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경계를 넘어 형식의 벽을 깨고 한국 문학의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이 올해로 3회를 맞았다. 대상 수상작은 서경희 작가의 『김 대리가 죽었대』. 거짓 소문, 루머,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 서경희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유머러스한 서사와 톡 쏘는 예리한 풍자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 장르로 풀어 나간다. 공들인 현장 탐사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한 인물들, 작품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가의 말」에서 8년의 습작기를 거쳐 등단하고 장편 소설 공모전 당선까지 다시 8년이 걸렸다고 하셨어요.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 짧은 소설과 시를 쓰기도 했지만 작가가 될 생각은 감히 못했어요. 소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연극 배우의 꿈이 좌절되는 아픔을 겪고 첫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그때 글쓰기가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나도 쓸 수 있다는 기쁨만 가득했었는데, 여러 편을 쓰다 보니 자연히 등단을 꿈꾸게 됐어요. 여러 번 떨어지고 나선 포기하고 글을 안 쓴 적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글쓰기는 더는 치유가 아닌 아픔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래 쉰 적은 없어요. 어느 날 보면 또 쓰고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쓰면서 힘을 받는 것 같아요. 애증의 관계인 거죠. 어떻게 보면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 같아요. 그랬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 대답 없는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문학 공모전 중에서도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 작품을 응모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고 좋은 작품을 뽑는다는 점이 참 신선했습니다. 1회 대상작인 권여름 작가님의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그리고 2회 대상작인 권석 작가님의 『스피드』를 너무 재밌게 읽기도 했고요.
작품 속에는 김 대리를 비롯해 박종식, 최민희, 오병수, 황미나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마치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는 듯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녔는데요.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만드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소설 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저의 분신입니다. 영화 <23 아이덴티티>처럼 제 안에 다 있어요. 박종식 팀장은 제가 어린이 극단 대표였을 때 모습이고요, 강지훈 사원의 내면은 제가 배우를 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녹아 있어요. 황미나 대리의 이기적이고 얄미운 성격은 공격받는다고 느낄 때 자주 꺼내 쓰는 가면입니다. 배우 활동을 한창 하던 때는 오병수 대리처럼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이희진 사원은 학창 시절 제 모습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학창 시절 저는 내성적이고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서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어요. 요즘도 가끔 그때의 모습이 나올 때가 있어요. 최민희 과장은 저랑 닮은 점이 전혀 없네요.(최민희 과장은 원래 남자였습니다. 당선되고 나서 편집자님과 협의해 성별을 바꿨는데 잘한 선택인 듯싶습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를 고르신다면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이희진 사원입니다. 저랑 닮아서 좋아해요. 소설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미약하지만 마지막까지 김 대리 사망 미스터리를 풀려고 하거든요. 작은 소리라 아무도 듣지 못하지만 이런 소리가 합쳐지면 큰 소리가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누구든 뒤돌아보겠죠. 잠시라도 올바른 판단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김 대리가 죽었대』는 꽤 오래 전에 집필하셨던 작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처음 집필하시게 된 계기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2008년 촛불 집회가 있었을 때 구상했고, 제가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 소설이었습니다. 후에 중편, 장편으로 확장했고 여러 번 고쳐 썼습니다. 소설은 현시대를 담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는 광우병과 촛불 집회, 그리고 가짜 뉴스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던 때였습니다. 쓰지 않을 수가 없었죠. 최종심에도 몇 번 올랐지만 당선되지 못하고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다시금 가짜 뉴스가 이슈가 되고, 『김 대리가 죽었대』가 비로소 세상에 나갈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최근 가짜 뉴스나 루머로 인해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대리가 죽었대』가 제목이지만 김 대리는 중요한 인물이 아닙니다. 일종의 맥거핀이죠. 중요한 건 김 대리에게 주체성을 위임한 팀원들입니다. 그들은 홍보팀이라는 가상의 무대에 올라가 있는 배우들입니다. 김 대리에게 목줄이 걸린 꼭두각시 인형이나 다름없죠. 자신들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라지자 이들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합니다. 김 대리에게 주체성을 위임한 후로 생각이라는 것을 못 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주체성을 위임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언론, 종교, 부모인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 주체성을 위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챗GPT가 독보적으로 떠오르지 않을까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도 못 간다는 사람이 주변에 존재합니다. 스스로 위임했던 주체성을 되찾지 않는다면 가짜 뉴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입견 없이 가능한 많은 정보를 보고 들은 후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서가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겁니다. 세상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나만의 주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신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정답이 없는 소설을 써 왔습니다. 독자들이 깊게 생각해 봤으면 하는 주제를 다뤘거든요. 결말에 커다란 의문을 남겨서 밤고구마 백 개를 드신 듯한 답답함을 드렸는데요. 이 기회에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사이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꽉 닫힌 결말의 힐링 소설을 써 보고 싶어요. 가제는 '실연서점'이고, 싱글 인증을 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미스터리한 서점이 배경인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하게 열심히 쓸 생각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세요.
(장소 협찬 : 상수역 독립서점 오케이어 맨션 책방지기)
* 서경희 2015년 단편 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경주시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으며, 극단 다파 대표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수박 맛 좋아』, 『복도식 아파트』, 『꽃들의 대화』, 『옐로우시티』, 『하리』가 있다.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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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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