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남들이 다 말리는 동네 책방을 차렸다. 잘나가던 서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는 판에 고집스레 문을 연, 시집만 파는 책방 ‘산아래,詩’.
수많은 시인이 오랜 산고 끝에 자비 출판한 시집들이 제대로 판로를 찾지 못하고 포장 박스에 갇힌 채 폐지 공장으로 실려 갈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 시집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독자들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를 펴낸 일흔의 책방지기 이동림을 만났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 제목부터 좀 별난 책이라는 느낌을 주는데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마음먹고 쓴 책은 아니고요. 책방을 차리면 안 된다는 주위의 만류를 이겨내기 위해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저 속이 깊은 ‘동네 책방’을 꿈꾸며 문 여는 날까지 진솔하게 적은 기록입니다. 내 고집의 방향이 맞는지, 부딪히는 문제점을 제때 제대로 풀어가고 있는지, 자기도취에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런 걸 두루 점검하고 다지기 위해서 적었던, 그 조각들이 묶여 책이 됐습니다.
동네 책방. 쉽지 않은 일인데?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일’과 ‘관계’,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는 끝없는 ‘욕구’, 순간순간 왔다 가버리는 ‘기회’ 같은 게 이 나이엔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고 고개 숙여버리면, 나도 모르게 참 편한 자세로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빨간 경계선 너머 들어설 ‘한계’가 선명하게 거리 둔 채 미뤄져 있다고 여겼지요. “도전해 보자. 달라질 것이다. 나이 핑계를 대면서 세월에 얹혀서 마냥 둥둥 떠내려가면 안 된다. 남들에겐 좀 어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갈망해 보자! 실천해 보자! 이겨보자!”이렇게 각오를 다졌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누가 알아주든 말든 시공(時空)이 열리는 쪽으로 ‘이 길’이라 믿으며 ‘갈고닦아 다져진’ 마이웨이가 있지요. 때론 힘들고, 답답하고, 고달팠지만, 그때마다 뜨겁게 살았습니다. 이제, 그 벗어날 수 없었던 길에서 신호등 겁내지 말고 이탈해가며, 조바심 내며 시계 들여다보지 말고 보다 흥미롭고, 너그럽고, 여유 있게, 그렇게 벗어나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고 편하게 남들 흉내 내면서 살자면 나도 이제 다 내려놓을 시간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부터 나는 ‘진짜 노인’으로 늙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게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늙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게 아닙니다. 누가 그랬다고 하지요. 이마의 주름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의 주름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이 나이에 선택하는 새로운 길이 좀 두려우면 어때? 외롭거나 좀 답답하면 또 어때? 돈벌이가 덜 되면 어때? 그냥 이렇게 혼자 갇혀(?) 있는 방에서 나를 자유롭고 느긋하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남는 장사’일지 모릅니다.
시집만 파는 책방을 차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 해 전에 어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작품을 모아 시집을 펴냈는데 주위에 몇 권 나눴을 뿐, 서점에는 한 권도 깔린 적 없고 우리 집 책장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다”라며 “그런데 문단에는 이런 시인이 많다. 이들 가운데 빼어난 작품도 많은데 도대체 독자를 만날 수가 없다”
내가 시인이 아니라서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詩 한편 마무리할 때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오랫동안 꿈꿔온 대로, 내가 만약 책방을 열게 된다면 이 소중한 시집들만 모아서 독자 앞에 정성껏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책방 운영의 남다른 방식은?
이 책방은 ‘詩’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책방처럼 커피나 예쁜 소품은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방에 찾아온 독자가 ‘좋은 시집’을 추천해 달라고 해도 특정 시집을 추천해 주지 않습니다. 이곳 책방에 책 표지가 보이도록 비치된 320여 종 시집 모두가 ‘좋은 시집’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집 가운데 일찍 매진된 시집은, 당분간 추가 요청하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시집을 계속 들여놓는 것도 좋겠으나,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시집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에게 좀 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일부 시인들이 “판매된 책값은 보내지 말고 책방 살림에 보태면 좋겠다”라며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그 시인의 시집은 계좌번호를 보내 줄 때까지 책장에 진열하지 않습니다.
책방 창업 7개월이 지났는데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최근 대구수필가협회에서는 “시집 전문 책방이 문을 열었는데, 우리는 ‘에세이 전문 책방’을 검토해 보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류 시인은 경북 칠곡군 시골 마을 옛집을 리모델링해서 이 책방처럼 시집 전문 책방을 차려보겠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이 작은 책방 때문에 우리 출판 독서문화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네마다 이런저런 책방들이 많이 생긴다면, 지하철이나 버스에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드는 승객이 늘어날지 모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이 책방 앞에 처음부터 줄 서는 일은 없겠지만, 문 열어놓고 손님이 찾아올 때까지 맥 놓고 멍하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살아오며 굳은살이 된 낡은 고정관념부터 털어내고 창의적 분해와 결합 속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뭔가 새로운 조합과 연결을 모색하다 보면 한 번씩 “얼씨구…” 하며 무릎 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내가 이 나이에 책방으로 성공했다는 소문과 함께, 요즘 한 집 건너 한 집 생기는 카페나 동네마다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처럼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자꾸만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많아지는 책방들이 저마다 먹고 살 만큼 돈벌이도 되는 세상,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히는’ 그런 세상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동네마다 들어서는 작은 책방들이 우리 문화생태계에, 나아가 우리 일상에 새로운 진화의 동력으로 수혈되면 좋겠습니다.
이 별난 책방을 지키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시집만 파는 나의 이 책방은, 어쩌면 내가 70평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크고 작은 잘못을 하나하나 뉘우치고 반성하며, 기억 속의 부끄러운 흔적을 찾아내 씻어 가는 성찰과 참회의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많이 늦었지만, 삶의 가치를 보다 바르게 깨달으며 보다 어질고 선한 삶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그런 다짐의 청정한 도량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각오로 나를 지키고 책방도 지키다 보면 남들에겐 유익하고 아늑한 책방으로, 나에겐 또 다른 의미의 소중한 공간으로 열릴 것입니다.
*이동림 나이 ‘일흔’이지만 세월 흐르는 대로 그냥 둥둥 떠내려가기 싫었다. 큰돈 들이지 않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때론, 나의 ‘아직 덜 삭은 끼’를 조금씩 발휘하면서 혼자 좋아서 싱글벙글 웃어가며 하루하루 재미있어할 일. 게다가 술술 잘 풀려나가서 일이 점점 넘치더라도 지치지 않고 즐겨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기 시작했다. 대구 앞산 아랫마을에서 시집만 파는 책방 산아래,詩를 차렸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