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인문 PD 손민규 추천] 자산은 꺼졌지만 삶은 빛난다
『모든 삶은 빛난다』는 한 해를 시작하기에 어울리는 책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진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던져야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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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생을 다 산 건 아니지만, 내 삶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가장 극적인 시기였고 아직 진행 중이다. 재택근무라든지 백신 접종, 거리두기와 같은 변화도 있었지만, 더 큰 변화는 자산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었다. 대표적인 자산 시장인 부동산과 주식은 지난 3년간 지옥에서 천당으로, 다시 지옥으로 오갔다. 내년은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릴 거라는 예측도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직장인의 꿈이 '파이어'였는데, 그 꿈이 '평생 현역'으로 이동했다. 월급의 소중함, 나도 절감한다. 자연스레 책을 고르는 시선도 돈을 불리는 방법보다는 개인으로서 단단해지는 방법으로 향한다. 이럴 때 철학이 삶에 힘이 된다.



다양한 철학 신간 중에서 『모든 삶은 빛난다』가 눈에 들어왔다. '출간 즉시 이탈리아 인문 베스트셀러 1위'라는 띠지의 문구에 홀렸다. 이탈리아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면서도, 좋아하는 뮤지션인 루카 트릴리가 이탈리아 출신이라 끌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라니, 어떤 결일까?' 궁금했다. 저자인 안드레아 콜라메디치와 마우라 간치타노는 '틀론(Tlon)'이라는 프로젝트를 이끌며 강연과 세미나, 철학 모임을 주최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철학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이 탄생한 곳이다. 로마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스가 철학이었다면, 로마는 그 철학을 법과 건축 등 실용적인 부분에서 발전시켰다. 그래서일까. 『모든 삶은 빛난다』에서 강조하는 철학은 일상과 맞닿은 사유다. 데카르트나 흄, 칸트, 헤겔과 같은 근대 철학자들이 복잡한 인식론을 전개한 탓에 철학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주로 고대 철학이다. 고대 사상가에게 철학은 '삶의 태도'였다. 따라서 세상이 실재하냐 아니냐, 인간의 인식은 믿을 만한가 아닌가는 논외로 하고 무작위로 던져진 삶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다.

대부분 책의 주제가 제목이다. 이 책도 그렇다. '모든 삶은 빛나'는데 어떻게 그 빛을 발견할 것인지를 묻는 게 책의 내용이다. 저마다의 삶이 다른 방식으로 찬란한데, 현대인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그 잣대란 '성과'다. 누가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지가 척도다. 높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인간 실격으로 치부된다. 이런 문명은 병든 사회다. 치유제는 철학이다. 철학은 각자의 삶에 빛을 비추어 각자 어떤 색인지를 알려줄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기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삶은 결승선을 끊어야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_(63쪽)

개인 개화에는 끝이 없으며, 우리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 같은 건 애당초 없습니다.  _(159쪽)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에서부터 현대 철학자인 니체와 한병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의 사유를 소개한다. 우리가 행복이라 믿었던 것, 삶의 목표라 여겼던 가치에 묻는다. 이 과정에서 해체, 재구성 이른바 가치의 재전도가 이뤄진다. 인상적인 몇 구절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적 삶은 결코 완벽한 삶은 아니지만 성찰, 멈춤과 나아감, 미지의 이행지대로 가득 찬 풍요로운 삶입니다.  _(21쪽)

결과적으로 행복은 우리가 더 많이 소유하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바쁜 와중에 계속해서 갈망하지만 기껏해야 짧은 몇몇 순간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이는 우리를 더욱더 우울하고 지치게 만들 뿐이지요.  _(43쪽)

철학은 학식이나 고상한 오락의 과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쌓아온 모든 쓸모없는 상부 구조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 돌봄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여정입니다.  _(75쪽)

오늘날 성과 불안은 거의 집단적 장애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생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_(97쪽)

이 시대의 정신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 즉 소통을 잘하고, 생각의 속도가 빠르며,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인플루언서와 인기인, 중요 인사, 성공한 사람 중에는 그런 바른 특성을 모두 가졌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대한 새장에 갇힌 신세가 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_(100쪽)

두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개념이 '개인 개화'이다. 융의 '개성화'와 맥락이 비슷한데, 이는 재화의 획득이나 사회적 위치와는 상관이 없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회가 강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렇게 쓰면 『모든 삶은 빛난다』도 다른 철학책처럼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철학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 저자가 소개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많다.

고전을 활용한 책 점 치기, 지루함 즐기기, 손으로 글씨 쓰기, 밖으로 나가서 걷기, 소셜 미디어 잠시 끊기 등등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알려준다. 굳이 저자들의 부연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활동이 '개인 개화'에 도움을 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두 저자가 알려준 'WOOP'이라는 방법적 사고는 의사 결정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팁이다. 'WOOP'이 어떤 개념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2023년은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 이런 시기야말로 개인 개화를 하기에 적합한 때가 아닐까. 『모든 삶은 빛난다』 한 해를 시작하기에 어울리는 책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진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던져야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다.



모든 삶은 빛난다
모든 삶은 빛난다
안드레아 콜라메디치,마우라 간치타노 저 | 최보민 역
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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