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면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유전자 증폭검사로 알려진 pcr 검사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만들어진 mRNA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는 인류의 대표적인 무기였다. 우리는 면역학 지식의 혜택을 쉽게 받았지만, 그 뒤에 누구의 노력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는 '면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힘겹게 파헤친 의학자들의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은중 저자는 역사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현직 이비인후과 의사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면역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온 의학자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흥미롭고 자세하게 조명한 책은 드물다. 저자의 인터뷰에는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선배 의학자들에 대한 존경이 깃들어 있다. 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어떤 계기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딸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물론 아빠로서 듣고 싶은 답은 정해져 있지요.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 물론 그런 답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장래 희망은 뭐야?' 이번에도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수많은 직업 중 의사는 없습니다. 저는 의사가 참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집에서 보여주는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은 아이들에겐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에 찌든 아빠 모습이 아닌,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의사들 이야기를 시간 날 때마다 한 명씩 정리해 애들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겠다. 글 밑에 의사들 얼굴도 만화로 그려주면 좋아하겠지?
이렇게 나름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블로그 활동이 점점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 제가 원래 역사를 좋아했던 터라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정리하며 글을 쓰는 작업에 재미를 붙이게 된 거죠.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어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나중엔 저의 힐링을 위해 블로그를 해 나갔습니다. 주말에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아빠가 놀아주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토라지기도 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저만의 조용한 공간인 블로그에 차곡차곡 글들이 쌓여갈 무렵 쪽지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제 블로그를 방문한 출판사 선생님께서 이야기가 흥미롭다며 출간 계획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라 일단 공손하게 거절했어요.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엔 언젠가 이 글들을 정리해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의 그림을 모두 직접 그렸는데, 학창 시절 의사로 진로를 정하면서 그림에 대한 갈증도 무척 컸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제대로 그림을 배워 본 적은 없습니다. 미술 학원에도 다녀본 적이 없어요. 교과서 주변에 낙서는 많이 했지만요. 그렇게 잘 그리는 실력이 아니어서 미술을 진로로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뭘 그려도 만화같이 그려져 미술 선생님께 종종 지적을 받기는 했습니다. 오히려 어설픈 재능이었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고 실력을 높이고자 하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계속 취미 삼아 만화를 그려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제가 초등학교 때 그렸던 그림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지금이랑 똑같이 그렸거든요. 만화를 그리는 것이 그저 좋았기에 어릴 때는 연필로, 학창 시절엔 볼펜으로, 현재는 핸드폰에 달린 작은 펜으로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뭔지 아세요? 표지에 '글·그림 김은중'이라고 써있는 부분입니다. 보고 있으면 가장 행복한 부분이죠.
귀엽게 그린 많은 면역 세포 캐릭터가 책 속에 등장합니다. 유독 정이 가는 면역 세포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의외로 면역세포보다는 세균과 바이러스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영웅 영화에도 매력적인 악당이 등장하잖아요. 머리카락이 하나 달린 초록색 세균과 둥그런 얼굴에 삐죽삐죽 뿔이 돋아있는 바이러스 캐릭터입니다. 나름 의미도 있습니다. 세균은 자신이 갖고 있는 털을 채찍처럼 이용해 움직이거든요? 그 털을 '편모'라고 합니다. 세균 캐릭터의 머리카락이 바로 '편모'를 묘사한 것이지요. 그리고 바이러스 경우 표면의 돌기를 이용해 우리 몸에 들어오는데, 바이러스 캐릭터 표면에 있는 뿔이 바로 그런 표면 단백질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조금 어려울 수 있어 책에선 언급되지 않아요. 그냥 저자의 개인적인 만족이라고나 할까요? 책의 삽화들을 유심히 보다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찾게 되신다면 저자가 드리는 작은 유머코드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에서 소개되는 여러 의학자들 중에서 동경하거나 롤 모델로 삼는 분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애착이 가는 분들이 많지만 단 한 명만 골라야 한다면 단연 '파스퇴르'입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긴박한 상황에서 스위치 같은 것을 젖혀 기차를 다른 노선으로 옮겨 타게 하는 장면 있잖아요? 파스퇴르는 의학이 가는 길을 완전히 뒤바꾼 학자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미생물을 먼지처럼 생각했어요. 그냥 인간 주변에 널려있는 의미 없는 물질로 본거죠. 사실 의사들이 환자를 보기 전 손을 씻기 시작한지도 150년이 안돼요. 그만큼 세균에 대한 위생 관념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미생물이 공기 중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 미생물이 새끼를 낳음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도 증명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의학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게 됩니다. 의학자들이 파스퇴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미생물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는 소독법을 개발하고, 미생물을 죽여 없앨 수 있는 항생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해 파스퇴르는 백신을 만드는 법까지 찾아냅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위대한 의학자 여러 명의 재능이 한 명안에 담겨있는 느낌이에요. 요즘 흔히 말하는 사기 캐릭터죠. 그가 5년만 더 살았다면 노벨상을 3개 이상 받았을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면역력을 지키기 위해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면역력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의사들도 완성된 면역학을 배우는 것이지, 그런 면역학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배우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책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면역력은 최상의 상태로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의학자들이 뒤늦게 그것들을 깨우쳐 왔다는 점을 말이죠. 시중에 면역에 대한 정말 많은 정보가 넘쳐납니다. 지금도 뛰어난 의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죠. 처음엔 면역에 대한 최신 정보를 모두 다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논문들을 읽다 보니 알레르기를 전문으로 대학과 개인 의원에서 꽤 오랫동안 진료를 해 온 저마저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단 하나하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면역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고, 그 정보들이 조금씩 다르거나, 심지어는 반대되는 의견들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들만 골랐습니다. 면역력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내 면역력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건강한 면역을 위해 네 가지를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첫째, 기본 예방 접종을 빠뜨리지 않는 것. 둘째 식이 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해 나를 보호해주는 장내 유익균을 늘릴 것.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인데 잠을 많이 잘 것. 충분한 수면은 여러분의 손상된 면역력을 하룻밤 사이에 정상으로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넷째, 항생제는 의사와 상의한 후 정확하게 복용할 것입니다. 위 네 가지만 기억하고 지켜주신다면 별도로 돈을 쓰지 않고도 면역력이 여러분의 건강을 충분히 지켜줄 것입니다.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에 이어 어떤 책을 준비하고 있나요?
의학 이야기와 면역 이야기에 이어 유전학의 역사를 다루는 『이토록 재밌는 유전 이야기』(가제)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소 의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춘추전국시대 이야기와 고사성어를 접목한 책이 조만간 나올 것 같습니다. 특정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공부하느라 힘든 요즘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공이 의학이니 의학과 생명 과학을 좀 더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선배로서 조언의 말도 부탁드립니다.
현재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저희 세대보다 더욱 뛰어나기 때문에 수험 생활이나 공부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제가 가르쳐 드릴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하나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의사'를 목표로 하지 마시고 '의학'을 목표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사'는 여러분이 만나게 될 환자만을 낫게 하지만, '의학'은 모든 인류를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에 '이 의학자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몇 년에 받았다'는 문구를 집어넣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은중 (글·그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고려대학교 산하 의료원에서 이비인후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공중 보건의로 복무했다. 고려대학교 안산 의료원에서 전임의를 거쳐 임상 조교수로 근무했으며, 현재 시흥수이비인후과 원장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 선생님 학습 자료에 삽화를 그린 적이 있으며 의대 시절에도 의대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고, 잡지에 의학에 관련된 단편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또한 역사를 좋아해, 역사를 이끌어가는 영웅들의 활약과, 영웅들의 힘을 이끌어내는 평범한 이들에 의한 시대의 에너지에 감명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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