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SNS의 영향력이 팽창되며 시각 이미지를 통한 과시와 명성의 자본화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중심에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한 날이건 일상적인 순간이건 시시때때로 스마트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촬영한다.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별난 나르시시스트로 여겨지는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SNS에 올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나’를 찍는 여자들은 정말 나르시시스트일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는 ‘나’를 찍는 동시대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성과 사진 기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문화비평서이자, 촬영과 재현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모한 여성들의 위치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포착하고자 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직접 인터뷰를 하시고 내용을 정리해 도서를 출간하시기까지 대장정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출간 소감은 어떠신가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를 준비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여성들을 만나 일 년 동안 석사논문을 쓰고, 이후 논문 내용을 다듬고 보완해서 책을 출간하기까지는 삼 년이 걸렸어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스냅사진을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사소한 행동’의 의미를 거듭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의 메시지 중 하나는 여성들의 ‘자기사진’이 단순한 자기재현의 창구가 아니라, 넓고 느슨한 관계 맺기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건데요. 책을 준비하면서 그러한 관계의 형태와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책을 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은 연구참여자로 만난 사진 찍는 여성들인데요.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를 출간함으로써 사진 찍는 여성들과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책을 읽을 독자들의 의견이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도서의 주제가 ’여성들의 내 사진 찍기’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선택하시고 직접 인터뷰까지 진행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왜 젊은 여성들은 사진을 찍어 온라인 공간에 올릴까’를 묻는 거친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아요. 이제는 지인이 사진을 찍어줄 때 완강하게 거절하지는 않는 정도로 성장(?)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란 카메라는 모두 피해 다니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였기 때문에 주변의 또래 여성들이 왜 그렇게 사진을 즐겨 찍고, 그중 공들여 찍은 몇 컷을 골라 SNS에 업로드하는지 오랜 궁금증을 갖고 있었어요. 사진 찍는 여성들 개개인의 면모도 물론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문화’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묻고 싶어졌습니다.
‘셀카족’이라는 오래된 단어가 있지요. 그런데 여성 셀카족을 보는 시선들 가운데는 족(族)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개인의 감정, 특히 도취감과 자기애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이 점이 불만이었습니다. 자기를 촬영하는 여성들이 이렇게 많다면 이들이 사진을 통해 어떤 인간관계 속에 섞여들어가며, 또 사진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는 스냅사진이 담는 젊은 여성들의 자기 서사를 따라가되, 이런 이야기를 가진 여성들이 어떻게 사진을 중심으로 독특한 모습의 족(族)을 이루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목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는 자기사진을 찍을 때의 마음가짐을 묘사하는 촬영자 여성들의 말을 조합해서 만든 제목이에요.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는 일은 물론 개인적인 판단도 반영하지만, SNS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미적 기준을 따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예요. 남들과 구별될 만큼 예쁘게, 그렇지만 너무 공들여 사진을 다듬은 티는 나지 않게 ‘나’를 외부에 드러내는 거죠. 특히 사진 교환의 장인 SNS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관계가 결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더 철저하게 ‘빈틈’을 제거하곤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진이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해 안전하게 자기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지요.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라는 제목은 촬영자 여성들의 이처럼 복잡한 마음가짐, 즐거움과 욕망 그리고 불안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지니고 계셨던 기존의 추측이나 가설들이 인터뷰들을 통해서 확실히 확인되기도, 조금씩 전복되기도 하셨던 것 같아요. 이번 도서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이는 누구이며 이유가 궁금합니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는 김혜연 씨와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김혜연 씨는 제게 자기사진을 찍는 것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점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얘기해준 사람이에요. 그 이전에는 ‘의미 없는 사진을 찍는 의미’가 대체 무엇일지 고민하는 단계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저는 촬영자 여성들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 업로드하는 특별하고 단일한 목적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어요. 물론 책에서도 나오듯이 촬영자 여성들은 자기를 촬영함으로써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거나 인간관계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은 여성들이 스냅사진을 찍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일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지요. 여성들의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을 거라는 제 짐작은 김혜연 씨를 만나기 이전, 한 촬영자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깨져버렸습니다. 아주 초반에 만난 인터뷰이 중 하나였는데요. 가장 중요한 목적은커녕 “사진 찍는 데 별 의미는 없다”고 강하게 이야기를 해서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래도 사진 찍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바꿔 하다가 ‘의미 없다’는 한결같은 답변에 황급히 인터뷰를 접고 말았습니다. 그 후 계속된 인터뷰를 통해 ‘의미 없다’는 말의 이면에 숨은 자기사진 찍기의 관성과 즉흥성을 깨닫고 이 지점을 파고들 수 있었지요. 지금은 제게 가장 고마운 인터뷰이 중 하나입니다.
여성들이 사진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에 사진을 공유하는 최근 몇 년간의 트렌드에 대해 2030 여성들의 ‘허세’와 ‘나르시시스트’라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았는데요, 이러한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약에 딱 한 명의 여성만이 자기사진을 찍어 전시한다면 (그것 역시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독특해 보일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은 촬영자 여성들이 있고, 때로는 우리가 그들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건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대중이 공유하는 습관이기도 한 것이죠. 2030 촬영자 여성들의 ‘허세’와 ‘나르시시즘’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이 점을 놓치고 자꾸만 개인(들)의 욕망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이들은 특히 여성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집중해서 겨냥하고 있어요. ‘아닌 척’, ‘무심한 척’ 하면서도 끊임없는 자기 자랑에 탐닉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지금과 같이 ‘모순적인 태도’로 사진 찍기를 즐기게 된 배경에는 이들의 인간관계에 사진이 깊숙이 개입하게 된 흐름이 자리합니다. SNS라는 장에서 자기사진 속 나의 모습은 “나 잘 살고 있다”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진을 교환하며 유지되는 관계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기 위한 열쇠예요. 자기사진의 ‘과시성’에만 집착하는 시선은 사진이 만들어내는 관계들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이러한 흐름을 살펴보는 한편 역사적인 측면에도 주목했습니다. 오래도록 사진의 피사체로 규정되어온 여성들은 1990년대를 거쳐 촬영자로 변모하면서 이중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자기 촬영자’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남성을 보조하는 촬영자, 또는 아름다운 피사체로만 자리해왔던 여성들이 자기 모습을 찍는 촬영자가 된 것이죠. 자기 모습을 표현할 기술적 자유가 주어진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안전하게 자기를 촬영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또 ‘나르시시스트’라는 새로운 비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사진’을 갖기 위해, ‘내 사진’의 안전성을 보장받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기사진을 통해 맺고 유지하는 SNS의 관계는 촬영자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하는 SNS지만 사진 업로드는 항상 크고 작은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타인이건 플랫폼이건 ‘내 사진’을 함부로 수집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요. 그런데도 내 사진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불쾌했던 적이 다들 한 번씩은 있을 거예요. 『빈틈없이 자연스럽게』에 나온 일명 ‘브라렛 빌런 사건’은 그런 ‘사소한’ 불쾌감이 익명 게시판에 모여 폭발한 경우입니다. 저는 이런 ‘사소한 경험’을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말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사진’을 향한 타인의 무분별한 수집은 (익명 게시판의 한 댓글처럼) “여자들의 불안과 의심”에 불과하며 “직접적인 피해도 아닌 것”으로 축소돼왔어요. 여기에 맞서 SNS 공간과 자기사진을 둘러싼 우리의 위험과 불쾌감을 더 분명하게 말하고 서로와 공유한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구조적인 변화가 우선해야 하겠지만 ‘말하기’ 역시 효과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작가님의 다음 연구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다음엔 또 어떤 주제의 이야기로 독자분들과 인사하시게 될까요?
저는 최근 음식물쓰레기에 관심을 갖고 현장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기반시설이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음식물쓰레기의 ‘순환’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를 보고 싶어요. 사진과 여성의 관계를 탐구한 이전 연구 주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음식물쓰레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관계들, 그리고 이것이 젠더를 비롯한 사회문화적 층위를 경유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이전과 같은 시선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의진 여성과 기술, 환경의 상호관계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에 큰 흥미를 느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SNS에 공유하는 현상에 주목해 여성과 사진 기술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지금은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인식과 관련 시설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