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흥 "일의 태도와 삶의 태도가 다르지 않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자기 존재감을 확보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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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추구하는 시대. 우리는 '밸런스'를 말하면서도 내심 '워크'보다는 '라이프'에 무게를 싣고 있는지 모른다. 라이프보다 워크를 우선시하는 건, 지나간 시대의 삶의 방식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우리에게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는 묻는다.

"어차피 깨어 있는 시간의 반이 일하는 시간인데, 일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지 못한다면 그 반은 버려지는 셈 아닐까? 반을 포기하고도 과연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반박하기 어렵다. 일하는 동안에도, 일하며 맺는 관계 안에서도,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일 속에도 삶이 있다. 그러므로 일을 잘하는 것과 삶을 잘 사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원흥 저자는 말한다.

"나는 30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해오며 생각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은,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모든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자신의 일을 끌어안고 있는 모두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처음 회사원이 되었을 때, 이제 막 팀장의 자리에 앉았을 때, 퇴사를 고민할 때, 회의 시간이 힘들 때... 일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맞닥뜨리는 순간들과 그때의 고민들에 답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충고도 조언도 평가도 판단도 아닌, 단지 후배가 행복하길 바라는 선배의 당부"를 전한다.

이원흥 저자는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시작해서 한컴과 TBWA 등의 제작 임원을 지낸 30년차 카피라이터다. 인터파크의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니까!' 풀무원의 '다르게 생각해서 바르게 만듭니다' 신라면의 '누구에게나 4분 30초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등 수많은 카피를 썼다. 현재 농심기획에서 제작 총괄로 일하고 있으며, 저서로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가 있다.



주체적인 오독

이번 책에는 <월간 채널예스>에 1년 동안 연재하셨던 칼럼(이원흥의 카피라이터와 문장)을 비롯해서, 같은 결의 글들이 실렸습니다. 처음 칼럼의 연재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가 나오고 나서 엄지혜 편집장님께서 칼럼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는데요. 그 책에도 일에 대한 태도, 일과 삶의 연결에 대한 의식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집장님도 그 책을 보셨던 것 같고, 일에 대한 생각들과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쓰면 어떻겠냐고 먼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바로 동의가 돼서 해보자고 했어요. 문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챌린지였죠.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작품들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각 글의 시작을 여셨습니다. 찰떡같이 어울리는 문장을 찾아서 글과 잇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요. 

사실 되게 힘듭니다.(웃음) 저는 주체적인 독서가 얼마나 일과 삶에 적용 가능한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무슨 책을 읽든 주체적인 오독의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글에서 『남방우편기』를 인용하고 있지만, 일과 『남방우편기』가 무슨 관련이 있겠어요. 아무 관련이 없지요. 하지만 일에 대해서 『남방우편기』도 연결될 수 있고, 니체도 폴 서루도 빅터 프랭클도 연결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글이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에 대해 쓰는 일'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인용한 문장이 책에 실려 있는데요. "내 책을 던져버려라. 이것은 인생과 대면하는 데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자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너 자신의 자세를 찾아라." 그렇게 말하고 있죠. 감히 지드를 인용하자면, 이 책에 쓴 저의 생각은 일과 삶에 대해 가지는 수많은 태도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필요도 없고, 아마 그럴 수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면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자님과 같은 문제의식이요? 그건 어떤 건가요?

요즘 젊은 세대가 많이 힘든 것도 사실이고, 제가 (사회생활) 시작하던 젊은 시절보다 가혹한 시대인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한 번 사는 거잖아요. 그리고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죠. 저는 막연한 우쭈쭈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구체적인 진술, 구체적인 칭찬, 구체적인 격려, 구체적인 위로, 이런 것들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에서도 "내가 일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라고 하셨죠. 그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글을 쓰시면서 표현이나 방향에 대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천지개벽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제가 일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은 아주 다른 세상이죠. 저같이 이전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젊은 분들은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지금보다 수백만 배 더 급변해도, 우리는 다 한 번 살아요. 인간이 한 번 사는 데에는 변치 않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든, 일을 하든, 일을 때려치우든,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변화, 트렌드, 유행, 이런 것들에만 방점을 두다 보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고유함에 어떤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는지를 간과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있어요. 그게 정말 노파심으로 그치면 좋겠고요. 그런 것들을 균형감 있게 봐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신입사원이 된 딸에게」라는 글은 연재 당시부터 굉장히 반응이 뜨거웠어요. 

아이러니한 게, (그 글이) 가장 걱정했던 주제였거든요. 아무리 딸에게 해주는 이야기라는 외양을 가졌지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가장 노골적인 게 아닐까 걱정했어요. 물론, 의도는 딸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요. 그렇더라도 젊은 세대가 이런 충고, 조언을 달가워할까 걱정이 많았는데요. 가장 반응이 좋더라고요.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공감하고 감동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통하는 면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분들에게도 '막연한 우쭈쭈가 진정한 위로일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충고나 조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태도에서 출발한 충고와 조언이냐 그 내용이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에 따라서 어떤 충고는 경청할 만한 의미가 있고 어떤 조언은 그렇지 않은 게 아닐까, 거기에 희망을 갖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썼어요. 제가 가진 문제의식과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들어주신 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의 태도가 곧 삶의 태도

「신입사원이 될 딸에게」를 통해서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자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방우편기』를 인용했던 거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간 고위 관리의 이야기를 한 거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광고라는 일도 수만 가지로 정의될 수 있어요. 조금만 문제의식을 갖고 생각해 보면요. 얼마 전에 신문에서 봤는데, 바버숍의 젊은 사장이 자기 일상에 대해 쓴 칼럼이었어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마무리가 자기의 일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바버숍이든 광고 카피라이터든, 자기 일을 숙제 하듯이 하지 않고, 스스로가 '내 일은 이런 것 같아, 이런 가치·의미가 있는 것 같아'라고 알고 진짜 그렇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치롭게 느끼니까 잘하고 싶어지고, 그런 동력과 에너지가 대단히 중요한 거죠. 그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따님과 아드님이 신입사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책에 대한 두 분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입사원이 될 딸에게」의 딸은 이제 2년차 사원이 됐고, 아들은 지금 1년차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아무래도 제가 젊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들과 저의 딸과 아들이 가장 최초의 독자였어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까요. 그들을 통과하지 않으면 책으로 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매번 검증했어요. 매번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받았고, 그게 아주 큰 힘이 됐죠. 지금도 이 책을 너무 좋아하고 자기 친구들에게, 또 선후배 동료들에게 추천해요. 주변 반응도 전해주고, 저도 들으면서 흐뭇하고 그렇습니다.

'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면 잘해야 돼요. 잘해야 불안하지 않아요. 잘해야 일 자체가 재밌어져요. 저는 어떤 일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든 처음에는 서투르고 잘 못하죠. 그때는 일이 재미없어요. 그런데 '아, 이거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알게 되고, 해보니까 조금 잘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점 재밌어지는 거죠. 그러려고 일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 잘하려면 뭘 해야 되는지 찾게 되는 거고요. 그것의 가장 중요한 시작이 주체적인 자각이라고 생각해요. 주체적인 태도 설정이 없이 숙제 하듯 일하면 다 허사예요. 그러면 결국 큰 불안과 맞닥뜨리게 돼요. 스스로가 '나는 잘하고 싶어, 어떤 게 필요하지?'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책이 제일 빠르더라고요. 가장 싸고, 가장 빠르고, 가장 함축적인 것 같아요.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정의도 각자 다를 것 같습니다. 성과가 좋으면 일을 잘하는 걸까요?

일의 분야마다 또는 역할과 직급에 따라서 일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가 다르겠죠. 일반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자기 존재감을 확보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살아있으니까 문제가 계속 생기죠. 산다는 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일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삶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그렇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예를 들면, 저한테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성실한 공부', '씩씩한 도전', '흔쾌한 존중' 이 세 가지로 말하겠어요. 일을 잘하려면, 또 좋은 삶을 살려면,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부에 게으른 사람이 일을 잘하거나 좋은 삶을 살 확률은 매우 낮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원도 안 갔는데, 그런 공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아실 거예요.

씩씩하게 도전하는 태도는 어떤 건가요?

매 순간 씩씩하게 도전해야 돼요. 일에 있어서 '굳이 나한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설 필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살면서 (다른 일에) 나서나요? 안 나서요. 반대로 '저 사람이 고생하고 있는데 좀 도와줄까?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같이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안쓰러운데?'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 외에도) 살면서도 그래요. 

「물어도 대답 없는 너에게」에서 '진정한 존중'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윗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건 존중이 아니라고 하셨죠. '너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선명하게 부딪치거나 격렬히 반대하거나 뜨겁게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존중이라고요. 

회의실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건 높은 사람들의 책임이에요. 그 회의실의 좌장이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죠. 사장이 권위적이거나, 회의의 좌장인 임원이나 팀장한테 말해봐야 자기 이야기만 할 것 같으니까, 입을 닫는 거죠. 그 책임은 윗사람들한테 있는 게 맞아요. 그렇지만 모든 문제는 '시스템'과 '개인'의 차원이 있는 것 같아요. 시스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높은 사람들에게 있지만, 한 개인으로서 '나'를 거기에 종속 변수로만 둘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동료와 후배들한테 "주어가 '나'인 문장이 많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장은 말이야', '우리 회사는 말이야', '원래 우리 분야가 말이야'라는 말보다 '그런데 나는~', '그런데 내가~', '그래서 제가 팀장님한테 말씀드리기를~' 이렇게 주어가 '나'인 문장을 자꾸 만드는 거예요. 저는 존중이라는 건,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말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상대를 진짜 존중하는 거죠. 



어른답게 일한다는 것

책에 쓰시길, 광고도 회사도 사랑하지만 "어차피 광고도 농심기획도 영원히 사는 데는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런 태도가 굳세고 당당하게 매 순간 씩씩하게 일하는 데 바탕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또 그렇게 씩씩하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있는 곳과 하는 일에 대한 최선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저는 광고 일을 30년 했지만, 광고를 아주 좋아하고 이 일을 사랑해요. 그런데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일이 모든 일 중에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의 다른 일들보다 탁월하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있는 회사와 저라는 사람이 현재 최고의 광고회사이고 최고의 카피라이터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 같지 않아요. '내가 지금 가진 싸움에서 나를 얼마나 완전연소 하는가' 그게 저의 삶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일에, 그리고 일을 잘하려는 노력에, 정말 내 에너지를 다 쏟은 것 같은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알잖아요. 저는 그게 마땅한 자기 일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견해가 다른 분들이 있겠지만, 그건 존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 같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를 다 던지는 것. 그랬을 때 오는 황홀한 만족감과 그 에너지가 다시 삶에 전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른의 일」이라는 글은 정말 많은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어른답게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한번 여쭤보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일을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일하는 게 좋은 것인지 배운 적이 있나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요. 어떻게 하는 게 일을 잘하는 건지 모르니까 윗사람들을 보게 돼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어른답게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답게 일한다는 것의 반대를 이야기해볼까요?

예를 들면 어떤 경우가 있나요? 

같이 일하는 조직의 리더가 스스로를 비평하는 위치에 놓고 '너는 이걸 잘못했어, 이 정도밖에 못했어' 하면서 심사와 비평만 해요. 그리고 스스로를 분리하죠.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화만 내요. 그건 매우 유아적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책임져야죠. 자기가 만 원이라도 월급 더 받는 사람이고 리더인데. 자기한테 아무 보고도 없이 단독으로 일한 거 아니잖아요. 다 승인 하에 리뷰 하에 컴펌 하에 이루어진 것들이잖아요. 공이 있다면 돌려줘야 되고, 과가 있다면 '괜찮아 너희들은 잘했어, 책임이 있다면 내가 질게'라고 하는 게 어른 아닌가요? 우리가 보고 싶은 건 그런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별로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그렇게 돼야죠.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나'가 주어가 아니잖아요. 나와 우리 중에 어른답게 일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분명하게 갖고, 동료와 후배들을 존중하면서 리드하고, 그래서 더 좋은 성과를 만들고, 그 성과와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주고 "정말 훌륭하다, 너희 덕에 나는 그냥 얹혀가는구나"라고 말하고, 만일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면 스스로 나서서 그 책임을 온전히 받아야죠. 그렇게 일하는 게 어른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돼야죠. 그래서 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죠. 어른답게, 라는 게 뭔지. 당당하고 씩씩하게 그렇게 일하는 게 뭔지. 이건 추상적인 게 아니고 저는 매우 구체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내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결정을 내린다고 하셨죠. '내 뒤에서 나를 보는 사람, 나의 후배들에게 지금 내 판단은 설득력이 있는가? 그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는 게 결과적으로 나는 좋았다'고 쓰셨습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 망설여질 때가 많아요. 일을 한다는 건, 그리고 책임이 높아진다는 건, 판단에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서 광고주를 유치하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클라이언트 컴펌을 받아야 해요. 그래야 광고가 태어납니다.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안 들어 해서 쓴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대답은 내가 해야 돼요. "죄송합니다, 다시 준비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인지 "저희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할 것인지. 그럴 때 저는 제 뒤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요. 제 뒤에서 서른 살의 이원흥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거절과 단호한 포기만 멋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타협을 하고 설득을 해야 돼요. 그런데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알아요. 제가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그걸 의식하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그런 데 대한 당당함이 제 뒤에 있는 후배의 눈으로 봤을 때 좋을 것 같고요.

'권위가 아닌 품위의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일하는 자의 품위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요. 언제나 자기 설득력을 검증하고, 그것이 잘 되건 잘못되건 씩씩하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존중에서 시작하는 자세를 잃지 말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자발적이고 진지한 호기심을 놓지 말고 늘 궁금해 하는 것. 저는 그게 일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품위 같아요. 그렇게 노력하고 분투하면서 살아가면, 어쩌면 저 같은 후배는 '일하는 사람의 품위는 저런 것 같다'고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무엇보다 제 스스로 그것에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그렇지만 누구든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잘 되고자 매우 분투하는 것이 자기 일에 대한 마땅한 태도 같아요. 잘 안 될 것 같은 모든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전망과 예측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긍정하고 집요하게 노력해서 증명해야 되는 거죠. 자기 자신이 잘 안 될 때도 얼마나 자기를 긍정할 수 있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긍정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의지만으로는 잘 안 돼요. 결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힘이 되어 주는 건, 저에게는 독서였어요. 젊은 분들이, 이미 그러고 계시겠으나, 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빠른 자양분이 되어주는가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요즘은 영상 시대고 스낵 컬처의 시대이지만, 당연히 그것이 가지는 장점과 새로움 미덕이 있지만, 긴 호흡의 또는 조용한 독서의 몰입이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흘려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과시적이거나 구경하는 독서가 아니라 언제나 주체적인 독서를 하시면 좋겠고요. 

'이게 지금 나의 일하고 무슨 관련이 있나, 어떤 시사점이 있나' 항상 의식하시면, 모든 책에 반드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회사도 완벽한 책도 없겠죠.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취하고 배웠고 보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나'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죠.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내 주변을, 지금 나의 인생을, 나의 일을. 그런 걸 자각할 때만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일에 즐겁고 적극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일이 진짜 자기 마음 안에서 재밌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야 좋잖아요. 안 그러면 눈치 보죠. 눈치 보면 시간 안 가고, 재미없고, 괴롭고, 그렇잖아요.




*이원흥

1993년 1월 3일,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첫 출근을 했다. 한컴과 TBWA 등에서 제작 임원을 거쳐 현재 농심기획에서 제작 총괄로 일하고 있는 30년 차 카피라이터이다.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이원흥 저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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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