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문장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영화들을 평생 사랑해왔다”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말이다. 이 문장은 백 년 언저리의 짧고도 지난한 역사를 지닌 한국 현대시의 흐름에 어찌저찌 탑승하여 시를 읽고 쓰는 나의 입장과 사무치게 공명하는데, 이는 내가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수많은 시들이 내 삶의 세세한 국면 혹은 미적 지향성과 조금씩은 어긋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은 든다. 그러한 어긋남이 정확히 무엇이라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아마 논바이너리라는 나의 정체성(규범적 젠더와 이성애 기반의 시들이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국문과 혹은 문예창작과 출신이 아니라는 점(그들이 대학 때 다 읽은 책들을 나는 이제야 펼쳐본다) 등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역시 관념적이고 인위적인 관점일 뿐이고, 시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마련인 삶의 세부적인 풍경들이 사실은 너무나 달랐던 것은 아닐까? 그런 짐작을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 시인들의 여러 시집들을 다양한 이유로 좋아하지만 한영원 시인의 『코다크롬』은 오랜만에 온전한 독자가 되어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고 시의 문장과 나의 경험의 조응을 읽기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시집이었다. 어째서인지 이 시집을 읽는 동안에는 시마다 호명되는 ‘나’ 혹은 ‘우리’라는 주어의 균열된 틈에 독자로서의 나를 대충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신화적인 서사와 비일상적인 이미지들이 중점적으로 삽입된 시편들에서조차 그랬다. 아래는 그중에서도 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생생하게 읽은 한 편의 시이다.
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곳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번호를 눌렀다. 린의 사랑했잖아 금영노래방 64331. 어째서 나는 이 노래의 번호를 알고 있는지? 이 노래는 바이브레이션을 요구하기에 호흡이 많이 필요하다고 널리 알려진 노래. 음색과 가창력과 감정을 모두 보여주기에 적합한 노래였다. 반주가 시작되고 노래를 부르려고 했지만 어쩐지 첫 소절이 잘 불러지지가 않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박자를 타며 음을 허밍 허밍…… 반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는 대신 노래방 화면을 쳐다보았는데 나는 어쩐지 그게 더 부끄러웠지. 어째서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한 걸까. 곁에 있던 바가지 머리 깡마른 일진이 나에게 속삭였다. 너 오늘 별로지? 얼굴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네 전체적인 컨디션과 그로 인해 미루어보는 내일과 그다음 날의 컨디션까지도 별로일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일진에게 나는 지지 않기 위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난 계속 별로였어. 계속 이 얼굴과 목소리로 지금도 그리고 백 년 후의 나도 별로일 거라고,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 내 노래는 취소되었고 세 명이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받는 아이돌 빠순이들과 반장 무리에 의해 마이크는 돌려지고 있었다. 미러볼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아이들이 마시던 크림소다와 누군가 탁자에 고이 올려놓은 빨다 만 담배 축축한 휴지가 깔린 재떨이에는 침이 고여 있었고. 나는 그 후 몇 개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더 생각해보았지만 모두 첫 소절과 첫 음정의 불안한 뉘앙스만이 부유한 채 밤은 존재하고 있었다. 허밍. 허밍…… 누군가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허밍으로 알아듣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낸 소리를 듣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걸지도 모른다.
(한영원, 「밤에 둘러싸이다」, 전문)
린의 ‘사랑했잖아’가 등장하는 두 번째 문장까지 읽자마자 나는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가 학교 앞의 어두컴컴한 노래방 한 칸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축축한 재떨이와 담배, 바가지 머리의 깡마른 일진, 세 명이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받는 아이돌 빠순이들, 미러볼과 크림소다, 첫 소절과 첫 음정의 불안한 뉘앙스…… 음, 이것은 영락없는 나의 학창 시절이로군, 생각했다. 그 시절 노래방은 스스로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자아들이 격렬하게 대치 중인, 야성적이며 음침한 영혼들이 뒤엉킨 습도 높은 밀실이었다. 예민한 시기에 친구들과 노래방에 자주 가본 사람이라면 그 기억은 강렬하게 몸에 새겨졌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읽자마자 그때로 돌아간 것은……
이 시는 으레 그러하듯 산문적인 방식으로 공감을 유도하거나 추억을 쇄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래방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퍼져 나오는 누군가의 노래가 허밍으로 변환되어 들리듯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산뜻하게 뒤섞는다. 너 오늘 별로지? 앞으로도 별로일 거지? 비아냥거리는 일진에게 지지 않고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난 계속 별로였어. 계속 이 얼굴과 목소리로 지금도 그리고 백 년 후의 나도 별로일 거라고,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라고 이야기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용감하기에 거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계속해서 별로인 화자가 (심지어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폭력적인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때, 계속해서 별로인 독자인 나는 기묘한 위로를 받게 된다. 그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허밍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독자를 소외시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페이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러한 방식의 빛나는 목소리들 덕분일 것이다. 내가 시집 『코다크롬』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김선오(시인)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
봄봄봄
2024.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