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롬, 대중성과 창작욕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
는 슬롬의 역할과 본연의 미덕을 잘 포착했다. 목소리보다 기악 연주와 음악이 은은하게 빛나며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부각했고, 그 선율에는 차분한 창작자의 태도가 묻어나 진폭은 얕고 구성은 단출하다.
글ㆍ사진 이즘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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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성격의 프로듀서 슬롬은 자기를 내보이거나 자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도통 알 수 없는 속을 헤아릴 유일한 단서는 정교하게 담금질한 그의 작품뿐. <쇼미더머니> 경연곡 '회전목마' 등으로 무대와 차트 모두 합격점을 받아낸 신입생은 자이언티의 레이블 스탠다드 프렌즈에 합류하며 점차 그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래퍼를 빛나게 만드는 감독 역할도 쉬지 않는 동시에 새 보금자리에서 발매한 는 정돈된 음악 안에 감춰둔 그의 내면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보고서다.

일주일 날씨를 상징하는 7개 트랙은 흘러가 버린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다. 이 기상예보에 따르면 그가 지나온 일기(日氣)는 대체로 흐림에 가깝지만, 빗방울이 빗발칠 정도는 아니다. 관계의 허무에서 비롯된 '아니라고'와 'Skit',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 서글픈 감정을 담은 'D.r.e.a.m' 등 어딘가 다들 처연한 주제를 읊고 있지만 슬롬은 관찰자의 자세로 우중충한 하늘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잔잔한 멜로디를 지어낸다.

서정성은 연주곡이나 악기가 중심을 잡은 부분에 특히 두드러진다. 보컬의 도움 없이 물방울 소리로 빛과 소금의 원곡을 재해석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에는 거장에 대한 존경과 함께 엷은 미소가 녹아있고, 마찬가지로 음성이 생략된 마지막 트랙 '우산'의 빗소리로 쓸쓸하게 이어진다. 영국 가수 윌 히얼드와 협업한 'What do I do' 후주의 기타 솔로 역시 갈수록 압축되고 짧아져 가는 시대에 반가운 여백의 미를 제공한다. 거세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드릴(Drill)이 득세한 요즘 유행과 달리 차별화된 미니멀리즘이 만족스럽다.

먹구름을 비집고 들어온 친구들과 함께 활기찬 외출도 감행한다. 어둑어둑한 공기가 중심을 잡고 있지만 펑키한 베이스 리듬을 몰고 온 조력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날씨를 재해석한다. '아니라고'의 자이언티가 특유의 멜랑콜리함으로 단연 돋보이는 가운데, 퓨전재즈 풍 '선인장'에 합을 맞춘 크러쉬와 빈지노도 흐린 날에 느껴지는 온도를 빼어나게 표현했다. 슬롬표 감성에 담백하게 어울리는 피에이치원과 로꼬 등 래퍼 라인도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내지를 빼곡하게 채웠다.

화려한 피쳐링 진이 한편에 자리 잡았지만, 는 슬롬의 역할과 본연의 미덕을 잘 포착했다. 목소리보다 기악 연주와 음악이 은은하게 빛나며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부각했고, 그 선율에는 차분한 창작자의 태도가 묻어나 진폭은 얕고 구성은 단출하다. 빼어난 절제미, 늘 대중성과 자기 창작욕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강점을 재차 증명한다.



Slom 1집 - WEATHER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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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