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로 살면 살수록 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 점점 더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 점점 더 아는 게 많아지고 매사에 명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온갖 사건들은 내게 사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모르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타인에 대해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겨우 한 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속속들이 관찰하고 파헤치고 묻는 것만이 사건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모르는 인생 앞에, 쉽게 안다고 표현 못 하는 타인 앞에 나는 내내 그러할 것이다. 영원히 잘 모르므로 눈과 손발이나마 부지런히 굴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박미옥 작가님의 책 『형사 박미옥』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스스로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그 자신이 갈아치우며 역사를 써온 형사 박미옥. 업적이라고 해도 좋을 이력들의 소유자인, 그야말로 타고난 형사일 것만 같은 박미옥 작가님에게서 나온 '낮은 자세'라는 말이 작지 않은 충격을 주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형사 박미옥』을 쓰신 박미옥 작가님을 모시고 사람을 사랑하고, 겸손을 태도로 삼는 형사의 삶에 대해 뜨거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인터뷰 – 박미옥 편>
오은 : 현재 제주에 거주 중이시죠. 그런데 책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 서울과 제주를 왔다 갔다 하신다고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들려주세요.
박미옥 : 명예퇴직하고 책방에 앉아서 책을 쓰다가요. 작가를 만나서 액자 만들고 리폼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책을 내고 나니까요. 관심이 너무 쏟아졌어요. 그 관심도 힘든데 언론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이야기장수 출판사의 이연실 대표님이 얼마나 저를 팔고 있는지,(웃음) 정말 저를 찾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은 : 출간된 이후에 이연실 대표님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셨어요. "박미옥 반장님은 제게 한 권의 책을 작업하는 작가 이상으로 제 인생에 이미 많은 영향을 미친 분입니다. 어려운 순간들마다 제 가슴에 잊을 수 없는 말과 용기를 때려박아주셨죠. (중략) '긴 시간 함께 하고 싶은 친구'라는 말이 그래서 더 울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읽으면 읽을수록 울컥하는 지점이 있어요. 편집자와 저자가 친구 관계 혹은 그 이상의 관계가 된 것 같거든요. 책을 쓰는 시간이 각별한 신뢰가 쌓이는 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박미옥 : '수사결과보고'만 써본 저한테 책을 내자고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했고요. 그보다 중요한 건 제 의식의 흐름이 풀리고 열릴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점이죠. 그리고 첫 번째 꼭지를 써서 보냈을 때 돌아온 그 냉정한 판단과 지적,(웃음) 쉽게 상념에 빠질 수 없도록 때린 회초리들도 감사해요. 그런데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그 사람의 결이 보이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보이고요. 나이나 여러 가지를 떠나서 이 사람은 어떻게 살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고 저한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요. 그러니 충분히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렇죠? 제가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이지만, 다른 길을 사는 사람은 저는 스승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연실'이라는 사람이 잘 살아가는 그 길에 가끔 친구로서 저를 생각하면서 좋겠다고 생각해요.
오은 : 박미옥 작가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9살에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하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할 때 선발되어, 23세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되었다.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범을 검거하며 경사를 달았고, 탈옥수 신창원을 잡는 데 기여한 공로로 경위가 되며 특진을 거듭했다. 순경에서 경위까지 무려 9년 만에 한 초고속 승진이었다.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양천경찰서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을 지냈고,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겸임하던 시절에는 숭례문 방화 사건 현장의 화재 감식을 총괄 지휘했다. 2010년에는 마포경찰서 강력계장으로 발령받아 만삭 의사 부인 살인 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 사건 등을 해결했다. 이어서 2011년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을 맡고 본인이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21년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다. 드라마 <시그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괴물>, <히트>, <미세스 캅>,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조폭 마누라>, <감시자들>, <하울링> 등 수많은 작품에서 형사의 현장과 사건에 대해 자문을 맡고, 극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력이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최초'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최초가 당사자에게는 명예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부담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실 때, 뿌듯하기만 하셨는지 부담이 있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박미옥 : 사건을 해결하고, 다음 사건으로 가고, 그 다음 사건을 해결한 자리 이후에 저에게 다가온 일들이어서요. 그저 헤쳐나간 일들이지, 이게 최초라는 인식을 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최초라는 단어는 굉장히 외로운 단어 같아요. 이 길을 처음 간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던 것 같고요.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이 사건이 왜 내 앞에 왔지, 이 자리가 왜 내 앞에 왔지, 라는 의문을 갖고 그 일을 해 나가기가 더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초라는 말은, 언론이 만들지 않았을까요?
오은 : 이제 『형사 박미옥』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박미옥 : 사람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책의 노란색 띠지에 이연실 대표가 거창하게 적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유명한 이야기의 야사가 있겠다고 생각하셨다가 소매치기 잡는 얘기 있고, 어떤 여자분 앞에 운 얘기 있고 하니까 이거 뭐지? 하셨을 거예요. 그게 제가 노린 한 수였습니다. 유명한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하셨어요. 그리고 큰 사건이라는 것도 사회가 규정한 이야기예요. 저희가 한 건 한 건 해결해낸 그 일들이 도리어 다른 큰 사건도 감당하게 해준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건 앞에, 사람 앞에 주저한 이야기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실수하지 않게 했고, 그 시선이 나를 다시 되짚어보게 했기 때문에요. 그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서 쓴 책입니다.
오은 : 책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익명이에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면 더 포장하기도 좋고 사람들한테 많이 회자되었을 텐데요. 그 실제의 이름을 적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것도 같아요. 그냥 사람으로서 바라보겠다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박미옥 : 맞아요, 철저한 계획이었습니다.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어요. 또, 유명한 사건은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이미 아실 것 같고요. 그렇다면 저는 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다른 이야기, 그 사건에 있던 다른 현장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연도도,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도록 썼어요.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치밀성이었습니다.
오은 : 그래서인지 이처럼 사건에 대한 기술이 이루어지는 다른 책과 다르게 이 책은 입체적으로 인물을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랬을까, 왜 그때 거기로 갔을까, 같은 질문을 계속 품고 현장에 들어가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박미옥 : 저도 제 마음 안에, 머릿속에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첫 문장을 시작하고 첫 꼭지를 꺼냈을 때는 이연실 대표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죠.(웃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라고요. 사실 경찰이라는 현장 자체가 타인의 관점과 이야기로 말하는 곳이잖아요. 제가 저의 시선으로 말하면서 산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보기 시작했는데요. 이 생각을 하면 저 생각이 떠오르고, 이 이야기하고 나면 저 아픔 드러나서 5개월 동안에 차곡차곡 쏟아져 나왔어요. 책 쓰면서 울어도 보고요. 도저히 쓸 수 없어서 멈춰도 보고, 유가족 분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가 내 작은 생각이라고 접어버린 적도 있어요. 도저히 그 시선으로는 쓸 수 없어서 딴 짓을 해보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나온 책이에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박미옥 : 신달자 시인의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인데요. 부엌에서 이렇게 많은 걸 볼 수 있구나, 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구나, 그리고 나의 안식도 있구나, 생각하며 읽었어요. 시 한 편 한 편이 제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스불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끓여야 맛있는 음식이 나오잖아요. 게다가 부엌에서 칼질하면서 행복하대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도 이분 같이 늙으면 이런 통찰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위트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고요. 내 삶 속에 이런 엄청난 전쟁과 평화와 안식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라 추천합니다.
*박미옥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하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할 때 선발되어, 23세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되었다. 2000년 최초로 여성 강력반장이 되었고, 2002년 양천경찰서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겸임하며 숭례문 방화사건 현장의 화재 감식을 총괄지휘했다. 2010년에는 마포경찰서 강력계장으로 발령받아 만삭 의사 부인 살인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사건 등을 해결했다. 이어서 2011년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을 맡고 본인이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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