱에서는 49일 동안 이런 대화의 장이 펼쳐집니다. 웰컴 티타임, 심야 기담회, 성탄전야 음감회, 제야 송년회, 흑야 낭독회, 고요 조찬회, 설야 차담회, 월야 만찬회까지.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생각도 모두 다른 여덟 사람이 낭만적인 싸롱에 모여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죠. 이승과 저승 사이, 중천이라는 가장 극적인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대접받고, 진솔한 인생대화를 나눠보길 원했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지를 찾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대화를 나눠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까멜리아 싸롱은 경성의 다방을 모티브로 한 공간인데요, 망자들을 서점이나 도서관, 카페가 아닌 경성 다방에 모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언젠가 글쓰기 수업에서 자전적 기억을 나눴어요.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죠. 다 다른 세대지만 기억들을 나눌 때마다 감응할 수 있었어요. 그처럼 마음이 움직인다는 건, 잘 모르는 타인의 삶에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느 80대 할머니는 전쟁의 기억 한 줄을 낭독했어요. 평생 잊어본 적 없대요. 말할 수 없이 지난한 세월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대요. 이상하게도 그때서야 저는 전쟁의 참혹함이 실감 났어요. 기록 속 문장이 아닌,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구나. 80대 노인을 비롯해 눈에 담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졌어요.
한국은 불과 100년 역사에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어요.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100년사 과거와 현재를 겪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어떨까. 우리는 함께 대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자유롭게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게 됐어요. 그 대화의 장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 인간다운 교양과 낭만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100년사 서로의 사연이 얽혀 있는 인물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소로 바로 경성 다방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다방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공동서재이자 유일한 문화공간. 창작 활동과 자유연애, 대화와 토론, 온갖 예술 행사들이 열리는 장소였어요. 나아가서 남녀노소 나이불문 모이는 사랑방 역할까지 해왔거든요. 대단히 자유롭고 낭만적인 문화, 지금의 소셜 살롱 문화가 과거 다방에서부터 이루어진 거죠. 그렇다면 가장 복고적인 공간에 100년 사에 걸친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여기서 가장 한국적인 사연과 서사가 펼쳐지는 휴먼드라마를 써보자 생각했습니다.
까멜리아 싸롱의 직원들과 손님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갈 법한 이들입니다. 건물 미화원, 소방관, 구두장이, 경비원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셨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각 인물들의 사연을 위해 참고하신 자료나, 주의를 기울이신 부분이 있을까요?
KBS 〈인간극장〉에서부터 휴먼다큐 작가로 일했던 경험, 10여 년간 에세이스트로 글 썼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간 제가 해왔던 건, 타인의 인생과 제 인생의 단편들을 모으는 작업이었어요. 지극히 평범하지만 자기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인생의 장면들. 결국 제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들과 제 모습을 한 장씩 꺼내 이어 붙인 것 같아요. 마치 필름처럼요. 흔히들 에세이스트의 소설은 너무 감성적일 거라 생각할지 몰라요. 하지만 휴먼다큐와 휴먼에세이를 써왔던 저라면,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생생하고 인간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었습니다.
까멜리아 싸롱에 찾아온 망자들의 노동환경과 겪었던 사건들은 실제 르포와 사건사고들을 모티브 삼아 써봤습니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좀 슬펐어요. 소설에서 전형적인 안타고니스트라고 여겨지던 인물이 실존했고, 그러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었다는 게 제겐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과 정의를 지키고 사랑과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실재했어요. 그런 의인들의 사례들도 모티브 삼아 풀어보았어요.
또 한편, 『까멜리아 싸롱』을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는 요소는 제가 그간 써왔던 에세이에 등장했던 문장이나 인물들이 숨어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산타클로스가 되어주고픈 어른들, 꽃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구둣방, 당산역 지하철에서 만난 아주머니, 엄마에게 처음 집밥을 지어주던 딸… 제 오랜 독자들이 발견하고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여순자와 박복희는 저희 엄마가 나눠준 이야기와 말투가 많이 투영되어 있어요. 설진아와 유이수, 안지호에겐 제 인생이 골고루 스며 있고요.
까멜리아 싸롱에서의 일곱 밤을 통해 이들의 삶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드러나죠. 심지어 몇 인물은 전생에서의 인연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작가님께서 유독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마담 여순자와 구두장이 구창수입니다. 두 인물은 제가 희망하는 ‘어른’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진짜 이런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썼으니까요. 중천에는 여순자가, 이승에는 구창수가 사람들을 보살핍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돌봄을 실천하죠.
특히나 의외의 인물은 구창수였어요. 애초에 저에게서 가장 멀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거든요. 평소 지하철 역사에서 마주칠 법한 무뚝뚝한 70대 할아버지. 절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어렴풋해요. 그래서 우리네 아버지 같은 남자 노인을 그려내는 일이 그저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과연 이 인물을 그려낼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후반에 다다를수록 구창수의 이야기를 막 울면서 쓰고 있더라고요. 제멋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구창수의 인생을 써 내려갔어요. 이런 경험은 태어나 처음이었죠. 이 인물이 이토록 중요한 역할인지도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았죠.
소설에서 구창수 할아버지가 손자뻘인 안지호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거기서 자꾸 울어요. 구창수는 정말이지 선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가장 멀고 막막하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을 결국 이해하게 되었구나. 작가가 이해했던 만큼, 독자들도 소설속에서 나와 먼 인물들도 끝내 이해할 수 있길 바라요.
"나는! 너를 살릴 거야!" 열혈 소방관 마두열의 강렬한 대사가 작품을 읽는 내내 울려퍼지는 듯했는데요, 『까멜리아 싸롱』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을까요?
어떻게든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기묘하고 슬프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뭉클한 이야기, 그리하여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까멜리아 싸롱』에는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고 애쓰는 이들이 등장해요. 저 역시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라도 희생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운디드 힐러,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상처 받아본 이들, 상실과 절망을 겪어본 이들이 결국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작가의 의지로 소설은 결말로 치닫습니다. 혹독하고 절망적인 인생의 겨울밤을 우리는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첫봄을 알리는 동백꽃이 필 때까지, 내내 어둠 속에 머무르면서 회복하며 치유되는 시간을 담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하고픈 메시지는 마담 여순자와 사서 지원우의 말을 빌려 내내 이야기합니다. 우리 간직해야 할 진실은, 우리는 모두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걸 기억하고 부지런히 달려가 한 사람을 구하라는 전언. 그런데 정작 판타지 소설 속 인물들이 사람을 구하는 방식은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어요. 실로 대단치 않습니다. 다정한 인사와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지어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 그저 함께 일상을 보내는 일이죠. 환상도 마법도 아니에요. 사람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좀 더 친절해졌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타인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는 생애 마지막 마음이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인지 말씀 부탁드려요.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킨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차기작으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기획들은 한국 설화를 접목시킨 판타지히어로물과 미스터리가 가미된 휴먼드라마인데요. 제 소설에서는 한국적인 세계관과 휴먼감성을 지키고 싶어요. 어떤 이야기를 쓰든 저는 한국적인 배경에 다양한 세대를 등장시키고, 거기에 사람 냄새를 담고 싶습니다.
한편 『까멜리아 싸롱 2』도 써보고 싶어요. 『까멜리아 싸롱』은 애초에 마담 여순자를 주인공으로 프리퀄 후속작을 염두하고 세계관을 만든 작품이었어요. 까멜리아 싸롱의 시작은 어땠을까. 경성시대, 혹은 그보다 이전 시대로 날아가서 젊은 여순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판타지를 상상했습니다. 단순히 경성시대가 아닌, 한국설화와 타임슬립까지 어디까지 뻗어갈지 모를 세계관을 상상해보고 있어요.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다정하고 너그러운 기품, 우아하고 꼿꼿한 동백꽃 같은 여자 여순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또 어떤 인생들을 구할지 작가인 저도 궁금해집니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독자분들이 읽어주시는 한 작가는 계속 쓸 수 있겠죠. 『까멜리아 싸롱 2』를 쓸 수 있도록 독자분들이 많이많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지런히 따뜻한 글 지어볼게요. 독자분들께 안아주는 마음을 보냅니다.
* 필자|고수리
세상에 온기와 위로를 전하는 작가.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웃음도 울음도 쉽고 다정하게 나누는 여자들 틈에서 자라 작가가 되었다. 어쩔 도리 없이 사람과 사랑에 마음이 기운다. 모쪼록 따뜻하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볕뉘 같은 이야기를 쓴다. 광고 기획 피디를 거쳐 KBS [인간극장],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송으로 만들면서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에도 드라마가 있다는 걸 배웠다. 카카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