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없던 상상력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캘리 님께서 책을 먼저 고른 뒤에 '상상력'이 들어간 주제로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제가 완성을 한 주제였죠. 사실 캘리 님께서 소개할 책을 미리 듣고, 이것보다 주제에 맞는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요. 정말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웃음)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김기창 저 | 위즈덤하우스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이에요. 그리고 아주 아주 예쁩니다.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시작한 <위픽>이라는 시리즈인데요. 얼마 전에 처음 다섯 권의 책이 나왔어요. 주인공은 구병모, 이희주, 윤자영, 박소연, 김기창 작가님이고요. 올해 50권이 나오는 게 목표라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이종산 작가님, 곽재식 작가님, 김동식 작가님, 배예람 작가님, 이소호 작가님 등등이 이 시리즈로 작품을 보여줄 예정에 있는데요. 소설가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 시인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셔서 흥미로웠어요.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객』의 초판 서명본에 '이해는 상상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이해야말로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우리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상상에서 이루어지고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상대의 사연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도 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해 보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거잖아요. 이것들이 다 이해하는 것이고, 상상의 씨앗이 된다는 점에서 이 말이 아주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만약'이거든요. 오죽하면 세 번째 시집에 「만약이라는 약」이라는 시도 썼는데요. 만약이라는 여러 가정들이 이야기의 씨앗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책은 또한 만약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기도 합니다.
위픽시리즈는 책의 문장 하나를 표지에 적는데요. 이 소설에는 '1601호 입주자들이 또 코사크 댄스'라는 문장이 적혀 있어요. '코사크'라는 말은 방랑하는 자를 뜻하는 거래요. 테트리스의 가운데에 춤 추는 사람이 등장하잖아요. 그게 코사크 댄스라고 하고요. 소설은 주인공 '예주'가 3주 전에 1501호로 이사를 와서는 1601호에서 분명히 코사크 댄스를 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소음을 어떻게든 조금 참아보려고 하지만 밤마다 불면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죠.
단편을 읽었는데, 이렇게 몰입감 넘치게 뛰어들어서 읽은 건 오랜만이었어요. 김기창 작가님의 상상력과 문장력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아주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 책은 구입하지 않더라도, 빌려서 보시더라도 꼭 손에 쥐고 끝까지 읽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저는 앞으로도 <위픽> 시리즈를 계속해서 사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상상력은 층간 소음을 줄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혐오와 분노는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 소설은 거기에서 출발했고, 크리스마스의 은총이 아래층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구병모 저 | 안온북스
이 소설은 안온북스의 미니픽션 시리즈고요. 정세랑 작가님의 『아라의 소설』도 이 시리즈에 속해있어요. 이 시리즈의 재미있는 부분은 각 소설마다 작가님의 코멘트가 달려 있다는 건데요. 이 작품을 어떤 의도에서 썼는지, 어디에서 청탁받아서 썼는지 등 작가님의 창작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나중에는 그 코멘트를 읽고 싶어서 책을 읽게 되더라고요.(웃음) 이건 독자를 위한 서비스이기도 하잖아요. 읽는 보람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로렘 입숨의 책』에는 13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는데요. 진짜 구병모 작가님은 상상력 천재인 것 같아요.(웃음) 너무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여기에는 태어난 모든 사람의 몸에 씨앗을 주입해서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씨앗에서 꽃이 피는 도시의 이야기, 인간을 도운 죄로 지상에 내려온 존재에 관한 이야기,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꿈을 산다는 이야기, 신의 사전을 훔쳐서 나온 천사의 이야기, 탈락하면 실제로 죽게 되는 오디션의 이야기, 시간을 이동하는 사람의 이야기 등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하면 나오는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요. '구병모 작가는 미니픽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규격에도 불구하고 영토와 시간 인간과 신의 경계를 무참히 가로지르고 단숨에 제압해 소설 한 편의 완성도와 가능성은 규모로 결정할 수 없음을 증명해냅니다.'라고 소개되어 있는데요.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굵직한 줄거리에 아주 치밀하고 동시에 흥미 넘치는 사고 실험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이 책을 펼치면 아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고요. 또 책을 읽고 나서는 이 이야기의 끝을 나라면 어떻게 맺을까, 라는 생각도 한 번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상상력이 없는 나라도(웃음) 하면서요.
'로렘 입숨'이라는 게 1500년대부터 인쇄 그리고 조판 산업에서 레이아웃으로 편집하는 데 쓰인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말한대요. 그냥 의미가 없는 텍스트죠. 그러면서 이 말을 소개한 책 각주에 또 이렇게 쓰여 있어요. '읽었을 때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여 아무 글자나 얹어 놓은 것은 아니다'라고요. 제목이 너무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의 서사 그리고 형식을 다 포함하는 제목인 거잖아요. 이처럼 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도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지는 로렘 입숨 같은 작품이 13편 모여 있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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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